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
289
캉―!
군더더기 없이 완벽한 동작.
일말의 빈틈도 찾을 수 없는 케이트의 공격이 김준우의 목으로 향하는 순간, 그녀의 검이 튕겨 나갔다.
최연소 헌터.
천재 중의 천재라 불린 그녀의 검을 막은 자는 다름 아닌 WDSO 서울 본부의 작전 본부장이자 대한민국의 최고 전력.
“혼자서 또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김민주였다.
“…버티다 죽는 줄 알았다. 좀 더 빨리 왔으면 좀 좋아.”
케이트와 마찬가지로 김준우 또한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이었는지, 크게 한숨을 돌리며 말했다.
“이래 봬도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빨리 온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다 도착했어요.”
김민주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어이구, 많기도 하네.”
“팀장님!”
“괜찮으십니까!”
그곳에 한유빈 기획 본부장을 비롯한 WDSO가 자랑하는 최정예 헌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국제협회와 WDSO의 모든 전력.
모든 인원이 굳은 표정으로 서로를 응시했고, 두 진영 사이에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기어이 이렇게 됐네요.”
김준우와 같이 가장 선두에 나와 있던 김민주가 주변을 바라보며 넌지시 말했다.
“상황은 뭐… 말 안 해도 알겠지?”
“네.”
“정신 똑바로 차려. 이번엔 진짜 죽을 수도 있으니까.”
김준우의 목소리가 사뭇 진지했다.
그러자 김민주가 입꼬리를 올리며 대꾸했다.
“선생님이 한 명한테 계속 시간을 끌리면 전력적으로 손해예요. 여긴 제가 맡을 테니, 선생님은 유빈 씨랑 다른 병력을 막아주세요.”
“괜찮겠냐? 저 여자 저래 봬도…….”
“괜찮아요.”
김민주가 그의 말을 끊으며 즉답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녀의 시선은 계속해서 케이트를 향해 있었다.
“그래 뭐… 잘해봐.”
김준우 또한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린 듯, 더는 말하지 않고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그가 멀어지는 순간.
[고유 스킬 : 천수관음]
스슥―.
김민주는 곧바로 자세를 고쳐 잡고는 케이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케이트는 허리를 완전히 꺾어 손쉽게 공격을 회피했고, 그와 동시에.
[고유 스킬 : 퍼스트 블러드]
슈욱―.
튕겨 나갔던 레이피어를 곧바로 주워들고는 곧바로 반격을 시도했다.
“……!”
김민주는 그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당황하기도 잠시.
곧장 검을 치켜들어 가까스로 그 공격을 막아냈다.
캉―!
이내 두 검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맞부딪쳤다.
“…….”
“…….”
마치 회피부터 무기를 줍고 다시 반격하는 것까지가 처음부터 한 동작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
그 모든 동작이 불과 몇 초도 되지 않은 시간에 끊김 없이 이루어졌다.
‘역시…….’
김민주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그극―.
서로의 호흡마저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
검을 맞댄 채 대치를 이어가던 그때.
“처음 뵙겠습니다. 케이트 미셸.”
김민주가 먼저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절 아는 사람이 많네요.”
“모를 리가 있나요.”
김민주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한때 가장 존경하던 사람이었는데.”
“…….”
이내 김민주의 눈빛이 번뜩였고, 케이트는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당신, 이름이…?”
“WDSO 대한민국 본부 소속, 작전 본부장 김민주라고 합니다.”
“아 혹시 검사 클래스 랭킹 2위의…?”
“맞습니다.”
“…그렇군요.”
케이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지그시 바라봤다.
“날 혼자 상대해도 괜찮겠어요? 당신이 왜 1위를 하지 못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 텐데.”
“마다할 이유가 없잖아요.”
[고유 스킬 : 천수관음 - 각성]
이내 푸른빛이 그녀의 전신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검사 클래스 랭킹 1위가 될 기회인데.”
기세가 사뭇 달라졌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에도 케이트는 그저 피식 미소를 흘렸다.
“주제넘은 소리를 하네?”
[고유 스킬 : 퍼스트 블러드 - 각성]
케이트의 레이피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기어이 두 천재의 검이 맞붙는 순간이었다.
***
최종 방어선 최후방.
이아영 본부장과 현지 지원팀의 협력으로 설치된 임시 지원시설.
“반능석 도착했습니다!”
본부 편대에 부탁했던 물건이 도착하자마자, 그곳은 순식간에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이능파 추출기 전원 켜!”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건, 반능석의 가공을 맡은 클로이였다.
오른팔을 잃었음에도 최소한의 응급처치만을 하곤 곧바로 업무에 뛰어들었지만, 과연 해당 분야 최고 전문가답게 통증마저 잊은 듯 보였다.
“전압은 1600v 정확하게 맞추고, 50v씩 천천히 상승시켜.”
