335
335. 외전 – 13화
늦은 밤, 엄경훈의 원룸.
그곳에 들이닥친 조직 폭력배 무리와 서민철 작전 본부장.
엄경훈은 눈앞에 벌어진 그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연신 뻐끔거렸다.
그리고 그때.
“경훈아.”
서민철 본부장이 자세를 낮춰 그와 눈높이를 맞췄다.
엄경훈은 입사 후 아직까지 한 번도 그와 직접 대면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서민철 본부장은 그의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네가 보관실에 들여보내 준 놈 알아내는 거, 그리 어렵지 않아. 네 주변 대상으로 전수 조사 한 번 하면 3일 안으로 잡아낼 수 있다고. 그런데… 그렇게까지 하기엔 내가 좀 급해서 도움을 받으려는 거야.”
“…….”
“그러니까 협조 좀 해줘라. 약속하는데, 여기서 끝내면 아무 일도 없었던 거로 해줄 수 있어.”
엄경훈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자 서민철 본부장은 손가락으로 엄경훈의 가슴께를 쿡쿡 찌르며 말을 이었다.
“나만 알고 있어야 하는 파일을 너희들이 빼돌렸어. 덕분에 나도 위험해지게 생겼고. 솔직히 말해서… 지금 나도 너랑 같은 처지야.”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정말 모르는…….”
“야!”
그 순간, 서민철 본부장의 눈빛이 확 바뀌었다.
“상황 파악 좀 하자. 너희들이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나 알아?”
서민철 본부장은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듯, 목소리가 점점 떨려오고 있었다.
“진심으로 너희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지금 나한테 말하는 게 좋을 거야.”
“……네?”
“나중에 그 인간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땐 나도 어떻게 해줄 수가 없어.”
서민철 본부장이 옅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여기서 말하지 않으면, 그다음에는 손가락 수준이 아닐 거야. 몸뚱이는 인천 앞바다에, 머리는 동해 앞바다에 버려질 수도 있어.”
“…….”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파일만 찾으면 그만이야. 누굴 해칠 생각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 그런데 그 인간은 아니야. 그 파일을 포함해서, 파일에 대해 아는 놈들 모두 살려둘 수가 없는 입장이거든.”
그렇게 말하는 서민철 본부장의 눈도 살짝 떨려왔다.
“다른 놈 손에 넘어갔다는 걸 그 인간이 알게 되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그러니까… 너랑 네 친구를 위해서라도 여기서 끝내야 해.”
“…….”
엄경훈은 그 말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믿어야 하나.
하지만 자칫 잘못되면…….
엄경훈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그의 등이 바들바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민철 본부장은 재촉하지 않은 채, 그가 선택 내리길 잠시 기다렸다.
머지않아 엄경훈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정말… 모두 무사할 수 있는 건가요?”
“약속하지.”
그의 물음에, 서민철 본부장 또한 평소와 다른 진지한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은혜…….”
“뭐?”
엄경훈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위원회 조사팀 소속… 하은혜에게 있어요.”
***
“…….”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방.
하은혜는 집으로 가져온 파일을 모니터에 띄웠다.
그리고는 긴장된 표정으로 내용을 확인했다.
던전 개입이 발생한 블루 등급 던전의 3개월 전 원본 파일.
하은혜는 던전 개요부터 특징, 주의 사항과 특이사항 등 5페이지에 달하는 모든 정보를 빠짐없이 읽어나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던전 개입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줄도 적혀 있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지…….’
그녀가 중얼거렸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누군가 김준우 헌터를 의도적으로 함정에 빠트린 것이다.
물론 그 이유까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그 사실을 위원회가 모두 알고도 눈감아주고 있다는 거겠지.
‘절대 한두 명 가담해서 될 일이 아니지…….’
최소 팀장급 이상의 고위 인사들이 벌인 일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마주하고 보니 그녀 또한 긴장되기 시작했다.
일단 사실 확인은 마쳤으니, 이제는 이걸 어떻게 처리할지가 관건이다. 어정쩡하게 터트려선 오히려 역풍만 맞을 테니까.
‘그럼 일단은…….’
