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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소멸까지 불과 15분밖에 남지 않은 시각.
전국 각지에 분포해 있는 총 7개의 상호작용 던전 앞에서 대기 중이던 병력에게 드디어 지시가 내려왔다.
“…토벌, 진행하래.”
천안에 위치한 상호작용 던전 토벌을 맡은 ‘흑랑’의 금찬영 부팀장이 짧은 무전을 마치고 팀원들에게 말했다.
“거래가 끝난 겁니까?”
“아니.”
그녀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국제 협회 쪽에서 무슨 수작을 벌인 모양이야. 대표님은 후퇴하라고 하셨대.”
“네, 네?! 그럼 누가 토벌 지시를…?”
“김민주 팀장님이.”
“아…….”
팀원 모두가 납득이 간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토벌 진행이 망설여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팀장님 지시라고 해도 대표님이…….”
“저, 정말 진행해도 되는 거 맞습니까?”
“거래도 아직 안 끝났는데 저희 멋대로 토벌해버리면 준비한 게 다 물 건너가는…….”
아니나 다를까, 팀원들이 불안한 목소리로 계속 토를 달았다.
“그럼 뭐, 진짜 대표님이 죽게 내버려두자고?”
“그, 그건 아니지만…….”
금찬영 부팀장이 옅은 한숨과 함께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녀 또한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아닌 게 아니라, 대표님은 이번 거래를 위해서 목숨까지 걸지 않았던가.
끝까지 움직이지 않는 게 최소한의 도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그건 내가 판단할 게 아니지.’
1분 1초를 다투는 상황이다.
어쭙잖은 독단을 부릴 여유도, 자격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도박수였어. 걸려들면 다행이지만, 걸려들지 않으면 우리도 어쩔 수 없잖아. 애초에 목숨까지 걸만한 일도 아니었고.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
“우린 지시대로만 하면 돼.”
“…알겠습니다.”
부팀장의 말에 팀원들도 마음을 다잡은 듯했다.
“대표님이 주신 정보 파일, 다 숙지했지?”
“네!”
“그대로만 하면 10분 안에 토벌할 수 있을 거야. 다들 전투 준비해.”
이내 흑랑팀 전원이 무기를 빼 들었다.
“작전 개시한다.”
모든 인원이 일제히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토벌을 시작한 건, 비단 흑랑팀뿐만이 아니었다.
전국 7개 상호작용 던전 모두가 같은 수순으로 토벌이 진행됐다.
물론 그들이 멋대로 토벌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제 협회 본부가 알 리 만무했다.
***
“사, 사무총장님!”
통제팀에서 상황을 관찰하고 있던 웨슬리 사무총장에게 수행비서가 헐레벌떡 다가왔다.
“방금 현장 모니터 확인했는데… 김준우 대표가 대기 인원 후퇴 명령을 내렸습니다.”
“뭐라고요?”
“아무래도 더미 영상이 안 먹힌 것 같습니다.”
웨슬리 사무총장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의 작전은 클로이에게 더미 영상을 보내서 김준우의 요구를 들어준 것처럼 꾸미는 것이었다.
물론 밖에서 대기 중인 놈들한테 확인시켜 보면 금방 들통 날 눈속임이긴 했지만, 확인하는 것도 결국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인 만큼, 영상을 보자마자 바로 판단을 내렸을 거다.
그런데 망설임도 없이 후퇴 명령을 내렸다고?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판단력인가!
“던전 소멸까지 몇 분 남았죠?”
“15분 남았습니다.”
“하…!”
본인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물론 김준우의 요구를 들어준다고 해서 국제 협회가 손해를 보는 건 아니다.
어쨌든 1순위는 뱅크 아이템 회수였으니, 사실 그 외 것들은 개인적인 욕심이다. 그저 뱅크 아이템과 함께 한국 협회의 모든 걸 손에 넣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울 뿐.
하지만 지금 웨슬리 사무총장이 진심으로 분노하는 건, 그 아쉬움 때문이 아니다.
손익을 떠나서…… 또다시 김준우를 이기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체 어떻게 해야 저놈을 한 번이라도 이길 수 있는 건가.
아니… 애당초 이길 수는 있긴 한 건가.
“하하… 하하하하!!”
