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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외전 – 5화
대한민국 이능차원관리 협회 직속, 작전 진상규명 위원회.
통칭, 위원회.
그들의 사무실은 서울본부와 같은 건물을 쓰고 있었지만, 다른 직원들은 거의 갈 일이 없는 곳이었다.
아니, 가지 않기를 바라는 곳이라고 해야겠다.
만약 작전팀 소속이 그곳에 불려가게 된다면… 그건 일이 꽤나 심각하게 흘러간다는 뜻이었으니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봅시다.”
이미지와 다르게 꽤나 평범한 분위기의 조사실.
기훈철 팀장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다시금 입을 열었다.
“김준우 헌터님은 통제팀으로부터 블루 등급의 악성재고라는 정보와 보스 몬스터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만 받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기획서를 작성하신 거라는 말씀이시죠?”
“예.”
“던전 개입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일방 던전이라는 것도 모르셨고?”
“예.”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단답했다.
하지만 기훈철 팀장은 한숨을 길게 늘어뜨리며 몸을 뒤로 젖혔다.
“하지만 통제팀 파일에는 분명히 던전 개입 가능성이 높다고 적혀 있더군요.”
“……예?”
그게 뭔 개소리인가 싶어 눈썹을 치켜뜨자, 기훈철 팀장이 서류 몇 장을 건네주었다.
“6개월 전에 작성된 이번 던전의 초기 정보 파일입니다. 특이사항란을 보시면 분명히 적혀 있지 않습니까. 던전 개입 가능성이 높다고.”
“…….”
파일을 살펴봤다.
나도 모르게 코웃음이 새어 나왔다.
“…뭡니까?”
그 반응이 심기를 건드린 것인지, 기훈철 팀장의 목소리가 갑자기 바뀌었다.
“김준우 헌터님, 지금 이게 장난 같습니까?”
“아뇨,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감이 안 오시나 본데… 만약 던전 개입 가능성에 대해 알고 있었는데도 무리하게 작전을 강행했다면, 이건 징계를 떠나서 협회 자격 박탈 사유입니다. 아세요?”
“…….”
그를 가만히 바라보며 대답을 아꼈다.
일단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볼 필요가 있었으니까.
“지금 우리 위원회를 포함해서 협회 상부 모두 당신이 토벌 수익 분배를 최소화하려고 억지로 강행했다고 의심하고 있어요.”
“……토벌 수익이라.”
헛웃음이 튀어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그래서, 초기 파일에도 분명히 적혀 있는데 굳이 8명으로 작전을 진행한 이유가 뭡니까?”
“…….”
대답이 없자, 기훈철 팀장이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김준우 헌터님. 당신 실력과 실적에 대해선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리젠 던전 때는 당신의 공이 매우 컸다는 것도요.”
마치 어르고 달래는 듯한 투.
그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헌터님 같은 분일수록 실수를 인정하는 게 어렵다는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인정하셔야 합니다.”
“실수요…?”
“설마 김준우 헌터님이 정말 던전 개입 가능성을 알면서도 토벌 수익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이셨겠습니까. 그저 파일을 잘 확인하지 못한 거겠죠. 그렇지 않나요?”
기훈철 팀장의 그 말에 나는 보이지 않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
이제야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좀 감이 잡힌다.
‘어떻게든 내 실수로 몰아가려는 거구만…….’
어찌 됐든 토벌 중에 사고가 발생한 건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기훈철 팀장은 그 원인에 대해 두 가지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하나는 던전 개입 상황을 미리 알았음에도 무리하게 작전을 강행했다.
또 하나는… 내가 잘 확인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종의 실수다.
두 가능성은 언뜻 비슷해 보이면서도, 그 처분에 대해서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
전자는 기훈철 팀장도 말했듯이, 헌터 자격 정지 사유가 될 수도 있다.
평생 헌터 생활을 못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실수라고 한다면… 해봤자 정직이나 진급 누락 정도겠지.
