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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순서 확인했어?”
「네!」
「확인했습니다!」
김민주가 무전기에 대고 묻자, 곧바로 각 병력의 팀장들에게서 응답이 들려왔다.
“그럼 말했듯이 신호 주면 1팀부터 차례대로 게이트에 탑승해.”
덤덤한 말투.
하지만 목소리와 다르게 그녀는 연신 소매로 눈을 닦아내고 있었다.
그녀는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들킬까, 잠시 무전을 멈췄다.
애써 감정을 추스르길 잠시, 다시금 무전기에 대고 입을 열었다.
“움직여.”
구구구구구―.
그에 맞춰 건물에 있던 병력이 차례로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크윽…!”
“집중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바로 빨려들어 간다!”
“빨리빨리 움직여!”
밖으로 나오자마자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
이미 검은 구멍은 눈앞까지 다가왔고, 하늘은 아예 가려져 너무나 어두웠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망설이지 않고 게이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불과 몇 분.
그 짧은 시간에 모두가 게이트로 속속히 들어섰다.
어느덧 그곳에는 본부장들만 남아 있었다.
김민주, 한유빈, 이아영 그리고 하성일.
그들은 모두가 대피를 완료한 이후에도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게이트 앞에 가만히 선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서로가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먼저 들어가요. 제가 마지막으로 갈 테니까.”
그때, 침묵을 깨고 김민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에도 본부장들은 여전히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런 와중에도 검은 구멍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모두가 고개를 떨어트린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다 같이 따라 죽으려고 작정한 거야, 뭐야!”
이내 뒤늦게 클로이가 게이트로 다가오며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쪽들 살리려고 희생한 건데, 다 죽어버리면 노인네가 참도 좋아하시겠네.”
“지금 뭐라고…?”
“야, 너 말조심해!”
김민주와 한유빈이 눈을 찌푸리며 반박하자, 클로이는 도리어 코웃음을 쳤다.
“정신 차려요, 다들. 여기 전장이에요. 누가 죽어도 안 이상한 곳이라고요.”
“…….”
“…….”
비수를 꽂는 말.
모두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여기서 죽을상 짓고 있으면 뭐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대요? 산 사람은 살아야 할 거 아니야.”
“……남 일이라고 쉽게 말하지 말아요.”
“누가 국제협회 출신 아니랄까 봐……. 공감 능력이 없는 건지, 감정이 없는 건지.”
김민주와 한유빈이 그녀를 쏘아붙이자.
“누굴 잃어본 게 당신들뿐인 것 같아요?”
클로이가 평소와 다른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세상 슬픈 일은 다 겪은 척 꼴값들 떨지 마요. 아니면 최소한 때와 장소는 구분하던가.”
“…….”
“…….”
“남이 준 목숨이면 일단 살 생각부터 해요. 가만히 서서 눈물 질질 짜지 말고. 나중에 복수를 하던 추모를 하던 살 생각부터 하라고. 그게 그 사람에 대한 마지막 예의니까.”
클로이는 평소처럼 냉소적이었지만, 평소와 다르게 진중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쿠구구구구―!
바로 몇 미터까지 다가온 구멍.
더 이상은 위험하다는 걸 알았는지, 아니면 클로이의 말에 공감한 건지 그제야 모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럼… 먼저 들어갈게요.”
“본부에서 뵙겠습니다.”
“뒤따라갈게요.”
이아영과 하성일, 그리고 한유빈이 순서대로 게이트에 탑승했다.
김민주 또한 클로이를 슬쩍 흘기며 게이트로 들어서려던 그때.
“…시신은 못 찾을 거예요.”
뒤에서 들려온 클로이의 말에 걸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돌렸다.
“말했듯이 저 구멍은 던전과 같은 차원이에요. 한 번 빨려 들어간 이상 다시 밖으로 나올 방법은 없어요.”
“…….”
김민주는 대답 대신, 꽤나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더욱 의외인 건 그다음 말이었다.
“…미안해요.”
김민주의 눈썹이 순간 물결쳤다.
“왜 그쪽이 사과해요…?”
“국제협회 출신이라서요.”
클로이는 김민주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 말을 전했다.
