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123화 (123/366)

123

123

“그러니까 회장님 말씀은…… 아프리카 통합 지부와 전속으로 아이템 수입 계약을 체결해서 국내 토벌 시장에 납품하자는 거군요.”

“맞네.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 민간 토벌 사업 때문에 만들어진 작전팀만 해도 100개가 넘네. 이게 고작 일주일 만에 이 정도니 앞으로는 더 늘어나겠지.”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대충 감이 왔다.

민간 작전팀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지만, 그에 비해 무기와 장비 그리고 아이템의 수요에 비해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

그런 상황에 한별 그룹이 국내 아이템 납품을 독점한다면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릴 수 있겠지.

“그래서, 정확히 어떤 아이템을 계약하시려는 겁니까?”

“‘프렉탈’이라고 들어봤나?”

당연히 들어봤다.

A랭크 이상의 무기를 만들 때 반드시 필요한 아이템이지만, 매장지가 매우 한정적이어서 굉장히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듣자 하니 콩고 민주 공화국 인근이 프렉탈의 최대 출토지라고 하더군. 우리 목표는 그 프렉탈의 독점 수입 계약일세.”

말은 쉽지.

저게 대기업 총수의 마인드인가.

“그런데… 이미 한별 종합 상사가 비슷한 일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왜 굳이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물론 이런 일은 한별 상사가 전문이긴 하지만, 이번 일은 그들만으로는 좀 힘들 걸세. 아프리카 통합 지부가 상황이 매우 안 좋거든.”

순간 아프리카 상황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곧 그 이야기가 하덕수 회장 입에서 흘러나왔다.

“반복되는 내전에 가뜩이나 혼란스러운데, 토벌 인원은 부족하지, 정부 개입은 심하지……. 무엇보다 분쟁 지역을 중심으로 아이템 밀거래가 성행한다는 소문도 있고.”

그가 말을 이었다.

“문제는 우리가 안정적으로 아이템을 납품하기 위해선, 통합 지부가 꾸준하게 아이템을 채굴할 수 있어야 해. 그러기 위해선 당연히 안정적으로 토벌할 수 있는 상황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그런데 지금 그쪽 상황으로선 안정적인 토벌은 불가능하겠죠.”

“맞네. 그래서 지부 상황을 먼저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어. 그리고 그건…….”

“저희가 전문이죠.”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다.

“그럼 저희가 얻는 건 뭡니까?”

“국내 아이템 납품 매출의 10%.”

생각보다 조건이 굉장히 파격적인데.

“어떻게, 해볼 건가 말 건가?”

“흐음.”

이아영 이사를 슬쩍 보았다.

그녀가 어깨를 으쓱거린다.

알아서 하라는 의미인 듯했다.

물론 하덕수 회장의 제안은 확실히 구미가 당긴다. 애초에 내가 원하던 명분과도 딱 맞아떨어졌다.

아프리카 통합 지부와 아이템 수입 계약을 체결해서 국내에 납품하는 것.

이를 위해선 지부의 토벌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문제는 안정화하고 더 나아가 한국 협회로 뺏어올 수 있느냐인데…….’

나 혼자 인수를 진행하는 것보다 대기업이 사업을 명분으로 인수를 제안하는 게 훨씬 자연스럽긴 하다.

무엇보다 본부가 손을 뗀 상황에서 대기업이 내민 손을 잡는 것 정도야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니까.

기업이 직접 나서서 진행한 계약이라고 하면 국제 협회도 뭐라 할 말은 없겠지.

생각을 마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일정은 최대한 빠르게 잡도록 하게. 우리 쪽에서 한 명을 붙일 테니, 자네 쪽에서도 한 명 데려오도록 하고. 비용은 모두 지원하겠네.

“알겠습니다. 준비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하게.”

하덕수 회장은 그 말을 끝으로 쿨하게 사무실을 나섰다.

***

강남 어느 바.

점심부터 술을 퍼마시던 하성태는 이미 거나하게 취해있는 상태였다.

‘빌어먹을 새끼들…….’

테킬라 병을 부서지라 쥐며 중얼거렸다.

상황이 이렇게 됐어도 정훈 의원에겐 값을 치를 생각이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주식을 모두 매각한다면 약속한 대가를 주는 건 문제가 없었다.

아니, 사실 약속한 것보다 더 줄 생각이었다.

어떻게든 다시 올라가기 위해선 계속 그의 손을 잡고 있을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미래민주당 정훈 의원, 수십억 원대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 소환]

[기업과의 유착 관계 및 뇌물 출처 행방은? 검찰, 본격적인 수사 착수]

갑자기 검찰이 뜬다고?

‘대체 왜 나한테만 지랄들이야…….’

꼬리가 길면 언젠간 잡힌다지만, 이건 타이밍이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마치 누군가 작정하고 고발을 한 것처럼.

