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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라고요…?”
카르마 코퍼레이션, 본사.
뒤늦게 소식을 들은 김민주가 벌떡 일어났다.
“홍콩에서 몬스터가 탈출했답니다! 던전도 계속 출현하고 있고요. 완전히 도심이 쑥대밭이 됐다고 합니다!”
하성일 본부장이 격양된 목소리로 다시 한번 소식을 전했다.
“선생님… 선생님은 괜찮은 거예요?”
“마지막으로 연락 온 게 공항입니다만, 지금 그 공항이 무너져 내렸다고…….”
“……!”
김민주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동시에 시선이 갈 곳을 잃고 방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김민주는 곧바로 떨리는 입술을 꽉 깨물며 이성을 붙잡았다.
그래, 천하의 김준우다.
그 남자가 고작 공항이 붕괴됐다고 죽었을 리가 없다.
미리 도망쳤거나, 설령 미처 대피하지 못했다고 해도 어떻게든 살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건, 현재 김준우는 연락이 안 된다는 것.
그런 상황에 본인마저 평정심을 잃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그렇게 몇 번이나 중얼거리길 잠시.
“…사고 시각은 언젠가요?”
이내 냉정함을 되찾고 하성일 본부장에게 물었다.
“5시간 전입니다.”
“홍콩 지부 단독으로는 이 상황을 수습하기 어려울 거예요. 5시간이나 지났다면, 이미 본부에 지원을 요청했겠네요. 선생님은 발이 묶인 상황이니 손을 쓸 수도 없을 거고…….”
김민주는 차근차근 상황을 정리했다.
그런데 어째 생각을 정리할수록 뭔가 께름칙한 기분이었다.
모든 상황이 이상하리만치 딱딱 맞아떨어지고 있지 않은가.
인수를 위해 홍콩으로 가자마자 갑자기 발생한 사고.
처음으로 공격받은 곳이 정확히 김준우가 있던 공항.
이게 정녕 우연인가?
‘일부러 선생님의 발을 묶고,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홍콩 지부를 탈환하려는 게 아니고서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김민주는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한유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빈 씨, 지금 어디예요?”
「의정부에요. 그것보다 소식 들었어요? 지금 홍콩에서…!」
“들었어요.”
단호한 목소리.
“지금 소집 가능한 인원 전부 모아주세요.”
「설마 직접 가려고요?」
“이대로 있다간 손을 써보기도 전에 홍콩 지부가 넘어갈 거예요.”
「준우 씨 명령이에요?」
“아뇨. 선생님과는 연락이 안 돼요.”
「네, 네?! 무슨 사고라도 난 거예요?! 그럼 준우 씨를 먼저 구해야죠!」
“선생님은 괜찮을 거예요.”
「그게 무슨…!」
“유빈 씨, 선생님은 괜찮아요.”
김민주가 딱 잘라 말했다.
그 단호함에 한유빈은 더 이상 대꾸할 수 없었다.
“지금 선생님은 본인이 할 수 있는 걸 하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저희도 저희가 할 수 있는 걸 해야죠.”
「공항이 파괴됐다면서요. 어떻게 가려고요?」
“…….”
정곡이었다.
공항이 무너져 내린 마당에 어떻게 홍콩으로 가겠는가.
애초에 상황이 상황인 터라 착륙 허가가 날 리도 만무하다.
무엇보다…….
「미국 지부 때는 항공기를 빌려줘서 인원 파견이 수월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족히 100명이 넘는 인원을 한 번에 파견할 만한 수단이 없어요. 중국 협회가 제삼자가 끼어드는 걸 반길 리도 없고요.」
“…….”
김민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중국이 수송기를 보내줄 거란 기대는 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아예 홍콩으로 갈 방법이…….
“광저우 공항으로 가면 됩니다. 거기가 홍콩과 제일 가까운 곳이니.”
그때였다.
한 남자가 수행원들과 함께 사무실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김민주, 하성일 본부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대, 대통령님…?”
예상치 못한 그 손님은 다름 아닌 조현민 대통령이었으니.
“착륙 허가는 이미 받아놨습니다. 지금 바로 준비하세요.”
“하지만, 인원과 장비를 실을 만한 항공편이…….”
“청와대 전용기를 대기시켜놨습니다.”
“……!”
조현민 대통령이 굳센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파견팀은 물론 장비를 싣기에도 충분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직접 허가한 사업입니다. 당연히 할 수 있는 한 도와드려야겠죠.”
조현민 대통령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다시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다만, 문제는 광저우에 도착한 이후입니다. 저희 쪽에서 알아본 바로는 이미 홍콩으로 들어가는 모든 도로가 차단됐다고 하더군요. 헬기를 이용해야 할 텐데…….”
“광저우에 한별 건설 지부가 있습니다.”
그때, 이번엔 하성일 본부장이 나섰다.
