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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을 걸고 협상을 했다고요…?”
미국 지부, 중앙통제실.
현장을 수습하고 복귀한 직후, 나는 이아영 본부장에게 웨슬리 사무총장과 있었던 일에 대해 털어놓았다.
“찾지도 못한 에덴을 가지고요?”
그녀는 당연히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뭐, 다행히 잘 넘어갔습니다.”
“그럼 전에 통화로 자꾸 이상한 말을 한 게…….”
“연기 좀 해봤습니다.”
“아, 아니… 들키면 어쩌려고 그런 짓을 했어요?!”
“안 들켰으니 된 거 아닙니까?”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이아영 본부장은 이마를 턱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아,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잖아요!”
“그럼 어떡합니까. 그놈 밑으로 들어가는 건 죽기보다 싫고, 그렇다고 가진 것도 없이 협상할 수도 없는데.”
이러나저러나 최악의 상황이라면, 칼자루를 쥔 척이라도 해야지.
“그리고 전 에덴을 찾았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 했습니다. 그쪽이 지레짐작으로 착각한 거니 들켜도 할 말 없겠죠.”
“그런 변명이 통할 것 같진 않은데요…….”
이아영 본부장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어쨌든 최악은 면했잖습니까. 아니, 우리한텐 오히려 이게 최선이라고 해야겠죠.”
“……그렇긴 하죠. 독립 기구 인정에 헌터 관리 권한, 작전 감독 권한. 거기에 뱅크 아이템까지 나눠 받게 됐으니.”
“앞으로는 자체 토벌과 지부 활동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겁니다. 국제 협회의 독재를 견제할 수 있는 건 덤이고요.”
“그렇게만 보면 더할 나위 없긴 한데…….”
이아영 본부장이 말끝을 흐리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다음이 문제라는 겁니까?”
“그렇죠. 국제 협회는 어쨌든 전 세계 던전과 헌터를 독점하는 게 목표잖아요. 지금이야 우리가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생각하니 한발 물러났겠지만…….”
“칼자루가 없어지면 또다시 이빨을 들이밀겠죠.”
당연한 소리다.
그들이 정말 좋아서 우리에게 통제권을 뚝 떼어줬겠는가.
그건 그저 울며 겨자 먹기로 잠시 빌려준 권한일 뿐이다.
언젠간 기한이 되면 반드시 돌려받으려고 하겠지.
그리고 그 방법은 아마…….
“최후의 보루를 꺼내 들지도 모르겠군요.”
“그 말은……?”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아영 본부장의 표정이 굉장히 심각해졌다.
“더 최악의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요.”
“뭐, 너무 그러지 마십쇼. 국제 협회에 대적하고 있는 이상, 언젠간 닥칠 일이었으니.”
“대비책은 있어요?”
“지금은 없습니다.”
내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다만, 앞으로 준비할 수는 있죠.”
“어떻게요…?”
“국제 협회가 빌려준 권한이 있지 않습니까.”
돌려줘야 할 기한이 오기 전까지 그 권한들을 최대한으로 이용해야겠지.
“카르마 코퍼레이션은 독립 기구가 됐습니다. 당연히 우리가 인수하는 조직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렇다면 가능한 한 많은 아군을 만들어 놔야겠죠.”
“…….”
“물론 말이 쉽지, 실제론 꽤나 어려울 겁니다. 남아 있는 독립 조직은 실정이 그다지 좋지 못하니.”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들이 최대한 제 몫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도와줘야 하고, 고질적인 문제도 해결해줘야 하는 데다가 조직들이 우리를 신뢰할 수 있도록 신경도 써야 합니다. 거기에 직원들의 신임까지 받아야 하니…….”
내가 말끝을 흐렸다.
말을 뱉고 보니 나조차 가능할까 싶은 의문이 들었던 까닭이었다.
뭐, 이아영 본부장도 아무 대답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걸 보니 같은 생각인 것 같은…….
“그러니까 여태껏 하던 대로 하겠다는 소리네요?”
“…예?”
“……네?”
그게 왜 그렇게 되지?
내 말 이해한 거 맞나?
서로 얼굴에 물음표를 띄운 채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던 그때.
“대표님!”
마이클 지부장이 격양된 얼굴로 사무실 문을 열어젖혔다.
“지금 전 세계 뉴스가 난리가 났습니다! 국제 협회에 대한 맹비난이 쏟아지고 있어요! 아무래도 이번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간 모양…!”