하지만 본인과 정훈 의원의 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은 병실에 누워있는 아버지와 오재엽 실장밖에 없다.

당연히 의식도 없는 아버지가 정보를 흘렸을 리는 없고, 그렇다고 오 실장이 이제 와서 본인의 뒤통수를 칠 이유도 없었다.

피차 낙동강 오리알이 된 신세인데, 고발한다고 한들 아무런 이득이 없으니까.

어쨌든 정훈 의원이 잡혀 들어간 이상, 본인 차례가 오는 건 시간문제였다.

조부는 이미 자신에게서 손을 뗐고,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난 형제들이 도와줄 리도 만무했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이다.

‘시발…!’

하성태는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됐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저 술만 벌컥벌컥 들이켜며 현실을 애써 부정하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톡톡―.

그때,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두드렸다.

돌아보니 웬 중년의 백인 여성이 서 있었다.

“하성태 씨?”

“……누구?”

“프랑스에서 작은 사업을 하고 있는 에마 켈린이라고 합니다.”

여성은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순백의 배경에 회사 이름과 방금 소개한 이름만이 적혀있었다.

“PB 코퍼레이션…? 처음 들어보는 곳인데.”

“그럴 만도 하죠. 그냥 작은 인력 파견 업체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런 곳에서 저한테 무슨 볼일로…?”

“음, 단도직입적으로.”

여성이 하성태의 옆자리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혹시 저희랑 같이 일해 볼 생각 없나요?”

순간 번뜩이는 여성의 눈빛.

사업가라고 하기엔 너무나 소름 끼치는 기세에, 하성태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어떤 일인지?”

“뭐, 핵심만 말하자면…… 중앙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아이템 납품 계약을 따내는 일입니다.”

“뭐?”

쉽게 이해하기 힘든 내용에 하성태의 눈썹이 물결쳤다.

이내 여성은 자신의 사업 계획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지금 당신 말은…….”

대략적인 이야기를 전해 들은 하성태는 이마를 턱 짚었다.

“국내에서 나오는 아이템을 중앙아프리카 분쟁 지역에 납품하자는 겁니까?”

“그렇죠.”

“제가 오해하는 거면 죄송한데…… 마치 밀매 사업을 하자는 소리로 들리는군요.”

“정확히 들으셨네요.”

뭐지 이 미친 사람은?

“물론 아프리카 지역의 아이템이 훨씬 가치는 높지만… 그쪽은 지금 제대로 된 토벌을 못 하는 상황이라서 말이죠. 한국의 아이템이라면 충분히 수요가 있을 겁니다.”

“잠깐, 잠깐만요. 지금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은데, 제가 이래 봬도 한국에선…….”

“한국에선 어떻다는 거죠?”

여성이 하성태의 말을 끊으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한별 그룹 오너의 손자, 한별 종합 상사의 영업본부장이었지만 민간 토벌 사업을 추진하려다 웬 청소부 출신한테 밀려나지 않았던가요?”

“……?!”

“더불어 조부에게는 손절 당하고, 친구였던 정치인은 잡혀가고. 지금은 자리도, 명예도, 돈도 모조리 뺏겨 가진 것 하나 없는 빈털터리. 이런 데도 아직 당신이 한국에서 뭐라도 좀 되는 것 같나요?”

“지금 싸우자는 겁니까…!”

“설마요. 난 지금 당신에게 재기할 기회를 주는 거예요.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뇌물수수 혐의로 잡혀갈 텐데, 그럴 바엔 차라리 뭐라도 해보는 게 낫지 않나요?”

“…….”

여성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정말이지 기분 나쁜 솔직함이었지만, 하성태는 화가 나기보다는 오히려 차분해졌다.

이내 그는 힘이 쭉 빠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요… 당신 말이 맞습니다. 이젠 가진 것 하나 없는 빈털터리에 조만간 철창신세일 겁니다.”

“만약 저랑 손을 잡는다면 지금 당신 혐의, 풀어줄 수도 있는데요.”

“뭐요…?”

“뭐, 그건 차차 얘기하고. 대신 조건이 있어요.”

이내 여성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가 아무것도 없는 당신에게 이런 일을 제안하는 건, 당신에게 한별 상사가 있기 때문이에요.”

“무슨 소립니까. 전 한별 상사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거긴 아직 아버지가…….”

말을 하다 말고 하성태가 흠칫했다.

설마 하는 눈빛으로 여성을 바라봤다.

“특별한 유언장 없이 당신 아버지가 사망할 경우, 장남인 당신이 경영권을 주장할 수 있지 않나요?”

“당신 설마……!”

“처리는 저희 쪽에서 해줄게요. 당신은 한별 상사를 가져오기만 하세요.”

소름 끼치도록 무덤덤한 목소리.

하성태는 자기도 모르게 다리가 덜덜 떨려오는 걸 느꼈다.

***

“웨슬리. 나야.”