그러니 사람의 심리상, 당연히 자격 정지보다는 징계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기훈철 팀장 또한 그걸 유도하는 것이고.
‘하지만…….’
한 가지 가능성이 빠져있지 않은가.
“이 초기 정보 파일 말입니다.”
나는 서류를 다시금 훑어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말 6개월 전에 작성된 게 맞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중간에 수정되었다거나, 누군가 추가했을 가능성은 없냐는 말입니다.”
“…….”
고의건 실수건, 두 이야기 모두 결과적으로 내 책임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고를 수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내가 확인했던 파일에는 분명히 던전 개입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으니까.
지금 내가 보는 서류에서처럼 특이사항란에 이렇게 대문짝만하게 적혀 있었다면 내가 못 봤을 리가 없다.
봤는데도 잊어버렸을 리는 더더욱 없다.
이건 고의도, 실수도 아니다.
“단언컨대, 제가 확인했던 파일에는 이러한 내용이 일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전 그저 여느 블루 등급 던전과 같이 토벌을 진행한 것뿐입니다.”
누군가가 그렇게 만들고 싶어 하는 거겠지.
“그래서… 다시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나는 기훈철 팀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이 파일, 정말 6개월 전에 작성된 원본 그대로가 맞습니까?”
“…….”
기훈철 팀장은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한 채였지만, 대답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가 작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설마 파일이 조작되었다… 뭐, 그런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이야기한 겁니다.”
“설령 그렇다고 하면 위원회가 모를 리가 없겠죠.”
“물론입니다. 위원회가 모를 리가 없겠죠.”
나는 다시금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래서 제가 지금 기훈철 팀장님에게 여쭤보는 겁니다.”
“……지금 위원회를 의심하는 겁니까?”
“위원회도 제가 토벌 수익 때문에 이런 일을 벌였다고 멋대로 의심하는데, 저라고 위원회를 의심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하, 하하하.”
입만 웃었다.
“그 말… 책임지실 수 있겠습니까?”
“뭐, 사실이 드러나면 책임은 다른 사람이 지지 않겠습니까.”
“……김준우 헌터님.”
그가 말했다.
“증명할 수 없는 사실은, 그냥 거짓입니다.”
“…….”
“괜히 쓸데없는 거짓말로 무마하실 생각하지 마시고, 제가 기회를 드릴 때 잡으십시오. 작게 끝낼 수 있는 일을 크게 만들지 마시고.”
입을 다물고는 코로 길게 숨을 내뱉었다.
“작전 중 사고에 대한 명확한 조사 및 진상 파악.”
“……?”
“그것을 통해 사고의 원인에 대한 책임을 물고, 희생 및 피해자에 대한 확실한 보상과 더불어 추후 같은 사고를 예방한다.”
내가 말하자, 기훈철 팀장이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것이 위원회가 하는 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잘 알고 계시는군요.”
뻔뻔한 반응.
나는 두 손을 책상 위에 올리며 말을 이었다.
“안에서 벌어진 일은 늘 그렇듯 토벌 중에 벌어질 수 있는 예기치 못한 ‘사고’였고, 저는 현장 책임자로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
“그리고 저는 정보 파일에서 해당 내용을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면… 해당 증언의 사실 여부부터 조사해야 하는 게 순서 아닙니까?”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왜 딱 잘라서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지 모르겠군요. 꼭 처음부터 결과를 정해둔 것처럼.”
“…….”
그의 눈꺼풀이 작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아무튼, 더 이상 제가 조사를 받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군요.”
나는 그렇게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말씀드린 부분에 대해 추가적인 정보가 나온다면 그때 다시 연락주십시오.”
그렇게 등을 돌려 조사실을 나서던 그때.
“김준우 헌터님.”
기훈철 팀장이 목소리를 낮게 깔며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자.
“후회하실 겁니다.”
“…….”
나는 대답 대신 그대로 복도로 나섰다.