“거기서 수송용 헬기를 이용하면 될 겁니다. 제가 누나한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대표님 관련 일이라면 도와줄 거예요.”
조현민 대통령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김민주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들었죠? 지금 당장 파견팀 편성해서 대기시켜주세요.”
그녀가 말했다.
“홍콩으로 갑시다.”
***
“본부 통제팀입니다.”
홍콩 지부.
드디어 도착한 본토의 지원병력.
그들의 선두에 선 라이비우 통제팀장이 황 지부장에게 다가가 말했다.
“현 시간부로 홍콩 지부 작전지휘권은 저희가 인계받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황 지부장은 본인보다 한참 어린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라이 통제팀장은 허리를 꼿꼿이 편 채 물었다.
“그래서,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시민 대피는 거의 완료했지만, 탈출한 몬스터가 기어이 도심지역까지 침범했습니다.”
“흠, 알겠습니다. 이제부턴 저희가 맡을 테니 지부장님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이윽고 그가 손짓하자, 본부 소속 통제팀원들이 무전기를 귀에 꽂고는 일사불란하게 각자의 위치로 이동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황 지부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안심해도 된다고…?’
개소리를 하는군.
이번 사건이 어떻게 잘 처리된다고 해도, 후속 조치와 추후 대비 같은 핑계로 지휘권을 계속 붙들고 있을 게 뻔하지 않은가.
여기까지 온 이상 지부는 이미 본부에 넘어간 거나 다름이 없다.
“아, 혹시 공항 구조 작업은 계속 진행 중입니까?”
그때, 라이 통제팀장이 황 지부장에게 물었다.
“네? 네, 그렇습니다만…….”
“당장 모두 철수해주시죠. 지금 상황에서 작업을 이어갔다간 구조팀이 위험해질 겁니다.”
“그, 그게 무슨 소립니까!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있을지도 모르는 거지, 확인된 건 아니지 않습니까?”
“……!”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황 지부장의 말문이 턱 막혔다.
“솔직히 그 정도로 파괴됐다면 생존자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희박한 확률 때문에 지부 인원까지 위험해지는 건 피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지부장님.”
라이 팀장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건 명령입니다. 지금 총 책임자는 저라는 거, 잊으신 건 아니겠죠?”
“…….”
결국, 황 지부장은 고개를 떨어트렸다.
‘끝났군…….’
이젠 정말 지부가 본인의 손을 떠났다는 현실에,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럼 이만 나가보십시오.”
“……예.”
황 지부장은 그 말을 뒤로한 채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이내.
“아… 혹시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려 라이 팀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말씀하시죠.”
“공항 말입니다. 시간적으로도 위치적으로도 몬스터한테 공격받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는데…….”
황 지부장의 날카로운 시선이 라이 팀장에게 향했다.
“대체 무엇에 공격을 받은 건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
“…….”
그 순간, 라이 팀장의 얼굴이 갑자기 굳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피식 실소를 뱉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전 그냥 소식 듣고 지원 나온 사람일 뿐인데.”
“……그렇군요.”
마치 처음부터 정해놓은 것 같은 대답에 황 지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통제실을 빠져나왔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지부 소속 류 통제팀장이 곧바로 다가왔다.
“어떻게 됐습니까?”
“어떻게 되긴, 뻔하지. 이제부터 지부는 당국이 지휘할 거야.”
“공항 건은 물어보셨습니까?”
“……모른다더라.”
류 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 도저히 공항이 공격을 받을만한 상황이 아니었어요.”
“…….”
“이거 설마 당국이 일부러 지부를 탈환하려고 공격한 게…….”
“쉿!”
황 지부장이 다급하게 그를 말렸다.
그리곤 통제실 문을 슬쩍 흘기며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여기선 안 돼.”
“…….”
“일단 믿을 만한 놈 몇 명만 모아봐.”
황 지부장이 날 선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공항 근처 수색 좀 해보자고.”
류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곤 곧바로 자리를 벗어났다.
***
“뭐, 뭐야…….”
“구조대가 아니었어?!”
“잠깐! 저, 저거 설마…?”
몇 차례나 계속된 진동.
이윽고 천장이 한 번 더 무너져 내렸고, 그곳에 방금 막 생성된 던전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더, 던전이야…?”
“던전이 여기 왜…….”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생존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구조대가 아니었다는 절망감과 던전이 눈앞에 나타났다는 두려움이 섞인 얼굴들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잘 됐습니다.”
잠시 던전 입구를 바라보던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곳에서 기다리는 것보단, 차라리 던전 안이 더 안전할 겁니다.”
그 말에 생존자들의 시선이 단숨에 쏠렸다.
나 또한 그들을 향해 몸을 돌려 큰 소리로 말했다.
“일단 다들 던전으로 들어갑시다. 보아하니 그리 위험한 등급도 아닌 것 같습니다.”