“네, 네!”
“조금이라도 잘못 조절하면 폭발할 수도 있으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가공된 반능석은 탄두 당 정확하게 0.05mg씩이에요! 기존 화약량으로는 자칫 사격과 동시에 이능파가 반응해서 터질 수 있으니까 9% 줄이고요!”
“네, 넵!”
이아영 본부장이 가공된 반능석을 담을 탄환을 만드는 중이었다.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서둘러 준비를 시작한 그때.
“그래서, 가공하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이아영 본부장이 클로이를 향해 물었다.
“이게 뭐 쉬운 줄 알아요? 세 시간은 잡아야 해요.”
“그럼 한 시간 안에 끝내요!”
“…….”
클로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이아영을 바라봤다.
그러길 잠시.
“그러는 그쪽은 얼마나 걸릴 것 같은데요?”
“정확한 양을 수천 발 안에 담아야 하는데, 빨리 끝나겠어요?! 이쪽은 4시간은 걸려요.”
“그럼 그쪽은 한 시간 반 안에 끝내면 되겠네.”
“…….”
바쁜 와중에도 한마디씩 주고받는 이들.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로를 노려보기도 잠시.
“…야, 야! 너 뭐 하는 거야! 내가 50v씩 올리랬지? 여기 있는 사람 다 죽이려는 거야?!”
“어, 어?! 저기요! 그거 그렇게 손으로 만지면 오차 발생해요! 로봇 팔 사용해서 작업하세요!”
언제 그랬냐는 듯, 곧바로 각자의 역할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일일이 조정해볼 시간 없어. 1차 가공하고 바로 탄환 가공 쪽으로 보내서 테스트해봐.”
동시에 두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시설.
두 사람은 각자의 구역에만 온 신경을 쏟아부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딱 하나.
아직 앙금은 있을지 몰라도, 서로의 실력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
숨소리조차 허락을 받아야 할 정도로 긴장감이 맴도는 분위기 속에서 시간이 조금씩 흘렀고.
이윽고 가공이 진행된 지 정확히 30분이 지난 시각.
“1차 가공 완료. 테스트 준비해줘요.”
클로이가 먼저 입을 뗐다.
“45구경 탄환 준비됐어요. 테스트실은 따로 없으니까 밖에 나가서 쏘고 오세요.”
“갔다 올 테니까, 불발 나면 곧바로 재가공할 수 있게 추출기 전압 좀 유지해줘요.”
“알았어요.”
이윽고 클로이는 가공된 반능석을 담은 탄환과 총기를 들고는 시설을 나섰다.
그리고 머지않아 울려 퍼지는 총성.
다시 시설로 복귀한 클로이는 어딘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나쁘진 않은데 화력이 약하네. 더 세게는 못 만들어요?”
“5.52mm 탄환으로 다시 준비해 볼게요. 전압은 유지 해뒀으니까 계속 가공해줘요.”
“그럼 이대로 2차 가공해 볼 테니까, 다시 한번 테스트해 보고 괜찮으면 바로 대량 제조 들어가요.”
“네!”
모든 대화가 막힘이 없었다.
그렇게 그 뒤로도 둘은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았고, 그 과정에서 단 한 번의 의견 충돌도 없었다.
직원들은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는 두 사람의 움직임에 할 말을 잃은 채, 그저 시키는 대로만 움직였다.
이내 다시금 시작된 가공.
그리고 그 속도는.
“말도 안 돼…….”
“정말 한 시간 만에 가공부터 생산까지 끝내려는 거야?”
가히 보고도 믿지 못할 수준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두 전문가가 완벽히 합을 맞추고 있었으니.
전 세계 어디서도 보지 못할 광경.
으르렁거리며 다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서로에게 온전히 필요한 작업을 믿고 맡겼다.
테스트와 재가공을 계속해서 반복하던 그때.
“성공적입니다!”
“효과도 즉각적이고, 화력도 좋아요!”
기어이 한 시간 만에 반능석 가공에 성공했다.
“좋아! 바로 2차 가공 시작할 테니까 탄환 준비 해둬요.”
“그럼 이대로 제조 들어갈게요!”
두 천재가 호흡을 맞추자, 무시무시한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
베를린으로 향하는 도로에 설치된 최종 방어선.
그곳에서 마주한 국제협회와 WDSO의 모든 전력.
쾅―!!
콰콰과광―!!
퍼버벙―!!
쿠구구구―!!
기어이 두 진영 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1팀, 2팀은 최대한 밀고 나가세요! 나머지 팀은 진영 유지해주시고, 각 팀 팀장들은 최대한 상대 전력을 파악해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나는 전투를 벌이는 동시에 각 팀을 지휘해야 했다.
작전 본부장인 김민주가 여유가 없었기에 나 말고는 병력을 지휘할 사람이 없던 까닭이었다.
