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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랭크 심사가 시작된 지 하루가 지났다.
“3번 문제 답이 4번이라고?”
막 필기시험을 마치고 본부 옥상에서 담배를 태우던, 작전 5팀의 최종혁 헌터가 동기들을 향해 물었다.
“뭐야, 설마 그거 틀렸어?”
“아, 시발… 당연히 5번인 줄 알았는데.”
“크크. 너 그러다 랭크 떨어지는 거 아니냐?”
“C에서 더 떨어질 데가 있긴 해?”
동기 고현종 헌터와 박태하 헌터가 대놓고 그를 비웃었다.
사실 그들도 랭크 유지가 간당간당한 수준이었지만 굳이 티를 내진 않았다.
“에휴, 시발… 이제 와서 무슨 랭크 재심사냐. 할 일이 그렇게도 없나.”
이내 최종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서울 본부 작전 5팀 소속, 최종혁.
입사 8년 차 C급 헌터.
그는 이능차원관리 협회가 카르마 코퍼레이션에 흡수된 것에 꽤나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카르마 코퍼레이션에 흡수되지 않았으면 이번에 국제 협회 소속이 되었을 테니까.
국제 협회 소속의 헌터가 되는 건 거의 모든 헌터가 가지고 있는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었다.
국제 협회의 민낯이라고 떠들어대지만, 그런 것 따윈 애초에 아무 상관 없었다.
그저 더 인정받을 수 있는 직장과 더 높은 연봉에만 관심이 있었으니까.
절호의 기회가 날아가 버린 것도 배가 아픈데, 더군다나 웬 청소부 출신이 본인의 우두머리라니.
그로선 꽤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게 못마땅한 이는 비단,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내 말이. 카르마에 합병되고 나서 해외 지부 쪽으로 올인 할 것처럼 굴더니 갑자기 이게 뭔 개고생이야.”
“그러니까.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또 인적성 평가도 본다면서? 시발, 무슨 입사 테스트하는 것도 아니고.”
동기들 또한 격하게 공감하며 볼멘소리를 냈다.
“쯧,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청소부 새끼 나댈 때 확실하게 조져 놓을걸.”
“말은. 그 새끼 본부에 있었을 땐 찍소리도 못했으면서.”
“…….”
박태하가 비아냥거리자, 고현종이 인상을 팍 쓰며 노려봤다.
그러자 박태하는 할 말 있으면 해 보라는 듯 똑바로 그를 응시했고, 덕분에 둘 사이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야야, 그만해. 안 그래도 머리 아픈데 싸우고 있어.”
“…….”
“…….”
최종혁이 곧바로 끼어들어 둘을 말리며 이내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하… 청소부 출신이 대표라니. 세상 존나 불공평하다니까.”
“다 라인 잘 타서 그런 거지. 막말로 그 인간이 한 게 뭐 있어? 다 윗사람들한테 잘 보여서 승승장구한 거지.”
“아, 시발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이두식 라인이나 타둘걸. 뭣도 모르고 서민철 줄 잡고 있다가 쫄딱 망했네.”
화제를 돌린 게 먹힌 건지,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사이좋게 김준우를 씹어대기 시작했다.
사실 그들은 김준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목표가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그저 가끔 언론에서 그의 소식이 들려오는 걸 흘러가듯 본 것뿐이니.
물론 그마저도 언론을 통해 이미지 메이킹을 하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김준우를 깎아내리지 않으면, 청소부 출신이 자신들의 머리 위에 있다는 걸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평가 기준이 뭐래?”
“몰라. 시험이라도 보겠지.”
“참 나, 별 지랄을 다 한다니까. 아…….”
그때, 최종혁이 시간을 확인하더니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에이 쯧, 나 먼저 들어간다.”
“뭐야. 한 대 더 피우고 가자.”
“안 돼. 이번 주 작전 보고서 오후까지 제출하래.”
“누가?”
“누구겠냐, 시발. 본부장이지.”
“김민주?”
최종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그년도 대단하다니까. 새파란 후배였는데 라인 하나 잘 물어서 본부장까지 1년 만에 올라가고.”
“시발, 그 정도면 김준우랑 뭐 있는 거 아니냐?”
“뭐 있는 정도겠냐.”
최종혁은 그렇게 말하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다들 그 저급한 대화에 낄낄거리고 있던 그때.
