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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B 코퍼레이션의 수장.
에마 대표.
때아닌 그녀의 등장에 나는 시선을 옮겼다.
“아무리 폭주 상태라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부하를 죽여요?”
현장을 슬쩍 흘기던 그녀가 조롱하듯 입을 열었다.
“…그쪽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무미건조하게 대답하자 그녀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에마 대표는 쓰러져 있는 한유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됐어요. 뭐, 우리 일을 덜어줬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용케 상황을 전달받았군요.”
“카르텔이랑 거래하려던 거 아니었어요? 그럼 원료를 누가 지원해줬는지도 이미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요즘 그쪽 보스랑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 보니 이 정도 일은 금방 귀에 들어올 수밖에요.”
“…….”
나는 대답 대신 그녀가 대동한 인원들을 흘겼다.
수십 명의 헌터들.
딱 봐도 밸런스팀을 모조리 긁어온 듯했다.
눈에 보이는 인원은 생각보다 많진 않지만, 경험상 이들은 모든 인원을 정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기하고 있는 이들까지 합치면 백 명은 족히 넘겠지.
‘쯧…….’
퍽 귀찮아진 상황에 표정을 구겼다.
작정하고 전투가 벌어진 다음을 노렸다.
지금 당장 저들을 상대하기엔, 각성 스킬을 너무 오래 사용했다.
더 이상 전투를 벌이다간 자칫하면 홍콩 때처럼 또다시 폭주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정보팀이 밸런스팀을 상대하기엔 한참 역부족이고.
뭐, 그나마…….
‘저 녀석이라도 빠져 있어서 다행이네.’
바닥으로 시선을 슬쩍 내리며 생각했다.
어쨌든 지금은 눈앞에 있는 상황을 해결하는 게 급선무다.
뭐, 저들이 찾아올 거라는 걸 아주 예상을 못 한 건 아니다만…… 설마하니 이렇게 빨리 오다니.
지금 당장은 싸우는 것도,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다면 일단은 시간이라도 끌어봐야겠지.
“절 죽일 생각입니까?”
큰 의미 없는 질문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가능하다면요.”
다행히 에마 대표는 그 물음에 미소를 지으며 친절히 답해주었다.
“지금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까요? 보니까 서 있는 게 겨우인 것 같은데.”
“제가 그렇게 만만해 보입니까?”
“허세 부리지 말아요. S랭크 이상이 각성 스킬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30분 미만이라는 건 기본 상식이니까. 그 이상 쓰면 폭주할 수도 있을 텐데?”
역시나 다 알고 있다는 듯, 에마 대표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오히려 당신들이 위험해질 텐데요. 폭주한 날 상대로 당신들에게 승산이 있을 것 같습니까?”
“싸워서 이기진 못하겠죠. 뭐,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이길 거예요.”
“…….”
정곡을 찌르는 말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굳이 덧붙일 필요도 없이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저번에는 운이 좋아 큰 사고로 번지지 않았다고 해도, 이번에도 그러라는 보장은 없다.
만약 이전처럼 일말의 이성을 유지할 틈도 없이 폭주한다면 그때부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인명 피해…… 아니, 그보다 더 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국제협회 입장에서는 오히려 기회일 것이다.
내 실수가 전 세계로 일파만파 퍼지며, 작게나마 쌓아가고 있던 신뢰를 모조리 잃게 되겠지.
더불어 지금까지 국제협회로부터 겨우겨우 빼앗아 온 권리 또한 한순간에 모조리 빼앗기게 될 것이다.
섣불리 싸울 수도, 그렇다고 싸우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
“정말이지… 지긋지긋하게 얽히는군요.”
진심으로 짜증이 몰려오는 그 상황에 나는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생각한 순간부터 이 정도는 각오했어야죠.”