쾅, 쾅―!!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와 함께 그의 주먹이 연신 콘크리트 벽으로 향했다.
벽은 금이 가다 못해 반대편 공간이 훤히 드러날 만큼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모든 직원이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얼어붙었다.
이윽고 그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깔렸다.
“기자들 부르세요…….”
수행비서는 대답조차 못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이겼다.
하지만 두 번은 없을 것이다.
뱅크 아이템 회수만 완료되면, 그땐 가장 먼저 네놈의 목을 쳐줄 테니.
***
여전히 어두컴컴한 던전 안.
던전 소멸까지 5분도 채 남지 않은 시각, 우린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서로를 가만히 노려보는 중이었다.
특정 던전의 정보는 이미 며칠 전에 각 팀에게 전달해뒀다. 또한, 각 던전 특성에 맞춰 인원 배치와 구성까지 완벽하게 기획해두었다.
만약 그대로 토벌을 진행한다면 최소 토벌 가능 시간은… 대략 15분.
하지만 이미 그 시간마저 훌쩍 넘겼다.
‘후우…….’
애써 여유로운 척했지만, 사실은 굉장히 초조했다.
물론 던전에 갇힐까 봐 불안한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토벌이 될까 불안했다.
아닌 게 아니라, 김민주에게 후퇴 명령을 내리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지 않았던가.
‘그 녀석 성격상 분명히 다시 연락해서 확답을 받아내려고 했을 텐데…….’
근데 1분 1초가 급박한 상황에서 회신조차 없다?
확실하다.
이것들… 백 프로 토벌 진행 중이다.
물론 그걸 저놈들이 알 리 없으니, 일단은 계속 모른 척하고 있긴 하지만…….
만약 저쪽에서 어떤 액션을 취하기도 전에 던전이 활성화되면…… 모든 게 도루묵이다.
‘제발, 제발…….’
토벌되기 전에 제발 먼저 움직여라.
“아까 여유는 어디로 갔어요? 죽을 각오 한 거 아니었나?”
클로이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슬쩍 입을 열었다.
“뭐, 막상 죽으려니 무섭긴 하군요.”
“되지도 않는 연기하지 마요. 지금 토벌 중인 거 다 알고 있으니까.”
“그러십니까? 사실 저도 국제 협회에서 부랴부랴 기자회견 준비하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고 싶은 거 아니고요?”
“뭐, 아니면 끝까지 가보든가.”
“…….”
“…….”
계속해서 서로를 떠보며, 목숨을 건 눈치 싸움을 이어가던 그 순간.
띠링―.
내 핸드폰으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조심스레 확인했다.
「토벌 완료 1분 전.」
그 텍스트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시선이 클로이와 노아 쪽으로 향했다.
“…….”
“…….”
그렇게 싸늘한 정적이 이어지길 몇 초.
뒤늦게 아차 싶어 황급히 시선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본부, 본부!!”
“시발…!”
낌새를 눈치챈 클로이가 곧바로 통신기를 꺼내 들었다.
“이 새끼들 토벌 중이야!! 사무총장님한테 절대 기자회견 열지 말라고…!”
그 순간.
[긴급 속보입니다.]
켜두었던 내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클로이의 동작이 뚝 멈췄다.
[조금 전, 국제 헌터 협회의 웨슬리 사무총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 토벌 조직을 카르텔로 규정한 것을 공식적으로 철회했습니다. 또한, 그는 양측 간에 오해가 있었다고 덧붙이며 앞으로는 좋은 관계를 이어나갈 것을 소망한다고…….]
“늦었네.”
“…….”
“…….”
클로이의 손에 있던 통신기가 툭 바닥에 떨어졌다.
쿠구구구궁―
동시에 던전이 크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분할 던전이 활성화된 것이다.
불과 몇 초 차이.
국제 협회와의 거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
카르마 코퍼레이션 사무실.
“……됐다.”
실시간 뉴스를 확인하던 하성일의 입에서 그 말이 새어 나왔다.
[한국 협회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눈 결과, 양측 간에 오해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를 빌려 한국 토벌 조직에 내려진 카르텔로 규정하였던 입장을 공식적으로 철회하는…….]
“됐다! 됐다고!!”
