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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320화 (320/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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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장례식장.

박인범 사무총장의 장례는 그의 평소 요청대로 간소하게 치러졌다.

WDSO 직원들을 비롯한 각 분야 인사들, 심지어 조현민 대통령까지 참석한 자리.

하지만 거물급 조문객들에 비하면 빈소는 절을 할 공간도 마련되지 않은 무척이나 작은 곳에 마련되었다.

이내 한 시간 남짓한 장례 절차가 끝나고, 저마다의 작별 인사를 마친 후 하나둘씩 장례식장을 나오던 그때였다.

“그럼… 저흰 먼저 가볼게요.”

“피해복구랑 구호 사업 때문에 일이 넘쳐나서 말입니다.”

“에휴…… 쉬지도 못하고.”

이아영과 하성일 그리고 한유빈 본부장은 식장을 나오자마자 그 말을 전했다.

“예, 뭐… 들어가 보십시오.”

“그럼 본부에서 봐요.”

내가 말하자 이아영 본부장이 눈인사를 건네곤 두 사람과 함께 곧바로 본부로 직행했다.

하긴… 저 녀석들의 일은 이제부터가 진짜니까.

“…좀 싱숭생숭 하네요.”

그리고 그때.

나와 단둘이 남게 된 김민주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뭐가 또?”

“이룬 업적에 비해 너무 조촐한 거 같아서요.”

그녀가 식장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꽤나 복잡한 심경인 듯했다.

“너 헌터 장례식은 이번이 처음인가?”

“그건 아니지만…….”

“그럼 알 거 아니야. 원래 이런 거.”

예전에는 한 달에 사망하는 헌터만 해도 수십 명에 달했다.

그 인원 모두 장례를 치르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았기에, 그때부터 모든 헌터는 자신의 장례 절차에 대한 동의서를 사전에 작성했다.

최대한 간단하게, 그리고 최대한 빨리 진행할 것을.

뭐, 애초에 헌터라는 직업 특성상 시신이 남아 있는 경우도 거의 없었으니.

하지만 김민주는 여전히 탐탁지 않은 듯했다.

“그래도 우리나라 토벌 시스템을 만든 분이신데, 일반 헌터랑 똑같이 대하는 건…….”

“운이 좋았던 거야.”

“……네?”

김민주가 무슨 의미냐는 듯 나를 바라봤다.

“박 총장님은 운이 좋아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고, 살아남은 덕분에 체계도, 협회도 만들 수 있었던 거라고. 반대로 말하면 다른 헌터들은 그 운이 나빴을 뿐이고.”

“그게 무슨…….”

“운이 나빴던 다른 녀석들이 만약 끝까지 살아남았다면, 그 정도 업적도 못 이뤘을 것 같아?”

“…….”

김민주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물론 당사자의 장례식을 마치고 할 말은 아니라는 건 알지만…….

애초에 이건 내 생각이 아니라, 박인범 사무총장이 살아생전 몇 번이고 해왔던 말이다.

자신은 그저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던 것뿐이고, 운이 나빴던 이들이 살아남았다면 본인보다 더한 일도 해냈을 거라고.

만약 본인이 죽으면, 다른 녀석들과 똑같이 간소한 절차로 장례를 진행해달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고작 운이 좋아 살아남은 걸 큰 업적이라도 이룬 것처럼 포장한다면, 먼저 가 있는 녀석들한테 몰매 맞는다나 뭐라나.”

“……?”

그때, 갑자기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누군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왔냐?”

“…이사님이셨습니까?”

다름 아닌, 이두식 이사였다.

“다른 애들은?”

“먼저 갔습니다. 바쁘다고.”

“하긴, 이제 한창 바쁠 때긴 하지.”

그는 나와 똑같은 소리를 하며 담배를 꺼내 들었다.

“담배 피우셨습니까?”

“끊었었어. 그 양반이 하도 지랄을 해가지고.”

“박 총장님이요?”

“내 직속 선배였거든.”

그 말과 함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내 깊게 한 모금을 빨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오래 살았지, 뭐. 아마 헌터들 중에선 제일 오래 살았을걸?”

그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속내는 전혀 그렇지 못한 듯했다.

아무리 평소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해도, 수십 년을 함께 지내온 벗을 잃은 게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겠지.

나는 잠시 대답을 아끼다가 다른 주제로 넘겼다.

“이사직에서 사퇴하신다고요?”

“이젠 나도 힘들어. 큰일도 다 끝났으니 어디 경치 좋은 데서 술이나 마시면서 살래.”

평소답지 않은 대답과 표정.

나는 어쭙잖은 위로 대신 일부러 더욱 짓궂은 말을 던졌다.