“아, 벌써 반응이 오고 있군요.”
“……네?”
마이클 지부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 못 들을 말이라도 들었다는 표정이다.
“본부에서 작전 방해하겠다고 이 난리를 쳐놨는데, 저희라고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않습니까.”
“그, 그럼 대표님이…?”
“예. 제가 제보했습니다. 이번 습격에 대한 일들 전부.”
물론 습격에 성공했다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넘어갔겠지. 이번 일에 대해서 입을 열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을 테니.
하지만 보기 좋게 실패한 이상, 우리도 묵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마이클 지부장은 대놓고 국제 협회를 공격한 게 퍽 불안한 모양이었다.
“협상도 잘됐다고 들었는데 왜 굳이 이런…….”
“협상은 협상일 뿐이죠. 겁도 없이 내 팀원들을 죽이려고 한 책임은 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 국제 협회에 한 방 먹일 생각만으로 이 일을 알린 게 아니다.
“이번 일이 세간에 알려진 이상, 생각이 있는 협회들이라면 국제 협회에서 떨어져 나올 겁니다. 그리고 우린…….”
이번 일은 앞으로 우리가 준비할 대비책을 위한 발판이다.
“그 협회들부터 노릴 생각입니다.”
***
[속보 - 국제 헌터 협회, 작전 중인 미국 지부 습격]
[해당 습격으로 인해 미국 지부를 포함한, 각국의 작전팀 사상자 다수 발생]
[‘대체 왜?’ 시민의 안전을 위한 기구의 충격적인 이면!]
[일방적인 탈퇴 명령에 이어 작전팀 습격까지. 국제 사회, ‘명백히 선을 넘은 침략 행위’ 일축]
[중국 협회 측, ‘이러려고 전 세계 토벌권을 통제한 것인가’ 유감 표명. 국제 협회 탈퇴하나?]
[‘문답무용’ 러시아, 국제 협회 가입 일주일 만에 탈퇴. 각국 또한 뒤따라 탈퇴 이어져…….]
[국제 헌터 협회 입장표명, ‘작전 철회 협상 중 발생한 예상치 못한 사고’]
[웨슬리 사무총장 曰 ‘깊이 사죄하겠다’ 이어 ‘이번 작전을 지휘한 조직은 독립 기구로 인정하겠다’ 발언 화제]
[해당 작전 총 책임자가 카르마 코퍼레이션 김준우 대표로 밝혀져…….]
[대한민국 이능차원관리 협회의 전신을 이어받은 카르마 코퍼레이션, 전 세계 유일한 독립 토벌 조직으로 인정받다.]
[카르마 코퍼레이션, 제2의 국제 협회 가능성 대두]
“이, 이게 무슨…….”
뉴스를 확인하던 이두식 이사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미국 지부에서 대규모 작전을 벌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국제 협회로부터 습격을 받았다니.
이두식 이사는 걱정이 먼저 앞섰다.
아닌 게 아니라,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이아영을 보내지 않았을 테니까.
‘뭐, 별다른 연락이 없는 걸 보면 무사하다는 뜻이겠지…….’
그런 생각도 잠시, 이두식 이사의 시선이 다시금 헤드라인으로 향했다.
‘카르마 코퍼레이션, 독립 토벌 조직으로 인정받다.’
그 밑에는 카르마 코퍼레이션이 국제 협회로부터 얻어낸 권한에 대해 자세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를 확인한 이두식 이사는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뱉었다.
‘대체 거기서 뭔 짓거리를 한 거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건 단순히 국제 협회에 한 방 먹인 수준이 아니었다.
며칠 전 국제 협회가 토벌권을 통제하겠다고 통보했을 때 별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건, 당연히 국제 협회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그간 국제 협회는 ‘시민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누구보다 토벌에 열을 올리지 않았던가.
전 세계 시민들에게 있어 국제 협회는, 자신의 목숨을 지켜주는 든든한 존재이자 영웅이었다.
그 두터운 신뢰 때문에 몇 번의 구설수에도 국제 협회는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일로 기어이 그 신뢰가 무너져 내렸다.
이게 계획된 일이든, 아니면 정말 사고이든 간에 미국 지부를 일방적으로 탈퇴시킨 것도 모자라, 작전 중인 이들을 습격했으니…….
