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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 외전 – 2화
“김준우?”
대한민국 이능차원관리 협회, 서울본부.
작전 본부장실.
그곳을 찾은 이수용 팀장이 갑작스레 그를 언급하자, 서민철 본부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당연히 알지. 너희 팀 에이스잖아. 아니… 서울본부 에이스라고 해야 하나?”
“뭐… 에이스긴 하죠. 작전 1팀 실적은 그놈 혼자서 다 챙겨주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놈은 갑자기 왜?”
서민철 본부장은 서류에 끼적이며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그는 아직까지 김준우와 직접 마주한 적이 없었기에 알고 있는 거라곤 서류상의 정보 정도였다.
나이, 학력, 랭크 같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공식적인 정보.
물론 잘 모르는 놈이라고 해도, 그에 대한 이미지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김준우.
국내 최연소 헌터라는 타이틀로 입사할 때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신예.
입사 5년 만에 한국 4번째 A랭크를 달성하더니, 팀 내 유일무이한 에이스로서 매달 최고 실적을 갱신하고 있다.
그것만으로 이미 실력은 검증된 셈이다.
작전 본부장으로서 그를 좋게 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따라서 이수용 팀장이 뜬금없이 김준우 이야기를 꺼낸 것이 퍽 의아했다.
“요즘 들어… 너무 기어오르는 것 같습니다.”
“…….”
이수용 팀장이 꽤나 진지하게 그 말을 내뱉자 서민철 본부장은 풋, 하며 실소를 터트렸다.
“난 또 뭐라고. 야 인마, 적당히 기어오르는 것 정도는 그냥 좀 넘어가. 에이스잖아. 괜히 다른 놈들처럼 쪼다가 다른 데로 넘어가 버리면 너만 손해야.”
“본부장님!”
“너 그리고 밑에 놈들 기어오른다고 나 찾아와서 징징댄 게 한두 번이냐? 누가 무시했다, 지시를 어겼다, 회식에 참석 안 했다…. 그 정도는 좀 알아서 해결해라 좀. 나 찾아오지 좀 말고.”
서민철 본부장이 한 귀로 흘려버리자, 이수용 팀장이 다시 한번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김준우는… 그런 수준이 아닙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퍽 진지한 모습.
서민철 본부장도 그것만큼은 뭔가 이상했는지 이번에는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
“뭔 소리야. 그런 수준이 아니라니?”
“요즘 들어 토벌에 거의 매일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하루에 세 번씩, 블루 등급 이상으로만요.”
“그게 왜? 본인이 그럴 능력이 되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딱히 문제는 아니잖아. 우리야 실적 올라가니 좋고.”
“그렇게만 본다면 문제는 없죠. 다만, 본인이 참가하는 작전 기획이 좀 이상합니다.”
“뭐…?”
서민철 본부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원칙대로라면 모든 던전의 작전 기획은 팀장이 직접 작성해야 한다.
하지만 김준우는 그 실력을 인정받아 본인이 참가하는 작전에 한해서 직접 기획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언뜻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작전 기획은 사실 작전 단계 중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토벌 중의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한 작업.
아주 자그마한 흠이 있다면 그건 곧 토벌에서의 사고로 이어진다.
거기에 이상한 점이 있다면, 그건 꽤나 중대한 사항이…….
“뭐랄까, 너무 본인 위주인 것 같다고 할까요.”
“…….”
“마치 팀원들은 그냥 토벌 허가를 받기 위해 머릿수를 채우는 용도고, 실질적 토벌은 모조리 본인이 하겠다는 느낌이더군요.”
이수용 팀장의 대답에 서민철 본부장은 김이 팍 샌 표정이었다.
“잘하는 놈이 잘하는 놈 위주로 작전하겠다는데, 그게 왜 문제냐…?”
“시기가 이상하거든요. 그때 이후로 계속 그런 기획만 한다는 게…….”
“그때라니?”
“…….”
이수용 팀장은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듯, 입술을 잘근 씹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리젠 던전… 이후로 말입니다.”
어렵사리 입 밖으로 꺼냈다.
동시에 서민철 본부장은 측은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서울 리젠 던전 사태.
이수용 팀장에겐 떠올리기조차 싫은 수치와 치욕의 날.
끊임없이 밀려 나오는 몬스터에 겁을 먹고는 작전 개시 6시간 만에 김준우에게 지휘권을 넘겨버렸다.
듣자 하니 그 뒤로는 곧바로 임시 통제실에 틀어박혀 가족들에게 전화를 돌렸다지.
