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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다는 말로도 부족하겠군.”
카르마 코퍼레이션, 행정본부.
비록 에덴을 찾진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원하는 걸 얻었기에 우린 곧바로 미국에서 철수했다.
한국으로 귀국하자마자 이두식 이사가 나를 호출했다.
사무실로 들어서니 그나 나를 반기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뉴스에 나온 그대롭니다.”
“참 나, 그게 다가 아니잖아. 뭘 어떻게 했길래 국제 협회가 이렇게까지 물러난 거냐니까?”
“뭐… 협상을 좀 했습니다.”
“무슨 협상?”
대답을 아꼈다.
설명하기 위해선 할 이야기가 많은 까닭이었다.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지 몰라 잠시 뜸을 들이고 있자니, 이두식 이사가 손을 내저었다.
“됐다. 말하기 곤란하면 하지 마.”
“괜찮겠습니까?”
“네가 한 일인데 안 괜찮을 건 뭐야.”
이두식 이사는 소파에 털썩 앉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건 오히려 내가 할 소리야. 너, 진짜 괜찮겠냐?”
“안 괜찮을 건 뭐겠습니까.”
“야 인마, 그렇게 쉽게 말할 게 아니야. 이번 일로 국제 협회는 통제권도 반 토막이 났고, 뱅크 아이템도 분할 관리를 하게 됐어. 무엇보다 목숨보다 중요한 신임을 잃기 시작했다.”
이두식 이사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우리 입장에선 호재일 수 있지만… 거꾸로 말하면, 국제 협회는 더는 잃을 게 없다는 뜻이기도 해. 너도 알지? 잃을 게 없는 놈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놈들이 어떻게 나오든 간에,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극단적으로 나올 거야.”
“…그렇겠죠.”
“심지어 이제 넌 혼자도 아니잖아. 네가 지켜야 할 식구가 수백 수천인데……. 너 정말 감당할 수 있겠냐?”
그 질문에 난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물론 긍정보단 부정에 가까운 미소였다.
그도 그럴 게, 직원들을 내가 왜 지켜야 하는가?
응당 본인 몸은 알아서 건사할 정도는 돼야지.
애초에 난 내 일에만 신경 쓰기에도 바쁘다.
대충 그런 의미의 미소였지만…… 어째 이두식 이사는 조금 다르게 이해한 모양이었다.
“됐다. 내가 괜한 걸 물어봤네. 아무렴, 천하의 김준우가 감당 못 할 게 뭐 있겠어.”
“…….”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네.
“그건 그렇다 치고……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냐?”
“당분간은 국내에 머물며 동태를 좀 살필 생각입니다. 벌써 몇 개 협회가 국제 협회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습니까.”
“때를 기다렸다가 한 번에 쓸어 담겠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어차피 선택지는 두 개밖에 없지 않습니까. 국제 협회가 아니라면 무조건 카르마 코퍼레이션에 합류할 수밖에 없겠죠.”
이전처럼 굳이 우리가 인수를 위해 발로 뛸 필요가 없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먼저 여기저기서 연락이 올 테니까.
“연락이 오는 족족 인수를 해버리는 것도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재정적으로나 외부적으로나.”
“물론 연락이 오는 협회를 전부 받아줄 생각은 없습니다. 저희에게 도움이 될 만한 곳만 받아야겠죠. 어차피 선택권은 저희한테 있으니까요.”
“그래……. 이것 참, 해외에 지부 한번 세워보겠다고 그 난리를 피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골라잡는 입장이 되다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이내 이두식 이사가 새삼스럽다는 듯 팔짱을 꼈다.
“너도 알겠지만… 우린 지금 죽다 살아난 상황이야. 아마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신 없겠지.”
“그렇겠죠.”
“그러니까 제2의 국제 협회든 뭐든, 반드시 성공시켜. 네 주변에 있는 모두가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거니까.”
“글쎄요. 그건 어디까지 제 목표지, 다른 사람들 목표는 아니잖습니까. 지금까진 몰라도 앞으로도 계속 도와줄 것 같진 않은데요.”
“참 나, 겸손한 건지 척하는 건지…….”
그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뭐, 겸손을 떠나서 틀린 말이 아닌데 말이지.
