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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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요…?”
카르마 코퍼레이션 본사, 작전 본부실.
오랜만에 그곳을 찾은 송혜연 대리가 김민주 본부장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제가 이태범 팀장님이랑 그런 관계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서울 본부 내에 그런 이야기가 돌고 있어요. 실제로 둘이 같이 다니는 걸 봤다는 소리도…….”
송혜연 대리가 우물쭈물하던 끝에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아, 아니시죠? 그냥 헛소문이죠?”
“당연히 아니죠. 대체 누가 그딴 개소리를 퍼트린 거예요?”
“그것까진 저도 잘……. 나름대로 알아보려고 했는데, 소문이 너무 빨리 퍼져서 아무래도 원출처를 찾긴 힘들 것 같아요.”
“하, 대체 이게 무슨…….”
김민주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에 오히려 당황할 틈도 없다는 듯, 헛웃음을 뱉었다.
“그동안 본부장님 이미지 때문에 더 달려드는 것 같아요. 완벽주의 그 자체였던 사람이 불륜이라고 하니… 이목을 끌기엔 안성맞춤이잖아요.”
“…….”
“일단 빨리 해명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더 내버려두었다간 정말 걷잡을 수 없이 퍼질 수도…….”
“해명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김민주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어차피 우리가 그런 관계라는 증거도 없고, 이태범 팀장님이랑 같이 입장을 발표하면 헛소문이라는 것쯤은 쉽게 밝혀지겠죠.”
“그러면 지체할 거 없이…!”
“하지만 이미 한 번 입에 오르내린 소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요.”
“……네?”
“특히 저처럼 연차도 무시하고 한 번에 본부장까지 꿰찬 젊은 여성일 경우에는 더더욱 심하겠죠.”
“…….”
송혜연 대리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닫았다.
모두 맞는 말이었으니까.
그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지금 돌고 있는 이야기가 헛소문이라는 것쯤은 알 것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그녀의 커리어에 의문을 갖는 사람이라면…… 안 봐도 어떤 반응을 보일지 뻔했다.
능력만 좋으면 뭐 하냐.
이럴 줄 알았다.
본부장 자리도 윗사람들 상대해서 꿰찬 거 아니냐, 등등.
그들에겐 소문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이 없다.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의 열등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소문을 퍼트린 놈을 잡는다면 어떻게든 책임을 물게 하고 수습할 수 있겠죠. 다만…….”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송혜연 대리가 거의 울상이 된 채 대답했다.
이미 퍼질 대로 퍼진 소문을 거슬러 올라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당사자가 자신이 퍼트린 소문이라고 밝힐 리도 없다.
이번 일에 가장 책임을 져야 하는 놈이, 가장 뒤에 숨어 있는 것이다.
“소문을 퍼트린 놈을 잡지 못하면,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은 모두 제가 져야 해요. 그리고 그 책임이라고 하면… 결국 인적성 평가에 반영되는 거겠죠.”
“그건 말도 안 돼요! 본부장님 잘못도 아닌데 어떻게…!”
“품위유지.”
김민주가 송혜연 대리의 말을 자르며 그 단어를 내뱉었다.
“엄연히 인적성 평가에 포함된 항목이에요. 모든 헌터의 귀감이 되어야 하는 작전 본부장이 이런 구설에 휘말렸다는 건,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미 그 항목에서 실격된 거고요.”
“…….”
“그런 자리에요. 여긴.”
담담한 김민주의 말에 송혜연 대리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어떻게든 해결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 건지,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다른 방법을 모색했다.
“그, 그래도 평가 위원회가 융통성이 있다면 실격처리까지는 안 하겠죠? 게다가 대표님이랑 개인적인 친분도 있으니, 어떻게 잘 얘기하면 충분히…….”
“글쎄요.”
김민주가 말끝을 흐렸다.
이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본부 전체에 소문이 퍼진 이상, 김준우가 섣불리 자신을 두둔하려 들다간 오히려 역풍을 맞을지도 모른다.
친분이 있기에 오히려 더 극단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김준우는 물론, 다른 본부장과 인사들까지 줄줄이 엮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일단은 대표님께 이야기라도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글쎄요, 신경 쓸 게 한둘이 아닌 분이라…….”
김민주는 그것조차 망설여지는 모양이었다.