‘저 녀석…….’
나는 김민주와 케이트의 전투를 슬쩍 바라봤다.
두 사람의 움직임은 내 눈으로도 쉽사리 쫓을 수가 없는 정도였다.
천재라 불리던 케이트는 둘째 쳐도… 김민주 또한 이제는 내가 더 이상 조언을 해줄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알아서 잘하겠지, 뭐…….’
더 이상 그녀를 걱정할 이유는 없다.
나는 다가오는 적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김준우다!”
“저놈만 죽이면 돼!!”
그와 동시에 곧장 나를 향해 달려드는 수십 명의 병력.
[습득 스킬 : 디스트로이…….]
서둘러 스킬을 시전 하려던 그때.
[고유 스킬 : 하이패닉 버서커]
뻐억―!
뻐버버버벅―!
갑자기 튀어나온 한유빈이 나보다 앞서 그들을 처리했다.
“왜 멍 때리고 있어요?”
“…그쪽이 갑자기 끼어든 거잖습니까.”
“불만이면 먼저 처리하던가.”
한유빈이 나를 바라보며 피식 실소를 뱉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타앗―!
또다시 땅을 박차고 나가, 전장을 이리저리 누비기 시작했다.
여전히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고 보는 스타일.
이전 같았으면 위험하다고 말렸겠지만…….
[고유 스킬 : 하이패닉 버서커 - 스테이터스 해제]
[모든 스테이터스가 근력으로 전환됩니다.]
[근력 : 18,955 (9,107↑)]
[체력 : 1 (2,289↓)]
[민첩 : 1 (5,799↓)]
[마력 : 1 (1,019↓)]
슥, 스스슥―.
뻐억―!!
무작정 달려드는 것 같으면서도, 전후좌우를 모두 살피며 정확히 공격을 찔러 넣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무모한 공격이지만, 한유빈 단 한 명 때문에 진영이 흐트러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이젠 전투에 여유가 생긴 건지 다른 팀원들까지 보호해주고 있다.
‘……신기하네.’
그도 그럴 게, 나는 그녀에게 전투에 대해선 단 하나도 가르쳐 준 적이 없다.
어떻게 하면 더 정확하게 싸울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그 모든 것을 몇 번이나 생사를 오가며 그녀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헌터 자격을 박탈당한 지 2년.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그녀는 현역 시절보다 훨씬 압도적인 실력을 갖게 된 것이다.
‘굳이 참견할 필요도 없겠네…….’
그녀를 슬쩍 흘기길 한 차례.
나는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고유 스킬 : 6서클 - 엘리멘탈 헤븐]
[고유 스킬 : 마스터 오브 부두]
슈우우웅―.
쾅―!!!
어디선가 날아든 공격이 정확히 나를 직격했다.
“크윽…!”
서둘러 방어 스킬을 펼쳤지만, 모든 충격을 흡수하지 못해서 뒤로 날아가며 땅바닥을 몇 차례나 뒹굴었다.
“뭐, 뭐야!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그와 동시에 한유빈이 곧바로 달려와 나를 일으켜 세웠다.
고개를 들어 정면을 살피니, 두 남자가 나를 향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국제협회 본부 소속 작전 팀장들이에요.”
그때, 한유빈이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는 사람들입니까?”
“본 적은 있죠. 실제로 붙어본 적은 없지만, 본부 팀장이면 세계 랭커 수준은 될 거예요.”
“쯧…….”
이젠 팀장급까지 나서서 방해하고 있군.
‘낭패네…….’
아까 허용한 케이트의 공격 때문에 움직임이 둔하다.
이 몸으로 팀장급 두 명을 동시에 상대하기엔 시간이 많이 끌릴 것이다.
이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딱 두 가지뿐이다.
내가 죽거나, 혹은 웨슬리 사무총장이 죽거나.
다시 말해… 내가 웨슬리를 죽이기 전까지는 이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본부 병력은 내가 인정하는 녀석들이다.
김민주, 한유빈을 포함해 수많은 실력자가 있지만, 그들은 웨슬리 사무총장을 죽일 수가 없다.
가능한 사람이 있다면, 오직 나뿐.
내가 이런 곳에서 시간을 끌릴수록 전쟁의 승패는 기울어지는 것이다.
쯧, 어쩔 수 없지.
최대한 빨리 끝낸다면…….
“두 사람은 제가 맡을게요.”
그때, 한유빈이 담담한 목소리로 그 말을 전했다.
“……괜찮겠습니까?”
“그쪽이 잔챙이나 잡고 있을 순 없잖아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쪽은 가서 대가리나 맡아요.”
[고유 스킬 : 하이패닉 버서커 - 각성]
“금방 끝내고 따라갈 테니까.”
이윽고 그녀의 전신에서 검붉은 기운이 터져 나오는 순간.
마치 악마와 같은 형상으로 두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