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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코퍼레이션 본사, 작전 본부실.
“한별 그룹에서 투자를 받아냈다고요?”
이아영 본부장이 전화로 전한 그 소식에 김민주가 화색을 띠며 되물었다.
「네! 아빠한테 들었는데 하덕수 회장이 직접 찾아오셨대요. 하성일 본부장님도 모르고 있었다고 하고요」
“하…….”
김민주는 그 상황이 믿기지 않은 듯, 헛웃음을 뱉었다.
「아무튼, 파견 비용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준우 씨한테는 제가 전해둘 테니까, 민주 씨는 작전에만 집중해줘요.」
“……고마워요.”
「제가 뭘 했다고…… 다 우리 잘나신 대표님 덕분이지.」
“뭐, 그건 그러네요.”
김민주가 작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덕수 회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아무 조건 없이 이런 상황에서 투자를 결정했다는 건 사업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럼에도 그가 움직였다는 건, 모두 김준우의 공덕이라는 것을 그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이걸로 일단 한시름 덜었고…….’
김민주는 통화를 끝냈다.
이제부턴 본격적으로 파견팀을 꾸려야 한다.
다행히 인력에 여력이 있으니 어느 정도는 문제없이 진행할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사이, 마침 기다리던 이가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김민주 본부장님!”
다름 아닌, 우선 파견 국가 리스트를 작성해주기로 한 하성일 본부장이었다.
그는 서류 뭉텅이를 책상 위에 턱 올려놓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토벌 비상 협회 리스트입니다. 소말리아랑 시리아, 체코, 베네수엘라, 미얀마 포함해서 총 22개국입니다.”
“22개국이요?”
생각보다 많은 숫자에 김민주 본부장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 인원은 힘들어요. 다 파견 보내면 국내 토벌에 문제가 생길 텐데…….”
“알고는 있습니다만,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이 국가들은 지금 국정도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초기에 지원하지 못하면 바로 인명 피해로 이어질 겁니다.”
“하아…….”
김민주가 깊은 한숨과 함께 머리를 쓸어 넘겼다.
예상치 못한 딜레마였다.
하성일 본부장이 말한 것처럼, 저 나라들은 조금이라도 토벌에 영향이 생기면 문제가 걷잡을 수가 없다.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에서 당연히 그들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자국 시민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회사의 존망이냐, 자국 시민들의 안전이냐.
당연하게도 그 무엇 하나 쉽사리 선택할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도저히 방법이 보이지 않아, 이를 으득 깨물며 머리를 쥐어짜던 그때였다.
“소식 들었습니다!”
작전 본부실에 예상치 못한 손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입니다, 본부장님!”
“못 본 지 벌써 몇 달은 됐죠?”
“차 대표님? 유 대표님도…?”
그들은 다름 아닌, 아레스 길드의 차석현 대표와 아프로디테 길드의 유지우 대표였다.
“대, 대표님들이 여긴 왜……?”
“왜냐뇨. 당연한 거 아닙니까!”
“토벌 인원이 부족하다면서요. 저희도 손을 좀 보태드릴까 해서요.”
그들이 호쾌하게 대답했다.
국제협회가 전 세계 토벌권을 관리하게 된 후, 당연히 토벌권이 사라진 국내 민간 길드는 모두 카르마 코퍼레이션 소속으로 흡수되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속만 옮겼을 뿐, 기본급이 나온다는 것만 제외하면 운영 자체는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당연히 정식 작전팀이 아니었기에 의무 토벌도 없었고, 실적도 적용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그들이 지금 작전팀을 대신해서 토벌을 진행한다고 해도 작전팀과 같은 토벌 수당은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괘, 괜찮으시겠어요? 아시겠지만 토벌 수당은…….”
“비상 상황 아닙니까. 그동안 받은 게 있는데 모른 척할 순 없죠.”
“걱정 말고 본부장님은 파견에만 집중하세요. 국내 토벌은 저희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순수한 호의로 나선 그들이었지만, 김민주는 그럼에도 미안한 감정이 앞섰다.
“거의 모든 작전팀을 파견해야 할 상황이에요. 그래서 국내 토벌을 모두 맡겨야 하는데… 두 길드만으로는 힘들 거예요.”