그러자 에마 대표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러게, 왜 다 차린 밥상에 재를 뿌려요. 그냥 우리가 통제하도록 내버려뒀으면 더 엮일 일도 없잖아요. 아니면 뭐 그런 거예요? 우리가 전 세계를 손에 쥐고 뒤흔드는 걸 막을 거다?”
그녀는 본인이 말을 하면서도 풋, 실소를 뱉었다.
“설마 우리가 토벌권을 통제한다고 해서 시민들 목숨을 가지고 협박이라도 하겠어요. 영화도 아니고.”
“…….”
“애초에 우리만 그러는 것도 아니잖아요. 경제, 종교, 정치… 원래 모든 분야는 타고 올라가다 보면 결국 힘 있는 한 명이 쥐고 있어요. 토벌이라고 안 그럴 건 또 뭐야.”
에마 대표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뭐, 거대 권력으로부터 시민들을 구할 거다… 이런 생각 하고 있어요? 오히려 그 쓸데없는 영웅 심리 때문에 지금 몇 명이 피해를 보고 있는지나 알아요?”
“…하하, 하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영웅 심리? 시민을 구한다? 대체 뭔 개소리를 하는 겁니까?”
“……?”
“제가 설마 그깟 되지도 않는 대의 때문에 국제협회를 무너뜨리려는 건 줄 아십니까? 미안하지만, 전 그런 영웅이랑은 거리가 멉니다. 전 그냥…….”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내 앞길을 가로막는 걸 원체 싫어할 뿐입니다.”
“……?”
“뭐, 그쪽이 존나 마음에 안 들기도 하고.”
에마 대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위험에 빠트리고, 부하를 희생시킨다고요?”
“후려치지 마시죠. 그게 왜 제 탓입니까? 위기의식 느낀 누군가가 자꾸 상식 밖의 개짓거리를 한 탓이지.”
“…대화가 안 되는군요.”
“애초에 기대도 안 했습니다.”
“그럼 뭐…….”
에마 대표가 작게 한숨을 쉬는 순간이었다.
[고유 스킬 : 병기 확보]
“결국, 이 방법뿐이겠네요.”
철컥―.
철컥, 철컥, 철컥―.
그녀의 주변으로 수백의 화기가 소환되었다.
그리고 그때.
“그짝은 쉬어야.”
홍두식 팀장이 앞으로 나섰다.
“괴물은 몰러도… 나도 사람 정도는 상대할 줄 알어.”
“너무 무리하셨습니다.”
“저들은 우리가 맡겠습니다!”
“…….”
나서지 말아라. 상대가 안 된다.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나도 지금 상태가 아슬아슬했다.
밸런스팀 전원과 정보팀이 서로 마주했고, 각자 전투태세를 갖추던 그때.
“오늘은 헛걸음 안 하겠네.”
이윽고 기다리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벌써 한바탕하셨나 봐. 꼴이 아주 말이 아니네.”
“연락한 게 언젠데 이제 오십니까.”
“나는 뭐 날아서 오나. 이 정도면 빨리 온 거지.”
그의 말에 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노아 웨스턴우드.
현 세계 랭킹 1위의 헌터이자 PB 코퍼레이션 밸런스 팀장.
그가 이끄는 세계 1위의 민간 조직.
노아 길드.
그들이 드디어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당신이 어떻게 여길…?”
에마 대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불청객의 등장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쪽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카르텔에 누가 원료를 대줬는지 정도는 이미 알고 있지 않았냐고.”
내가 대신 대답했다.
“국제협회가 카르텔과 연관이 있다면, 오늘같이 중요한 거래는 반드시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게 뻔하지 않습니까.”
거래 중 변수가 발생하면 곧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도록 말이지.
애초에 카르텔과 거래 할 때부터 국제협회와의 접촉은 상정하고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거래 전에 노아에게 연락해놓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보험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될 거라는 건 나 또한 예상하지 못했지만.
‘준비해놓길 잘했네…….’
노아를 슬쩍 흘기며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결국, 주인을 무는군요.”
