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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빛이 쏟아지는 그곳.
최종 방어선, 국제협회와의 전장.
그곳으로 돌아온 나는 가장 먼저 주변을 둘러봤다.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힌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WDSO 소속 직원들.
그리고 김민주와 한유빈, 이아영.
그들을 마주하자 비로소 원래 상태로 돌아온 것이 실감 났다.
털썩―.
곧장 다리에 힘이 풀렸다.
“서, 선생님!”
“괜찮은 거야?!”
“정신이 들어요?!”
곧바로 달려오는 김민주와 한유빈 그리고 이아영 본부장.
“괜찮습니다. 호들갑 떨지 않아도 돼요.”
나는 그들을 향해 애써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폭주 상태였던 거 기억나세요?”
“또 자의로 이성을 찾은 거예요?!”
“아니, 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또 폭주해요?!”
“…….”
이내 쏟아지는 질문들과 잔소리.
하나하나에 반응해주기엔 무척이나 피곤했기에 그녀들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었다.
‘자의로 이성을 찾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조금 전, 내 의식 속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이번에는 폭주 상태에 돌입했다는 자각조차 못 했다.
당연히 절대 자의로 이성을 찾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
[각성 패시브 : 슬기로운 청소부]
[잠금 해제되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몰라도… 저 스킬을 습득하자마자 돌아왔다.
‘대체 저게 무슨 스킬이길래…….’
의문과 함께 눈앞에 떠오른 정보창 하나.
[해당 패시브의 효과로 인해, 귀하의 고유 스킬이 변경됩니다.]
[귀하의 고유 클래스를 초기화합니다.]
[초기화하는 동안 귀하가 시전 중인 모든 스킬이 해제됩니다.]
초기화…?
대충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가…….’
하지만 대체 왜 갑자기 저런 스킬을 획득한 것인가.
‘강자의 자격’이라는 달성 조건은 대체 뭐고, 저 패시브는 대체 무슨 효과를 지닌 스킬인가에 대한 의문은 그대로였다.
무엇보다 고유 스킬이 무엇으로 변경됐다는 건가.
클래스가 초기화됐다면, 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온갖 의문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기도 잠시.
‘……됐다.’
나는 이내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이미 온몸에 힘이 빠져나간 터라, 더 이상 머리를 굴리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래 뭐… 일단은 돌아왔다는 게 중요하지.
남은 의문은 나중에 천천히 알아보면 그만이다.
“그나저나, 웨슬리는…?”
이내 본부장들을 향해 물었다.
어째선지 놈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김민주가 대답했다.
“후퇴했어요.”
“후퇴…?”
이제 와서?
설마 내가 폭주한 이상,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건가?
뭐, 만약 그렇다면…….
“이겼네.”
한숨을 깊게 내뱉으며 말했다.
“나 좀 일으켜줘. 일단 호텔에 가서 좀 쉬고 싶으니까.”
“…….”
“…….”
손을 뻗었음에도 어째 아무도 움직이질 않는다.
그 대신 다들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뭐야. 무슨 일 있어? 왜들 그래.”
“선생님, 사실 지금…….”
김민주가 입을 열던 그때.
“미안하지만, 쉴 시간은 없을 것 같군.”
“……뭐야?”
노아?
저놈이 여긴 왜?
“네가 부탁했던 일, 결과가 나왔다.”
“…….”
무슨 소린가 싶어 눈을 굴리길 잠시.
“잠깐, 설마…!”
그게 무슨 의미인지 깨닫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부탁했던 거라면 딱 하나뿐이었으니까.
에덴 수색.
그리고 결과가 나왔다는 건…….
“발견된 겁니까?”
“…….”
노아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국제협회 놈들에게도 소식이 들어갔어. 아마 그들이 후퇴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겠지.”
“빌어먹을, 왜 하필 이럴 때…….”
폭주 상태일 때 이 소식을 듣다니.
“확인 결과 러시아 우랄산맥 근처다. 지금 당장 이동한다면…….”
“안 늦겠습니까?”
“…….”
내 물음에 노아가 입을 꾹 다물었다.
장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에덴.