“하하하! 무슨 말씀입니까. 두 길드라뇨!”
그때, 차석현 길드장이 크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미 전국에 있는 모든 길드가 대기 중인데!”
“…….”
김민주는 그 말에 벙쪄 있길 잠시.
‘선생님…….’
모든 게 그의 공덕이라는 걸 알고 있는 김민주는 그에게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았어요.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네!”
“맡겨 주십쇼!”
전국 최고의 두 길드.
그리고 그 길드를 이끄는 두 대표가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국의 모든 현역 헌터가 카르마 코퍼레이션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
공항에 도착해 입국 심사를 마치자마자 김민주에게 전화가 왔다.
“국내 토벌은 길드들이 맡기로 했다고?”
「네! 전국 모든 길드가 토벌에 나서줬어요.」
별일이군.
우리랑 달리 오로지 수익을 위한 집단인데, 토벌 수당도 못 받는 일에 뛰어들다니.
‘대체 왜…?’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나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뭐… 아무튼 다행이네.”
「여긴 걱정 말고 선생님 일에 집중해주세요.」
“알았어. 너도 수고하고.”
전화를 끊자마자, 또다시 핸드폰이 진동했다.
이번엔 홍두식 팀장에게서 온 전화였다.
「어이, 대표님. 아들 배치 다 끝났어야. 경상, 전라 각 두 명씩. 충청, 강원 한 명씩. 나머진 다 경기여.」
“수고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뭘 조사하면 되는 겨?」
“어디에 있는 누가 지령을 받고 움직일지 정보가 전혀 없는 이상, 조금이라도 낌새가 이상한 게 있다 싶으면 모조리 뒤져봐 주십시오. 특히 정치랑 언론 쪽 인사들은 늘 주시해주시고요.”
「그건 경기 쪽 애들이 밑 작업을 다 해놓았으니 걱정 말어.」
“돈줄과 관련된 곳도요. 은행, 기업 같은 곳이요.”
「알았어야.」
“조금이라도 수상한 낌새가 있으면 바로 보고해 주시고요.”
「알았다니까, 그려. 암튼 우리 걱정은 말고, 그 짝이나 조심혀. 호랭이 굴로 들어가야 되는디 정신 똑띠 차리고.」
“알겠습니다.”
모든 통화를 끝내고 나서야 나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대충 준비는 다 됐군요.”
“이제 우리만 잘하면 되겠네요.”
나와 동행한 한유빈이 맞장구를 치며 대답했다.
그렇게 공항을 빠져나가던 중, 한유빈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제는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예…?”
“본부에 가는 이유요. 상황이 상황이니까 일단 따라오긴 했는데, 이제는 알고 있어야죠.”
“뭐… 말했잖습니까. 이건 무조건 지는 싸움이라고.”
나는 나지막이 대답했다.
“파견을 보내고 지원을 해준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죠. 결국, 부족한 인원을 다시 보충하기 전까지 이번 사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렇죠…?”
“빠져나간 15만 명을 다시 복구하는데 최소 1년……. 계속해서 빠져나간다면 그보다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우린 파견과 지원을 유지해야 한다는 얘기죠.”
한유빈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문제는 이번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고, 설령 해결한다고 해도 손해가 너무 큽니다. 자칫하다간 계속 운영할 수 없게 될 수도 있고요.”
“…….”
그녀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회사가 어떻게 되든 나랑은 별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돌아가면 다 사라지는 것들이니까.
그보다 나에게 중요한 건 시간이다.
벌써 회귀한 지 1년하고도 반년이 지났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단 3년 6개월.
그런데 이 일을 수습하느라 2, 3년을 소모한다면…… 사무총장이 되는 건 사실상 물 건너가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겠지만. 뭐, 그걸 떠나서…….
‘이번에도 국제협회에 질 순 없지…….’
회귀 전에도 내 인생을 막은 놈들인데, 이번에도 그놈들에게 막힐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일단은 급한 불은 끄되,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걸 해결해야겠죠.”
“설마… 그만 탈락시켜 달라고 부탁할 생각은 아니죠?”
