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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코퍼레이션 본사.
새벽에 걸려온 김준우의 전화 한 통에, 이른 아침 급하게 소집된 징계 위원회.
이두식 이사를 필두로 본사 임원들이 대거 참석한 그 자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박장목 이사였다.
원칙대로라면 일주일은 족히 걸릴 일이었지만, 김준우는 그때까지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이두식 이사 또한 같은 생각이었는지 곧바로 소집령을 내렸다.
그렇게 박장목 이사가 귀국한 지 고작 5시간 만에 징계 위원회가 열리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급하게 밀어붙인 이유는 심사 평가가 끝나기 전에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어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보단,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기둥이자 최고 에이스인 그녀를 건드렸다는 사실에 모두가 분노하고 있었던 게 크게 작용했다.
“다 참석한 것 같으니… 그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두식 이사의 발언에 맞춰, 이윽고 그를 둘러싼 임원들이 한 명씩 질문을 시작했다.
“그럼 먼저 소속을 밝혀주시겠습니까?”
“카, 카르마 코퍼레이션 이사회 소속, 박장목 사내 이사입니다.”
팔과 다리에 깁스를 한 박장목 이사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두식 이사는 그의 상태와 바짝 쫄아 있는 태도를 보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있었겠구나 싶었다.
“현재는 랭크 심사 평가 위원회에도 소속되어 있으시고요?”
“예… 맞습니다.”
“평가 위원회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고 계십니까?”
“헌터의 필기 및 실기 시험 평가와 공정 감사를 맡고 있습니다.”
“하!”
모순적이기 그지없는 그의 소개에 이두식 이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두식 이사님…….”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계속하시지요.”
다른 임원이 조심스레 주의를 부탁하고 나서야 다시금 질문이 재개되었다.
“큼큼, 박장목 이사. 작전팀 헌터를 시켜 김민주 본부장에 대한 악의적인 스캔들을 퍼트린 사실이 있습니까?”
“…….”
“박장목 이사, 대답하세요.”
“…예, 예. 그렇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김민주 본부장을 이번 심사에서 떨어트려 달라는 청탁을…… 받았습니다.”
“누구한테서요?”
“국제 협회에서…….”
충격적인 이야기에 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러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두식 이사가 그 무거운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국제 협회의 청탁을 받고,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려 김민주 본부장을 떨어트리려고 했다. 이겁니까?”
“예, 예…….”
“국제 협회가 왜 그런 청탁을 했습니까?”
“그건 잘…….”
“그럼 그 대가로 무엇을 약속받았습니까?”
“국제 협회 본사 스카우트 제의를…….”
이두식 이사가 고개를 저었다.
고작 그런 조건으로 사내 최고 에이스를 무너뜨리려 했다는 사실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무엇보다 아직도 국제 협회에 환상을 가지고 있는 놈이 있었다니. 그것도 이사라는 사람이.
대체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을 한 건가 싶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겠습니다.”
그때, 이두식 이사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박장목 이사가 퍼트린 김민주 본부장에 대한 소문은 사실입니까?”
“…….”
잠시 대답을 망설이던 끝에.
“사실이… 아닙니다.”
그는 결국 모든 걸 이실직고했다.
징계 위원회에 참석한 인사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뭐, 순순히 털어놓은 이상 딱히 할 말이 없었던 까닭이었다.
“모든 심사 과정을 공정히 처리해야 하는 직책임에도 청탁과 부정, 그리고 심사 조작을 위해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린 것은 해당 직무에 대한 책임과 자격이 부족한 행동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더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경위 조사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징계 위원회의 결과는 추후 통보하겠습니다. 이외 김민주 본부장에 대한 명예훼손 건은 따로 검찰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니 참고해주시고요.”
“…….”
“이만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박장목 이사는 목발을 잡고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결과도 처분도, 모두 자명했으니 더는 앉아 있어 봤자 시간 낭비였다.
그렇게 박장목 이사가 회의실을 나서려던 그때.
“박장목 이사.”
이두식 이사가 다시금 그를 불러 세웠다.
“팔다리는 왜 그런 겁니까?”
“…….”
못할 질문이라도 한 건지 박장목 이사의 손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표정만 본다면 홀로 토벌이라도 나섰다가 무서운 몬스터라도 마주한 게 아닌가 싶었다.
물론 정말 그런 이유는 아니겠지.
이두식 이사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미 대충 짐작이 갔다.
