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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랄산맥 인근, 어느 숲속.
웨슬리 사무총장을 비롯한 국제협회의 대다수 직원이 커다란 침엽수들이 늘어져 있는 그 숲속을 탐색하던 중.
“이능파가 더 이상 안 잡힙니다.”
본부 통제팀 소속의 한 직원이 기기를 확인하다가 입을 열었다.
“파장이 고의적으로 방해를 받고 있는 거로 봐선…… 아무래도 누군가 차단기를 작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차단기라뇨. 대체 누가…….”
“개인이 한 짓은 아닌 것 같고, 러시아 협회에서 대대적으로 근방 모든 던전을 봉쇄한 게 아닐까 싶은데…….”
“…….”
직원의 말에 웨슬리 사무총장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러시아 협회는 전 세계 모든 협회 중에서 가장 폐쇄적인 곳으로 악명이 높다.
토벌 활동, 헌터 인원, 장비 보유 현황.
그 모든 것들을 외부에 절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물론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겠지만, 사실 그들이 문을 걸어 잠근 가장 큰 이유는 세계적으로 가장 수준이 낮은 협회라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러시아 협회는 국가의 명성에 맞지 않게, 인프라와 인력 퀄리티가 상당히 떨어진다.
개발도상국 협회와 비교해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
‘뭐, 개인 조직이 힘을 갖는 걸 극도로 기피하는 나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다만…….’
아무튼, 유일하게 토벌을 헌터와 군인이 함께 진행하는 나라인 만큼, 그들의 토벌 기술력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탐지 기술이 없어서 국제협회에 대신 이능파 탐지를 맡기는 것만 봐도 그렇다.
‘덕분에 가장 먼저 에덴을 찾았지만…….’
그런데 갑자기 이제 와서 이능파 차단을 했다고?
그놈들한테 그럴 만한 기술이 있었나?
아니 그것보다…….
제대로 된 탐지 기술도 없는 러시아 협회 놈들이 갑자기 이능파를 차단할 이유가 있나?
그놈들은 에덴이고 나발이고, 뭐가 발견되었는지조차 모를 텐데?
웨슬리 사무총장은 입술을 씹으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어째 찝찝하군요.”
“다른 놈들 귀에도 들어간 게 아닐까요. 가령, 김준우에게도 소식이 전달됐다거나…….”
그러자 통제팀 직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김준우가 직접 러시아에 연락을 취해서 봉쇄 요청을 했다면 이 상황이 설명되지 않겠습니까. 그러지 않고서야 러시아가 직접 이능파를 차단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흐음.”
웨슬리 사무총장이 그의 말을 끊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단독으로 봉쇄를 할 이유가 없다.
누군가에게 요청을 받았거나, 혹은 에덴에 대해 알게 됐거나.
둘 중 하나겠지.
뭐, 어느 쪽이건…….
‘경쟁자가 붙겠군.’
그렇게 턱을 쓰다듬길 잠시.
“이능파 감지 없이 찾는다면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웨슬리 사무총장이 물었다.
“이능파 차단에 지역 봉쇄까지 이뤄졌다면, 직접 수색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의심 지역에 있는 모든 던전에 진입해서 확인하려면…….”
“여길 다 뒤지려면 한 달은 걸리겠군요.”
“……네.”
피식, 실소를 뱉었다.
무슨 바보짓 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일단 다른 건 둘째 치더라도 계속 수색을 진행하기도 무리가 있습니다. 일부러 봉쇄한 거라면 경계를 하고 있을 테고. 그러다가 만약 러시아 협회에 발각된다면…….”
“꽤 귀찮아지겠군요.”
정치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물론 다른 방법은 있다.
러시아 협회를 공격해서 이능파 차단기를 파괴한다면 모든 게 해결된다.
하지만 그랬다간 러시아와의 대립을 피할 수 없겠지.
‘이전이라면 몰라도, 지금 이 상태로 가능할지 모르겠군…….’
숨길 것도 없이, 현재 국제협회의 전력은 기존 대비 80%가량이 손실된 상태다.
물론 어중이떠중이 같은 놈들은 본인 선에서 어떻게든 되겠지만, 100% 성공하리라곤 장담할 수 없다.
‘포획해뒀던 몬스터도 김준우랑 싸우면서 전부 잃은 상태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더 이상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러니 어찌 됐건 최대한 전투를 피해야 한다.
“사, 사무총장님!”
그때, 인근 수색을 나갔던 작전팀 직원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뭡니까?”
“그, 근처에 대규모 병력이 있습니다!”
