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135화 (135/366)

135

135

“일을 너무 크게 벌이는 거 아니에요?”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이아영 이사가 기다렸다는 듯 쏘아붙였다.

“토지랑 건설비용, 장비 구매까지 다 우리가 부담하겠다뇨! 그게 다 얼만데!”

“돈이야 뭐 한별 그룹에서 빌리면 되죠.”

“쉽게도 말하네…….”

당연히 돈 빌리는 것 자체는 쉬운 일이니까.

단지 갚는 게 문제일 뿐이지.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그쪽 아버지 일 도와드리는 건데 오히려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거든요? 몇천억이 오가는 일인데!”

잘해준다는데 뭐라 하니 한숨밖에 안 나왔다.

가끔 보면 공사를 구분하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남 대하듯 한다니까.

“슬슬 국제 협회로 키우려는 건 이해하는데, 드는 비용이랑 시간에 비해서 우리 쪽 손해가 너무 커요. 여기까지 어떻게 성장했는데…… 이러다간 협회가 성장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파산할 수도 있어요.”

“뭐, 그거야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간 할 일이었잖습니까. 그리고 장기적으로 보면 이건 협회보다 우리한테 이득인 일입니다.”

“……네?”

“100% 우리 자금으로 만든 지원팀이, 실질적으로 어디 소속일 것 같습니까?”

“…….”

결국, 시스템을 만들고 자본을 쥐면 실질적 소유권은 자연스럽게 넘어오게 된다.

설사 공식적으론 다른 소속이라 하더라도.

“공식적으로는 협회 소속이겠지만, 실질적인 관리 권한은 우리에게 있을 겁니다. 민간 기업이 세계 최고 수준의 공방 시설을 갖춘 지원팀을 손에 넣는다면 나쁜 투자는 아니죠.”

“……파급력이 어마어마하겠네요.”

“국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장비를 우리가 관리하게 될 겁니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이득이겠지만, 사실 이건 시작일 뿐이죠.”

거기서만 끝낼 거면 굳이 돈까지 빌리면서 진행하지 않았을 거다.

“최고 수준의 지원팀을 필두로 작전팀도 다시 한번 개혁할 필요가 있겠죠. 애초에 우리나라 헌터 수준 자체는 이미 국제 협회 저리가라인데, 지금까지 장비가 그걸 따라가지 못했죠. 이번 기회에 그 밸런스를 맞추는 겁니다.”

“전 세계 토벌 시장에 영향을 끼치겠네요…….”

“거기에 마지막으로 청소팀.”

책상 위에 널브러진 서류를 툭 건드리며 말을 이었다.

“체계적인 던전 청소 매뉴얼을 가진 건 우리가 유일합니다. 이미 직원들도 상당한 베테랑들이고요. 여기에 최첨단 청소 장비까지 갖추면 세계 최고 토벌 기업이라 자부할 수 있게 되겠죠.”

여기까지가 내가 원하는 단단한 기반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다시 협회와 합치겠다는 거죠?”

“……예.”

그래, 애초에 카르마 코퍼레이션이 만들어진 이유는 협회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였다.

고쳐쓰기 힘드니, 외부에서 새로 만들어 적용하는 게 더 간편하니 말이지.

이번에야말로 그 계획을 위한 중심 설계와 더불어 전력을 증강할 필요가 있었다.

그 목적을 알고 있는 이아영은, 회사를 키워놓고 남에게 홀랑 넘기겠다는 말도 안 되는 발언에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전력증강을 할 필요가 있어요? 조금 과하지 않나요. 어차피 국내 토벌은 지금 수준으로도 충분하잖아요.”

“딱히 토벌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럼요?”

나는 대답을 아껴야 했다.

토벌이 아닌, 사람과 싸우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말은 차마 뱉기 힘들었다.

‘우리가 몸집을 키울 동안 국제 협회가 가만히 있을 리도 없고…….’

모르긴 몰라도, 그쪽 역시 전력증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PB 코퍼레이션이 통째로 물갈이를 하지 않았던가.

이참에 조직 자체를 새롭게 개편하고 단단히 준비하겠지. 이미 당한 게 있으니까.

다만, 어떤 인원으로 어떤 조직을 만들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건, 엄청난 기술력과 자본력을 바탕으로 상상 이상의 모습으로 나타날 거란 사실이다.