“뭐해요?”
뒤에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 했던가.
김민주 본부장이 옥상에 나타났다.
“보, 본부장님…?”
“그, 그게 뭐냐면…….”
“작전 회의 말입니다. 작전 회의… 하하하!”
“…….”
세 남자는 크게 당황하며 얼버무렸다.
동시에 최종혁이 황급히 이야기를 돌렸다.
“그, 그나저나 본부장님이 여긴 왜… 한 대 피우시게요?”
“자리 너무 오래 비우시는 것 같아서 올라와 봤어요. 슬슬 내려가시죠. 오전 내로 보고서 제출해야 하잖아요.”
“네, 네. 알겠습니다.”
최종혁과 그의 동기들은 도망치듯 그곳을 벗어났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김민주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던 그녀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다만 이제 와서 그런 저급한 말에 상처나 충격을 받을 것도 없었다.
오히려 딱한 기분만 들었다.
그녀 또한 현직 헌터로서 이번 랭크 개편의 심사 대상이기에, 그들을 평가할 자격은 없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미래가 보이는 까닭이었다.
***
“랭크 박탈이 확실히 세긴 하네요.”
서울 본부, 랭크 평가위원회.
나를 비롯한 본사의 몇몇 인사들로 꾸려진 팀의 회의가 끝난 직후, 이아영 본부장이 서류를 검토하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없던 항목까지 만들어서 이렇게 강하게 나갈 이유가 있어요? 최근에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
“아뇨. 보고된 건 없었습니다.”
“그럼 왜 굳이 이렇게까지 칼을 든 거예요?”
“보고가 되지 않았다는 것뿐이지, 실제로 문제가 없었다는 건 아니니까요.”
“네?”
회귀 전의 일들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예전부터 늘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헌터들의 갑질 논란, 폭행, 음주운전… 뭐, 심하면 약까지 손을 대는 놈들도 있었고요.”
“뭐, 이 나라에선 헌터가 벼슬인 줄 아는 놈이 한둘이 아니니까요.”
“그나마 최근엔 많이 줄긴 했습니다만, 완전히 없어졌다고는 못 하겠죠.”
“그래서 겸사겸사 이 기회에 뿌리를 뽑겠다는 거예요?”
“그렇죠. 앞으로 제2의 국제 협회가 되려는 이상, 우리 얼굴에 먹칠하는 놈들은 미리미리 싹을 잘라놓는 게 좋겠죠.”
“흐음, 그렇게 말하니까 이해가 되네요. 어쨌든 세계 기구로 인정받으려면 작은 흠도 있어선 안 되니까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일단 그런 것도 있고…….”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이내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부가적으로는 국제 협회와 관련이 있는 놈들을 색출하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네?”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 이건 이두식 이사가 내게만 넌지시 말해 준 것이다.
그녀로서도 처음 듣는 이야기일 테니 당연한 반응이겠지.
“황동휘 대리, 기억하십니까?”
“……당연하죠.”
그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통제팀 소속 황동휘 대리.
동시에 PB 코퍼레이션 밸런스 조정팀, 한국 파트장.
물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본사에서도 극소수 몇 명뿐이다.
하지만 본부 통제팀 직원이 스파이였다는 사실은 당시에 나를 포함, 모두에게 무척이나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는 결국 작전 본부장이었던 최호성을 살해하고 도주하지 않았던가.
실제로 나 또한 그놈 덕에 또다시 목숨을 잃을 뻔했고.
“이두식 이사님 말씀으로는, 혹시 모르니 만약을 대비해서 한 번 더 조사하겠다는 건데… 덕분에 저만 귀찮아졌죠.”
이아영 본부장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데 PB 코퍼레이션은 한국 내에선 손을 뗐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렇긴 합니다만… 앞으로도 손을 대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죠. 특히나 지금 시점에서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마 지금쯤이면 국제 협회도 슬슬 이를 갈고 있을 겁니다. 뱅크 아이템에 헌터 관리 권한까지 넘겨줬는데, 중국 협회 인수에 랭크 개편까지……. 이래저래 눈에 거슬리겠죠.”
언제든 우리를 무너뜨리려 벼르고 있겠지.
더는 잃을 게 없는 놈들이기에, 전쟁까지 불사할지도 모른다.
