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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203화 (203/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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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협회 본부.

이번 일의 마무리를 위해 찾은 이곳은, 홍콩 지부와 다르게 건물 외관부터 사무실 내부까지 모든 게 으리으리했다.

‘엔간히 빼먹었나 보네…….’

그런 생각을 하며, 마주 앉아 계약서를 읽고 있는 남자를 기다렸다.

아직 회복이 덜 된 건지, 여기저기 쑤셨지만 어쩌겠는가.

대한민국 대통령까지 나선 일을 언제까지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래서…….”

이내 중년의 남자가 한참 동안 계약서를 살펴보던 끝에 입을 열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왕시엔.

다름 아닌 중국의 국방장관이자, 이번에 중국 협회 임시 협회장을 맡은 자였다.

“인수 합병 조건으로 중국의 토벌권은 중국 정부가 아닌, 카르마 코퍼레이션이 가지겠다는 겁니까?”

“예. 지부 내부 사항에 중국 정부는 일절 간섭하지 않겠다는 것도 포함해서요.”

“그렇군요…….”

그가 턱을 쓰다듬었다.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는 조건일 것이다.

특히나 중국 국방장관에게는 더더욱.

중국 정부는 현재 중국 협회를 내세워 굉장히 많은 일을 벌이고 있다.

특별 자치구 통제 또한 그중 한 가지.

그런데 중국 협회가 한국 회사에 넘어가는 것도 모자라, 더 이상 본인들의 협회에 손을 댈 수 없게 되면 너무나 많은 걸 잃게 된다.

과장 조금 보태서, 중국의 반을 떼어주는 것과 다름이 없는 수준이다.

“죄송하지만. 이 조건은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나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제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그럼 앞으로 토벌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

“아시다시피 국제 협회 가입 유예기간이 끝났습니다. 이제 국제 협회가 전 세계의 토벌권을 가지게 되었고, 그들 소속 기구에만 토벌 허가가 떨어질 겁니다.”

물론 카르마 코퍼레이션을 제외하고 말이지.

“현재 중국 협회는 국제 협회에서 탈퇴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저희와도 손을 잡지 않으신다면 앞으로 토벌은 불가능하실 텐데요.”

이건 협박이다.

지금이라도 우리 손을 잡지 않으면 손해 보는 쪽은 중국이라는 협박.

왕 국무장관도 그것을 알아차린 듯,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우린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자, 아시아의 중심입니다. 두 세력에 끼지 않더라도 충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죠.”

“제3의 세력을 만들겠다는 겁니까?”

“충분히 가능한…….”

“불가능합니다.”

그의 말을 자르며 즉답했다.

“뭐…?”

심기를 건드린 듯, 국무장관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제3세력을 만드는 건 불가능할 거라 말씀드렸습니다.”

“무슨 근거로?”

“근거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국제 여론이 그러니까요.”

“…….”

단호한 대답에 그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 틈을 타서 각국의 신문들을 꺼내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보시다시피 전 세계적으로, 중국이 특별 자치구를 흡수하기 위해 공습을 감행, 민간인을 위험에 빠트렸다는 여론이 지배적입니다. 어떻게든 덮어씌우고, 묻어버리려고 애를 쓰고 계시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그것만으로 이번 사태를 무마하기엔 힘드실 겁니다. 심지어…….”

이내 왕 장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지 않습니까.”

“…….”

그는 대답 대신 가만히 신문을 응시했다.

“이미 중국은 전 세계 공공의 적이 됐습니다. 뭐, 주제넘은 말씀이지만, 그간의 이미지도 한몫했겠죠.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과연 독자적인 토벌 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하!”

왕 장관이 헛웃음을 뱉었다.

“언제부터 우리가 국제 사회에 인정받으려고 했다고. 그깟 인정 필요 없어.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해!”

“그게 마음처럼 되겠습니까?”

“당연히…!”

“시스템이라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닙니다.”

솔직히 나도 국제 협회가 토벌권을 쥐고 흔드는 것이 탐탁지 않다.

아니, 탐탁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쳐부숴 버리고 싶다.

애초에 그걸 위해 이 고생을 하는 것이고.

그건 비단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마찬가지겠지.

그럼에도 국제 협회가 하란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이유가 뭐겠는가.

아직은 그들이 시스템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성급하게 무시해버리기 시작하면, 그것을 기반으로 세워진 모든 시스템이 무너져 내린다.