‘그래서…….’
누굴까.
나한테 이런 짓을 할 사람이.
***
“뭐, 뭐야? 너 왜 출근했어?!”
작전 1팀 사무실.
김민주가 들어오자, 금세영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김민주는 오른팔에 반깁스를 한 채로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어깨 박살 났다매! 입원해야지, 어딜 출근을 하고 자빠졌냐?!”
“아, 아니… 검사받아보니까 그렇게 크게 다친 건 아니래. 어차피 보고서 쓸 것도 있고 해서…….”
“미쳤지, 미쳤어! 이 미련 곰탱아. 그런다고 누가 돈 더 주냐? 출근 못 해서 죽은 귀신이 붙은 것도 아니고!”
금세영은 본인이 답답해 미치겠다는 듯, 가슴을 쿵쿵 치며 말했다.
하지만 김민주는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며 자신의 자리로 갔다.
금세영이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길 잠시.
“야, 그래서…….”
이내 주변을 슬쩍 살핀 후,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 어떻게 된 거야? 정말 김준우가 알면서도 강행한 거야?”
“…나도 모르지.”
그녀 또한 그것에 대해선 알 방도가 없었다.
애초에 김민주가 확인한 것은 김준우가 작성한 작전 기획이지, 초기 정보 파일이 아니었으니.
“뭐… 설마 알면서도 그랬을까. 그 사람이 성격이 좀 더럽긴 해도, 최소한 작전에서만큼은 완벽주의자잖아.”
“야, 좀 더러운 게 아니라 많이 더럽지! 그 인간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아.”
금세영은 이때다 싶어 악담을 쏟아냈다.
“다다음 주 옐로우 등급 토벌도 10명 편성했다면서? 다른 던전도 거의 최소 인원으로만 기획하고 있고.”
“…응.”
“그것 봐. 그 인간 그냥 돈 때문에 그런 거라니까? 최소 인원으로 토벌하면 그만큼 더 많이 가져갈 수 있으니까.”
“……그런가?”
김민주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이번 토벌도 거의 혼자서 했다매? 다른 인원한테는 끼지 말라고 하고. 돈이 아니면 실적 독차지해서 팀장 자리 노리는 걸 수도 있겠네. 뭐… 아무튼 의도가 순수하지 않아. 그 인간.”
“…….”
김민주는 잠시 대답을 아꼈다.
확실히 금세영 헌터 말대로, 이번 토벌에서 김준우는 거의 홀로 보스를 처치했다.
오히려 던전 개입이 발생하자 더욱 혼자서 나서려고 했다.
거의 강박감이 느껴지는 수준.
하지만 본부 에이스라 불리는 그 또한 이번만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만약 정말 던전 개입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면, 상식적으로 다 같이 토벌을 진행하는 게 옳은 방법이다.
‘그런데도 굳이 혼자서 토벌했다는 건…….’
그렇다면…….
정말 김준우는 던전 개입이 일어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건가?
정말 실적과 수익을 위해서 혼자 토벌하려고 했던 거고?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던 그 순간.
쾅―!
누군가 문이 부서져라 열어젖히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다름 아닌.
“시발, 떴다…….”
“위원회에서 조사받는다고 하지 않았나?”
“빨리도 끝났네.”
“딱 봐도 빽 써서 무마했겠지.”
이번 논란의 중심에 선 자.
김준우였다.
그는 꽤나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듯한 표정이었다.
김민주와 금세영 또한 곧바로 시선을 피해, 각자의 일에 집중하는 척했다.
근데 어째선지 김준우의 발걸음이 김민주의 자리로 향했다.
“…….”
이윽고 그가 김민주 앞에 턱 하니 섰고,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던 그녀가 조심스레 그와 눈을 맞췄다.
“무, 무슨 일이신지…….”
“일어나.”
무미건조한 목소리.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그 압박감에, 김민주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짝―!
그의 손이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