지금 심사만으로도 벅찰 텐데 괜히 짐을 짊어지게 하는 것 같았으니까.
“일단 조금 더 지켜보다가…….”
“조금 더 언제. 뭐, 잘려 나간 다음에 말하게?”
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숨길 걸 숨겨. 지금 모가지가 날아가게 생겼는데, 다른 사람 생각할 때야?”
“서, 선생님…?”
다름 아닌, 김준우 대표가 직접 본부장실에 들이닥친 것이다.
“너 아주 유명 인사 됐더라.”
“다, 다 거짓말이에요. 누가 의도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것 같은…!”
“조용히 하고 앉아. 다 아니까.”
“……네?”
김준우는 어째 담담한 표정으로 그녀를 마주 보고 앉았다.
곧바로 책상 위에 무언가를 툭, 던졌다.
“이건…?”
김민주는 받아들며 물었다.
모텔 키 같았지만, 자신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그 물건을 왜 꺼낸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태범 팀장 숙소 열쇠야. 최종혁 그 새끼가 이걸 네 사무실에 가져다 놓으라고 시켰댄다.”
“네?! 그, 그게 무슨…!”
“만약 다른 놈이 이걸 네 사무실에서 찾았으면 그땐 진짜 손도 못 썼을 거야. 아마 소문을 퍼트린 놈도 그 새끼겠지.”
“…….”
김민주는 입을 꾹 닫았다.
이 상황이 너무나 당황스러웠던 까닭이었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공격하는 이유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동안 나름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지.
“잠깐만요! 소문을 퍼트린 사람이 최종혁이라고요? 그럼 범인을 잡은 거잖아요! 빨리 그놈을 잡아다가 실토하게 하면…!”
“아뇨.”
김준우는 송혜연 대리의 말을 자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심증만 있는 거지, 증거가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잡아서 심문한다고 해도 모르쇠로 나온다면 우리로서 더 확인할 방법도 없고요.”
“열쇠를 가져다 놓으라고 시켰다면서요! 그건 진짜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 아니에요?”
“그것도 착각했다, 오해가 있었다는 식으로 나오면 별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내 김준우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최종혁의 덜미를 잡는다고 해도, 그의 윗선을 잡지 못하면 실격처리는 막지 못할 겁니다.”
“……!”
“…….”
송혜연 대리는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김민주는 도리어 담담한 반응이었다.
이내 김준우의 시선이 다시금 김민주에게 향했다.
“지금 우리가 추측하기로는… 평가 위원회 소속의 누군가가 최종혁에게 사주해서 너를 끌어내리려고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누군가의 배후에 국제 협회가 있다는 것 정도야.”
“…국제 협회요?”
김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턱을 괴며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주축을 무너뜨려서 어떻게든 조직을 약화시킬 생각인 것 같은데. 시기도 그렇고, 방법도 그렇고 작정하고 들어온 것 같아.”
“…….”
“이미 구설에 휘말린 이상 품위유지 항목에서 감점 사유가 될 텐데, 최종혁의 윗선이 그걸 어떻게든 물고 늘어져서 실격으로 처리하려 들겠지.”
“그렇겠죠…….”
“그러니 심사 기간이 끝나기 전까지 최종혁과 그 윗선의 자백을 받아내든, 물증을 찾아내든 해서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해. 만약 그러지 못하면…….”
“제가 책임을 지게 되겠죠.”
김민주가 고개를 떨어트리며 대답했다.
그리곤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무것도 하지 마.”
“……네?”
“해명도, 반박도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도 안 되는 헛소문 때문에 하지도 않은 짓을 증명할 필요는 없으니까.”
위로인지 야단인지 모를 그 말에 김민주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 말 하려고 온 거야. 넌 허튼 생각 말고 토벌에나 신경 쓰라고.”
“하지만…….”
“됐으니까 신경 꺼. 나머진 나한테 맡기고.”
김준우는 그 말을 남기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드시 찾아서 조져 놓을 테니까.”
***
“정말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새끼네요.”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이아영 본부장이 기다렸다는 듯,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개수작도 이런 개수작이 없군요.”
“민주 씨… 겉보기엔 강해 보여도 여린 사람이에요. 아마 마음고생 엄청 할 텐데…….”