아무리 얼토당토않은 말이라도, 밑의 기반을 재정립하기 전까지는 국제 협회를 따를 수밖에 없다.

설령 국제 협회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국가라 하더라도 말이지.

전 세계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이 규칙을 무시하는 이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무너진 질서는 혼란을 야기하고, 그 혼란은 우리 모두의 목숨과 직결되어 있으니.

다시 말해, 국제 사회로부터 완전히 눈 밖에 난 중국이 섣불리 제3세력이니, 자체토벌이니 떠들어 댄다면…….

“전 세계가 중국을 막기 위해 기를 쓰고 움직일 겁니다. 그걸 극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전쟁이 되겠죠.”

“……!”

“왕 장관님. 장관님은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왕시엔 장관의 낯빛이 순간 어두워졌다.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대국이라고 해도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게 달가울 리 없을 테니.

“그게 아니라면 그냥 순순히 사인하시지요.”

“이, 빌어먹을 놈이…!”

이내 그가 계약서를 구기며 눈을 부라렸다.

물론 되지도 않는 객기다.

어차피 결과는 뻔하니까.

애초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중국에 선택지는 없다.

홀로 남아 도태되느냐.

아니면 자존심 다 버리고 남의 지붕으로 기어들어 가느냐.

그것뿐이다.

“……그래, 좋아. 받아드리지.”

왕 장관도 잘 알고 있는 듯, 기어이 꼬리를 내렸다.

“지부 사정에 정부가 개입만 하지 않으면 되는 거지?

“아, 하나 더. 당 출신 공무원 및 모든 국가직 출신은 지부 내 고위 인사직에서 제외해주십시오.”

“뭐, 뭐?! 이제 와서 그게 무슨…!”

“개입만 하지 않으면 뭐 합니까. 관리직에 전부 정부 쪽 인사들을 앉혀 놓으면 그만인데.”

그의 미간이 점점 좁아졌다.

굉장히 못마땅해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알았다. 그렇게…….”

“아, 또 하나. 연 토벌 매출의 10%, 전체 부산물의 15%를 매년 본사에 지급하십시오.”

“뭐, 뭐…?”

“마지막으로 본사의 요청이 있을 땐 어떠한 경우에도 도와주겠다고 약속을…….”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어디서 장난질을 치고 있어!”

“장난질?”

지나칠 수 없는 단어에, 나는 가만히 그의 눈을 노려봤다.

“사람 목숨 가지고도 장난질 치신 분이, 고작 이 정도 장난에 열을 내시는 겁니까?”

“……!”

말문이 턱 막힌 듯 입을 다무는 왕 장관.

슬슬 이야기가 마무리된 것 같았기에, 나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말한 거,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해두셔야 할 겁니다. 저희에게도 손절 당하고 싶지 않으시면.”

“크윽…!”

“그럼, 전 이만.”

뒤에서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을 나왔다.

건물을 빠져나와 도로로 들어서던 차에 때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예상했던 대로 이아영 본부장이었다.

「어떻게 됐어요?」

“잘됐습니다. 뭐, 애초에 정해진 결과였으니까요.”

「그런 거면 제가 가도 됐을 텐데… 몸도 성치 않으시면서.」

“이제 와서 무슨 소립니까. 언제는 대비를 위해서라도 직접 가라고 하신 분이 누구더라?”

「…….」

찔리긴 하는지 묵묵부답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가 황급히 화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아, 아무튼! 이번 인수 건은 우리한테도 꽤 의미가 커요.」

“그렇습니까?”

「당연하죠. 이걸로 동아시아 전체가 카르마 코퍼레이션 소속이 됐잖아요. 대륙을 먹었다는 건 이제 엄연히 국제 협회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흐음.”

너무 확대해석 아닌가?

그래 봤자 본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지부는 중국 협회가 유일한데.

나머진 소속만 한국이지,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지 않은가.

「앞으로는 더 바빠질 거예요.」

“더 바빠질 게 있습니까?”

「당연한 거 아니에요? 국제 협회 가입 유예기간이 끝났다는 건, 우리도 이제부턴 헌터 관리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는 소리잖아요.」

“아.”

나는 작게 신음했다.

그러고 보니 그랬지.

국제 협회가 토벌권을, 우리가 헌터 관리권을 나눠 가졌으니.

「이제부턴 전 세계 헌터 등록 시험부터, 랭크, 승급 시험, 작전 투입, 지원 파견까지 전부 우리가 관리해야 해요.」

“……귀찮아지겠군요.”