덕분에 전 세계에서 국제 협회를 향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동시에, 토벌권 통제에 대한 시각 또한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국제 협회에 있어서 이번 일은, 그야말로 치명상인 셈.
‘그런데 카르마 코퍼레이션은 반대지…….’
오히려 카르마 코퍼레이션은 이번 일로 인해 수면 위로 올라섰다.
전 세계 유일한 독립 토벌 조직.
헌터 관리 권한 및 국제 협회의 작전 관리 감독 권한.
이로써 국제 협회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 되었다.
해외 지부 사업이니, 제2의 국제 협회니, 김준우가 떠들어댔던 것들이 정말 조금씩 실체화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거… 정말 가능할지도 모르겠군요.”
이내 이두식 이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마주 앉은 박인범 전 협회장에게 말했다.
하지만 박인범 전 협회장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 난 좀 걱정이다.”
“국제 협회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으십니까?”
“같은 게 아니라, 절대 가만히 안 있지.”
그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여태까지 행보를 봐라. 그놈들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선 전쟁이라도 벌일 놈들이야.”
“……설마 요즘 시대에 정말 전쟁이라도 일으키려고요.”
“설마가 사람 잡지.”
박인범 전 협회장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이두식 이사도 불길한 기분을 느꼈다.
“김준우 그놈한테도 말해둘까요?”
“아니, 그놈이 모를 리가 없지. 다 생각이 있지 않겠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전히 불안은 떨칠 수가 없었다.
한발 물러났다곤 해도 아직 국제 협회가 뱅크 아이템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뱅크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한 언제든 이 상황은 역전될 수 있는…….
“저, 이사님…….”
그 순간, 한 직원이 조심스레 이두식 이사를 찾았다.
“뭔가?”
“방금 국제 협회에서 보낸 특수 화물이 도착했는데. 저희 쪽에서 확인해보니, 이능석이랑 반능석인 것 같습니다.”
“……뭐?”
이두식 이사와 박인범 전 협회장의 눈이 동시에 동그래졌다.
***
미국 북부, 한국 임시 작전본부.
처참했던 현장도 보수 공사가 진행됨에 따라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김민주의 표정은 어째선지 계속 어두웠다.
-그러려고 과거로 온 거 아닙니까? 국제 협회의 독주를 막고, 나를 끌어내리기 위해서.
웨슬리가 김준우에게 했던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던 까닭이었다.
“죽을 뻔한 사람은 난데, 왜 그쪽이 똥 씹은 표정이에요?”
결국, 보다 못한 한유빈이 그녀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무슨 일 있어요?”
“…….”
김민주는 대답 대신 쓴웃음을 지었다.
그것도 잠시.
“유빈 씨는…… 선생님이 없어지면 어떨 것 같아요?”
“갑자기 뭔 소리래.”
“누가 그러더라고요. 선생님은 지금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희생한 거라고. 그리고 목표를 이루면 사라질 수도 있다고.”
“……?”
“그런데 좋은 세상이든 뭐든, 선생님이 없으면 그게 무슨 의미인가 싶어서요.”
한유빈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김민주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던 까닭이었다.
혹시 지금 장난치고 있는 건가 싶었지만, 김민주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기에 그건 아닌 것 같았다.
한유빈은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입을 열었다.
“뭐, 확실히 그건 싫네. 솔직히 민주 씨나 나나 이 일이 좋아서 하고 있다기보단, 그 사람이랑 같이 일하는 게 좋아서 하는 거기도 하고.”
“그렇죠…….”
“그런데 어쩌겠어요. 그 사람 목표가 그런 거라면 우리가 하지 말라고 막을 수도 없고. 그래도…… 굳이 목숨까지 걸 필요는 있나 싶네.”
한유빈이 김민주를 바라봤다.
“그럼 그냥 둘 다 욕심내면 안 돼요? 그 사람이 희생하지 않아도 좋은 세상이 되면 되잖아요.”
“그게 무슨…?”
한유빈이 검지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 사람을 제일 높은 곳에 앉게 해줘요.”
“……!”
“그럼 그 사람이 희생할 필요도 없고. 내가 볼 땐 그것보다 좋은 세상도 없을 것 같은데?”
김민주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 우리가 좀 더 고생하면 되죠. 그 사람은 희생보단 높은 곳이 어울리니까.”
“높은 곳이라면…….”
“뭐겠어요.”
한유빈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국제 협회 사무총장밖에 더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