그렇게 서로 마주 본 채 서 있길 잠시.
“……먼저 갈게요.”
김민주가 등을 돌리며 게이트로 들어섰다.
“본부에서 봐요.”
클로이에게 그 말을 남기고는 빛 속으로 사라졌다.
클로이의 입가에 작게 미소가 자리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다시금 굳은 표정으로 시선을 옮겼다.
김준우와 웨슬리 사무총장이 혈전을 벌이고 있는 그곳.
정확히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지만…….
‘약속 못 지키겠네.’
클로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게이트 작동을 중지시켰다.
그리고는 등을 돌려 마지막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그곳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주머니에 꽂아둔 무언가를 꽈악 움켜쥔 채로.
***
[고유 스킬 : 황제 - 폐위]
[현 시간부로 귀하는 모든 책임에서 해방됩니다.]
쾅―!!
쿵, 쿠구구궁―!!
“크윽…!”
웨슬리 사무총장은 김준우의 거센 공격에 고전하는 중이었다.
무전을 들은 직후, 갑작스레 변한 기류.
한 치의 감정도 보이지 않는 표정.
무엇보다…….
‘공격이 아까와는 차원이 달라…….’
평범하게 강한 수준이었던 이전과 달리, 검붉은 기류를 내뿜고 있는 지금은 강함을 넘어 이질적인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슉, 슈우욱―!
슈욱―!
검은 기류를 이용하여 모든 방향에서 가하는 공격.
그것으로도 벅찬데, 그가 직접 달려들어 직격으로 내리꽂는 공격은…….
[고유 스킬 : 천지창조]
[쉘터]
콰직―!
‘미친…….’
쾅―!!
다른 공간으로 대피하는 것마저 무시하는, 그야말로 공간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김준우의 공격을 직격으로 맞은 웨슬리 사무총장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한쪽 무릎이 땅에 떨어졌고 뒤늦게 자신의 오른쪽 어깨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빌어먹을, 폭주 상태도 아닌 것 같은데…….’
웨슬리 사무총장은 여전히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김준우를 올려다보았다.
독일 때의 김준우 또한 순간적으로 공간을 초월하는 힘을 발휘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폭주 상태에서였다.
그런데 폭주 상태도 아닌데 이런 힘을 낼 수 있다는 건…….
‘위험해…….’
독일에서 김준우를 마주했을 때의 기분이 다시금 스멀스멀 올라왔다.
원초적 공포.
그 압도적인 존재 앞에서의 나약함과 두려움.
그의 몸이 조금씩 떨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유 스킬 : 천지창조 - 각성]
[삼라만상(森羅萬象)]
[지정된 시공간에서 절대적인 통제권을 갖습니다.]
어차피 이제 물러설 곳은 없었다.
[타임브레이크]
끼이이익―!
웨슬리 사무총장은 다시금 김준우의 시간을 멈췄고, 그와 동시에 그의 움직임과 함께 그가 내뿜는 검은 기류까지 모두 정지했다.
“허억, 허억…….”
가쁜 숨을 내쉬며, 그를 향해 절뚝거리며 다가갔다.
삼라만상(森羅萬象).
지정된 공간에서만큼은 시간, 중력, 힘의 방향, 빛 등 모든 것을 자유자재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스킬.
인간의 신분으로 잠시나마 창조주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능력.
웨슬리 사무총장을 수십 년간 국제협회의 우두머리로 있을 수 있게 한 스킬이자, 모든 이능력의 정점이었다.
물론 그 대가는 단순하지 않았지만.
“쿨럭…!”
웨슬리 사무총장이 검은 핏덩이를 쏟아냈다.
각성 스킬을 쓸 때마다 자신의 검은 기류… 원형의 이능력이 본인의 몸을 갉아 먹는다.
이후에는 완전히 잠식당해서 육체도, 정신도 사라지겠지.
이전에는 그것이 두려워 결코 각성 스킬을 남발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뭐, 딱히 상관이 없다.
어차피 여기서 죽든, 잠식당해 소멸하든 결과는 마찬가지니까.
그럼…….
그래,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여기서 끝을 봐야 한다.
괜한 생각 따윈 할 필요 없다.
