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
321
“그래서.”
WDSO 산하 아이템 제작 연구소, 이클립스.
그곳으로 나를 안내한 클로이는 깊숙한 구역으로 들어가더니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이게 방법이라는 겁니까?”
나는 의아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왜요. 마음에 안 들어요?”
“아니, 마음에 안 든다기보다…….”
눈앞에 놓인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그도 그럴 게, 그녀가 나에게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이거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아직 연구가 완료되지도 않은 뱅크 아이템, 시간석이었으니까.
“그쪽이 회귀한 원인이 시간석이라면, 그 원인만 처리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않을까요…? 확실한 것도 아니라는 겁니까?”
“당연한 거 아니에요? 다른 뱅크 아이템이랑 다르게 시간석은 아직 연구가 안 된 물건인데.”
“…….”
“뉴욕 때 썼던 가공 탄환도 겨우겨우 만들어낸 거예요. 그것도 딱 한 발.”
너무나 당당한 그녀의 모습에 나는 기가 차다는 듯 물었다.
“그래서, 그렇게 연구도 다 안 된 물건으로 뭐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부수는 거죠.”
“……?”
그녀가 당연하지 않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어째 앞뒤를 잘라먹은 설명에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그녀를 바라봤다.
“근데 문제가 있어요.”
그러자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또 뭡니까?”
“시간석을 부순다고 해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는 장담 못 해요.”
“……그건 무슨 개소립니까?”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바로 돌아가게 될 수도 있다는 거죠.”
“…….”
어이가 없네.
이게 어딜 봐서 방법이란 말인가.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가능성은 있다는 건… 그냥 도박이잖아.
“뭐, 최악의 경우엔 아예 소멸해버릴 가능성도 있긴 한데…….”
“……?”
충격적인 또 하나의 가능성이 마지막에 튀어나왔다.
“밑져야 본전이니까요.”
“…밑지면 죽는 거 같은데.”
“천하의 김준우가 뭐가 이렇게 겁이 많아요. 그래서 할 거예요, 말 거예요?”
까딱하다간 죽을지도 모른다는데, 자기 일 아니라고 참 쉽게도 이야기하는군.
‘그나저나…….’
나는 클로이의 재촉에 대답을 아낀 채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일단 그녀의 방법이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시간석 때문에 루프가 생긴 거고 업보라는 조건으로 회귀가 진행됐다고 하면, 확실히 시간석을 파괴했을 때 루프가 사라질 가능성은 있다.
나 또한 그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고.
설령 루프가 사라지면서 회귀 전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해도, 어차피 이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에서야 결과는 마찬가지다.
그러니 실로 기가 차는 방법이지만, 해결책이 될 수는 있다.
“어쨌든 그쪽이 남을 수 있다면 이 정도 도박은 해볼 만하지 않나요?”
“글쎄요…….”
다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전 무슨 방법인지 궁금해서 따라온 거지, 남겠다고 한 적 없습니다.”
“……네?”
내가 정말 남을 생각이냐는 것.
돌아갈 것이냐, 남을 것이냐.
그 선택을 하지 않는 이상, 방법이고 가능성이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럼… 돌아가겠다는 거예요?”
“글쎄요.”
애매한 대답과 함께 말을 이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나 또한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으니까.
그러자 클로이는 꽤나 의외라는 듯 말했다.
“국제기구 사무총장까지 된 마당에 아직까지 고민할 정도면… 어지간히 잘 나갔었나 봐요?”
“뭐, 나름.”
“여기서 이룬 걸 다 포기하고 돌아갈 정도로?”
“…….”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선택을 고민하는 건 아니었다.
돌아가는 것은, 어쨌든 내 목표였다.
업보를 청산하려고 한 이유도, 4년 가까이 힘들게 달린 이유도 모두 그 목표 때문이었다.
당연히 돌아가는 게 맞다.
그런데…….
‘이상하네…….’
어째선지, 잘 모르겠다.
회귀 전에 무엇을 했는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지, 돌아가야 할 이유가 뭔지, 왜 그토록 돌아가려고 했는지.
여기서 이룬 걸 다 포기하고 돌아갈 정도로, 가치 있는 무언가가 있었는지.
도통 떠오르질 않았다.
‘…….’
그렇게 나는 한참을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있었고.
“뭐…….”
[스킬 발동까지 남은 시간]
“남은 시간 동안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죠.”
[5시간 12분 04초]
결국, 선택을 보류했다.
