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256화 (256/366)

256

256

“결재, 받아오셨습니까?”

시내에 위치한 베트남 지부 소속의 청소 관리실.

나는 지부 건물과 독립된 그 너저분한 곳에서 이아영 본부장을 만났다.

애초에 잘 사용하지 않는 사무실이기도 했고, 본부와 별개 건물인 덕에 보는 눈도 없는 곳이었다.

굳이 그런 곳에서 만난 이유는 되도록 지부 직원들의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국제협회에서 파견된 놈들은 날 알고 있을 수도 있고…….’

어디까지나 비밀스럽게 침투한 상황이다.

내 얼굴을 알고 있는 놈을 만난다면 계획이 틀어지는 것을 떠나 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내 정체를 알고 있는 현지 직원은 후인과 응우옌 작전본부장 그리고 몇 명의 팀장급이 전부다.

당연히 션 지부장 또한 우리에 대해선 전혀 모르고 있다.

“네, 뭐. 예상대로 읽어보지도 않더라고요.”

이아영 본부장은 결재받은 서류를 내밀며 대답했다.

나는 서류를 재차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겠죠. 앞으로 허브 운영과 부산물 유통, 토벌 기획이랑 인사 개편 등등… 신경 쓸 게 차고 넘쳤을 텐데 청소 일이 안중에나 있겠습니까.”

“그럼 차라리 결재 서류인 척하고 다른 서류를 내밀어도 됐지 않았을까요. 예를 들면 지부 운영권 인계 계약서라던가. 어차피 읽어보지도 않았을 텐데.”

그녀의 말에 나는 단칼에 고개를 저었다.

“그건 사기이지 않습니까.”

“이제 와서?”

“도의적인 걸 말하는 게 아니라, 효력을 말하는 겁니다.”

이아영 본부장은 그제야 본인이 간과하고 있었다는 듯, 작게 감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션 지부장의 서명이 박힌 서류를 툭툭 건드렸다.

“그래도 뭔가 아쉬운데요. 이건 정말로 청소 업무 내용에 관한 서류잖아요. 해봤자 전체 청소팀 관리 권한 정도고. 이걸로 뭘 할 수 있다고?”

“뭘 하긴 뭘 합니까. 청소해야지.”

“…….”

그녀가 도끼눈을 뜨고 바라본다.

“여기서까지 이러기에요? 무슨 생각인지 제대로 말 안 하면 저 돌아갈 거예요.”

“…….”

쯧, 성질머리하고는.

나는 이내 작게 숨을 몰아쉬고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처음 베트남 지부에 왔을 때, 다 쓰러진 협회를 어떻게 다시 일으켰는지 기억하십니까?”

“당연하죠. 청소팀 확대로 인한 부산물 회수율 증가 및 토벌 수익 최대화, 지원팀에 이어 작전팀도 확대. 결과적으로 연쇄 작용을 통한 토벌 시스템 확대. 이거 아직도 본부에 교본으로 있어요.”

“……?”

참 나, 별걸 다…….

뭐 아무튼 알고 있으면 됐다.

“이미 국제협회에 넘어간 지부를 무턱대고 뺏어오는 건 불가능합니다. 베트남 전역의 토벌 산업을 인질로 쥐고 있는 한, 자칫하다간 지부가 아니라 국가 전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겠죠.”

“그거야… 그렇겠죠.”

“무엇보다 섣불리 국제협회와 마찰을 일으켰다가 지기라도 한다면 다른 지부들의 신뢰까지 잃을 겁니다. 국제기구로써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저희에겐 그보다 치명적인 건 없죠.”

다시 말해 정면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국제협회 소속으로 남겨두되, 지부 운영에 대한 모든 권한을 되찾는 걸 목표로 할 겁니다.”

“그게 가능해요?”

“어렵지만… 불가능할 것도 없죠.”

모호한 대답에 그녀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다.