그런 놈들과 아무 준비 없이 다시 붙게 된다면…… 나라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도 그에 맞춰 대비해야겠지.’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진 이상 한시라도 지체할 필요는 없다.

“일단 하 사장님한테 연락해서 사업 설명해드리고, 투자자 모집 좀 요청해주세요.”

“대표님은요?”

“저는 부산물 처리 시설을 좀 돌아보면서 납품 계약을 진행하겠습니다.”

아프리카 지부들에서 최상급 부산물을 계속 납품받을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장비를 제작하는 건 수지가 맞지 않는다.

국내 헌터 중 80%가 B급인데 모든 장비를 S랭크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보급형부터 최고급 프리미엄까지, 등급의 스펙트럼을 넓혀야 더 많은 헌터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당연히 하급 부산물도 납품받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해둬야겠지.

“뭐 하고 있습니까. 빨리빨리 움직여야죠.”

***

“카르마 코퍼레이션이 협회의 지원팀 재건을 맡았다고?”

한별 그룹의 전신, 한별 물산 본사.

하성일은 하덕수 회장을 대면하여 김준우가 일러준 이야기를 전달했다.

하지만 하덕수 회장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왜지? 그쪽이 협회를 도와줘서 이득 될 게 있나?”

“잘 모르겠습니다만, 김 대표는 협회 출신 아닙니까. 도의적인 차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 하하하…….”

미친놈인가?

퇴사하는 순간부터 회사 방향으로는 오줌도 안 누는 세상에, 전 직장을 위해 몇천억을 태우겠다고?

“그래서? 그 이야기를 왜 나한테 하는 거지.”

“사실… 김 대표님이 저희한테 해당 사업에 대한 투자를 부탁했습니다.”

“흐음, 돈을 빌린다는 건 단순히 도의적인 차원에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소린데.”

뭔가 꿍꿍이가 있나 보군.

하덕수 회장은 클클, 웃었다.

“어떻게 할까요? 아무래도 액수가 조금 크다 보니…….”

“넌 어떻게 하고 싶으냐?”

“뭐, 카르마 코퍼레이션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협회와도 동맹을 체결했으니 투자를 해주는 게 아무래도…….”

“말이 길구나.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해라.”

“……네?”

하덕수 회장은 뭘 고민하냐는 듯 말을 이었다.

“그쪽에서 원하는 만큼 최대한 투자해줘. 연구소 재건은 한별 건설이랑 다리 좀 놔주고. 그리고 너도 부산물 납품 업체 아는 곳 많지? 거기도 좀 소개해 주는 것도 좋겠지.”

“그, 그렇게까지요?”

“내 예상이 맞다면, 앞으로 국내에서 던전 관련된 모든 사업은 그놈들을 통해서 이뤄질 게다. 우리도 미리미리 줄을 대놓아야지.”

“……김 대표를 꽤나 신뢰하고 계시는군요.”

“동업하자고 했지, 우리 사업을 도와달라고 안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어떻게 됐냐. 아마 그놈이 아니었으면 프렉탈 독점 수입은 물 건너갔을 게다.”

“……맞습니다.”

하성일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 말은 곧,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마음 상하는 일이 아니긴 해도, 회장인 할아버지 앞에서는 창피한 이야기였다.

“그놈,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 놈이야. 다른 젊은 대표들처럼 기껏 회사 키워놓고 다른 놈한테 홀랑 넘겨버릴 놈도 아니고. 이득이 있는 한 우린 무조건 그놈 편에 선다.”

“알겠습니다.”

하 사장은 그 말을 끝으로 인사를 하곤 조심스레 회장실을 나왔다.

그리곤 곧바로 핸드폰을 들었다.

“대표님! 투자 따냈습니다!”

한껏 들뜬 목소리.

하지만 전화를 받은 김준우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담담했다.

「그렇습니까?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는요. 조부께서 이미 대표님을 상당히 신뢰하고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하하하. 이것 참 부끄럽습니다.」

곧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일단 국내 부산물 처리 시설이랑 납품 업체는 저희 쪽에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지원팀이 만들어지면 전국에서 모든 부산물을 납품받을 수 있도록 말이죠.”

「가공한 아이템이랑 무기의 납품권은 다시 한별 상사에 넘겨 드리면 되겠습니까?」

“하하하! 역시 시원시원하십니다!”