「그… 사실 이번에 그거 관련해서 이사회 쪽에서 이야기가 나온 게 있는데…….」

“또 뭡니까?”

그녀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헌터 랭크 시스템, 이번에 개편해보자고 하더라고요.」

“……예?”

갑자기 그게 뭔 개소리야.

“랭크 시스템 개편이라니. 이해가 안 되는군요. 그게 굳이 필요한 겁니까?”

「지금 랭크 시스템은 국제 협회 기준이었잖아요. 당연히 같은 소속의 헌터들이 가산점을 받기도 했고요. 그걸 점수에서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글쎄요. 그런 이유라면 지금 당장 급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부터 미리미리 시스템을 정비해놔야, 이후 국제 협회를 무너뜨렸을 때 부작용이 없지 않겠냐나 뭐라나…….」

뭐, 그런 거라면 납득은 간다.

말했듯, 아무런 준비 없이 시스템을 쥐고 있는 국제 협회를 무너뜨렸다간 기존의 질서가 모두 엉망이 되고 말 테니까.

그래 이해는 한다.

내가 진행해야 하는 것만 아니라면.

“설마 심사 담당자로 저를 지목한 건 아니겠죠?”

「아직 결정된 건 없어요. 그래도 아마 당신이 맡진 않을 거예요. 당신 업무도 있고, 몸 상태도 그렇고……. 뭐, 제가 잘 말해놓을게요.」

흠, 그렇다면야.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귀국은 언제 할 거예요?」

“더 이상 볼일도 없으니. 바로 들어가도록 하죠.”

「알았어요. 그럼 항공편 예약해둘게요.」

“예. 부탁드립니다.”

전화를 끊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랭크 시스템 개편이라…….’

생각만 해도 귀찮은 일이긴 하다만…….

뭐, 내가 진행하는 것만 아니면 상관없겠지.

***

“랭크 시스템 개편?”

카르마 코퍼레이션 본사, 접견실.

박인범 전 협회장이 되물었다.

이두식 이사는 커피를 홀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국제 협회가 본격적으로 전 세계 토벌권을 쥐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슬슬 우리 권한을 써먹어야죠.”

“그건 그런데…… 굳이 필요한 건가? 오히려 혼란만 줄 수도 있을 텐데.”

옳은 말이었다.

한 번 등록된 랭크가 이제 와서 바뀐다고 하면 반발을 살 수도 있고, 연봉과 직급에도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니.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개편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김민주 헌터라고 혹시 기억하십니까? 예전에 작전 2팀장을 맡았던…….”

“어어, 알다마다. 젊은데도 꽤 괜찮은 녀석이었지.”

“김준우랑 붙어 다니면서 어마어마하게 성장한 녀석이죠. 아무리 봐도 S랭크에 부족함이 없는 녀석인데…… 이상하게 승급 시험에서 매번 떨어지더군요.”

“……국제 협회가 랭크에 개입하고 있다는 소리야?”

“세계 랭킹 100위 안에 국제 협회 소속이 아닌 헌터가 몇 명이나 있는지 아십니까?”

“내가 알기로는…….”

이내 고개를 숙인 채 곰곰이 생각해보길 잠시.

“……없군.”

“정확합니다.”

이두식 이사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 뭐, 그건 알겠는데. 랭크 시스템을 개편하는 게 우리한테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불합리한 시스템을 바꾸려는 것뿐이라면 굳이 지금 당장 진행하지 않아도 될 텐데?”

“아주 큰 의미가 있죠. 개편으로 인해 국제 협회 소속이 아닌 헌터들이 세계 랭킹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만큼 국제 협회를 견제할 수 있는 인재가 늘어난다는 소리지 않습니까.”

“호오…….”

박인범 전 협회장이 작게 감탄했다.

하지만 이두식 이사는 거기서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뭐, 일단 가장 큰 목적은 그거고, 다른 목적은…….”

이내 이두식 이사의 눈빛이 번뜩였다.

“이번 기회에 헌터라는 명함 하나만 믿고 능력도 없이 설치는 놈들, 싹 잘라버릴 생각입니다.”

“……하하, 하하하하!”

그 말에 박인범이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바라던 바야. 역시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하는군!”

“제가 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다 준우 그놈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 얹는 것뿐인데.”

“그래서?”

이내 박인범이 물었다.

“심사 담당자는 누가 맡을 생각인가?”

“당연히 그놈 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그렇고말고.”

그 순간, 두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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