“아무튼, 국제협회 스스로 지부에서 손을 떼게 만들 생각입니다. 가지고 있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거나, 혹은 투자 대비 얻는 이득이 압도적으로 마이너스거나.”

“잠깐, 당신 설마……?”

“예.”

나는 미소를 지었다.

“우린 이제부터 베트남 지부를 무너트릴 겁니다.”

그녀는 대답 대신 이마를 턱 짚었다.

“그리고 청소팀 확대로 무너진 협회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건, 그 반대로 하면 번듯한 협회도 무너트릴 수 있다는 소리겠죠.”

“…….”

“인원은 최대로 감축, 장비도 최소한만 남겨두고 전부 가져다 팔 겁니다. 당연히 작업 일정은 팀당 하루 3개 이하로 맞출 거고요. 그리고 열 팀에서 다섯 팀으로 줄이고…….”

“잠깐! 잠깐만요!”

그녀가 내 말을 끊으며 반론을 제기했다.

“당신 말은 그러니까……. 청소팀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거예요? 그것도 지부를 망하게 하려고?”

“그렇죠.”

내 대답에 이아영 본부장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우리가 2년 전에 직접 뽑은 사람들이에요. 이제 와서 내치겠다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

“이대로 지부가 국제협회에 넘어가는 것보다야 그게 낫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최소한 청소팀 사람들 의견이라도 들어봐야죠!”

“그래서 따르지 못하겠다는 겁니까?”

“그, 그건…….”

갑작스레 말문이 막힌 듯 그녀가 주춤했다.

시선을 피한 채 대답도 없이 한참 동안 생각에 빠졌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흘렀고, 그녀는 조금 진정됐는지 이내 차분해진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직원들은… 협회가 누구한테 넘어가는지 별로 관심 없고 신경도 안 써요. 월급만 제때 주면 주인이 누구든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특히나 하위 직급이라면 더더욱 그렇고요.”

“뭐… 그렇긴 합니다.”

“그런데 우리끼리 판단하고 결정한 일이, 이번 일과 가장 관련 없는 사람들을 내치는 거라면…….”

이내 그녀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저는 동의할 수 없어요.”

“…….”

“아니 솔직히 말해서… 청소팀 직원들한테는 오히려 국제협회 소속이 되는 게 더 좋은 일일지도 모르죠.”

나는 그녀의 대답에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회귀 전 내 보좌관으로 일했던 시간과 회귀 후 나와 동료로서 함께 일했던 시간을 모두 통틀어…… 그녀가 처음으로 내 결정에 반기를 든 것이다.

‘뭐, 생각해보면 원래 이런 사람이긴 했지…….“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애초에 그런 위계에 질려 협회를 떠나려 했던 인물이다.

이제 와서 본인이 가장 혐오하던 짓을,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낄 만도 하지.

무엇보다 그녀의 말이 딱히 틀린 것도 아니다.

지부가 그리고 허브가 어디로 넘어가느냐의 문제는 그것으로 이득을 보는 자들의 문제지, 직원들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말대로 직원들 입장에선 국제협회에 넘어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지부의 주권을 되찾겠다는 명목으로 직원들을 쳐내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아영 본부장님, 우린 지금 전쟁 중입니다.”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전쟁.

조금이라도 약점을 보이는 순간, 다음에 거리로 나 안게 될 건 청소팀뿐만이 아니게 될 것이다.

그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방법이 없다면 모를까, 있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

나는 어느 때보다 단호하게 말했다.

이아영 본부장은 할 말이 많은 듯했지만,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위에 앉은 사람이 입지를 지키기 위해선, 아랫사람의 희생이 필수불가결하다.

회사를 위한 것이다, 모두를 위한 것이다, 아무리 포장해도 아랫사람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무 관련도 없는 그들의 희생이 강요된다.

그것이 조직이며 나 또한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그런 모순은 딜레마에 속하지도 않는다.