영입을 마치고, 먼저 바를 나온 에마 대표가 핸드폰을 들었다.

전화를 받은 이는 그녀의 오랜 친구이자, 동업자. 동시에 현 국제 헌터 협회 사무총장, 웨슬리였다.

「어떻게 됐어?」

“괜찮은 놈으로 물었어.”

「다행이네.」

“그런데 난 아직도 이해가 안 가. 아프리카 지부 말이야. 왜 굳이 돈 들여서 통합해놓고 손을 뗀 거야?”

「돈이 안 되니까.」

“음?”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그곳에 매장되어 있는 프렉탈만 해도 어마어마한 양이지 않은가. 돈이 안 될 것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런 곳이면 처음부터 건들지 않았을 것이다.

「뭐, 정확히 말하면 다른 곳이 더 돈이 되니까? 그쪽은 분쟁이 심해질수록 우리한테 더 이득이 되거든.」

“글쎄, 네가 정말 돈만 보고 이런 일을 하는 건 아닐 텐데.”

「하하, 눈치가 빠르네.」

이내 웨슬리 사무총장이 말을 이었다.

「옛날에 그런 음모론이 있었어. 혹시 들어봤나 모르겠네. 어느 강대국이 눈엣가시였던 타국을 합법적으로 침략하기 위해 자국 시민을 상대로 위장 테러를 펼쳤다는…….」

“…….”

무슨 소린가 싶기도 잠시.

“하! 하하하!”

이내 그녀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이것 때문이었나.

그래서 본인에게 직접 부탁한 건가.

“명분이 필요하다 이거지? 우리가 전 세계 토벌권과 헌터를 관리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명분.”

「그렇지.」

“좋아, 마음에 들어. 이런 거라면 확실히 우리 쪽 애들한테 맡기기도 뭐하네.”

에마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김은 만나봤어?」

“아니. 시간이 없더라고.”

「그래도 한국까지 갔는데, 얼굴이라도 한번 봐두는 게 어때. 나름 밸런스 팀 한국 파트를 해체 시킨 원흉인데.」

“뭐, 상황 좀 지켜보고.”

에마 대표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보고 싶지 않아도 언젠간 또 볼 테니까.”

이내 입가에 미소가 번져갔다.

***

“그럼 이걸로 정기회의를 마칩니다.”

카르마 코퍼레이션 월말 정기회의.

청소팀, 작전팀이 모두 모인 그 자리가 끝이 나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김민주와 한유빈 그리고 이아영은 자리를 지켰다.

김민주가 먼저 운을 뗐다.

“선생님은 이번에 아프리카 통합 지부로 가신다면서요?”

“네. 상황이 어려운지, 그쪽에서 먼저 토벌 지원 제안이 오더라고요.”

이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자 한유빈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거긴 국제 협회 지부 아닌가? 사이도 별로 안 좋은데 왜 굳이 거기로 간대.”

“뭐, 그렇긴 하죠. 대표님도 이런저런 문제 때문에 원래는 거절하시려고 한 것 같은데… 한별 그룹에서 손을 내밀어서요.”

“한별 그룹?”

“토벌 지원이랑 그쪽이 원하는 일이랑 이해관계가 겹치기도 하고… 딱히 손해 볼 건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무튼 그렇게 됐어요.”

흐음, 한유빈이 팔짱을 끼곤 고개를 끄덕였다.

“통합 지부가 있는 곳이면…… 콩고 민주 공화국이죠?”

“네.”

“분쟁 지역인 곳이라 꽤 위험할 텐데…….”

김민주가 눈치를 살피며 슬쩍 말을 이었다.

“누구를 데려가실지 궁금하네요.”

그 말에 회의실엔 순식간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아영 이사는 순간 흠칫하는 반응이었고, 한유빈은 슬쩍 김민주와 이아영의 눈치를 살폈다.

물론 그들이 진심으로 경쟁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김준우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리라.

김준우가 혼란스러운 곳에 함께 데려간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이내 이아영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아직 정해진 건 없어요. 참고로 전 업무 때문에 못 갈 것 같고요. 아마 둘 중 한 분이지 않을까 싶은데.”

“…….”

“…….”

김민주와 한유빈이 서로를 힐끔거리길 잠시.

“어, 마침 다들 모여 계셨군요.”

때마침 김준우가 들어왔다.

한꺼번에 쏠린 시선들.

김준우는 무슨 상황인가 싶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유빈 씨, 혹시 다음 주부터 시간 되십니까?”

“…….”

그녀가 주변을 훑으며 애써 미소를 숨겼다.

물론 티를 낼 순 없었기에 평소 같은 말투로 대답했다.

“될 거 같긴 한데…… 왜요?”

“그럼 김민주 팀장 대신 토벌 좀 나가주시죠. 저랑 며칠 자리 좀 비울 예정이라서요.”

“……!”

개새끼.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