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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147화 (147/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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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헌터 협회 본부, 사무총장실.

공식 입장 표명을 한 지 불과 1시간 만에 전화가 울렸다.

웨슬리 사무총장은 담담하게 수화기를 들었다.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르마 코퍼레이션 대표, 김준우라고 합니다.」

아, 웨슬리 사무총장이 작게 감탄했다.

여태껏 보고로만 전해 들었던 남자가 직접 연락을 준 것이다.

그는 반가운 건지, 분노한 건지 모를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렇게 대화하게 되는군요. 토벌권이 막히니까 협상이라도 하려는 건가요?”

「맞습니다.」

“그동안 당신이 우리한테 했던 짓을 생각해 보세요. 이 정도 결과는 각오하셨어야죠.”

「비밀 조직까지 만들어서 사실을 은폐하고 우리에게 누명까지 씌우신 분이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군요.」

“미스터 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는 김준우의 목소리에, 웨슬리 사무총장은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뭐가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누구의 말이 더 사실처럼 들리는지가 중요하죠.”

「…….」

그런 세상이다.

제아무리 누명이라고 울부짖어도, 내가 카르텔이라고 하면 카르텔이 되는 세상.

국제 협회 사무총장인 본인의 말을 더 신뢰할지, 아니면 어느 나라 출신인지도 모를 청소부의 말을 더 신뢰할지는 안 봐도 뻔하지 않은가.

“그건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나요?”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협상도 통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겠군요. 뭐, 마음 같아선 더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지만, 저도 바쁜 몸이라. 그만 끊겠…….”

「이능석입니다.」

“……?”

웨슬리 사무총장의 손이 뚝 멈췄다.

「우리가 최근에 추가로 확보한 뱅크 아이템, 이능석이 맞습니다. 그걸 시간석과 같이 넘겨드리겠습니다.」

“…….”

웨슬리가 잠시 대답을 멈췄다.

도대체 뭔 생각인 거지? 갑자기 그 귀한 걸 넘긴다고?

“갑자기 왜 그런 결정을?”

「협상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뱅크 아이템을 넘겨드릴 테니 한국 협회를 카르텔로 규정하신 거, 철회해주십시오.」

“하하…….”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한국의 모든 토벌 활동을 카르텔로 규정한 건 보복성이기도 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그들의 모든 토벌 권한을 넘겨받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자연히 현재 한국 협회가 보유하고 있는 뱅크 아이템을 회수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저쪽에서 먼저 뱅크 아이템으로 협상을 들어온다는 건…….’

이미 우리의 진짜 목적도 눈치를 챘다는 뜻이리라.

설마하니 정면 돌파로 나설 줄이야.

웨슬리 사무총장의 입가에 진심 어린 미소가 지어졌다.

서로의 관계를 제쳐두고, 그의 결단력과 행동력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저놈이 옆에 있었다면 내 목표는 진작 달성했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그건 그거고.

마음에 든다고 해서 이득 없는 거래를 할 순 없었다.

“수지가 안 맞는군요. 어차피 급한 건 그쪽이고, 우린 가만히 있어도 뱅크 아이템을 포함한 모든 걸 넘겨받을 수 있는데 우리가 굳이 협상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

김준우의 대답이 끊겼다.

잠시 고민하는 듯한 시간이 흐르길 몇 초.

「뭐… 맞는 말씀입니다.」

그가 순순히 인정했다.

「사무총장님이 협상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국제 협회는 조만간 저희가 그동안 인수한 지부들을 포함해, 저희 직원들, 장비, 연구소를 모두 손에 넣게 되겠죠.」

“그걸 알고 있는 분이 왜 이런 협상을…….”

「다만, 뱅크 아이템은 손에 넣지 못하실 겁니다.」

“뭐라고요?”

「협상이 결렬되면, 뱅크 아이템을 파괴할 생각이니까요.」

“……하, 하하하!”

정면 돌파로도 모자라, 절벽 끝까지 내몰린 상황에서 도리어 협박을 하겠다?

이제야 PB 코퍼레이션 전체가 이놈 한 명에게 휘둘린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애초에 그놈들과는 그릇부터가 다르잖아.’

이런 놈이 PB 코퍼레이션…… 아니, 본부에 있어야 하는데.

정말이지 너무 아깝기 그지없었다.