화면 속 웨슬리 사무총장이 그 발언을 하는 순간, 하성일은 고함을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렇게 승리를 자축하기도 잠시, 하성일은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어 하덕수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아버님 됐습니다! 대표님이 해냈어요!”
「봤다. 역시 끝까지 버텨보길 잘했어.」
버티는 자가 이기는 거라고 했던가.
모두가 토벌 사업에 발을 뺀 이 시점에, 카르마 코퍼레이션이 기어이 상황을 뒤집어버렸다.
「이제부턴 진짜 카르마가 독주하겠구먼…….」
“말해 뭐하겠습니까! 이제 방해할 놈들도 없으니,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사업에도 박차를 가해줄 겁니다!”
「뭐, 우리한테도 좋은 소식이야.」
하덕수 회장이 희미하게 웃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유일하게 카르마 코퍼레이션에 투자를 아끼지 않던 그들로선, 로또를 맞은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아무튼, 이제부터가 중요할 게다. 토벌 쪽은 카르마에 맡기고, 우리가 유통 쪽을 독점하자고. 준비할 게 많으니 너도 이제 그만 복귀하거라.」
“…….”
「……왜 대답이 없느냐?」
하성일은 잠시 망설이던 끝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복귀…… 안 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
“사실 그동안 아버지나 할아버님의 뒤를 잇는다는 생각은 일절 없었습니다. 그럴 능력도, 자격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김 대표님 옆에 있으니 욕심이 생기더군요.”
하성일이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할아버님의 뒤를…… 제가 잇고 싶다는 욕심 말입니다.”
「내 자리를 노리기엔 아직 한참 이르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이 어떤 줄 아십니까? 대표님에 대한 직원들의 신뢰가 어마어마합니다. 오죽하면 상황이 어려울 때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기 위해 나서더군요.”
직원들은 리더를 신뢰하고, 그 리더는 능력으로 보답하는 조직.
하덕수 회장이 평생을 목표로 하던 조직이었다.
“배워가겠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알지? 내가 그동안 널 도와줬던 건, 네가 욕심이 없어서였다는 거. 내 자리를 욕심내는 순간부터 혼자서 해야 할 거다.」
“물론입니다. 다만… 혼자는 아닐 겁니다.”
「…하, 하하하!」
하덕수 회장의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내 손자 같구나.」
“감사합니다.”
「그래, 거기서 뭘 할 생각이냐?」
“제 지분을 모두 털어서, 전국 토벌 관련 업체를 카르마 코퍼레이션 앞으로 인수할 생각입니다.”
「하하하! 이제부턴 적으로 만나겠구나.」
“어디까지나 계획일 뿐입니다. 사실 그런 건 다 둘째치고…….”
하성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단 여기 취직부터 해야겠죠.”
***
“혀, 협회장님! 김 대표님이 해냈습니다!!”
서울 기획 본부에도 같은 소식이 전달됐다.
편 팀장이 격양된 목소리로 환호하자, 이두식 협회장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해낼 줄이야.”
이내 피식, 실소를 뱉었다.
설마하니 국제 협회를 상대로 공식 입장을 번복하게 만들 줄이야.
감히 상상조차 못 할 일이지 않은가.
그 사실이 믿기지 않는 건 편 팀장 또한 마찬가지인 듯했다.
“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사무총장이 번복하게 만든 겁니까?! 이거 진짜…!”
“지금 감탄이나 하고 있을 때야?! 기회라고! 기업들이 이때다 싶어서 다시 토벌 시장을 노리려고 할 거야!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지!”
“뭐, 뭘 하시려고요…?”
이두식 협회장의 눈빛이 번뜩였다.
“전국 던전 토벌권, 싸그리 매입해서… 카르마 코퍼레이션에 넘겨줘.”
“네?! 그러면 저희가 토벌을 못 하는…….”
“상관없어. 어차피 흡수될 거잖아.”
“아, 카르마 코퍼레이션을 흡수할 거라고 하셨죠.”
“아니. 그 반대야.”
이두식 협회장이 무언가를 각오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흡수하는 게 아니라… 흡수될 생각이다.”
그래, 이번 일을 총대 메고 해결한 것에 대한 보상이다.
어디 한번 네 마음대로 해보라고.
국제 협회를 무너뜨리든, 아니면 직접 정상에 올라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