하성일 사장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 정도 규모의 사업에서 내 것과 네 것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서로 본심을 숨기고 뒤에서 이득을 챙기려는 여느 사업가들과는 그릇부터가 다르다.

「그럼 어디 한번 해봅시다.」

“넵!”

국내 토벌 시장의 판도를 바꿀 사업이 시작됐다.

***

충청남도, 아산.

어느 시골에 위치한 부산물 처리 시설, 강안 물류.

“오늘 몇 구나 들어왔냐?”

시설 반장 최용구가 작업 준비를 마치며 직원들을 향해 물었다.

“글로리 길드에서 9구, 화랑 길드에서 11구, GT 던전에서 17구, 협회 천안 지부에서 33구 들어왔습니다.”

“시벌, 많기도 하네. 납품 기한은?”

“길드 쪽은 닷새, GT 던전은 모레까지입니다. 협회 쪽은…… 지원팀 사고 때문에 당분간 납품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이네. 자, 빨리빨리 작업 들어가자.”

최 반장이 손뼉과 함께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시설 내 장비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가동되기 시작했다.

몬스터 부산물 처리 시설.

던전 청소팀이 수거한 몬스터 사체가 최종적으로 도착하는 곳이다.

몬스터의 갑피나 이빨, 뿔 그리고 몬스터의 몸속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아이템을 추출해주는 토벌의 마지막 공정이 이곳에서 처리된다.

부산물 처리는 일반적으로 공식 토벌에 포함되진 않는다.

따라서 사설 업체에서 처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곳 시스템은 간단하다.

협회와 민간 길드, 민간 던전 업체에서 수거한 몬스터 사체를 맡기면 부산물을 추출해 각 업체에 다시 납품한다.

작업 자체는 어렵거나 복잡하진 않다.

하지만 원체 토벌되는 몬스터 수가 많아 작업량이 상당하다.

정해진 일정을 맞추기 위해선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해야 하는 건 기본이고, 당연히 업무 강도도 상당했다.

부산물 처리 시설 직원의 하루 평균 근무 시간은 14시간.

심지어 그마저도 제때 퇴근하는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그런 살인적인 근무 시간보다 정작 그들을 괴롭히는 건 따로 있었다.

“최 반장님 계십니까?”

정장을 차려입은 한 남자가 시설에 모습을 드러냈다.

GT 던전의 강상우 상무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 강 상무로 인해 최 반장을 비롯한 직원 일동은 곧바로 경계심을 올렸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가 직접 찾아오는 일은 늘 좋지 않은 이유 때문이었으니까.

“납품 기한을 당겨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까지 가능하겠습니까?”

“네?! 안 됩니다! 작업량이 17구나 되지 않습니까. 저희가 GT 던전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곳에도 납품을 해야 하는데…….”

“그럼 그건 잠시 미루시고 저희 쪽을 먼저 처리하면 되잖습니까.”

“그게 말처럼…….”

“최 반장님.”

강 상무가 한숨을 쉬었다.

“최근에 전북 쪽에 부산물 처리 시설이 새로 하나 생겼답니다.”

“…….”

“최 반장님의 결정 때문에 저희가 다른 곳과 계약을 하게 되면, 여기 대표님께서 참 달가워하시겠군요.”

“…….”

최 반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직접 말만 안 했을 뿐이지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클라이언트 쪽에서 납품 기한을 당기는 일은 부지기수였으니, 새삼 화를 낼 일도 아니다.

하지만 GT 던전은 특히 심했다.

늘 말도 안 되는 일정을 강요하다 못해, 조금이라도 기한이 늦어지면 계약 자체를 가지고 마구 흔들어댔다.

부당하다 항의하기도 힘들었다.

어디까지나 저쪽이 갑인 이상 을은 아무런 힘도 없다.

더욱이 한낱 작업반장인 자신은 더욱 그렇다.

이렇게 나오면 그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해보겠습니다.”

여느 때처럼 격한 마음을 꺾고 받아들였다.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일정 조율을 그렇게 일방적으로 합니까?”

그런데 생각지 못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처음 보는 남자가 시설로 들어오고 있었다.

“GT 던전, 그렇게 안 봤는데… 참 일을 주먹구구식으로 하는군요.”

“……누구시죠?”

강 상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묻자 남자는 대답 대신 명함을 내밀었다.

“김준우라고 합니다.”

현재 최고 주가를 달리는 민간 던전 기업.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수장이 직접 행차한 것이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