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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팀 부속, 다목적 훈련장에 마련된 실기 시험장.
나와 이아영 본부장, 그리고 이두식 이사를 비롯한 랭크 평가위원회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하여 헌터들의 스킬을 심사 중이었다.
“그럼… 작전 4팀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실기시험 진행을 맡은 지원팀 소속 송혜연 대리.
한때 김민주의 보좌관이었던 그녀의 목소리가 시험장에 울려 퍼졌다.
꽤나 오랜만에 보니, 어째 요 1년 사이에 신입 티를 완전히 벗은 듯했다. 아니, 벗은 걸 넘어서 언뜻 보면 일에 찌들대로 찌든 15년 차 과장이라 착각할 만한 몰골이다.
듣자 하니 이아영의 뒤를 이어 헌터관리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던데.
‘그쪽 일이 원래 좀 빡센가…?’
송혜연 대리를 향해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던 그때였다.
“4팀 분들은 밸런스가 좋네요.”
평가 시트를 확인하던 이아영 본부장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확실히 포지션과 클래스가 균형 있게 잡혀있긴 합니다만,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능력을 보는 자리니까요. 그 점에 있어선 조금 부족한 점이 있긴 하군요.”
“뭐, 4팀은 최초 투입보다 백업이랑 지원 토벌에 중점을 두고 있으니까요.”
“실적이나 경력에서 특이 사항이 있지 않은 이상, 간신히 현상 유지겠군요.”
나는 길게 숨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사실 말이 랭크 재심사지, 이변이 없는 한 90%는 기존 랭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마저도 남은 10% 중 대다수는 랭크 하락.
랭크 상승은 정말 극소수 중 극소수나 가능할 것이다.
‘기대치보다 훨씬 별로네…….’
애초에 랭크 개편의 의의는 세계 상위권 랭킹에 우리 소속 헌터들을 올려놓는 게 아니었던가.
이 상태라면 세계 랭킹은 크게 변동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부정을 저지르자니 자존심 상하고…….
이래저래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그럼, 이어서 작전 5팀 심사 진행하겠습니다.”
이내 다시금 울려 퍼지는 송혜연 대리의 목소리.
“최종혁 헌터님, 들어오세요.”
그녀가 호명하자 훈련장 한가운데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 얼굴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나 싶어 곧바로 인적 사항을 뒤적거렸는데…….
‘저 새끼…….’
아니나 다를까, 내가 알고 있던 그놈이었다.
“왜 그래요?”
표정을 구기고 있자, 이아영 본부장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저 사람, 뭐 특이 사항 없습니까?”
“최종혁 헌터요? 글쎄요. 8년 차 C급, 입사 때부터 쭉 서울 본부 소속…… 서류엔 딱히 별 내용은 없는데요.”
이아영 또한 서류를 뒤적거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8년 차 본부 소속이면 당신도 오고 가면서 한 번은 봤겠네요.”
“봤다 뿐이겠습니까.”
나는 대놓고 불쾌감을 드러내며 혀를 찼다.
어떻게 잊겠는가.
회귀 전, 지원팀 소속 보좌관을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을 받은 놈인데.
‘헌터라는 명함에 먹칠을 하다못해 똥칠을 했지.’
무려 2년 동안이나 지속된 범행.
게다가 수사 과정에서 헌터라는 직위를 내세워 협박을 가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더욱 시민들의 분노를 사게 했다.
‘본인 한마디면 이 바닥에서 영영 일 못 하게 할 수도 있다 그랬나…….’
그 일을 계기로 시민들은 점점 헌터를 불신하기 시작했고, 정부는 특검을 꾸려 모든 헌터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진행했다.
그건 곧 협회 전체에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과거 묻혔던 크고 작은 사건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수많은 헌터의 모가지가 날아가게 된 것이다.
당연히 나 또한 그 불똥을 피할 수 없었다.
폭력 상사, 갑질 논란 기타 등등.
온갖 소스가 언론사에 뿌려졌지만, 다행히 협회 측에서 다분히 노력해준 덕에 전파를 타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까스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던 것뿐, 모두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결국, 박근태 팀장 폭행 사건이 터진 그 날, 어렵사리 막아왔던 그동안의 일들이 함께 알려지면 평생을 쌓아 올린 내 평판이 한순간에 무너지게 되었다.