“더, 던전에 들어가라고…?”
“괜찮은 거 맞아…?”
“몬스터라도 마주치면 어떡해!”
역시나 술렁이는 반응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않았다.
“에이, 시발 몰라! 여기서 죽치고 있는 것보단 낫겠지!”
누군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이내 망설임 없이 던전 입구로 향했다.
“그, 그래! 여기서 죽나 저기서 죽나 똑같지 뭐!”
“차라리 던전이 더 안전할 수도 있어!”
몇몇 사람이 그를 뒤따라 일어섰다.
이를 시작으로 계속 눈치를 보던 이들 또한 몸을 일으켰다.
생존자들은 줄을 지어 던전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럼 우리도 가죠.”
이아영 본부장이 나를 잡아끌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먼저 들어가 계시죠.”
“……네?”
“전 잠시 여기서 바깥과 연락을 취할 수단을 좀 알아보겠습니다.”
“그게 무슨……?”
그녀는 말끝을 흐리다가 이내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대신 바로 따라와야 해요. 여차하면 여기서 저 사람들 지켜줄 사람, 당신밖에 없으니까.”
“알고 있습니다.”
이아영은 그 대답을 듣고 나서야 던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모든 생존자가 던전에 입장한 직후.
나는 홀로 남아 심호흡을 했다.
주변에 사람이 없으니 스킬을 써서 아예 잔해를 통째로 날려버릴 수도 있지만…….
아직 어딘가에 다른 생존자들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
자칫하다간 2차 붕괴로 다른 이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아직까진 탈출 시도는 못 한다.
하지만 최소한 구멍을 뚫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지.
2차 붕괴가 일어나지 않도록, 아주 강력하면서 날카로운 한 방이 필요하다.
“후우…….”
[고유스킬 : 마왕 - 독재자]
[시전자의 상념에 따라 일회용 스킬을 제작합니다.]
[스킬 제작 중.]
[스킬 제작이 완료되었습니다.]
[제작 스킬 : 싱글 포인트]
손가락으로 총의 형태를 만들어 천장을 겨냥했다.
[습득 스킬 : 디스트로이어]
[싱글 포인트 스킬로 인해, 해당 스킬의 타격점이 최대치로 압축됩니다.]
한쪽 눈을 감고 검지 끝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순간.
피융―!
가늘지만 날카로운 위력의 스킬이 그대로 천장을 관통했다.
팔뚝 정도 굵기의 구멍.
거길 통해 바깥바람이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파를 받기엔 부족했다.
나는 던전이 출현하면서 생긴 공간을 천천히 기어 올라갔다.
그렇게 계속 위로 올라가며 전파를 잡던 끝에.
띠리링―.
마침내 핸드폰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들이 미친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많이도 왔네…….’
천천히 문자를 확인하던 그때였다.
“뭐, 뭐야!”
“거기 누구 있습니까?!”
“저기요! 대답해보세요!”
구멍을 타고 위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꽤나 반가운 그 소리에 나는 곧바로 목청을 키웠다.
“예! 여기 사람 있습니다! 지부 소속의 구조대입니까?”
“아, 아닙니다. 구조대는 모두 철수했습니다.”
뭐…?
구조대가 철수했다고?
아무리 작업이 어렵다고 해도 그렇지, 생존자가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쯧…….’
아무리 생각해도 절대 지부에서 내릴 만한 명령이 아니다.
기어이 당국이 지휘권을 잡았나 보군.
“저흰 지부장님 명령으로 수색을 나온 수색팀입니다.”
“실례지만, 선생님의 성함을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혹시 안에 생존자들이 더 있습니까?”
그들의 목소리가 다시금 구멍을 타고 들려왔다.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김준우 대표라고 합니다. 생존자는 더 있는데, 안쪽에 던전이 출현해서 일단 그쪽으로 대피시켰습니다. 저희 말고도 아직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기, 김 대표님?”
“정말 김 대표님입니까?!”
화들짝 놀란 목소리.
그리곤 곧바로 말을 잇는다.
“조,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지금 당장 지부장님에게 연락해서 다시 구조 작업을…….”
“아뇨. 당국이 지휘권을 잡은 이상 지부 소속인 당신들이 움직이면 위험합니다.”
“그, 그걸 어떻게…?”
뭘 어떻게야.
그 정도야 뻔할 뻔 자지.
“그럼…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은 복귀하셔서 지부장님께 생존자가 있다는 것만 전달하십시오. 그리고 이제부턴…….”
그렇게 말하며 나는 읽다가 만 문자를 한 번 더 확인했다.
「현재 본사 파견팀 광저우 공항 도착! 한별 건설 쪽에서 헬기 지원받아서 홍콩으로 갈 겁니다. 혹시 연락 가능해지면 바로 전화 주세요.」
“제삼자가 움직일 겁니다.”
핸드폰을 집어넣으며 미소를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