자료를 챙겨두는 게 중요하겠지.
그런 생각에 하은혜는 파일의 사본을 만들어 개인 USB에 담았다.
그리고 그 직후.
‘…….’
그녀의 시선이 또 다른 파일에 고정됐다.
그녀가 추가로 가져온 파일.
15년 전, 9월 12일 14시 20분에 개시된 그린 등급 던전 실시간 토벌 모니터링 파일.
본인의 기억이 맞다면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참가했던 그 작전이다.
토벌 중 동료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채, 불명예 퇴직과 함께 검찰로 송치되었던 그 사건.
그때의 모든 상황이 담긴 파일이 하은혜의 눈앞에 있는 것이다.
하은혜는 클릭을 망설였다.
아직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까닭이었다.
솔직히 아버지가 체포되고 구치소에 수감 되는 와중에도 그를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협회와 위원회 그리고 경찰까지 모두 낱낱이 조사를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결과가 아빠라면, 사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는 정해져 있었다.
그럼에도 하은혜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최면을 걸었다.
아빠가 범인일 리가 없다.
아빠가 그랬듯, 누명을 쓴 게 분명하다.
그렇게 15년을 보냈다.
그런데 만약 이 파일을 확인하고 나서, 15년간의 믿음이 송두리째 부정당한다면… 그땐 정말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고통은…….
아빠가 정말 범인이 아니라면, 이번 기회를 놓치는 순간 그의 억울함을 풀어줄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다는 것.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을 맨 사람이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뜬 눈으로 연옥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진실에서 등을 돌리면… 나중에 다시 아빠를 만날 면목이 없지 않은가.
“…….”
하은혜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와 동시에 눈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는 이내.
딸깍―.
파일을 클릭했고, 곧바로 모니터에 그때 그날의 일들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날의 진상이 조금씩 드러나며 그와 함께 하은혜의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녀가 두 눈으로 진실을 마주한 순간.
쿵―.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어날 생각도 없이, 그저 조용히 입을 틀어막았다.
머릿속이 점점 새하얘졌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황망한 얼굴로 시선을 한곳에 두지 못한 채, 덜덜 떨고 있던 그때.
따르릉―.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엄경훈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하은혜는 그 이름 석 자를 보자 가까스로 정신이 든 듯했고, 이내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겨, 경훈아. 지금 집에서 파일 확인해 봤는데, 아, 아무래도 경찰에…….”
「은혜야. 너 혹시 서버에서 다른 파일 가져갔어…?」
“…어?”
하은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15년 전 파일을 가져온 건, 순전히 개인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당연히 아직 그에겐 말을 한 적이 없는데…….
대체 그가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가.
「우리 집으로 서민철 본부장이 찾아왔어. 그런데 상황이 뭔가 심상치 않아. 지금 서민철 본부장이 그리로 가고 있으니까, 네가 가지고 있는 파일 그냥 넘겨줘.」
“뭐…?”
그 말에 하은혜의 눈이 동그래졌다.
“너, 너… 지금 날 넘긴 거야…?”
「그런 거 아니야! 우리 생각보다 지금 상황이 더 심각해! 네가 가져온 파일, 건드리면 안 되는 거였다고! 지금 안 넘기면 오히려 더 위험해질 거야!」
“야 이 멍청아! 그 말을 믿어?!”
「안 믿으면 어떻게 할 건데! 진짜 죽을 수도 있다는데!」
“…….”
진짜 죽을 수도 있다.
그 말에 하은혜는 대답을 아꼈다.
그러자 엄경훈은 불길한 예감이 스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야, 은혜야. 대답 좀 해봐! 야!!」
“……끊어.”
하지만 하은혜는 더 이상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곧바로 전화를 끊고는 15년 전 파일 또한 USB에 복사했다.
그리곤 대충 짐을 챙기곤 곧장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
하은혜는 어두컴컴한 원룸촌을 벗어나 무작정 큰길로 달렸다.
이윽고 역 앞에 늘어선 택시들을 발견한 그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가장 앞에 있는 택시에 올라탔다.
“가, 가까운 경찰서로 가주세요!”
“예…?”