“……마음대로.”
클로이가 팔짱을 끼며 말했고, 나는 미소와 함께 등을 돌렸다.
“그래도 늦지 않게는 말해줘요.”
“그러도록 하죠.”
나는 그렇게 이클립스를 벗어났다.
***
“선생님이… 좀 이상해요.”
WDSO 본부, 작전 본부장실.
모든 본부장이 모여 있는 가운데 김민주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장례식 이후로는 표정도 그렇고, 말도 잘 안 하시고…….”
“박 총장님 생각나서 그런 거겠죠. 둘이 좀 각별했잖아요?”
이아영 본부장이 대답하자 김민주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뭐랄까… 느낌이 좀 다르다고 해야 하나. 마치 어디 멀리 가려고 준비하는 것 같은…….”
“…….”
“…….”
그 말에 한유빈, 이아영 본부장의 표정이 삭 굳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 불현듯 떠오른 까닭이었다.
“서, 설마…….”
“돌아가려는 건가…?”
이아영과 한유빈 본부장이 각자 동그래진 눈으로 중얼거렸다.
“아마도요…….”
김민주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와 동시에 사무실에는 무거운 정적이 이어졌고, 세 명의 본부장은 누구랄 것 없이 시선을 떨어트렸다.
사실 그들 모두 알고 있었다.
김준우의 정체, 그의 목표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면 어떻게 되는지.
모두 알고 있었지만, 더 큰 문제 앞에 잠시 잊고 있었다.
아니, 애써 외면했다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 기어이 그날이 오다니.
무어라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모두가 그저 바닥만 바라보고 있던 그때.
“에, 에이 설마… 돌아가는 거면 우리한테 말이라도 했겠죠. 설마 말도 안 하고 돌아가려고.”
이아영 본부장이 애써 입을 열었다.
하지만.
“선생님이라면 충분히…….”
“그 인간이 작별 인사?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데.”
김민주와 한유빈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이아영 본부장 또한 본인이 말해놓고도 영 아니다 싶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또다시 이어진 정적.
그리고 그때.
“그, 듣자 하니 시간석 때문이라던데…….”
한유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리곤 앞의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혹시 시간석을 파괴하면… 못 돌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
“……!”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의 눈이 동그래졌다.
“가, 가능성은 있어요.”
이아영 본부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김민주가 말끝을 흐리며 그들을 바라보자, 모두가 시선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클립스 출입은 나도 가능하니까, 어렵진 않은데… 뱅크 아이템 보관 체임버는 클로이 씨가 관리하고 있어요.”
“그건 내가 뺏어볼게요. 미국 지부에 있을 때, 나름 친했던 사이니까. 그것보다 파괴 방법은…?”
“순간적으로 초고전압을 때려 박으면 돼요.”
“그럼 폭발 위험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주변 봉쇄는 제가 해볼게요. 던전 출현 핑계로 묶어버리면 돼요.”
갑작스레 활기가 생긴 대화.
세 사람의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계획에 모두가 동참하던 그때.
“그렇게 되면 준우 씨도 못 돌아갈…….”
이아영 본부장이 말을 하다 말곤 갑자기 뚝 끊었다.
그리곤 다시 팍 가라앉은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이걸 우리가 결정해도 되는 걸까요?”
“…….”
“…….”
또다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뒤늦게 세 사람은 꽤나 멍청한 생각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결코 본인들의 욕심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러네요.”
“괜히 우리 멋대로 막으면 얼굴 보기도 뭐할 것 같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던 끝에.
“선생님이 선택하시겠죠.”
“그래, 뭐… 우리가 뭐라고 막겠어.”
“에휴…….”
이윽고 그렇게 결론이 났다.
“그래도 최소한 가기 전에 인사라도 하고 가셨으면 좋겠는데.”
김민주가 천장을 바라보며 그 말을 토해내자, 이아영 본부장이 대답했다.
“그럼 마음이라도 돌릴 수 있게 해볼까요?”
“어떻게…?”
“뭐, 여기에 남게 할 만한 명분 말이에요. 돈이라든가 권력이라든가.”
“…….”
“…….”
그런 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나?
“소용없겠네요.”
“그 인간은 뭐 욕심이라는 게 없냐.”
몇 초도 안 되어 모두가 단념한 듯, 등받이에 몸을 팍 기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 하나 있네. 남게 할 만한 명분.”
무언가가 떠오른 듯, 한유빈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그녀가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켰고.
