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237화 (237/366)

237

237

“그러니까…….”

카르마 코퍼레이션 본사.

나는 귀국하자마자 모든 본부장을 소집해서 알고 있는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러자 이아영 본부장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지금 데이터에 없는 이능력자가 갑자기 생겨난 게…… 약물 때문이라고요?”

“옥타보이드암페타민.”

나는 한 단어를 내뱉었다.

“흔히 보이드라고 불리는 신종 마약입니다.”

“마약?”

“뭐, 몬스터 부산물을 정제하다가 우연히 만들어진 마약입니다. 여느 마약처럼 강력한 환각, 각성, 중독성이 있긴 한데. 사실 그런 건 제쳐두고 이 약물의 진짜 주된 효과는…….”

나는 본부장들을 번갈아 보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능력을 순간적으로 증폭시켜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

알려져 있다, 라는 말에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로 그럴 게 보이드가 세상에 드러난 건 훨씬 더 이후의 일이니까.

그들로선 처음 듣는 게 당연했다.

그때, 이아영 본부장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잠깐만요. 이능력을 증폭시키는 거라면, 이능력이 없는 일반인들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물론,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그럼 갑자기 새로운 이능력자들이 나타났다는 건…….”

“예. 보이드를 투약한 이들 중 일반인도, 그렇다고 헌터도 아닌 이들이겠죠.”

이능력은 있지만 기존 랭크 시스템에는 등록되어 있지 않은 이들.

언 랭크.

그들을 대상으로 약물이 퍼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전 세계의 언 랭크들이 보이드를 투약하고 작전팀에 지원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죠.”

“하아, 몬스터 부산물로 마약을 만든다는 건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

“뭐, 약 자체는 처음 들어본다고 해도 원료는 그쪽도 알고 있을 겁니다.”

“네?”

“보이드는 프렉탈을 정제해서 만든 약물이거든요.”

“……!”

이아영 본부장의 눈썹이 크게 요동쳤다.

프렉탈.

A랭크 이상의 무기를 만들 때 반드시 필요한 최고급 부산물.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부산물이지만. 몇 달 전, 최대 출토지인 중앙아프리카와 독점 납품 계약을 맺은 덕에 우리나라에선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다.

과거 일본 지부에서 프렉탈을 이용해서 더욱 강력한 효과를 뽑아내기 위한 연구를 하던 중, 새로운 물질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신종 약물은 회귀 전 일본에서 시작해 남미와 멕시코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일반 마약과 달리 이능력을 가진 자에게만 작용하는 약물이었고, 능력을 단기간에 증폭시켜주는 어마어마한 효과가 있었지만…….

여느 마약이 그렇듯, 강한 중독성과 심각한 부작용이 잇따랐다.

그중 가장 심각한 부작용은 이능력 과다 자극으로 인한 폭주 상태.

마약 약물 복용으로 인한 능력 폭주로 만에 하나 인명 피해라도 일으킨다면, 랭크 해지는 물론 감옥에서 여생을 보내게 될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목숨보다 명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헌터들에겐 굳이 시도할 이유가 없는 약물이었다.

다행히도 이 신종 마약은 그리 널리 퍼지진 못했다. 무엇보다 가격도 어마어마했고.

결국, 극소수의 헌터들 사이에서만 잠깐 유행했고, 주 제조원이었던 멕시코 카르텔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던 탓에 사업을 접고 모든 약물을 폐기했다.

나중에 가서야 그것이 발각되었지만. 이미 제조, 유통, 소비자 모두가 약물에서 손을 뗀 시점이라 크게 문제가 발생하진 않았다.

다시 말해, 회귀 전에는 아무도 모르게 나왔다가 아무도 모르게 완전히 사라진 초유의 마약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는 거지.’

현재 전 세계에선 부족한 인원을 충당하기 위해 대대적인 모집이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평소 지원 자격조차 없었던 이들 또한 작전팀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리라.

전 세계의 헌터 모집 공고.

이능력을 증폭시켜주는 약물.

가장 최악의 두 가지 조건이 딱 맞물렸다.

누군가에겐 기회가, 또 누군가에겐 최고의 사업장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이드를 유통한다면 그 여파는 회귀 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재능이 없는 것보다 모호한 재능이 더 고통스럽다고 했던가.

이능력은 있지만, 그것으로 뭔가를 할 수는 없는, 그럼에도 헌터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지 못한 이들에겐 이만한 방법이 없을 테니.