“원래 조직이라는 건, 수많은 사람이 하나의 비전을 위해 모인 집단이야. 보통 우두머리는 그 비전을 결정하고, 아랫사람은 따르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조직의 비전이고 뭐고 알 게 뭐야. 그냥 월급만 따박따박 주면 그만이지. 안 그래?”
“……그렇죠.”
갑자기 왜 이런 말을 꺼내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내 말이 그 말이다.
내 목표는 내 목표고, 그걸 직원들이 알 바는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이두식 이사는 끝까지 들어보라는 듯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러다 보니 우두머리는 어떻게 해서든 아랫사람들이 자신을 따르게 만들어야 해.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지. 지위를 이용해서 강압적으로 부려먹던가, 아니면 돈으로 해결하던가. 근데 그와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놈도 있어. 왜 그런 줄 알아?”
“글쎄요.”
“그런 놈은 가만히 있어도 주변 사람이 알아서 따라오거든.”
뭐, 나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들은 적은 있다.
물론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알 턱이 없지만.
‘…그런데 왜 그걸 나한테 말하는 거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잠자코 그의 말을 들었다.
“그 사람의 비전을 위해 모두가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셈이야. 아무것도 안 해도 말이지. 그게 진짜 우두머리고, 진짜 조직인 거야. 알아들어?”
“…….”
아니, 하나도 못 알아먹겠다.
“그러니까 지금 네 목표는, 네 주변 모두의 목표라는 소리야.”
“…아, 네.”
대낮부터 술을 자셨나.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는 그의 말에 대충 대답했다.
***
“어떻게, 작전은 순탄합니까?”
본사 사무실로 복귀한 나는, 그에게 전화부터 걸었다.
「알 거 없잖아. 간만 보고 빠진 주제에.」
곧바로 되돌아오는 날이 바짝 선 목소리.
상대는 다름 아닌, 노아였다.
“뭐, 어쨌든 저흰 원하는 걸 얻었으니 더 이상 계속할 이유가 없죠. 그래도 너무 섭섭해하지 마시죠. 계속 지원해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시발, 생색은…….」
노아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우리가 철수한 지금도 길드원들과 함께 에덴을 찾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에덴이 아니라, 던전 속에서 잠들어 있는 그의 여동생을 찾는 거지만.
하여간 집념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나저나 국제 협회에선 연락 없습니까? 나름 PB 코퍼레이션 소속 밸런스 팀장이지 않습니까.”
「하! 이미 한 판 거하게 붙은 마당에 이제 와서 날 다시 부르겠어?」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고요?”
「개소리할 거면 끊어.」
나는 작게 웃으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
대답이 끊기길 잠시.
오히려 그가 역으로 나에게 물었다.
「너야말로 어떻게 할 거지? 정말 국제 협회를 무너뜨릴 생각이냐?」
“당연한 걸 물으시는군요.”
「객기인지 패기인지 모르겠군.」
그가 실소를 터트리길 한 차례.
「알았어. 네가 그렇다면 뭐.」
“……예?”
「토벌 들어가야 하니까 그만 끊는다. 그리고 앞으로 연락은 자제해. 귀찮으니까.」
뚝―.
뭐야.
이러고 끝이야?
아니, 내 질문에는 왜 답이 없어?
‘참, 사람하고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통화가 끊긴 전화기를 바라보는 가운데 사무실 문이 열렸다.
“현재까지 국제 협회 탈퇴 명단이에요.”
이아영 본부장이 서류 뭉치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벌써 집계가 된 겁니까?”
“어제 밤새워서 한 거예요. 러시아를 필두로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 북미에선 멕시코, 남미 쪽에선 브라질, 아르헨티나도 연이어 탈퇴했어요.”
“흠, 러시아를 빼면 그리 토벌 강대국들은 아니군요.”
“그래서 더 반감이 심한 거죠. 미국 지부조차 비공식 토벌 조직이라고 습격을 감행했으니, 힘이 없는 협회는 언제든 같은 꼴을 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에요.”
“뭐, 딱히 틀린 판단이라고 할 순 없겠군요.”
그놈들이라면 그러고도 남겠지.
차원석으로 던전 출현을 조정할 수 있다고 해도, 결국 그걸 토벌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춰야 한다.