진짜 딜레마는…… 내칠 수 있을 때 내치지 않으면, 누군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매번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이번이라고 다를 건 없다.

“물론 바로 진행하진 않을 겁니다. 구조조정 명단도 작성해야 하고, 현지 작업 방법과 축소된 인원에 맞춰 다시 일정을 조율해야 하니까요.”

“…….”

“뭐, 일주일간은 청소 지원하면서 이것저것 확인해볼 생각입니다. 작업 방식이 어떻게 되는지, 어느 팀에서 몇 명을 축소해야 할지, 남은 인원으로 어떻게 작업을 해야 할지 알아둬야겠죠.”

이아영 본부장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나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할 말 없으시면…….”

그 말과 함께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나가보시죠.”

“…….”

그럼에도 이아영 본부장은 제자리에서 시선을 떨어트린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쿵―.

이내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려 사무실을 벗어났다.

“…….”

나 또한 아무 말 없이 그녀가 나간 자리를 바라봤다.

***

“어, 왔다, 왔어!”

“준우 씨! 빨리 와 봐요!”

청소 지원이 예정된 던전 앞에 도착하자, 박근태 부장과 문소연 그리고 한상혁이 기다렸다는 듯 나를 잡아끌었다.

가까이 가보니 현지 청소팀 직원들과 무슨 문제가 일어난 모양이었다.

“뭡니까?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여기 보스가 슬라임 계열인데 전기톱을 가져가려고 하잖아!”

“이건 가져가 봤자 날에 살점이 다 엉겨 붙어서 쓰지도 못한다고, 그냥 칼을 가져가라고 하고 싶은데…… 말이 통해야 말이지.”

한상혁에 이어 박근태 부장이 상황을 설명했다.

‘대체 뭔…….’

누군 청소팀 구조조정 때문에 골치 아파 죽겠는데, 누군 장비 지적이나 하고 있네.

하여간, 여기까지 와서도 청소에 진심인 사람들이다.

“…뭐,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현지 직원들을 향해 돌아섰다.

그와 동시에.

“아니, 지금 뭐 하자는 건가요!”

“우리 빨리 작업 들어가야 하는데, 왜 못 들어가게 막는 겁니까!”

“도와주러 온 거 아니에요?!”

현지 직원들이 잔뜩 뿔이 난 표정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뭐… 영문을 모르니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겠지.

나는 그들을 진정시키며 박근태 부장이 지적했던 부분을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아!”

“그런 겁니까…?”

“그 부분은 미처 생각 못 했네요…….”

그제야 자신들의 실수를 잡아주려고 했다는 걸 알게 된 현지 청소부들이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곤 3팀원들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가, 강사한니다.”

“감사함미다.”

어색한 한국어로 인사를 전했다.

“하하! 오해가 풀렸다니 다행이네. 우리야말로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작업 들어가죠.”

“시간 다 잡아먹었네. 서둘러야겠는데?”

3팀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작업 준비에 들어갔다.

모두와 함께 던전으로 입장했다.

뭐, 다행히 작업 자체는 꽤나 순조로웠다.

“거기 약품 좀 주십쇼. 어… 캐미컬, 캐미컬!”

“아, 오케이.”

“슬라임 크기가 생각보다 큰데… 5등분 해야겠지?”

“흐음, 처리 시설에서 많이 분해한 건 싫어하긴 하는데… 어쩔 수 없네요.”

“헤이, 파이브 등분. 아, 그러니까… 파이브 피스!”

“파이브? 오케이!”

“조심해. 비 케어풀! 오케이?!”

“오케이, 오케이.”

모두가 어설픈 언어로도 별문제 없이 작업을 이어갔다.

국적은 달라도 해야 할 일은 같았기에, 눈짓과 몸짓만으로도 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었다.

딱히 긴 대화도 필요 없이 그들과 소통했고…….

그러한 관계는 일주일 내내 계속되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