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136화 (136/366)

136

136

“카르마 코퍼레이션에서 여긴 무슨 일로?”

명함을 건네자, GT 던전 관계자로 보이는 남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 업무차…….”

“그럼 각자 업무에 집중하도록 하죠.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마시고.”

남자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명백히 경계심을 보이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GT 던전.

던전 민영화에 발맞춰 신설된 GT 그룹의 계열사이자, 국내 토벌 시장에서 꽤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이다.

‘하청 업체들을 쪼아서 성장세를 올렸다는 말은 들었지만…….’

직접 보니 꽤나 효과적인 방법이긴 하네.

물론 당하는 입장에서는 X 같겠지만.

“저도 남의 일에 끼어들고 싶진 않은데, 업무 내용상 그래야 했습니다.”

“……네?”

어깨를 으쓱이며 시선을 돌렸다.

“최용구 반장님?”

“네, 네?”

“카르마 코퍼레이션도 강안 물류에 부산물 수주를 맡기고 싶습니다. 양은 꽤 되겠지만, 그에 맞춰 비용은 섭섭지 않게 쳐 드리겠습니다.”

준비해둔 서류를 건넸다.

서류를 받아든 최 반장은 두 번 놀랐다.

적혀 있는 금액에 한 번.

그리고 월 추정 수주량에 한 번.

뭐, 당연한 반응이리라.

대충 민간 길드와 기업이 맡기고 있는 수주의 배가 훌쩍 넘는 양이니까.

“……저, 저희 일정상 이 정도 양은 소화하기 힘듭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충청도 지역에서 부산물 처리를 맡길 곳이 여기밖에 없지 않습니까. 부디 재고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부탁하신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이 양을 맞추려면 다른 업체랑 계약을 해지해야 하는 수준입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

최 반장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은 건가 하는 표정이다.

“어쨌든 이곳도 이익이 우선 아닙니까? 좀 더 돈이 되는 계약을 선택하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닙니까?”

“…….”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던 GT 던전 쪽 남자가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린 듯, 곧바로 목소리를 높였다.

“자, 잠깐만! 이건 상도가 없어도 너무 없지 않습니까! ”

“……? 왜 그러십니까? 최 반장님은 아직 그쪽이랑 계약 해지하겠다곤 한마디도 안 하셨는데.”

“지금 어디서 말장난을…!”

“그리고 말입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말을 이었다.

“계약 해지로 협박을 하셨으면, 최소한 그럴 각오는 돼 있으셨던 거 아닙니까?”

“…….”

그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협상에 쓸 무기는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걸 써야지, 왜 책임도 못 질 말로 협박을 해.

다시 최 반장을 바라봤다.

아직 망설이는 듯했다.

그의 직책으로 볼 때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이긴 할 거다.

뭐, 애초에 이 자리에서 바로 계약할 수 있을 거라 생각 안 했다.

어디까지나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는 게 목적이다.

이 정도면 잘 먹힌 거겠지.

“제 선에서 판단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표님과 상의 후에 다시 연락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최 반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 상무를 쏘아보곤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 한별 그룹이 뒤에 있다고 너무 막 나가시는 거 아닙니까?”

그 직후, GT 던전의 남자가 날카롭게 각을 세웠다.

제 딴에는 경고라도 하려는 모양이다.

“이 바닥에서 이런 식으로 일하시다간, 언젠간 크게 당하실 겁니다.”

“그쪽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강상우 상무입니다.”

갑자기 이름을 물어서 그런지 퍽 당황한 듯 보였다.

너무 당황하지 마, 안 잡아먹어. 당장은.

“강 상무님, 이미 당하신 분에게 그런 말 들어도 별로 와 닿질 않는군요.”

“뭐, 뭐요?! 지금 뭐 싸우자는…!”

“그리고 말입니다.”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제 뒤에 한별 그룹이 있는 게 아니라, 한별 그룹이 제 뒤에 붙은 겁니다.”

“…….”

“잘못 알고 계신 거 같아서요. 그럼 수고하십시오.”

이 정도면 끝났을 거라 여겼는데, 생각보다 상대는 근성이 있었다.

따라붙듯 그가 입을 열었다.