국제 협회가 아무리 지부에 던전을 몰아준들 감당할 인원이 없으면 무용지물이겠지.
그렇다면 국제 협회에 있어 토벌 약소국은 그저 머릿수 채우는 용도,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가치가 떨어지면 언제든 내팽개치려 들 것이다.
뭐… 어찌 됐든 우리한테는 좋은 기회지만.
“아, 그리고 중국 협회도 조만간 탈퇴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어요. 이건 좀 구미가 당기지 않아요? 토벌량으로 따지면 세계 3위의 강대국이잖아요.”
“그렇긴 합니다만…….”
나는 떨떠름하게 입맛을 다졌다.
중국 협회라…….
물론 협회의 규모와 인원, 토벌량만 봤을 땐 의심의 여지가 없는 강대국이다.
하지만 워낙 폐쇄적인 곳이고, 주변국들과도 이런저런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지 않은가.
나로서도 섣불리 손을 대기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일단… 조금 더 기다려 보죠.”
“별로 마음에 안 들어요?”
“마음에 안 든다기보단, 귀찮은 문제가 한둘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잖아요. 서둘러야 해요. 국제 협회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땐 늦어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 협회만큼은 우리한테 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에 안 들면 차라리 대놓고 제3세력을 자처할 놈들이니…….”
“……그것도 그렇긴 하네요.”
국제 협회에서 그걸 고분고분 인정해 줄 리는 없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항상 상식 밖의 무언가가 벌어지는 동네인 만큼, 그쪽은 늘 예외를 염두에 두어야겠지.
“일단은 연락이 오는 곳부터 천천히 검토해보고…….”
“대표님!”
내가 말을 꺼내던 그때, 하성일 본부장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주, 중국 협회에서 인수합병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네?!”
“…예?”
기가 막힌 타이밍에 당황하길 잠시, 이아영이 나를 대신해 먼저 물었다.
“주, 중국 협회에서요? 정말요?!”
“아…… 그런데 이걸 중국 협회라고 해야 할지…… 이게 좀 복잡한데…….”
“무슨 말이에요. 그게?”
“그러니까…….”
이내 하성일 본부장이 뜸을 들이길 잠시.
“연락 온 곳이 중국 협회 산하 홍콩 지부입니다.”
“홍콩 지부…?”
“하아…….”
이마를 턱 짚으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필 제일 귀찮은 곳이 걸려버렸다.
***
“통제권도 토막 나고, 작전 관리 권한도 넘어가고, 거기에 뱅크 아이템까지 다시 분할됐고…….”
국제 헌터 협회 본부.
웨슬리 사무총장을 마주한 에마 대표가 넌지시 물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
물론 웨슬리 사무총장은 말이 없었다.
그 의미를 에마 대표는 잘 알고 있었기에 더는 묻지 않았다.
대신 다른 주제로 대화를 돌렸다.
“전쟁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거, 정말이야?”
“권한이고 아이템이고, 다 잠깐 빌려준 것뿐이야. 언젠간 다시 돌려받아야겠지.”
“그렇긴 하지만…….”
“어차피 우린 이제 잃을 게 없어. 이러나저러나 똑같다면, 최후의 보루를 꺼내 들어야지.”
웨슬리의 말에 에마 대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간부로 PB 코퍼레이션을 본부 직속 부서로 편입할 거야. 밸런스팀 산하에 전투 부대를 편성시켜서 최대한 쓸 만한 놈들로 싸그리 긁어모아.”
웨슬리의 명령이 떨어졌다.
“어차피 전력은 이쪽이 우세해. 병력만 모을 수 있다면 전쟁이고 뭐고 일단은 먹고 들어가는 거야.”
“글쎄…….”
하지만 에마 대표는 어딘가 떨떠름한 반응이었다.
“중국 협회, 이번에 탈퇴할 거라면서?”
“…….”
“그놈들이 정말 탈퇴해버리면, 병력 모으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하아…….”
웨슬리 사무총장이 이를 꽉 물었다.
하여간, 꼭 필요할 땐 방해만 된다니까.
“어쩔 수 없지.”
이내 웨슬리 사무총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든 붙잡는 수밖에.”
“방법은 있어?”
“그놈들이 원하는 건 일단 다 들어주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