[고유 스킬 : 천지창조 - 각성]
[삼라만상]
[포톤 불릿]
광자가 하나의 탄환이 되어 멈춰 있는 김준우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끼기기기긱―.
“……!”
멈춰 있던 검은 기류가 갑자기 움직이며 김준우를 감싸 안았다.
“마, 말도 안 돼…….”
분명 그의 시간은 정지해 있을 터였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넋이 나가 있던 그 순간.
뚝, 뚜둑―!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쿠구구구구―.
김준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저건 말도 안 된다.
김준우는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왔고, 웨슬리 사무총장은 그에 맞춰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뭡니까, 대체……!”
황망한 얼굴로 던진 물음.
“대체 뭔데… 내 공간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겁니까?”
“…….”
하지만 김준우는 말이 없었다.
웨슬리 사무총장은 이를 으득 깨물었다.
덩달아 그의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삼라만상]
[포톤 불릿]
[논 그래비티]
[노웨이]
투두두두―!
지잉, 쿵―!
할 수 있는 모든 발악을 시도했다.
중력을 뒤집고, 공간의 방향을 소실하고, 빛을 이용한 공격까지.
하지만.
저벅―.
그 어떤 공격도 김준우의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저벅, 저벅―.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 한 발자국씩 다가갔고, 결국 웨슬리 사무총장은…….
“시발!!”
[삼라만상]
[지정된 공간을 소멸시킵니다.]
최후의 발악을 시도했다.
쿠구구구궁―!
이윽고 김준우 앞에 또 다른 검은 구멍이 만들어지던 그 순간.
서걱―.
“……!”
웨슬리 사무총장의 한쪽 다리가 잘려 나갔다.
쿵―!
“끄아아악…!”
웨슬리 사무총장은 그 자리에 힘없이 고꾸라지며 비명을 질렀고, 김준우는 여전히 그를 향해 다가갔다.
“오, 오지 마…….”
결국, 그는 두려움에 잠식된 얼굴로 바닥을 기어 도망가기 시작했다.
“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웨슬리 사무총장에겐 이제 공포와 두려움밖에 남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김준우와 한 뼘도 안 되는 거리에서 서로를 마주한 순간.
“거 보세요.”
김준우가 그를 내려다보며.
“겁쟁이 맞잖습니까.”
그 말을 내뱉었다.
***
[현 시간부로 귀하는 모든 책임에서 해방됩니다.]
그 음성이 들려올 때까지만 해도 그게 뭘 뜻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정형화된 스킬에서 해방되어, 이전과 같이 다시금 원형의 이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인 줄 알았다.
하지만 뒤늦게 깨달은 바로는, 전혀 그런 뜻이 아니었다.
“오지 말라고!!”
[고유 스킬 : 천지창조 - 각성]
[삼라만상(森羅萬象)]
[노웨이]
슈우우욱―!
다가가 한마디를 전하자 웨슬리 사무총장은 다시금 스킬을 시전했고, 한 뼘도 안 됐던 둘 사이의 거리가 급격하게 멀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저벅―.
“……!!”
단 한걸음에 그와의 거리는 원상복구 되었다.
모든 책임에서의 해방.
그것은 꽤나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헌터, 청소부, 작전 본부장, 기업 대표.
그리고…….
[히든 스킬 : 업보]
내 업보의 책임까지.
[스킬 해제 조건 : 국제 헌터 협회의 사무총장 달성]
[현재 직책 : ―]
[목표 달성에 성공하였습니다.]
[현 시간부로 히든 스킬이 해제됩니다.]
그 모든 것에서 해방된다는 의미였다.
[히든 스킬 해제에 따라 ‘김준우’는 회귀 직전으로 환생합니다.]
[스킬 발동까지 남은 시간]
[23시간 57분 22초]
[해당 시간 동안 귀하는 그 어떤 이능력에도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나는 이 시간부로, 기어이 모든 업보에서 해방이 된 것이다.
그러니…….
“이제 다 끝났습니다, 사무총장님.”
이제는 마무리를 지어야겠지.
나는 한쪽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슈욱―!
곧바로 웨슬리 사무총장의 목을 향해 내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