카르텔 입장에서도 언 랭크는 정말이지 완벽한 타깃이겠고.

‘지원자 현황이 100만 명이 넘은 걸 보면 벌써 상당히 퍼진 것 같은데…….’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때.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네요.”

이아영 본부장이 조심스레 그 말을 뱉었다.

“프렉탈 최대 출토지인 중앙아프리카와 독점 납품을 했잖아요. 전 세계 프렉탈의 70%는 우리가 취급하고 있으니까… 대량 제조가 쉽진 않겠죠.”

“그건 그렇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야 가지고 있던 원료를 죄다 쏟아부어서 만들었다고 해도, 계속해서 사업을 확장하고 유통하려면 대량의 프렉탈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우리가 쥐고 있는 이상, 프렉탈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겠지.

물론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진짜 문제는 중독성이고 부작용이고를 떠나서, 체내 검출이 안 된다는 겁니다. 정말 강한 이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보이드를 투약한 사람인지 구별할 수 없다는 거죠.”

“그럼… 잘못 뽑으면 또다시 토벌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거예요?”

“무조건 생깁니다. 투약을 중지하면 다시 언 랭크로 돌아오고, 계속해서 투약한다고 해도 부작용 때문에 멀쩡할 리가 없죠.”

꽤나 심각한 이야기에 모두가 잠시 대답을 아낀 채 침묵했다.

“일단 채용 심사는 잠시 중단하도록 하죠.”

“…그게 좋겠어요.”

“마약이 더 퍼지긴 힘들다고 해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죠. 문제가 될 만한 건 뿌리 뽑는 게 원칙이니까요.”

나는 이아영 본부장과 김민주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일단은 보이드를 제조, 유통하고 있는 카르텔부터 소탕합시다.”

“알았어요.”

“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딱 한 사람…… 그 녀석은 그러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에요…….”

기획 본부장, 한유빈.

줄곧 가만히 듣고만 있던 그녀는 대답 대신 넌지시 다른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그쪽은 대체 이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예요?”

“……예?”

“뉴스에 보도도 안 된 사항이고, 알려지지도 않은 약물에, 심지어 이클립스 총 책임자인 이아영 씨도 몰랐던 건데… 그쪽이 어떻게 알고 있냐고요.”

“…….”

날카로운 목소리와 다르게 덤덤한 눈빛.

이건 누가 봐도 이전에 했던 질문의 연장선이었다.

‘아직도 의심하고 있는 건가…….’

그런 생각도 잠시.

나는 피식 미소를 흘리며 문밖을 향해 입을 열었다.

“들어오시죠.”

그 말과 함께 조심스레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온 한 남자.

“아, 안녕하십니까! 정보팀 소속 경남 지역을 맡고 있는 강재석 파트장입니다.”

바로 내가 직접 뽑은 전직 헌터, 정보팀 소속의 사람이었다.

이내 강재석은 곧바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사실 제가 사회에 있었을 때 보이드 유통책 제안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하하!”

“……?!”

“……!”

그 말에 모두의 눈이 동그래졌다.

“남미랑 유럽 사이에서 밀매 일을 하던 브로커였는데, 신종 약물이 있으니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더군요.”

“그, 그래서? 수락했어요?!”

“설마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원래 그쪽이 한 번 발 들여놓으면 못 빼잖습니까?”

강재석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 내가 말했다.

“제가 뉴스에도 안 나온 걸 어떻게 알고 있겠습니까. 자세한 건 이 사람에게 들었습니다.”

“…….”

한유빈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길 잠시.

“뭐, 알았어요.”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이곤 이내 남자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그 유통책을 제안했던 사람이랑 만나볼 수 있어요?”

“아, 네! 조금만 알아보면 어떻게 연락은 될 겁니다.”

“그럼 그쪽부터 조지면 되겠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재석 씨는 가서 홍 팀장님한테 작전팀 전원 소집해달라고 전해주십시오. 해외 나가서 쓸 인력이 필요할 것 같으니.”

“넵,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한유빈 씨와 같이 가겠습니다. 이아영 씨랑 김민주 그리고 하 본부장님은 본사에 남아서 연락 대기해주십시오.”

“네? 이번엔 저도 같이 가는 게…!”

김민주가 나섰지만,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넌 안 돼. 국내 토벌 지휘할 사람도 필요하고. 아직 파견 지원도 안 끝났잖아.”