그러니 저 새끼가 곱게 보일 리가 있겠는가.
‘여기 있는 걸 보면 아직 사고 치기 전인가 보네…….’
아주 씹어 먹을 기세로 그를 노려보고 있던 그때, 최근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
다름 아닌, 인적성 평가 담당으로 문소연을 5팀에 투입했다는 것이었다.
‘쯧, 어째 좀 불안한데…….’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담당을 바꾸면 언더커버를 눈치챌 수도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를 굴리고 있는 사이 시험 준비가 끝났다.
“작전 5팀, 최종혁. C랭크, 마법사 클래스입니다.”
최종혁의 짤막한 자기소개와 함께 시험이 시작됐다.
쿵―.
이윽고 그의 앞에 나타난 커다란 물체.
국제 협회로부터 넘겨받은 반능석으로 만든 훈련용 더미였다.
실기시험의 목적은 실제 작전 상황에서 몬스터의 성향과 자신의 스킬을 파악하여 얼마나 효과적으로 스킬을 분배, 사용하는지를 평가함이다.
실제 던전에서 진행하는 게 가장 정확하겠지만, 그 많은 헌터를 모두 평가하기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에 더미를 이용한다.
이능력을 흡수하는 성질 때문에 몇 번이고 스킬을 때려 박아도 끄떡없기에 훈련용으로 제격이었다.
“고스트 형 몬스터. 현재 상황은 근접 포지션이 모두 큰 대미지를 입어 뒤로 물러나 있는 것으로 가정하겠습니다. 준비되셨으면 시작해주세요.”
송혜연 실장의 상황 지정이 끝나기 무섭게, 최종혁이 자세를 고쳐 잡았다.
[고유 스킬 : 블리자드 피닉스]
사아아아―.
이윽고 냉기에 휩싸인 커다란 불사조가 허공에 떠올랐다.
그것이 크게 날갯짓을 하는 순간.
[깃털 포화]
콰과과과광―!!
수십 개의 깃털이 더미에 쏟아지며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멀찍이 떨어져 있는 우리에게까지 충격이 전해질 정도의 위력.
[습득 스킬 : 소환 - 통곡의 벽]
[습득 스킬 : 안티 페이징]
[고유 스킬 : 블리자드 피닉스]
[급속 빙결]
쩌저저적―!
콰과광―!!
최종혁은 이후로도 몇 개의 스킬을 자연스럽게 연계했다.
“흐음…….”
그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한 번의 큰 공격으로 몬스터의 관심을 끈 후, 벽을 세워 동선을 차단한다.
그리곤 근접 포지션을 위해 고스트형 몬스터의 페이징 스킬을 차단하고, 다시 고유 스킬을 이용하여 공격.
그 연계를 지켜보던 이두식 이사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C급치곤 꽤 괜찮은데? 스킬 분배도 나쁘지 않고, 본인 스킬의 특성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고.”
“무엇보다 위력이 꽤 강력하네요.”
이아영 본부장 또한 한마디 거들었다.
확실히 부정할 수 없다.
정확한 상황 파악 능력, 높은 클래스 이해도, 확실한 화력.
그 어떤 것을 봐도 C랭크 수준을 크게 웃돌고 있다.
아직은 경력 평가에도 문제없고, 실적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고.
‘마음에 드는 놈은 아니지만…….’
그래도 평가는 평가니까.
남은 심사 기간 동안 인적성 평가에도 크게 문제가 없으면 아마 이번에 승급하겠군.
“시험 종료하겠습니다. 다음 분 입장해주세요.”
이내 성공적으로 차례를 마친 최종혁이 가벼운 묵례와 함께 퇴장했다.
나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문소연 씨한테 연락해서 혹시라도 무슨 일 있으면 바로바로 보고해달라고 해주십시오. 특히 저놈한텐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해주시고요.”
“네? 왜요?”
“그냥 그렇게 좀 부탁드립니다.”
엮여서 좋을 게 없는 놈이니까.