“기회를 엿보기 위해 또다시 누군가를 심을지도 모른다는 게, 이두식 이사님 생각입니다.”
“하여튼… 의심만 많은 아저씨라니까.”
“뭐, 그래도 나름 일리는 있지 않습니까.”
내가 귀찮다는 것만 빼면.
“어쨌든 이건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거고…… 지금은 심사에나 집중합시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아영이 아직 안 끝났다는 듯 또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인적성 평가는 어떻게 진행되는데요? 시험이라도 볼 거예요?”
“아뇨. 그깟 문제 몇 개로 어떻게 사람을 판단하겠습니까. 직접 옆에서 관찰해봐야지.”
“……? 당신이 작전팀에 붙어 있기라도 하게요?”
“심사 평가로도 바빠죽겠는데 무슨.”
나는 손을 저으며 말을 이었다.
“다 준비해뒀으니 걱정 마시죠.”
그렇게 말하며 먼저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
“자자, 다들 주목.”
서울 작전 본부, 작전 5팀 사무실.
이태범 팀장이 팀원들을 향해 손뼉을 치며 집중시켰다.
그런 그의 옆에 다소곳이 서 있는 새 얼굴이 있었다.
“당분간 우리 팀에서 일할 인턴이다. 다들 인사해.”
“문소연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카르마 코퍼레이션 기획 본부 소속, 청소과장.
문소연이었다.
“오! 신입?”
“저 드디어 막내 탈출하는 겁니까?!”
“꿈 깨 이 자식아, 인턴이라잖아.”
“하하하하!”
새로운 얼굴의 등장에 다들 화기애애해진 분위기 속.
한 팀원이 문소연을 빤히 바라보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어째 낯이 좀 익은 것 같은데…….”
“야 이 자식아, 벌써부터 수작질이야?”
“아, 아니 팀장님! 정말로 낯이 익다니까요?”
“헛소리 말고. 인마! 너 괜히 집적대다가 나한테 걸리면 죽는다?”
이태범 팀장이 단칼에 의혹을 차단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이미 문소연의 소속을 알고 있었다.
청소팀 출신으로 이미 3년 가까이 그들과 같이 협회에서 일했다는 것과 현재는 본인보다 직급이 높다는 것.
그리고 현재는 랭크 평가위원회 소속이다.
인적성 평가를 위해 김준우가 내려보낸 이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니 낯이 익다는 게 착각은 아니겠다만…….
‘제발 아무런 문제가 없길…….’
팀장들을 불러 놓고 절대 소속을 발설하지 말아 달라 신신당부하지 않았던가.
팀원들에겐 미안하지만, 대표가 나서서 직접 부탁한 만큼 그녀의 정체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했다.
이태범 팀장이 설명을 덧붙였다.
“참고로 헌터는 아니야. 청소팀이랑 작전팀 일정 조율 업무랑 장비 지원 처리, 기타 행정 업무를 맡을 거다. 뭐 물어보면 언제든 알려주고.”
“네.”
“알겠습니다.”
“소연 씨도 모르는 거 있으면 편하게 물어봐요.”
“네, 네.”
그녀가 퍽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편 그녀를 계속 응시하던 남자가 있었으니.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다름 아닌, 최종혁이었다.
그는 앉은 채로 그녀를 연신 위아래로 훑었다.
분명 낯이 익은데, 어째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기도 잠시.
‘……좀 생겼네.’
이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럼 다들 일들 보고. 심사 기간이라서 정신없겠지만, 그렇다고 토벌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알겠습니다.”
“오늘 퇴근하면 환영회 겸 회식이나 하자고. 오늘은 특별히 소고기다!”
“네?! 저 오늘 야간 토벌 있는데요?!”
“그럼 넌 못 끼는 거지, 인마!”
“아, 진짜!”
막내 헌터가 대놓고 죽을상을 짓자, 팀원들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어, 종혁이가 옆에서 기본적인 것 좀 알려주고. 난 회의 다녀올 테니까.”
“……예.”
이태범 팀장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사무실을 나섰다.
“잘 부탁드려요. 선배님.”
홀로 남은 문소연은 이내 쭈뼛쭈뼛 최종혁에게 다가가 고개를 꾸벅였다.
“네, 뭐…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최종혁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