“……네?”
벌써 발각된 건가?
“이능력자인 건 확실한데, 보아하니 러시아 협회 놈들은 아닙니다.”
“그럼…?”
“길드 같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런데…… 노아 웨스턴우드도 함께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정황상 노아 길드인 것 같습니다.”
“……!”
웨슬리 사무총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놈이 어떻게 알고 움직인 거지?
아니, 그것보다.
‘그놈이 움직였다는 건…….’
김준우도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러시아가 이렇게 빨리 지역을 봉쇄한 것도 설명이 된다.
‘빌어먹을…….’
어떻게 폭주 상태에서 회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복병이다.
전투를 최대한 피해야 하는 상황에 세계 1위 길드와 마주친다면 그보다 최악의 경우는 없다.
낭패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준비하고 올걸.
‘급한 마음에 일단 이동한 건데…….’
이렇게 되면 아무런 수확도 얻을 수 없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통제팀 직원이 조심스레 물었고, 다시금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그 순간.
쾅―!!
갑작스레 먼 곳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쾅, 콰광―!!
몇 차례나 이어지길 잠시.
먼 곳에서 거대한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폭격인가…?’
설마 우리를 찾아내려고?
점차 번지는 불길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머리를 굴렸지만.
“사무총장님!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
더 이상 여유는 없었다.
빠르게 다가오는 화마에 이를 으득 씹길 한 차례.
“일단은… 후퇴합시다.”
결국, 한 보 후퇴를 결정했다.
아쉽긴 해도 어쩔 수 없다.
차단된 이능파, 봉쇄된 구역.
근방에 깔린 노아 길드.
게다가 이유 모를 화재까지.
지금 당장은 계속 있어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
“새로운 뱅크 아이템이라…….”
러시아 국회.
블라디미르 장관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깊은 생각에 잠긴 채였다.
사실 러시아가 토벌 산업에 크게 힘쓰고 있지 않다는 건, 그 또한 잘 알고 있다.
다른 나라들이 부산물 무역이니, 토벌 지원 사업이니, 온갖 것들을 벌여놓고 있을 때, 러시아만큼은 전혀 손을 대지 않았으니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여긴 개인이 힘을 가져선 안 되는 탓이었다.
다행히도 지리적인 이유 때문인지, 혹은 다른 이유 때문인지 출현 던전 수도 많지 않고… 그마저도 몇 명의 이능력자와 군인들만으로 충분했다.
물론 이따금 어려운 던전이 출현할 때가 있긴 했지만, 그땐 외부 협회에 도움을 청하면 그만이었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그만큼 손해를 보는 셈이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본다면 오히려 토벌 산업에 힘을 쓰지 않은 게 묘수가 되었다.
토벌 산업이 발전하지 않았기에 국제협회에 약점을 잡히지도 않았으니까.
우리에게서 얻을 게 없다면, 굳이 우리를 통제할 이유도 없다.
그렇기에 러시아는 역으로 그 어느 나라보다 토벌 산업에서 자유로운 국가가 된 것이다.
그렇기에 뱅크 아이템이니, 국제협회의 통제니 하는 것들에 대해 딱히 관심도 없었는데…….
“뭔가 찜찜하단 말이지…….”
블라디미르 장관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의 앞에 서 있던 러시아 협회의 수장, 드미트리 협회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새로운 뱅크 아이템이 뭔지는 몰라도, 국제협회와 WDSO가 모두 움직일 정도의 아이템이라는 건데…….”
이내 그가 눈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그 정도면 우리에게도 쓸모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지.”
“……그렇습니까?”
드미트리 협회장이 나지막이 대답했다.
“어떤 아이템인지 아직 확인 안 되나?”
“알아보고는 있지만, 협회 내 탐지 분석 기술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지금으로선 이능파를 차단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흐음.”
블라디미르 장관이 혀를 쯧, 차길 한 차례.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가 먼저 찾는 게 어떤가?”
“예, 예…? 그, 그랬다간 WDSO와 척을 질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그가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WDSO는 국제협회가 손에 넣지 못하게 봉쇄해달라고 요청했지, 우리보고 건들지 말라고 한 적은 없어.”
“…….”
“게다가 결과적으로는 같은 거 아닌가. 우리가 먼저 입수한다면 국제협회를 막을 수 있는 거니까.”
누가 들어도 궤변이었지만, 드미트리 협회장은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
“알았으면 수색 시작해.”
일방적으로 떨어진 명령.
“지, 지금 바로 말입니까?”