서울에서 일어난 그 전무후무한 사태는 많은 희생자를 낳았고, 또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물론 그건 결코 이수용 팀장의 잘못은 아니었다.
다만, 지휘권을 인계받은 김준우가 결과적으로 리젠 던전을 막아냈다는 게 문제였다.
에이스라고는 해도 당시엔 고작 입사 5년 차의 B랭크 헌터.
그런 놈이 5일 동안 현장에서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막아낼 때, 정예 팀장이라는 놈은 부하에게 지휘권을 넘기고 현장에서 도망쳤다.
이 사실이 이수용 팀장에겐 지울 수 없는 치욕이겠지.
아마 팀원들을 더 쪼아대기 시작한 것도 그날 이후였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본인의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조금이나마 숨길 수 있었을 테니까.
‘멍청한 놈…….’
서민철 본부장은 작전팀장의 역할을 내팽개치고 도망친 그가 퍽 한심했지만, 그렇다고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었다.
그에게 책임을 묻는 순간, 그가 능력이 없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고. 그 화살은 곧 그를 1팀장 자리에 꽂아준 자신에게 돌아올 터였으니까.
서민철 본부장은 더 이상 이야기를 질질 끌지 않고는 본론으로 넘어갔다.
“그러니까 리젠 던전 사태 이후로 작전 기획을 극단적으로 짜고 있다는 거냐? 토벌 참가도 갑자기 늘어나고?”
“……네.”
언뜻 보면 그마저도 문제 될 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서민철 본부장도 이번엔 확실히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말했듯, 그날 입은 피해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협회뿐만 아니라, 서울 전체가 무너질 뻔했던 사상 초유의 사태.
그 충격적인 사건 이후로, 사망한 헌터 말고도 많은 헌터가 협회를 떠났다. 더 이상 던전에 들어가는 게 두렵다며 줄줄이 사직서를 던진 것이다.
덕분에 현재 서울본부는 총체적인 인원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방 작전팀과 민간 길드에 이래저래 도움을 요청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현재 모든 팀의 실적도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갑자기 본인 실적 위주로 토벌량을 늘린다라…….”
서민철 본부장이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설마 그놈이 남은 팀원들을 생각해서 독박 쓰고 있는 건 아니겠고…….”
“그럴 리가 없죠.”
“그럼 뭐…….”
서민철 본부장의 눈빛이 순간 번뜩이길 한 차례.
“자리 욕심이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윽고 두 남자가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모든 팀이 바닥을 기고 있을 때, 독보적인 실적으로 앞서 나간다면 당연히 상부의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헌터 등록 때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던 김준우다.
‘듣자 하니 조만간 S랭크 심사도 잡혀 있다던데…….’
아마 그의 주가는 점점 더 올라가겠지.
당연히 이사회도 그걸 모를 리가 없다.
실력도, 네임밸류도 검증된 본부 내 최고 에이스가 실적까지 독식해버린다?
이렇게 되면 당장 위험해질 놈은…….
“너 큰일 났다, 수용아.”
한 명뿐이지 뭐.
“보, 본부장님…!”
서민철 본부장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이수용 팀장은 식겁하며 일어섰다.
하지만 서민철 또한 이게 마냥 웃을 상황은 아니었다.
“앉아, 인마. 나도 그놈이 너 밀어내는 건 별로 탐탁지 않으니까.”
“…….”
“무엇보다 아직 새파랗게 젊은 놈이 벌써 팀장 얘기 나오는 것부터 보기 안 좋고.”
이수용 팀장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얌전해졌다.
뭐, 확실히 김준우는 작전팀의 효자 같은 놈이다. 그러니 지금까지야 예쁘게 봐줄 수 있지만…….
실력 좋은 부하는 부하로 있을 때만 예쁜 법이다.
하지만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 한다면 그때부터는 견제의 대상이 될 뿐이지.
“네 실적이 곧 내 실적이야. 네가 밀려나면 당연히 나에 대한 평가도 그만큼 떨어지겠지. 그러니까 넌 내가 이사회 들어갈 때까지는 계속 1팀장이어야 해.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족보도 없는 놈, 실력 좀 좋다고 치고 올라오면 너나 나나 지금처럼 협회 생활 못 할 거다.”
“…….”
생각보다 진지한 반응에 이수용 팀장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민철 본부장은 다시금 팔짱을 낀 채 등받이에 몸을 푹 기댔다.
“어디 보자, 그럼…….”
창밖으로 시선을 옮기며 작게 중얼거렸다.
“어떻게 할까.”
***
“야, 앞에 방해하지 말고 나와.”