에마 대표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노아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언제부터 그쪽이 내 주인이었지?”
“이래서 진즉 내쳐야 한다고 했던 건데…….”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뭐, 차라리 잘 됐어요. 이참에 한 번에 처리하지 뭐.”
“그게 되려나 모르겠네?”
[고유 스킬 : 아포칼립스]
노아가 스킬을 시전하는 순간, 수백 명의 인원이 함께 공격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쿵―!
난데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전혀 예상치 못한 누군가.
“김민주…?”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작전 본부장이자, 작전팀 최고 전력.
한국 랭킹 1위, 검사 클래스 세계 랭킹 2위.
김민주였다.
“너, 네가 여길 어떻게 알고…?”
“홍 팀장님이 연락하셨어요. 마침 터키에서 파견 토벌 중이라 바로 헬기로 날아왔어요.”
“…….”
아니 근데 왜 하늘에서 떨어지냐?
설마 헬기에서 그냥 뛰어내린 거야?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김민주는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한유빈을 발견하곤 사뭇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유빈 씨는…….”
“……걱정 마.”
그 한마디가 대답이 된 건지 김민주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저희가 맡을게요.”
“저희…?”
김민주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파견을 나와 있던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작전팀이 모습을 드러냈다.
“…….”
순식간에 모여든 수백 명의 헌터들.
그 인원 앞에서 에마 대표의 표정이 굳었다.
“…이쯤 되면 진짜 전쟁이네요.‘
그녀가 넌지시 말했다.
하지만 김민주와 노아는 피식, 미소를 흘릴 뿐이었다.
“어쩌라고?”
“이제 와서 겁먹은 건가요?”
“하하하…….”
작게 미소를 흘린 순간.
각 진영이 곧바로 공격 태세를 갖췄다.
기어이 국제협회와의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
“뭐라고…?”
카르마 코퍼레이션 본사.
이두식 이사가 놀란 눈으로 되묻자, 이아영 본부장이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국제협회와 전투가 발생했다고요.”
“이런 미친…!”
갑작스러운 소식에 그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갑자기 왜? 대체 어쩌다가?!”
“자세한 건 저도 몰라요. 카르텔의 본거지를 알아내다가 변수가 좀 있었나 봐요.”
“빌어먹을…….”
그가 이를 으득 씹었다.
전면전이라니…….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 건가.
이두식 이사는 머리를 짚었다.
여태까지 국제협회가 아무리 수작을 벌여도 최소한으로 대응했던 건 어떻게든 전면전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아직 국제적인 입지를 쌓지 못한 현재로선 그들과 전면전을 벌여봤자 좋을 게 하나 없었으니까.
지금으로선 전투의 승패가 의미 없다.
져도 손해고, 이겨도 손해다.
국제협회와 전투를 벌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미 진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만약 이 싸움에서 진다면 김준우가 국제협회로부터 받아낸 헌터 관리 권한은 물론 이능석과 반능석을 도로 빼앗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겨우겨우 쌓아 올렸던 모든 것이 무너지겠지.
하지만 싸움에서 이긴다고 한들, 아무런 이득도 얻을 수 없다.
오히려 피해자인 척 언론을 조작하려 들겠지.
여태까지 그래왔듯이.
“막을 방법은 없는 거지…?”
“이미 노아 길드랑 민주 씨까지 합류했대요. 이제 와서 서로 웃으면서 화해할 리가 없죠.”
“그렇군…….”
그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리고 깊게 한숨을 토해내길 한 차례.
“지든 이기든 어차피 결과가 같다면…….”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왕이면 이기는 게 낫겠지?”
“……당연한 소리를.”
이아영 본부장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도 좀 도와주자고. 그쪽은 그쪽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다뇨? 어떻게…….”
“뒤처리가 또 우리 전문이잖냐.”
“…….”
이두식 이사의 말에 이아영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이아영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항상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부녀가 간만에 합심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