“…….”

대놓고 아쉬워하는 표정.

뭐, 어쩌겠는가. 애초에 그녀의 성격상 이번 일에는 어울리지 않는데.

“대개 사람은 몽둥이를 들면 말을 듣는데, 약쟁이는 아니야. 그러니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상대할 사람이 더 어울려.”

“…듣고 보니 좀 그러네?”

“…….”

어째선지 그 말에 발끈한 한유빈이 나를 획 쏘아봤다.

“…자, 자 어쨌든 일들 합시다.”

나는 재빨리 시선을 피하며 화제를 돌렸다.

***

멕시코, 티후아나.

겉보기엔 평범한 세탁 공장이었지만, 실상은 멕시코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마약 카르텔, 우노 엠피레의 본거지.

세계 최대의 옥타보이드암페타민 제조 공장이었다.

“다들 주목.”

그때, 공장의 총 책임을 맡고 있는 호세가 한창 업무 중인 직원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주까지 300kg을 납품해야 한다. 오늘부터 쉬는 날 없이 작업 들어가자.”

“사, 삼 백이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벌써 텍사스 쪽 조직이랑 계약도 잡아 놨다고.”

“…….”

“…….”

제조원들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미적지근한 반응에 호세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뭐야, 불만 있는 놈은 지금 나와.”

“저, 그게 아니라…….”

“원료가 모자랍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프렉탈로는 고작해야 20kg이 최대라…….”

“……뭐?”

“그게… 프렉탈 최대 생산지가 중앙아프리카인데 거긴 카르마 코퍼레이션이 맡고 있는 곳이라 원료를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아…….”

제조원들의 말에 호세가 인상을 구겼다.

“그럼 다른 데서는 구할 데 없는 거야? 놓치기엔 아까운 기회라고. 지금 전 세계 언 랭크들이 줄을 서고 있는데!”

“…….”

하지만 그들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애초에 가격 대비 제한적인 효과 때문에 폐기하려던 약물이 아닌가.

이제 와서 원료를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손을 놀릴 수도 없었다.

지금 전 세계 협회에서 대대적으로 헌터를 모집하는 이 기간이 물건을 유통할 최고의 적기가 아닌가.

이미 언 랭크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기에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일찍이 이 상황을 눈치챈 각국 마피아들도 벌써부터 제발 본인들과 계약해달라고 들러붙고 있다.

이번이 절호의 기회다.

흐름을 타서 사업을 확장한다면 이번에야말로 멕시코 최대 카르텔, 엘 오호스를 제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사업이다.

‘그렇다고 없는 원료를 만들어낼 수도 없고…….’

방법이 없는 건가 싶던, 그때.

“티, 팀장님! 지, 지금 밖에 침입자가…!”

“…뭐?!”

다급하게 공장으로 들어온 직원이 소리쳤다.

“뭐야! 오호스 놈들이야?!”

“아, 아뇨…….”

그 직원이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능력자입니다.”

“……!”

“……!”

그 말에 곧바로 호세를 포함한 모든 조제원들이 총을 꺼내 드는 순간.

쾅―!!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박살 나며 누군가가 그곳으로 들어왔다.

“꼼짝 마!!”

“시발, 너 뭐야!!”

모두가 그 사람에게 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그곳에 나타난 이는 백인의 중년 여성이었다.

호세는 예상치 못한 상대에 꽤나 당황한 듯했지만, 여성은 담담하게 그곳을 둘러볼 뿐이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진정하세요. 도와드리려고 온 거니까.”

그녀가 입을 열었다.

“…뭐?”

“국제 헌터 협회 산하 PB 코퍼레이션 대표, 에마라고 합니다.”

“국제협회가 우리한테 무슨 볼일이야?”

“보이드를 여기서 만드는 건가요?”

“……?”

“생각보다 규모가 작네요. 시설도 열악하고……. 이래서 전 세계에 납품할 수 있겠어요?”

“지금 무슨……?”

“보아하니 원료도 많이 부족한 것 같은데.”

철컥―.

속내를 전혀 알 수 없는 여성의 말.

호세는 그녀의 머리를 향해 정확히 총구를 겨누며 다시 한번 물었다.

“너 대체 뭐야.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그 부족한 원료, 저희가 공급해드리죠.”

그 순간, 에마 대표가 호세의 말을 자르며 달콤한 제안을 건넸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