청담동에 위치한 블루 등급의 건물형 던전.
낡고 오래된 저택.
작전이 개시된 지도 벌써 30분이 지난 그때, 앞서가던 팀원들에게 소리쳤다.
“네, 네…?”
“걸리적거리니까 나오라고. 내가 선두로 갈 테니까.”
“리, 리더가 앞에서 정찰하라고…….”
“그거야 초입 때 얘기지, 벌써 중반은 왔는데 무슨 정찰이야. 잔말 말고 뒤로 꺼져.”
“…….”
선두에 있던 팀원은 조용히 진영 뒤로 물러갔다.
슬쩍 보이는 표정은 꽤나 못마땅해 보였지만… 뭐 어쩌겠는가.
건물형 던전 특성상 잘 드러나지 않는 방이 많다.
게다가 중반부터는 언제 어디서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카아아아아―!
그때였다.
“후, 후방에 몬스터 출현!”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
개체는 두 마리.
거대한 쥐의 형태를 한 놈들.
“비켜. 비키라고!”
곧바로 진영을 가로질러 후방으로 향했고, 그 순간.
[고유 스킬 : 천수관음]
나보다 먼저 나선 이가 있었으니.
슥, 스슥―.
다름 아닌, 김민주였다.
슥, 서걱―!
푸욱―!
“…….”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서서 그녀의 전투를 지켜봤다.
블루 등급의 잔챙이들이니 처리하는 데 그리 어려울 건 없었지만…….
‘저 자식 어깨가…….’
나는 잠깐 동안 그녀의 움직임에 이질감을 느꼈다.
눈을 가늘게 뜬 채 잠시 그녀를 관찰하고 있는 사이 금세 상황이 정리됐다.
“출현 개체 2마리, 전부 처리했습니다.”
“…….”
나는 대답 대신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곧장 날이 선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 뭐야!”
“……네, 네?”
그녀가 퍽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매핑이나 하랬지. 누가 마음대로 전투에 끼어들랬어. 이거 지시 위반이야. 알아?”
“…….”
“시킨 것만 해, 시킨 것만. 되지도 않는 실력으로 괜히 나대지 말고.”
나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등을 돌렸다.
“이동한다.”
그렇게 다시 선두에 서서 계속 전진하길 잠시.
3층 복도 끝에서 굳게 잠긴 문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손목에 차고 있던 이능파 탐지기를 확인했다.
‘여기군…….’
곧바로 무전기를 들어 통제팀에 연락했다.
“보스방 발견했습니다. 준비되는 대로 진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보고하자 통제팀에서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이 날아들었다.
「저… 예상 토벌 시간이 1시간이라 돼 있는데, 조금만 앞당겨 주실 수 있겠습니까?」
“…왜죠?”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통제팀 직원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지금 던전 밖에 청소팀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작업이 밀려서 30분 안에 작업 들어가야 일정을 맞출 수 있다고…….」
“하.”
터무니없는 대답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금은 작전 상황입니다. 던전에 들어와 있는 것도 우리고, 실수 한 번에 목이 떨어지는 것도 우리라는 소리죠.”
「…….」
“그런데, 우리가 청소팀 일정까지 신경 써줘야 합니까?”
무전기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당연하겠지.
작전 시간을 다른 팀한테 맞추라는 게 얼마나 개소리인지 그들 또한 잘 알고 있을 테니까.
“토벌도 우리가 하고, 토벌 시간도 우리가 정합니다. 그러니 청소팀이고 나발이고 조용히 대기하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뒤로 돌아 팀원들을 바라봤다.
“브리핑 때 말했다시피, 보스는 크레이지 랫. 크게 위험하진 않겠지만 움직임이 매우 빠른 몬스터다. 괜히 뭉쳐 있다가 공격당하면 다 같이 죽는 거니까, 들어가자마자 최대한 흩어져.”
“네, 네.”
“너는 후방에서 견제 폭격, 너는 힐이나 하고… 넌 몬스터가 쟤네 타겟팅하지 못하게 계속 돌아다녀.”
“알겠습니다.”
“그리고 김민주.”
역할을 분배하던 그때,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넌 아무것도 하지 마.”
그렇게 지시를 내렸다.
“…네?”
“그냥 뒤에 처박혀 있으라고. 또 아까처럼 괜히 나대지 말고.”
“…….”
내 말에 그녀는 화가 난 건지, 아니면 풀이 죽은 건지 모를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물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내 알 바는 아니었다.
“알아들었으면 준비해. 들어간다.”
나는 그 거대한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그 순간.
‘뭐야…?’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