“부탁뿐이겠습니까? 안 되면 무릎을 꿇기라도 해야죠. 말했듯, 이번만큼은 우리가 철저하게 불리한 입장입니다. 그러니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닙니다.”
“…….”
한유빈은 대답을 아낀 채 시선을 피했다.
누가 봐도 꽤나 분한 얼굴이었다.
“뭐, 너무 그러지 마십쇼. 애초부터 출발선이 다른 싸움 아니었습니까. 오히려 여태까지 선방한 게 기적인 거지. 언젠간 한 번은 이렇게 될 거란 거, 그쪽도 알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한데…….”
“사람 목숨이 달린 일에 쓸데없이 자존심 세우지 마십쇼. 빌든 꿇든, 살아남는 게 우선이니까.”
그제야 한유빈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표정은 여전히 못마땅해 보였지만.
“뭐, 일단 그건 둘째 치고……. 어찌 됐든 보험은 들어놔야겠죠.”
“……?”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며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이어진 아주 짧은 통화.
10초도 채 걸리지 않아 핸드폰을 집어넣자, 한유빈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누구한테 전화한 거예요?”
“보면 압니다.”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
똑똑―.
국제 헌터 협회 본부, 사무총장 집무실.
수행비서가 노크와 함께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요?”
웨슬리 사무총장이 묻자, 그녀가 잠시 뜸을 들이며 입을 열었다.
“지금 카르마 코퍼레이션 대표가 본부를 방문했습니다.”
“…….”
뜬금없는 소식에 의아한 표정을 짓기도 잠시.
‘아…….’
이내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린 듯, 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하하하! 설마하니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군요.”
“올라오라고 할까요?”
“귀한 분들이 오셨는데 그럴 순 없죠. 제가 내려가겠습니다.”
웨슬리 사무총장은 곧바로 사무실을 나섰다.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이상하리만치 신이 나 보였다.
그렇게 1층 로비까지 한걸음에 달려온 그는, 마침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남자를 마주했다.
“오랜만이군요, 미스터 김. 이렇게 재회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웨슬리 사무총장은 그를 향해 반갑게 악수를 건넸다.
하지만 김준우는 손을 잡지 않았다.
“오늘은 간곡히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 이렇게 직접 찾아왔습니다.”
“오, 천하의 김 대표가 저한테 부탁이요?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네요.”
웨슬리 사무총장은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그가 찾아온 이유야 뻔했고, 무엇을 부탁할지는 더더욱 뻔했다.
그럼에도 웨슬리는 시치미를 뗐다.
그리고 그때, 김준우가 허리를 푹 숙였다.
“랭크 심사 탈락자, 재심사를 통해서 다시금 복귀시켜주십시오.”
아니나 다를까, 예상에서 한 치를 벗어나지 않은 부탁.
그 말에 웨슬리 사무총장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누가 들으면 제가 일부러 탈락자를 만들고 있는 줄 알겠습니다.”
“일부러가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현재 너무 많은 탈락자가 발생한 탓에 각국 협회가 토벌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거야말로 카르마 코퍼레이션 책임 아닙니까? 랭크 심사를 시행한 것도, 헌터 관리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쪽인데?”
“물론 책임은 질 생각입니다.”
“그럼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어떻게든 수습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
웨슬리 사무총장은 애써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설령 내가 한 일이라고 해도, 그 부탁을 들어줄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있습니다.”
그때, 김준우가 무거운 목소리로 즉답했다.
“제 부탁을 들어주신다면…….”
이윽고 그의 날카로운 눈빛이 웨슬리 사무총장을 향했다.
“살려드리겠습니다.”
“……뭐?”
귀를 의심하는 한마디가 날아들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탈락자 발생을 멈추고 재심사를 해주신다면, 저는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돌아가겠습니다. 다만, 그러지 않을 경우에는…….”
이내 김준우는 허리를 바짝 세우곤 웨슬리 사무총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순간부로 국제 헌터 협회 본부에 전쟁을 선포하겠습니다.”
“…….”
“아, 혹시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는 건데…….”
웨슬리 사무총장의 입가에서 사라진 미소는 어느새 김준우에게 옮겨가 있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