이아영 본부장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로도 실기시험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우린 집중해서 평가 시트에 점수를 매겼고, 한 시간쯤 지나 5팀의 시험이 모두 끝나가던 차였다.
“죄송합니다. 급한 토벌이 있어서 좀 늦었습니다.”
김민주 작전 본부장이 시험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원래대로라면 가장 첫 번째 순서였지만, 보아하니 토벌을 마치자마자 곧장 달려온 모양이다.
“어떻게, 6팀 진행하기 전에 김민주 헌터님 먼저 진행할까요?”
송혜연 실장이 나를 향해 물었다.
우리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다가 이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앞으로 나와 주세요.”
안내에 따라 훈련장 중앙으로 이동한 김민주.
이내 검집을 쥐곤 훈련용 더미 앞에 섰다.
동시에 2층에서 관전하던 헌터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다.
그저 그런 B급 헌터에서 1년 만에 A랭크 승급, 동시에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작전 본부장까지 올라간 이의 실력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니.
“골렘형 몬스터. 본인 외에 토벌 가능 인원이 모두 전멸한 상황으로 가정하겠습니다. 준비되셨으면…….”
상황 지정이 채 끝나기도 전.
[고유 스킬 : 천수관음 - 각성]
[육관음중외(六觀音中外)]
[접신 - 관세음(觀世音)]
푸른 기운이 훈련장 전체로 터져나갔다.
관전하던 다른 헌터들 모두가 그 거센 기운에 고개를 돌렸다.
이내 그녀가 검을 꺼내 들었다.
[정법명왕여래(正法明王如來)]
“야, 야…! 잠깐…!”
───!
푸른빛이 번쩍이며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야를 앗아갔다.
나 또한 황급히 소매로 눈을 가렸다.
그렇게 정적이 내려앉기까지 몇 초.
감았던 눈을 조심스레 뜨자 처음으로 시야에 보인 것은.
“이런…….”
정확히 사선으로 갈라진 훈련장의 모습이었다.
“……미친 저거 뭐야?”
“저게 가능해…?”
“와 씨… 본부장은 본부장인가.”
그 충격적인 광경에 술렁이는 시험장.
하지만 그 광경보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건.
“…….”
본인이 그 누구보다 더 당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성장했다는 자각이 없었던 건가…….’
과하다, 과해.
나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람 있으시겠어요?”
이아영 본부장이 어깨로 나를 툭 치며 너스레를 떨었다.
“……전 가르친 게 없는데요.”
“겸손은.”
아니, 정말로.
뭐, 일단 그건 둘째치고…….
‘이 정도면 S랭크는 떼 놓은 당상이겠군.’
황급히 퇴장하는 김민주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계속해서 시험을 진행하려던 그때.
“대표님도 한번 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2층에서 관전을 하고 있던 한 헌터가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고개를 들어 그곳을 바라보니.
“대표님도 이능력자 아닙니까? 심지어 본부장님의 스승이라고.”
최종혁 헌터였다.
“청소부 출신에서 1년 만에 그 자리까지 올라간 걸 보면, 당연히 본부장님보다 더 대단하시겠죠?”
“…….”
“시범이라고 생각하고 한번 보여주시죠. 누구라고 말씀드리긴 뭐합니다만, 언론이 조금 과장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대놓고 나를 향해 입꼬리를 올리는 그의 모습을 보자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설마 거절하시려는 건…….”
“거절하겠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자르며 짧게 답했다.
“저는 등록된 헌터가 아닙니다. 심사 대상도 아닐뿐더러, 굳이 귀한 시간 쪼개서 의미도 없는 짓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군요. 무엇보다 제가 당신이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할 이유도 없고요.”
“저희도 대표님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있어야 신뢰를…….”
“최종혁 씨.”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주제 파악 좀 하세요.”
“…….”
그가 굳은 표정으로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뭐… 너무 섭섭해하지 마시죠. 제 실력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보여드릴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이내 송혜연 대리를 향해 손짓했다.
“그럼 계속 시험 진행하세요.”
“네, 네……. 작전 6팀 시작하겠습니다.”
재개된 시험.
나는 팔짱을 낀 채 슬쩍 최종혁을 흘기자, 그는 여전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