“뭐, 어쩌겠습니까. 다 본인이 잘나서 그런 건데, 감수해야죠.”
“……참 나.”
생각 없이 흘린 그 말에, 이아영 본부장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실소를 뱉었다.
“그래서, 고병철 이사랑 박장목 이사는 호출해뒀습니까?”
“고병철 이사는 지금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있어요. 박장목 이사는 밑에 직원한테 연락해놓으라고 했고요.”
“좋습니다. 바로 만나보죠.”
우리는 잡담할 시간도 없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도착한 사무실 앞.
곧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고병철 사외이사가 몸을 일으키며 우리를 맞이했다.
“아이고, 오셨습니까.”
“갑작스럽게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그래서, 어쩐 일로 부르신 겁니까?”
나는 대답 대신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곤 이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른 게 아니라… 지금 본부 내에서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더군요.”
“아, 들었습니다. 작전 본부장과 이태범 팀장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면서요?”
“그 이야기를 믿으십니까?”
“뭐,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있겠습니까.”
고병철 이사가 어깨를 으쓱이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내 주제를 바꿔, 그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 이사님 계신 곳이 두한그룹 맞으시죠?”
“예, 예.”
“제가 듣기로는 그곳에서 아주 무서운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작년에는 구조조정으로 부서 하나를 날려 버리셨다던데. 덕분에 이상한 별명까지 붙으셨다고. 뭐라더라… 칼바람?”
“허허…….”
고병철 이사가 굳은 표정으로 애써 입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긴 한데, 지금 갑자기 제 이야기를 꺼내시는 저의가 뭘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더 이상 돌려 말할 것 없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는 이번 스캔들이 누군가 악의적으로 퍼트린 거라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 평가 위원회 소속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
순간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도 잠시, 그가 콧방귀를 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게 저라는 말씀을 하고 싶은 겁니까? 수십 명 모가지 잘라낸 놈이니, 한 명 묻어버리는 것쯤은 일도 아니겠거니 싶어서?”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허, 참…….”
기가 차다는 반응.
이윽고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제 사회적 지위가 있지, 그런 저급한 소문을 퍼트리면서까지 남의 기업 본부장을 왜 묻으려 하겠습니까. 그거 하면 누가 금덩이를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습니까…….”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나는 계속 그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이내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르기도 잠시.
“알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드려 죄송합니다.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리지요.”
내가 먼저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
“알면 됐습니다.”
고병철 이사는 대놓고 언짢은 기색을 내비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슬쩍 고개를 돌려 한마디를 덧붙였다.
“혹시 김민주 본부장과 친분이 있어서 두둔하고 싶은 거라면…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
“내부 분위기도 안 좋은데, 괜히 감싸려 들다가 몰매 맞기 십상이니까.”
“새겨듣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고병철 이사는 사무실 문을 쿵, 닫으며 나가버렸다.
“어때요?”
그와 동시에 이아영 본부장이 곧바로 안으로 들어오며 물었다.
“저 인간은 아닙니다.”
“…단호하네요.”
“소문에 대해 물었을 때, 본인이 퍼트린 게 아니라고 하더군요. 만약 이 일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는 놈이었다면 본인이 시킨 게 아니라고 했을 겁니다.”
“……그것만으로 확신할 수 있어요?”
“그냥 확률이 높다 이거죠. 무엇보다 계획을 들켰다는 것에 당황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이런 취급을 받는다는 것에 더 화를 내더군요.”
다른 감정은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분노는 그러지 못한다.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그의 분노만큼은 믿을 수 있다.
이아영 본부장도 그 점에 있어선 납득이 갔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뭐… 남은 건 박장목 이사뿐이네요.”
“네. 당장 여기로 호출을…….”
그리고 그 순간.
“본부장님!”
이아영의 부하직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다급하게 사무실로 들어섰다.
“뭐예요? 무슨 일인데?”
“박장목 이사님 말이에요. 계속 연락을 하는데 안 받으셔서 다른 부서에 좀 알아보니까…….”
이윽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히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방금 일본으로 출국하셨대요. 일정상 심사 기간이 끝난 다음에야 돌아오신다고…….”
“네?!”
“허…….”
시발, 이런 빌어먹을 새끼를 봤나.
꼬리가 잡힐 것 같으니 아예 숨어 버리겠다 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