전 세계에 이상 현상을 일으킨 원인이자, 50년 전 충돌한 시니아 혜성의 핵.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설로만 존재했지만.
4년 전, 한 미국 지부 소속의 청소팀에 의해 실체가 확인된 물질.
모든 이능력과 차원 그리고 던전을 컨트롤 할 수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물건.
그게 국제협회 손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때부턴 뱅크 아이템이고 뭐고 의미가 없어진다.
그야말로 완벽한 통제가 가능해질 테니까.
세계를 통제하려는 국제협회의 계획에 마침표를 찍어줄 물건이, 기어이 발견된 것이다.
당연히 베를린 공습 따윈 그에 비하면 의미 없는 짓에 불과하겠지.
‘젠장…….’
국제협회 놈들이 바로 이동했다면, 지금으로선 한발 늦었다.
지금 당장 출발한다고 해도 그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
무엇보다 운이 좋아 늦지 않는다고 해도 마찰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 다시 전투를 벌이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가진 못해도 최소한 막을 수는 있을 것 같군요.”
“막다니? 어떻게…….”
노아의 물음에 대답 대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최근 통화기록의 한 번호를 눌렀다.
짧은 신호음.
이윽고.
“장관님, 김준우입니다.”
「어어, 또 무슨 일인가.」
러시아 국방부 장관.
블라디미르 장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자 하니 모나한 장관, 해임됐다던데. 전시 상황에서 국방부 장관이 해임되다니, 이런 불명예가 없겠어.」
“독일 정부가 빠른 판단을 내려준 덕입니다.”
「그래, 뭐. 덕분에 나야 쥐새끼 한 마리 잡았고 혐의도 벗었으니 감사할 따름이지.」
그가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그래서, 또 할 말이 남아 있는 건가?」
“…….”
나는 잠시 말을 아끼다가.
“염치없지만, 부탁 하나만 더 드려도 되겠습니까?”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블라디미르 장관이 크게 웃었다.
「애초에 자네가 부탁했던 조건은 오히려 나에게만 좋은 조건이었잖나. 이제 와서 부탁 하나쯤 못 들어줄 것도 없지.」
“그럼…….”
내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우랄산맥 근처에 출현한 던전, 전부 봉쇄해주십시오.”
「……음?」
“병력도 배치해주시고, 가능하다면 이능파 차단기도 설치해주십시오. 그 누구도 던전에 다가가지 못하게 말입니다.”
「그거야 어렵지 않은데…… 왜 갑자기 그런 부탁을 하는 건지 물어봐도 되겠나.」
둘러대야 하나,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시간을 오래 끌 순 없었다.
“우랄산맥 근처 어느 던전에서 무언가가 발견됐습니다.”
최대한 사실을 기반으로 전달했다.
“국제협회가 그걸 노리고 있습니다. 그들 손에 들어가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일이 생기게 될 겁니다. 어떻게든 막아야 합니다. 그런데 저희가 당장 이동할 수 없는 상황이라…….”
「무슨 물건이길래?」
“그건…….”
나는 또다시 말끝을 흐렸다.
에덴이라고 말하기가 영 껄끄러운 까닭이었다.
지금 당장이야 조력자 관계로 볼 수 있지만, 블라디미르 장관은 애초에 욕심이 많은 인간이다.
아무렇지 않게 독일 국방부 장관과 무기 밀매를 이어온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알 수 있다.
그런 그에게 에덴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어간다면…… 귀찮아질 게 뻔하다.
국제협회만으로도 귀찮은데, 러시아와도 마찰이 생길 여지를 만드는 건 좋지 않다.
그러니.
“새로운 뱅크 아이템인 거로 확인됩니다.”
여기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뱅크 아이템이라니… 대체 어떤?」
“정확한 건 조사 중에 있습니다.”
「흐음…….」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침묵했다.
그리고 이내.
「그래, 뭐. 알겠네. 나한테 좋은 정보를 줬는데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우랄산맥 인근 100km 지역까지 모든 던전을 봉쇄하겠네.」
“저희도 바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만약 국제협회가 발견되면 바로 연락 주십시오.”
「알겠네.」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일단… 급한 불은 껐습니다.”