하지만.
“…넘어졌습니다.”
박장목 이사는 끝내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
징계 위원회가 끝나자마자 연락을 받고 올라온 본부 옥상.
“생각보다 빨리 끝났군요.”
나는 착잡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뭐, 오래 끌 것도 없었어. 혐의도 명백했고, 다 순순히 시인하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 질문에 이두식 이사가 정말 몰라서 묻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사안이 크잖아. 부정 청탁에, 부정 심사까지. 안 봐도 해직이겠지.”
“그렇군요.”
“뭐, 법적인 문제는 법무팀에서 추가로 검찰에 넘길 예정이니까 죗값은 달게 치를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두식 이사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빌어먹을 새끼… 하여간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진즉 쳐냈어야 했는데, 조금 봐주니까 결국 이 사달을 내네.”
“뭐, 결과론적인 이야기잖습니까.”
결국, 일을 저지르기 전까진 어떤 놈인지 모르는 일이니까.
“그래서, 대체 그놈은 어떻게 잡은 거야? 일본으로 튀었다면서.”
“밑에 있는 놈을 좀 이용했습니다. 워낙 철저하게 계획하고 움직인 놈들이라 쉽진 않았지만… 뭐, 그래도 어떻게 꼬리를 밟긴 했습니다.”
“꼬리를 부러트린 게 아니라?”
“…….”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옅은 한숨을 내뱉는다.
“에휴, 죽이지 않은 게 용하다.”
“내버려 뒀으면 아마 진짜 죽었을 겁니다.”
“……미친놈.”
이두식 이사가 학을 떼며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저쪽에서 그걸로 트집 잡으면 어떡하려고? 정당방위도 쌍방으로 잡혀가는 마당에, 일방적인 폭행은 조금 위험했던 거 아니야?”
“아뇨. 박장목은 절대 저를 걸고넘어지지 못할 겁니다.”
“뭐? 왜?”
“뒤를 봐주고 있는 놈이 있거든요.”
이두식 이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슨 소리냐고 묻는 듯했다.
“이번 일도 처음부터 그 뒤에 있는 놈이 소개해준 거랍니다. 애초에 국제 협회 연결책은 박장목이 아니라 그쪽이라는 거죠. 뭐, 끝까지 그놈에 대해선 함구하는 거로 봐선 꽤나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
“그런데?”
“폭행 건으로 경찰 조사가 들어가면 당연히 그놈이 엮일 수밖에 없잖습니까.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을 테니, 고소하고 싶어도 못 하겠죠.”
“허… 그런 것까지 생각해두고 팼냐?”
“아뇨. 패고 나서 생각했습니다.”
“…….”
그땐 사실 나도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이두식 이사는 탁 트인 도심을 내려다보며 넌지시 말을 이었다.
“에휴, 국제 협회가 진짜로 개입하고 있었다는 게 참…… 대체 언제쯤 조용해질는지.”
“예상한 일이지 않습니까. 애초에 그걸 잡으려고 시작한 심사이기도 하고요.”
“그것도 그렇긴 한데.”
이두식 이사가 머리를 헝클이며 대답했다.
예상한 일이었다고 한들, 실제로 맞닥트리니 꽤나 착잡한 모양이었다.
“김민주는? 좀 괜찮아졌냐?”
“뭐, 애초에 티를 내는 녀석이 아니라서.”
“쯧… 그 녀석이 제일 마음고생 했지. 그래도 잡혔으니까 좀 나아지지 않겠냐.”
“그러길 바라야죠.”
나는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대답했다.
결과적으로 사건은 마무리가 됐다.
박장목 이사는 모든 책임을 지게 됐고, 김민주의 명예도 곧 회복될 것이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
뭐, 이번 일의 전말이 모든 직원에게 알려지진 않을 것이다.
국제 협회와 결탁해서 심사를 조작하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봐야 좋을 건 없으니까.
그래도 최소한 김민주에 대한 소문이 누군가에 의해 악의적으로 생성되었다는 것만큼은 알릴 필요가 있다.
뭐, 그 부분은 이미 손을 써뒀으니 걱정할 건 없고.
다만 문제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게 남아 있다.
‘미래민주당 의원이라…….’
박장목 이사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그놈.
따지고 보면 이번 일의 시작은 그놈이다.
무엇보다 국제 협회와 연결이 되어 있다면 절대 보통 인물은 아닐 것이다.