「그러니 줄 때 받으시죠. 이렇게까지 일을 벌이셨는데,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가져가면 상당히 배가 아프실 것 같으니.」

“……신기하군요. 분명 칼은 우리가 쥐고 있는데, 대체 어떻게 그렇게까지 당당할 수 있는 거죠?”

「무슨 소립니까.」

김준우가 서슬 퍼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죽다 살아났을 때부터 칼은 줄곧 내가 쥐고 있었습니다.」

“……?”

웨슬리 사무총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냥 흘려듣기에는 말속에 뼈가 있었다.

온갖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상대가 대답을 재촉했다.

마침 더 고민해도 그럴듯한 답이 없을 거라 생각한 참이다.

“…뭐, 좋습니다. 협상을 받아들이죠.”

「그럼 거래 날짜는 일주일 뒤로 하겠습니다. 장소는…….」

“인천항으로 하죠. 서로 편하게.”

「아뇨. 장소도 제가 정합니다.」

“…….”

「당장은 정하기 힘들겠군요. 내부적으로 상의하고 정해지면 다시 연락드리죠. 전달 루트는 그쪽에서 준비해주시고요.」

“뭐,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아, 잠깐만.”

웨슬리 사무총장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말을 이었다.

“혹시라도 거래 중에 뒤통수칠 생각은 하지 마세요. 한국이 통째로 날아가는 걸 보고 싶지 않으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웨슬리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곧바로 에마 대표의 번호를 눌렀다.

「웨슬리? 바쁜데 왜 자꾸 연락이야.」

“저쪽에서 거래가 들어왔어. 뱅크 아이템, 넘겨주겠다고.”

「……정말?」

그녀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왜? 뭐 문제 있어?”

「아니, 그런 것보다…… 굳이 거래할 필요가 있어?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모든 게 손에 들어올 텐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김이 협상이 안 되면 뱅크 아이템을 파괴하겠다더군.”

「하! 미친놈, 그게 어떤 물건인지도 모르면서 말은 쉽게 하네.」

“내 말이. 어쨌든 그놈 성격상 수틀리면 정말로 파괴할 놈이야. 좋든 싫든 협상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

에마 대표가 흐음, 길게 신음했다.

「아쉬운데. 물론 뱅크 아이템이 목적이긴 해도……. 결국 또 김준우 그놈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꼴이잖아. 무엇보다 순순히 내어주겠다는 것도 뭔가 불안하고.」

“뭐,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우리도 준비해둬야지.”

「그 말은?」

“뭐겠어. 뱅크 아이템만 넘겨받고 입 싹 닦자는 거지.”

「거래를 엎자고? 김준우를 상대로?」

“못 할 게 뭐 있어.”

웨슬리 사무총장은 이때다 싶어 준비해둔 칼을 꺼내 들었다.

“노아가 들어왔는데.”

***

“거래 날짜, 일주일 뒤로 잡혔습니다.”

전화를 끊으며 이아영 이사에게 내용을 전달했다.

협상은 성공적이었다.

그런데도 이아영 이사는 어딘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그쪽이 과연 순순히 철회해줄까요? 아무리 봐도 물건만 받고 시치미 뗄 것 같은데…….”

“뭐,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죠.”

모든 걸 손에 넣을 수 있음에도 이런 거래를 하는 건 그들로선 퍽 아쉬울 테니까.

지금까지의 행동으로 봐선 곱게 거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게 분명했다.

‘어쨌든 저쪽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둘 수는 없지.’

그걸 알고 있는 이상, 당연히 순순히 넘겨줄 생각은 없다.

“우리도 준비를 해둬야겠군요.”

“준비한다고 될까요? 저쪽에서도 분명 칼을 갈고 있을 텐데. 괜히 어쭙잖게 수작을 부리다가 잘못되면…….”

“한국을 통째로 날려버리겠다는군요. 뭐,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 거래는 우리가 조금 더 유리합니다.”

“…네?”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거래 장소를 저희 쪽에서 정하기로 했거든요.”

“……?”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이클립스부터 굴려봅시다. 직원들한테 전달해주세요. 앞으로 일주일 동안 모든 추출, 제작, 강화 공정 풀 가동 들어가 달라고.”

“…….”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 있습니까?”

“있죠. 아주 큰 문제가.”

그녀가 굳은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이클립스를 굴릴 돈이 없어요. 모든 투자자가 저희 쪽 투자를 철회했거든요.”

“……아.”