“그쪽 말이에요.”
“……에?”
그녀가 가리킨 이는 다름 아닌.
“저, 저요…?”
이아영 본부장이었다.
“그동안 타이밍 잰다고 말 못 했잖아요. 어차피 지금 아니면 평생 못 할 텐데, 한번 던져 보죠?”
“맞아요. 혹시 알아요? 선생님도 마음이 바뀔지.”
“…….”
이아영 본부장은 두 사람의 말에 꽤나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모르겠어요…….”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을 회피했다.
그녀는 생각이 많아진 듯 그대로 입을 꾹 다물었다.
다른 두 사람도 더 이상은 재촉하지 않았다. 그녀가 어떤 마음일지, 그들이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때.
쾅―!
“이, 일 났습니다!”
하성일 해외사업본부장 겸 한별그룹 회장이 갑작스레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지, 지금 각국에서…!”
이내 그가 그 말을 뱉은 순간, 본부장들의 눈이 누구랄 것 없이 동그래졌다.
***
클로이와의 대화를 마치고, 이클립스를 나서던 그때.
따르릉―.
내 핸드폰이 울렸다.
다름 아닌, 이아영 본부장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갑자기 뭐야.’
그렇게 발신자를 확인하자마자 내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그도 그럴 게… 그녀 또한 내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설마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눈치챈 건가 싶었다.
‘…왠지 귀찮아질 것 같은데.’
그런 생각에 전화 받기가 망설여졌다.
이아영뿐만 아니라, 다른 본부장들도 내 상황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든 설득하려 할 게 뻔했다.
사실 그래서 끝까지 말하지 않으려고 한 거고.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무슨 일입니까?”
결국, 애써 모른 척하며 평소처럼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방금 하 본부장님 통해서 알게 됐는데, 지금 각국에서 WDSO 해체 시위가 일어나고 있대요!」
“……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들려왔다.
아직 내 상황에 대해선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해체 시위라뇨. 왜 갑자기…?”
「전 세계 토벌권을 관리하던 국제협회가 그 권한을 빌미로 침략을 시도했잖아요. 그러니 또다시 토벌권을 한 조직이 독점한다면, 같은 일이 반복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실 이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저 내 상황에 신경이 팔려서 생각하지 못했을 뿐.
그런 일을 겪었는데, 차후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다른 협회 입장은 어떻습니까?”
「아직 공식 입장을 발표한 곳은 없지만, 분위기를 보면 대부분 해체에 찬성하는 것 같아요.」
“골 때리게 됐군요.”
「이사회는 정상회담을 개최해서 오해를 풀려는 것 같은데, 이제 막 전쟁이 끝난 상황에서 우리가 하는 말은 크게 설득력이 없을 거예요.」
국제협회를 처리한 것도 우리고, 피해 복구에 힘을 쏟고 있는 것도 우리다.
하지만 국제협회가 야욕을 드러내게 만든 것 또한 우리다.
시민들은 자세한 정황과 인과관계를 알지 못한다.
설령 안다고 해도 그들에겐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
그것뿐이다.
시민들에게 있어 우리는 악을 무찌른 영웅이 아닌, 두 번째 국제협회가 될 수 있는 위험 인자일 테니까.
“일이 커지겠군요.”
「……네.」
이아영 본부장이 조심스레 대답했다.
동시에 나는 들리지 않게 한숨을 쏟아냈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골치가 아파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이렇게 되면…….
‘남을 핑계가 생겨버리는데…….’
생각을 정리하고 있길 잠시.
「…혹시, 돌아갈 거예요?」
건너편에서 그녀가 뜬금없는 소리를 꺼냈다.
그와 동시에 순간 머리가 멍해졌고.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어차피 큰일은 다 해결했고, 목표도 이뤘으니까… 또 귀찮아지기 전에 돌아갈 거 같아서…….」
“…….”
확인 사살까지 받자, 나도 모르게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역시 알고 있었나.
그런 생각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뭐, 일단은…….”
「좋아해요.」
“……?”
그리고 그 순간 심장이 뚝 떨어졌다.
지금 뭐라 그런 거지?
잘못 말한 건가?
아니면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그런 생각들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자.
「저 당신 좋아한다고요.」
잘못 말한 것도, 잘못 들은 것도 아니라는 듯 다시 한번 들려온 그 말에 정신이 멍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돌아갈까…?’
문득 그 생각이 비집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