“저한테는 사무총장까지 떠넘기셨으면서, 혼자 편하게 쉬려는 겁니까?”

“야 인마, 너랑 나랑 같냐? 내가 살아봤자 얼마나 더 살겠다고. 노후는 좀 쉬어야지!”

“저도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비싼 척은…….”

이두식 이사가 김민주의 눈치를 살피길 한 차례.

“그래서… 이제부턴 뭘 할 거냐?”

곧바로 다른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그 의도를 알았기에 나 또한 다른 티를 내지 않고 대답했다.

“일단은 공습당한 협회부터 복구 사업 진행해야겠죠. 지금 당장 토벌도 불가능한 상황일 테니, 급한 대로 지원팀 파견하고요.”

“수십 개가 넘는데 다 감당되겠냐?”

“한별그룹이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뭐… 빡세게 한다면 아마 1년이면 다시 정상화 될 겁니다.”

“그거 다행이군.”

이두식 이사가 정면을 바라보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정상화 된 다음에는 단계별로 토벌 산업을 축소할 생각입니다.”

“축소한다고…?”

“예.”

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슬슬 50년 전으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해야지 않겠습니까.”

“…에덴을 파괴하려는 거군.”

“물론 제가 할 건 아니지만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김민주를 바라봤다.

동시에 그녀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순간.

따르릉―.

“아, 죄송합니다.”

김민주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는 고개를 꾸벅이고는 전화를 받았고.

“무슨 일이야?”

“……종로에서?”

“알았어, 지금 갈게.”

몇 마디를 주고받고는 이내 곧바로 통화를 끊었다.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두 분 말씀 나누세요.”

“그래.”

“고생이 많아~. 얼른 가봐.”

이내 김민주는 곧장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렇게 그녀가 사라지고 이두식 이사와 단둘이 남게 되자마자.

“……몇 시간 남았냐?”

그가 대뜸 물었다.

“…8시간 정도 남았습니다.”

“그사이에 다 정리할 수 있겠냐?”

“뭐, 복구 사업이야 다들 열심히 해주고 있으니 충분할 겁니다.”

“아니, 일 말고.”

그가 나를 바라보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정리해야 할 거 말이야.”

“…….”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기에 대답을 아꼈다.

그러고 있자니, 이두식 이사가 다시금 물었다.

“설마 끝까지 말 안 할 생각은 아니지?”

“…모르겠습니다.”

“4년 동안 너 하나 믿고 달려온 녀석들이다. 최소한 작별 인사는 해야지.”

“…….”

나는 먼 곳을 바라봤다.

처음 사무총장 위임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이두식 이사에게 그동안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회귀, 업보, 시간석과 에덴 그리고 다시 돌아가게 된 것까지 모두.

하지만 이두식 이사는 그 이야기를 모두 듣고도, 나에게 사무총장 자리를 맡겼다.

일 벌여 놓고 도망칠 거면, 최소한 남은 시간 동안은 마무리 짓고 가라는 의미겠지.

물론 나에 대해 알고 있는 다른 녀석들도 내가 돌아갈 거라는 건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지.

그렇기에 아직까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때문에 계속 말을 아끼고 있자니.

“됐다. 네가 알아서 하겠지 뭐.”

“……그렇죠.”

“뭐가 됐든 후회만 안 남게 해.”

여전히 평소답지 않은 대답과 표정.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그때.

“준우 씨!”

“야, 이 새끼야! 너 복귀했으면 연락은 해야 되는 거 아니냐?!”

“어허, 우리 사무총장님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문소연과 한상혁 그리고 박근태 부장.

청소 3팀원들이 나를 발견하고는 헐레벌떡 다가왔다.

이두식 이사는 그들과 나를 바라보더니 내 어깨를 툭 치고는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몸은 좀 괜찮은 거예요?”

“사무총장이라니… 개천에서 용 났네!”

“으… 대표일 때까지만 해도 어떻게 덤벼볼 수 있었는데, 사무총장이라니깐 이젠 진짜 함부로 못 할 것 같다.”

걱정부터 하는 문소연, 자기 일마냥 기뻐하는 박근태, 그리고… 여전히 글러먹은 한상혁.

참으로 변하지 않는 놈들이었다.

“오늘은 좀 그렇고… 내일쯤 회식 한번 어떠냐? 본부장님들도 다 불러서.”

그때, 박근태 부장이 목소리를 죽여 말했다.

그러자.

“전 좋아요!”

“당연히 해야지! 물론 준우 카드로!”

문소연과 한상혁도 바로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본다.

나는 대답을 아낀 채 그들을 한명씩 바라보길 잠시.

이내 미소를 지으며.