이런 일이 또다시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고, 더군다나 박장목 이사처럼 또다시 자신의 심복을 회사에 심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잡아도 그놈을 잡아야 하는데…… 박장목 이사는 끝내 그의 이름을 불지 않았다.
그 사람을 적으로 돌릴 바에야 본인이 모두 뒤집어쓰는 게 낫다는 거겠지.
‘대체 어떤 놈이길래…….’
혀를 차며 중얼거리던 그때.
“그나저나 최종혁, 그 새끼는 정말 정상 참작해줄 생각이야?”
이두식 이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공식적으로 징계를 먹일 생각은 없습니다.”
“시발, 그런 새끼가 멀쩡히 고개 들고 다닐 거 생각하니까 영 껄끄럽네.”
“글쎄요. 공식적인 징계를 안 먹인다는 거지, 봐준다는 뜻은 아니라서.”
“……뭐?”
나는 대답 대신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마 앞으로 고개 들고 다니기는 어려울 겁니다.”
***
“후우…….”
작전 5팀 사무실.
최종혁은 출근하자마자, 본인의 자리에서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징계 위원회가 끝났을 것이다. 보나 마나 박장목 이사의 모가지는 잘려 나가겠지.
‘시발… 어떻게 전화 한 통으로 반나절도 안 돼서 징계 위원회를 열어 버리냐.’
최종혁은 아직도 생생한 어젯밤의 일에 작은 소름을 느꼈다.
설마하니 그 인턴이 평가 담당자였을 줄이야.
솔직히 이제 인생 쫑났구나 싶었지만…….
박장목 이사를 판 대가로 김준우는 정말 그 어떤 처분도 내리지 않았다.
‘그래도 약속은 지키네…….’
최종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며칠째 비어 있는 팀장 자리를 슬쩍 흘겼다.
이태범 팀장은 결국 휴직을 신청했다.
뭐, 사실 여부를 떠나서 애도 있는 양반이 그런 소문에 휘말렸으니 더 이상 같은 곳에서 일하긴 힘들겠지.
게다가 김민주는 여전히 반응이 없고, 김준우 대표는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 약속했으니…….
‘이걸로 끝이군.’
최종혁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앞으로는 그저 모른 척, 버티기만 하면 된다.
박장목 이사가 말했던 것처럼, 어차피 이번 일도 시간이 지나면 다 잊을 게 뻔하니.
그저 가만히 입 닫고 버티면, 자신이 소문을 퍼트렸다는 사실도 사라질 것이다.
그럼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갈 수 있다.
뭐, 스카우트가 물 건너간 건 아쉽게 됐지만…….
이런 상황에 욕심부릴 이유는 없다.
그저 잘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만족해야겠지.
최종혁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작전 스케줄을 확인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때.
“야, 김민주 본부장님 그 소문 말이야. 그거 다 거짓말이라던데?”
“엥? 누가 그래.”
“지원팀에 아는 사람이 그러더라고.”
“야, 지원팀 사람이 작전 본부장 얘기를 어떻게 알아. 넌 그걸 믿냐?”
“아니 진짜로. 주변에 본부장이랑 잘 아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한테 직접 들은 거래.”
사무실 뒤편에서 다른 팀원들이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종혁은 벽에 걸린 일정표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귀를 쫑긋 세웠다.
“아무튼, 그 사람 말로는…… 최종혁이 김민주 본부장한테 들이댔다가 차여서 복수하려고 퍼트린 거래.”
“뭐? 진짜로?!”
“쉿!”
그 말에 최종혁의 동공이 확 벌어졌다.
“에이, 설마…….”
“아냐, 저 새끼라면 그럴만해. 저 새끼 저거, 인턴한테도 엄청 들이댔었잖아.”
“그니까. 서른 중반인데 주말마다 여자 꼬시러 클럽 간다면서? 헌터 명함 들고.”
“와… 설마 그렇다고 작전 본부장한테까지 들이댈 줄은 몰랐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무슨 그런 소문을 내냐. 진짜 개찌질하네.”
“본인 때문에 몇 명이 피해를 본 거야.”
“쯧, 본부장님 불쌍해서 어떡하냐…….”
“이 팀장님은 휴직서까지 냈잖아. 저런 건 고소 안 돼?”
벽을 바라보고 선 채, 그 수군거리는 목소리를 가만히 듣길 잠시.
최종혁의 손이 덜덜 떨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