“무엇보다 직원들도 대부분 다 나갔어요. 회사 상황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대론 월급도 못 받을 거 뻔히 아는데, 굳이 남아 있을 이유가 없죠.”

“…….”

“뭐, 공정 담당은 제가 맡으면 된다지만, 라인을 서 줄 직원이 없으니…… 더 이상 이클립스는 가동이 불가능해요.”

그러고 보니 그랬다.

국제 협회와의 거래는 둘째치고 지금 우리는 어쨌든 카르텔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지 않은가.

앞으로의 모든 토벌 사업이 전면 중지됐으니 투자가 빠져나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큰일이군요.”

“저도 아버지한테 슬쩍 도와달라고 부탁해보려 했는데…… 협회도 상황은 마찬가지예요.”

그렇긴 할 거다.

우리보다 못하면 못했지 좋은 상황은 아닐 거다.

“저희, 이제 한 푼도 없어요. 아니, 한 푼도 없는 수준이면 오히려 다행이죠. 하루 만에 빚만 수백억이 됐으니까.”

“…….”

국제적으로 누명을 쓴 것도 모자라 하루아침에 빚쟁이 신세라니.

“한별 상사한테…… 연락해도 소용없겠죠?”

“기업 동맹은 결국 서로에게 이득이 있을 때나 성립하는 거니까요. 한별 상사뿐만이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도와주지 않을 거예요.”

불과 엊그제까지만 해도 국내 토벌 시장을 평정한 상황이라면 모른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미지도 꽤나 좋았고, 많은 이들 또한 우리를 지지해주기도 했고.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우리 때문에 한국은 한순간에 토벌 불가 국가가 되어버렸고, 모든 던전 관련 기업들은 카르텔이 되어 버렸다.

순식간에 카르마 코퍼레이션은 공공의 적이 되었다.

이젠 우리에게 붙어도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빨리 손절을 칠수록 본인들의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뭐, 없진 않습니다.”

그 순간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고개를 돌리니 한 남자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다름 아닌, 하성일 사장이었다.

“하 사장님? 여긴 어쩐 일로…….”

“이사님 말씀대로, 한별 상사는 앞으로 카르마 코퍼레이션과의 동맹을 철회할 겁니다. 더 이상 한별 상사는 대표님을 도와주지 않겠지만…… 저는 아니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장직, 사퇴했거든요.”

“……?”

그가 씨익 웃으며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다.

“아시지 않습니까. 처음부터 안 하려고 했던 거. 이사회 등쌀에 어쩔 수 없이 맡았는데, 아무래도 사업은 저랑 안 맞는 것 같네요.”

“그럼 지금은…….”

“그냥 백수입니다.”

벙찐 우리와 다르게, 그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실실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표님이 가장 잘 아시겠지만, 지금 상황이 정말 좋지 않습니다. 혹시 대책이 있습니까?”

“예. 다만, 준비할 여건이 안 됩니다. 금전적으로도 그렇고, 인력적으로도.”

“……그렇군요.”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던 하성일 사장이 다시 미소를 지었다.

“뭐, 금전적인 부분은 제가 어떻게든 해드리죠.”

“예?”

“퇴직금이랑, 넣어두었던 제 주식, 모두 빼서 카르마 코퍼레이션에 투자하겠습니다.”

“……?”

“……?”

나와 이아영 이사가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 잠시만요. 아직 저희가 뭘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르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무턱대고 큰돈을…….”

“대책이 있으시다면서요.”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투자자 설득은 그걸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얘도 어지간히 미친놈이네.

뭐, 확실히 이 정도면 이클립스를 굴릴 돈은 되겠다만…….

“마음은 감사합니다만, 이건 받을 수 없습니다.”

“네? 왜죠?”

“돈이 있어도 직원이 없으면 준비할 수 없습니다. 이제 와서 다시 고용하고 싶어도, 당장 언제 망할지 모를 회사에 지원자가 있을 리도 없고요.”

하 사장은 지그시 바라보며 쓴웃음을 흘렸다.

“대표님, 너무 본인을 과소평가하는 거 아닙니까?”

“……예?”

“아까 여기 들어오면서 보니까, 직원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던데요.”

그가 영문 모를 소리를 하며 시선을 사무실 밖으로 옮겼다.

때맞춰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하는 소란스러운 발소리들.

이윽고 그 소란의 정체들이 사무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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