“뭐… 시간 되면 가겠습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다.

***

WDSO 서울 본부.

청소 3팀 사무실.

장례식을 마치고 복귀한 나는 아무도 없는 그곳에 우두커니 서서 사무실을 둘러봤다.

온갖 서류들이 어지러이 놓인 책상들.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청소 도구와 정체 모를 퀴퀴한 냄새.

한눈에 봐도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공간.

대한민국 이능차원관리 협회.

카르마 코퍼레이션.

그리고 WDSO까지.

총 4년간의 시간을 함께 한 그 자리를 마주하자, 꽤나 오묘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바쁘게 보냈네…….’

하루하루 청소 일에 시달리던 일개 청소부로 시작해서 작전본부장, 민간 청소 업체 사장, 그리고 국제 토벌 기구 사무총장까지 올라왔다.

그사이 청소팀의 입지를 올리고, 본부 개편에 해외 지부 건설, 국제협회와의 인수 전쟁 등 온갖 일이 있었다.

이런저런 일까지 합치면 4년이 아닌, 40년은 여기서 보낸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것도 이젠 모두 끝이 났다.

국제협회는 사라졌고, 웨슬리 사무총장은 지금쯤 자신의 업보를 저주하고 있겠지.

전 세계 뱅크 아이템은 모두 WDSO가 보관하고 있으며, 동시에 에덴까지 우리 손에 들어왔다.

더 이상 WDSO는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조직이 되었다.

이전의 국제협회처럼.

그러니…….

‘내 역할은 끝이네.’

그렇게 중얼거리자, 나도 모르게 실소가 새어나왔다.

나는 잠시 감상에 잠긴 채, 굴러다니던 낡은 빗자루를 주워들었다.

그 순간.

쾅―!

“……!!”

갑작스럽게 들려온 문소리에 심장이 바닥에 뚝 떨어졌다.

“…뭘 그렇게 놀라요?”

이윽고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살살 좀 열고 다니십쇼.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아니나 다를까, 클로이 소장이 서 있었다.

“나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온 겁니까?”

“당신 올 데가 여기 말고 더 있어요? 혼자 궁상떨고 있을 것 같긴 했는데, 진짜 그러고 있는 거 보니까 좀 충격이긴 하네.”

“…….”

“보니까 시간도 얼마 안 남은 거 같더만.”

그 말에 내 눈이 순간 동그래졌다.

뭐야.

쟨 어떻게 알고 있는 건가.

퍽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자니.

“찍었는데 맞았나 보네.”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다른 사람한테 얘기한 건 아니겠죠?”

“내가 그 정도로 붙임성 있어 보여요?”

“…믿음이 가는군요.”

그 말에 그녀가 기가 차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얼마 안 남은 사람한테 무슨 볼일입니까?”

“그전에, 정말 말 안 하고 갈 생각이에요?”

클로이 소장은 내 물음 따윈 가볍게 무시하며, 여전히 하고 싶은 말부터 던졌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길 한 차례.

“한 명 한 명 찾아가서 이야기할 시간까진 없습니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최대한 일을 마무리 해놓고 가는 게 낫죠.”

“누구한테 나은 건데요?”

“……예?”

눈썹이 꿈틀거렸다.

클로이 소장은 옅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뭐, 솔직히 내가 할 소리는 아니긴 한데…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 안 들어요?”

“…….”

“아직 서로 못 한 말도 많을 텐데? 당신도 그렇고, 당신 주변도 그렇고.”

왜 갑자기 어울리지 않게 맞는 말을 하지?

맞고 싶어서 그런가?

“그래서, 절 설득하려고 온 겁니까? 여기서 궁상떨고 있지 말고 가서 주변 사람들한테 작별 인사나 하라고?”

“아뇨.”

단호한 대답.

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 대체 무슨…….”

“난 그냥 물어보려고 왔어요.”

“…뭘 말입니까?”

이내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정말 돌아갈 생각인지, 그거 물어보려고요.”

“……그게 무슨.”

“솔직히 아깝지 않아요? 당신이 미래에서… 아니면 뭐 다른 세계에서 뭐 하던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지금보다 더 나을 것 같진 않은데.”

“하…….”

아는 척은 다 하더니, 전혀 이해를 못 하고 있군.

“돌아가고 말고는 제가 선택하는 게 아닙니다. 전 그냥 따를 뿐이죠.”

“제 말뜻을 이해 못 하시네.”

“……?”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돌아갈지 말지를 그쪽이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냐고요.”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대답을 아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잠깐, 설마…….”

무언가가 머릿속을 스쳤고, 그와 동시에 그녀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는.

“방법이 있어요.”

그 말을 내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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