“경찰서요! 빨리요!!”
당혹스러워하는 택시 기사의 물음에 하은혜는 목소리를 한껏 높여 소리쳤다.
택시는 그제야 천천히 도로 위로 들어섰다.
서울 한복판 대로.
화려한 도심의 풍경이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하은혜는 복잡한 표정으로 그 풍경을 바라보며, 손에 들려 있던 USB를 꼭 쥐었다.
이내 그녀는 두 눈을 감았다.
마치 무언가를 각오한 듯한 얼굴.
그저 가만히 숨을 몰아쉬며, 애써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고 있던 그 순간.
쾅―!!!
맞은 편 차량 한 대가 중앙선을 넘어, 하은혜가 타고 있던 택시를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그녀의 몸이 순간 붕 떠올랐고, 이내 어마어마한 충격이 온몸에 전해졌다.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그녀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쾅, 쾅쾅―!!
택시는 그 후로도 도로 위를 몇 바퀴나 굴렀고,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찌그러지고 나서야 그 자리에 멈춰섰다.
완전히 전복된 차량.
하은혜는 그 안에 거꾸로 끼어, 점점 멀어지는 정신에 눈앞이 흐려지고 있었다.
흐려지는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맞은편 차에서 내려 자신에게 다가오는 한 남자였다.
‘움직여…….’
하은혜는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그저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를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코앞까지 다가온 남자가 택시 문을 열어젖힌 순간.
“아아아악!”
목숨이 위험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는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그녀가 소리를 지르며 택시 밖으로 튀어 나갔다.
남자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미처 반응하지 못한 듯했고, 하은혜는 그 틈을 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서울 한복판.
자정을 넘겼음에도 네온과 간판 불빛으로 환한 도심.
그리고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
하지만 그 깨어있는 도시는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
하은혜는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계속해서 미친 듯이 달렸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따윈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저 살 수 있는 곳으로,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곳을 찾아 달릴 뿐이었다.
하지만.
“허억, 허억…….”
한참을 달리던 그녀의 앞에 나타난 건, 막다른 골목이었다.
하은혜는 가장 먼저 뒤를 살폈다.
다행히 자신을 쫓아오던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그녀는 일단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와 동시에 핸드폰 화면에 떠 있는 알림 하나를 확인했다.
부재중 통화 1건.
다름 아닌 김준우 헌터에게서 온 전화였다.
그의 이름을 본 하은혜는 무언가에 홀린 듯, 떨리는 손으로 경찰 대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어… 그, 쉬고 계십니까? 안 그래도 문자 남기려고 했습니다. 그 다른 게 아니라…….」
“…….”
이윽고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하은혜는 순간 긴장이 확 풀린 듯 입을 떼지 못했다.
「아, 혹시 주무시고 계셨습니까. 미안합니다. 일단 문자로 남겨 놓을 테니까, 내일 출근하시면…….」
“허, 헌터님.”
하은혜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목으로 애써 목소리를 냈다.
“도와주세요.”
이내 그 한마디를 뱉었다.
그대로 대답이 끊기길 잠시.
이윽고 김준우가 다급하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지만, 그녀는 더 이상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후… 달리기 참 빠르시네.”
어느덧 자신을 쫓던 그 남자가, 눈앞에 나타난 까닭이었다.
“아니 뭐, 제가 누군 줄 알고 그렇게 죽을 듯이 도망가요. 도와주려는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
남자가 너스레를 떨었지만, 하은혜는 도저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와 눈을 마주친 순간부터 생존 본능이 미쳐 날뛰고 있었으니까.
“…안 믿으시네. 감이 좋으신 건가?”
그러자 남자가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윽고 하은혜는 그렇지 않아도 만신창이었던 몸이 한계에 다다른 듯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동시에 그 남자는 하은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정체는 기업인, 연예인, 정치인 등, 대한민국에서 조금이라도 뒤가 구린 모두가 한 번씩은 찾아오는 이었다.
음지에서 가장 유명한 해결사.
동시에 현 대한민국 랭킹 1위의 프리랜서 헌터.
그의 이름은, 양민호.
일명 청소부라 불리는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