고개를 들며 말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발견되는 건 시간문제겠죠.”
“그 전에 막으러 가야지.”
노아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죠. 그렇긴 한데…….”
나는 떨떠름한 투로 말끝을 흐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든 까닭이었다.
일단 던전을 봉쇄하긴 했지만, 에덴을 지키기 위해선 결국 또다시 국제협회와의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내 상태는…….
[각성 패시브 : 슬기로운 청소부]
[해당 패시브의 효과로 인해, 귀하의 고유 스킬이 변경되었습니다.]
[귀하의 고유 클래스가 초기화되었습니다.]
나조차 내가 어떤 상태인지 모른다.
이 상태로 연달아 전투를 벌이는 건 도박행위다.
이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다.
모든 걸 쏟아부었는데도, 에덴 탈환에 실패한다면…….
그땐 정말 끝이다.
‘쯧…….’
지금으로선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다.
최소한 보험을 들어놓을 수 있다면…….
‘잠깐…….’
보험?
“…이렇게 합시다.”
머릿속에 무언가 스친 직후, 내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노아 씨가 러시아로 가십시오.”
“뭐? 그럼, 너는 뒷짐 지고 구경이나 하겠다는 건가?”
“그럴 리가요.”
내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저흰 프랑스로 가겠습니다.”
“……뭐?”
“네, 네?!”
모두의 눈이 동그래졌다.
“프, 프랑스라뇨? 거긴 국제협회의 본거지인데요?!”
“나한테 무모하다고 뭐라 할 게 아닌데? 제 발로 적진으로 걸어 들어가겠다는 거예요?”
“너무 위험해요, 선생님!”
이아영 본부장과 한유빈 그리고 김민주가 곧바로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단 한 명.
“설마 당신…….”
클로이만이 내 의도를 바로 파악한 듯했다.
“본부를 노리려는 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무슨 말인지 깨달은 듯, 모두의 눈이 번뜩였다.
“국제협회는, 아니 웨슬리 사무총장에게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다른 걸 다 실패하더라도 에덴만 손에 넣는다면 만회할 수 있겠죠.”
내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에덴을 확보하려고 할 겁니다. 모든 병력, 모든 장비, 모든 기술을 동원해서라도 말이죠.”
그리고 그렇다는 건…….
“본부가 완전히 비어있을 거라는 소립니다. 그러니 우린 그 틈을 타서…….”
나는 클로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시간석과 차원석. 남은 뱅크 아이템을 모두 회수할 생각입니다.”
***
“…….”
웨슬리 사무총장은 줄곧 생각에 빠져 있었다.
조금 전, 김준우와 대치하던 상황이 계속해서 떠올랐던 까닭이었다.
폭주 상태의 김준우.
그와 마주한 순간, 죽을 수도 있다는 본능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애써 티를 내진 않았지만, 그 순간 웨슬리 사무총장은 원초적인 공포를 느꼈다.
그와 계속해서 대치를 이어간 건, 김준우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서라기보단…… 그저 발이 떨어지지 않은 까닭이었다.
‘빌어먹을…….’
그 사실이 웨슬리 사무총장의 자존심을 크게 건드렸다.
계속해서 그 일을 곱씹고 있던 그때였다.
“사무총장님, 준비됐습니다.”
한 직원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래요.”
그 말과 함께 걸음을 옮긴 곳에는 보랏빛을 내뿜고 있는 차원석이 있었다.
차원석 게이트.
던전을 생성, 소멸하는 것에서 나아가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차원 텔레포트.
그것이 처음으로 가동된 것이다.
‘…….’
웨슬리 사무총장은 그 빛을 바라보며 여전히 침묵했다.
이제 자신의 주변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에마 대표도, PB 코퍼레이션도.
케이트도, 작전 팀장들도.
이젠 오로지 혼자서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딱히 상관없지.’
애초에 그들 모두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장기말에 불과했다.
에덴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그깟 장기말쯤이야 몇천 개, 몇만 개가 부서져도 상관없다.
“갑시다.”
그 말이 떨어지자.
지이이잉―.
보랏빛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웨슬리 사무총장을 비롯한 국제협회의 남은 병력이 그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