“여기 아니면 다른 시설 없는 줄 압니까?”

“네, 네. 다른 곳 열심히 돌아다니십시오.”

나는 손을 휘저으며 시설을 나섰다.

일도 끝났는데 괜한 도발에 발이 묶일 필요는 없다. 안 그래도 할 일이 많다고.

수첩을 펼쳤다.

하성일 사장에게 받은 전국 부산물 처리 시설 리스트였다.

‘시작이 좋네.’

가장 윗줄에 가로선을 긋곤 걸음을 옮겼다.

***

GT 던전과 카르마 코퍼레이션이 다녀간 직후, 최 반장은 급히 대표에게 연락을 넣었다.

강안 물류, 곽철수 대표는 두 업체가 왔다 갔다는 소식에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곧바로 사무실로 출근했다.

최 반장을 통해 그간 일을 전해 들었다.

“그러니까… 카르마 코퍼레이션이 대놓고 전속 계약을 제안했다는 건가?”

“직접적으로 제안한 한 건 아니지만, 정황상 그렇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 자리에 강 상무가 있었는데도 그렇게 나온 걸 보면요.”

“흐음…….”

회사를 설립한 이래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로였다.

사실 곽 대표 입장에서도 GT 던전이 썩 마음에 안 들었다.

원청의 입장을 내세워 쪼아 먹는 걸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계약을 끊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섣불리 행동했다가 어떤 역풍을 맞을지도 모르고…….’

제아무리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카르마 코퍼레이션이라고 해도 그래봤자 중소기업. 상대는 GT 그룹이 아닌가.

그리고 이 바닥에서 하루 이틀 사업할 게 아니라면 괜히 대기업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진 않았다.

그 심정을 잘 안다는 듯 최 반장이 슬쩍 거들었다.

“카르마 코퍼레이션도 한별 그룹의 지원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커버 정도는 쳐주겠죠.”

“커버라…….”

곽 대표가 쓰게 웃었다.

“여태까지 대기업이 하청 업체를 상대로 커버를 쳐준 적이 있나?”

“…….”

최 반장은 대답하지 못했다.

생각해볼 것도 없었다.

“솔직히 난 카르마 코퍼레이션도 못 믿겠다. 원래 기업이라는 게, 겉으론 다 같은 가족인 척하면서 막상 문제 생기면 남의 자식 취급하는 놈들이잖나.”

“그래도 김준우 대표는…….”

“다른 놈들이랑 다르다? 그걸 자네가 어떻게 알아. 같이 일해본 적 있나? 그래봤자 뉴스에서 몇 번 본 게 다 아니야?”

“……그렇죠.”

“뉴스에서 말하는 거 다 믿으면 우리나라에 나쁜 놈이 없어요.”

“…….”

최 반장이 입을 다물자, 곽 대표는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김 대표의 지난 커리어와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행보를 볼 때, 분명 다른 기업과는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 믿고 GT 그룹의 심기를 건드리는 도박을 할 순 없다.

‘그래……. 기분은 좀 더러워도 안전하게 가는 게 낫지.’

“어쩔 수 없다. 거절하자.”

“……알겠습니다.”

결국, 곽 대표는 안전을 선택했다.

그리고 같은 선택을 한 업체는 비단, 이곳뿐만이 아니었다.

***

GT 던전, 기획본부.

“김준우 대표를 만났다고?”

“네.”

강상우 상무는 고택수 부사장에게 현 상황을 보고했다.

“어쩌다가?”

“며칠 전에 납품 일정 조율차 강안 물류에 방문했는데, 마침 김 대표도 계약차 그곳에 왔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대놓고 계약 해지를 권고하더군요.”

“하, 하하…! 이런 상도 없는 놈을 봤나.”

“듣자 하니 이후로도 전국 부산물 처리 시설을 돌아다니면서 똑같은 제안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친놈이 따로 없군.”

고택수 부사장은 기가 찼다.

배짱이라 해야 할지, 객기라 해야 할지 모를 행동에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이해가 안 되는 건 따로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카르마 코퍼레이션은 국내 토벌에는 별로 관심 없지 않았나? 왜 이제 와서 부산물 처리 시설을 돌아다니고 있는 거지?”