“문제 있나?”
“그게 지금 봉쇄 구역에 국제협회도 와 있을지 모르고. 무엇보다 노아 길드가 경계하는 중이라 들키지 않고 수색하는 건 불가능한…….”
“아, 그렇겠군.”
블라디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럼, 다 내쫓으면 되지.”
그가 말했다.
“내쫓겠다는 건…?”
“봉쇄 구역 근방 싹 다 태워버려.”
“…….”
드미트리 협회장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뭔가. 뭐 마음에 안 드는 거라도 있나?”
“아닙니다.”
이곳은 러시아다.
유일하게 정부에 속한 협회.
한낱 협회장 따위가 국방부 장관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리 없었다.
***
독일 협회에서 지원해준 헬기가 이윽고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직후.
“이거…….”
김민주는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꽤 당황한 듯 입을 열었다.
그도 그럴 게.
“생각보다 멀쩡한데요?”
쿠데타가 일어나고, 중앙 정부가 함락된 나라치곤 놀랍도록 평화로워 보였다.
“그러게요? 뭔가 세기말 느낌일 거 같았는데.”
이아영 또한 의외로 깔끔한 도시 모습에 퍽 놀란 눈치였다.
물론 나와 한유빈은 이미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으니, 평화로운 도시의 모습이 그다지 낯설지 않았지만.
“국제협회의 목표는 토벌 산업을 통제하는 거지, 독재자가 되는 게 아니니까요.”
그때, 클로이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특히나 웨슬리는 정치와는 거리가 먼 남자예요. 쿠데타에 성공했지만, 정부 인사들은 대부분 살려둔 이유도 그 때문이고요.”
“그렇다고 해도 시민들이 가만히 있습니까? 나름 혁명의 나라인데.”
“굳이 나설 이유가 없죠. 억압하고 통제한다면 모를까, 딱히 이전과 바뀐 것도 없고. 듣자 하니 웨슬리가 집권하고 나서부턴 복지가 늘어나서 오히려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허.
나라 꼴 잘 돌아가는구먼.
“아무튼, 여기도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에요. 그러니까 괜히 작전 수행한다고 너무 뒤집어엎진 마세요.”
“노력해보죠.”
“본부는 이쪽이에요.”
내 대답을 듣긴 한 건지, 곧바로 등을 돌리며 먼저 걸음을 옮긴다.
우린 그녀의 안내를 받으며 한참을 이동했다.
이윽고 국회의사당 건물 앞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주변부터 빠르게 살폈다.
일단 바깥에 보이는 경비는 없지만, 건물 안쪽은 장담할 수 없다.
자리를 비운 동안 국내 토벌을 수행할 최소한의 전력은 남겨놓았을 테니까.
무엇보다 작전팀이라면 이미 내 얼굴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을 테니, 위장 신분으로 잠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제압하는 수밖에 없겠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김민주와 한유빈을 바라봤다.
그녀들 또한 같은 생각을 한 건지 내 시선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 긴장한 표정으로 공격 태세를 마친 그때.
따르릉―.
갑작스럽게 핸드폰이 울렸다.
화들짝 놀라 황급히 확인하니, 다름 아닌 노아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무슨 일입니까?”
「지금 봉쇄 구역에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다!」
“…예?”
그와 동시에 전달된 뜬금없는 소식.
「누군가 고의로 불을 지른 것 같아! 모든 병력 철수 명령 떨어졌고, 당국 측에서 화재 진압 먼저 진행하겠다더군.」
“설마 국제협회 놈들이…?”
「아니, 이 정도 불길이면 놈들도 휘말릴 거야. 만약 그놈들도 구역에 도착해 있다면 결국 몸을 피해야 할 텐데, 굳이 불을 지를 이유가 없지.」
“그렇다면…….”
「제삼자가 끼었어.」
그의 말에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빨리 뱅크 아이템 회수해서 합류해. 이거 자칫하다간 에덴 구경도 못 해보고 쫓겨날 수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곧바로 이아영 본부장이 다가왔다.
“무슨 일이에요?”
“아무래도 누군가 젯밥에 눈독을 들인 모양입니다.”
주제넘게 말이지.
“서두릅시다. 지금 바로 합류해서 에덴을 찾지 못하면 러시아에 넘어갈 수도 있으니.”
“네.”
“알았어요.”
그렇게 나와 김민주, 한유빈은 천천히 건물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이내.
쾅―!
전 파리 국회의사당.
현 국제 헌터 협회 본부의 문을 박살 내며 안으로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