“저도 그게 좀 이상해서 살짝 알아봤습니다.”

강 상무가 몇 가지 서류를 꺼내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이번에 한국 협회가 중앙아프리카 쪽 지부를 인수하면서 그쪽 부산물 수입권을 따냈다고 합니다. 한별 상사도 ‘프렉탈’ 독점 수입을 체결했고요.”

“흐음…….”

한국 협회, 한별 상사 그리고 카르마 코퍼레이션.

세 곳이 최근 동맹을 맺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공동의 목적을 위해 협력이나 동맹을 맺는 거야 흔한 일이다. 이 일만 두고 보면 딱히 상관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쪽 사업에 관심을 갖고 발을 들이려고 한다면 간과할 수 없다.

세 곳 모두 무시하지 못할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보니, 그 파급력도 어마어마할 거다.

“며칠 전에 협회 지원팀에서 사고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지원팀 연구소를 재건하게 됐는데, 그 사업을 카르마 코퍼레이션이 맡았다고 합니다. 한별 상사에서 이미 투자도 따냈고요. 듣자 하니 세계 최고 규모로 만들 거라고…….”

역시 하고 부사장이 중얼거렸다.

“최첨단 시설에 최고급 부산물이 만나게 되겠군.”

아니나 다를까, 한 가지 일에 이미 세 곳이 모두 얽혀 있다.

‘어쩌다가 그놈들끼리 손을 잡아선…….’

상대하기 귀찮은 연맹이 만들어졌다.

강 상무는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이번 기회로 국내 부산물까지 모조리 끌어모은다면… 상황이 더 심각해집니다.”

“쯧, 그렇겠지. 국내 모든 토벌 시장이 카르마 코퍼레이션을 통해 움직이게 될 테니까.”

그건 곤란하다.

삐그덕거리던 시작을 어떻게 극복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시장을 홀랑 뺏길 순 없는 노릇이다.

“카르마 쪽이 계약을 따내지 못하게 막을 방법은 있나?”

“사실 따로 방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저희가 움직일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뭐? 왜?”

강 상무가 꽤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듣자 하니 시설 대부분이 그쪽 제안을 거절하고 있답니다. 뭐, 하청 업체 입장에선 굳이 저희 심기를 건드리면서까지 도박을 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요.”

“하, 하하하! 그렇지. 암.”

그래, 그러니까 하청이지.

제아무리 쪼아대고 굴려도 결국 먹이를 주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는 이상, 설설 길 수밖에 없다.

‘뭐… 국내 시장은 이미 우리가 다 먹어뒀으니.’

카르마 코퍼레이션이 기껏 한별 던전을 흡수해놓고 협회 엉덩이나 닦아주고 있는 동안, 국내 토벌 시장은 GT 던전이 거의 다 장악했다.

당연히 전국 대부분의 부산물 처리 시설도 모두 다리를 뻗어 놓았다.

이제 와서 그들이 국내 토벌 시장에 끼어들려고 해도 이미 너무 늦었다.

‘그러게, 회사를 차렸으면 사업을 해야지.’

뭔 해외 지부 인수 같은 일이나 하고 있는가.

그런 짓을 해봤자 결국 협회 좋은 일일 뿐인데.

“물론 연구소 재건은 좀 신경 쓰이긴 하지만, 국내 부산물 처리 시설을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완공된다고 해도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진 못할 겁니다.”

“하긴, 최고급 장비만 만들어선 경쟁력이 없지.”

고택수 부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선 무언가가 거슬리는 모양인지 표정이 편치 못했다.

‘할 수 있는 한 견제를 해두고 싶은데…….’

머리 굴리길 잠시,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각 시설에 연락해서 납품 기한 최대한으로 당기라고 통보해.”

“네?”

“그놈들이 연구소 완공하기 전에 국내 부산물, 우리가 독점하자고.”

혹시 모르는 일이다.

여지를 남겨줄 거 없이 확실히 해두는 거다.

“나쁠 거 없잖아. 나중에 가서 그쪽 놈들한테 비싸게 팔 수도 있고.”

“알겠습니다.”

절대 남 좋은 일 시킬 수 없지.

고택수 부사장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