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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미래민주당 정훈 의원 집무실.
“뭐…?”
이른 아침, 귀를 의심케 하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하성태가 잘려 나갔다고?!”
“그렇답니다.”
“그게 대체 무슨…….”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김준우 대표 이사 해임 주총이 불과 어제 소집되지 않았던가.
과반도 확보했으니 문제없다고 호언장담을 하더니, 대체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대체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야?”
“카르마 코퍼레이션 지분의 과반을 맞추려고 본인의 한별 던전 지분을 무리하게 팔았다나 봅니다. 김준우 쪽에선 그 틈을 노리고…….”
“허!”
기가 찬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고작 해봐야 신생 청소 업체 주제에 빈집털이를 했다고?
그것도 국내 1위 기업의 계열사를 상대로?
‘아니, 하덕수 회장은 그걸 보고만 있었던 건가…….’
정훈 의원의 상식으론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건, 대기업을 상대로 빈집털이를 계획한 김준우였다.
단순히 주식 시장을 예측하는 정도론 어림도 없다.
모든 걸 철저하게 의도하지 않은 이상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작전이다.
아니, 설령 본인이 모든 걸 예측했다고 해도 주변 사람이 믿어줄 리가 없다.
그런데 과반의 백기사들이 김준우의 말만 믿고 수십억을 태웠다고?
‘미친놈이다. 완전 미친놈이야…….’
사람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놈만큼 무서운 인간은 없다.
그건 기업인도, 정치인도 마찬가지.
정훈 의원은 진심으로 김준우가 정치를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그놈이 잘렸으면 내가 받을 건 어떻게 되는 거지?’
법안을 밀어주는 대가로 한별 건설이 개발 중인 신도시 땅을 약속받지 않았던가.
당장 현물화해도 수십억짜리 노다지인데… 이걸 그냥 포기해야 하나?
‘흐음…….’
정훈 의원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이내 선택을 굳혔다.
그래, 포기하자.
하성태가 잘려 나간 마당에, 괜히 무리해서 받으려고 하다간 자신까지 꼬리를 밟힐 수도 있다.
정말이지 너무나 아쉽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개털 된 놈이랑 붙어먹어봤자 아무런 이득도 없을뿐더러, 당장 몇 푼에 위험을 감수할 만큼 멍청하진 않다.
크게 봐야지, 크게.
그렇게 생각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누, 누구십니까…?”
“어어?! 자, 잠시만요!”
“막 들어가시면 안 되는…!”
쿵―.
갑자기 집무실 밖이 소란스러워지더니, 이내 문을 열고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정훈 의원 앞에 신분증을 내밀었다.
“서울중앙지부 검찰청에서 나왔습니다. 정훈 의원님 맞으십니까?”
정훈 의원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예, 맞습니다만.”
“뇌물수수 혐의로 압수 수색 영장 발급되었습니다. 잠시 자리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예?”
이내 청천벽력 같은 말이 들려왔다.
***
종로, 카르마 코퍼레이션 본사.
업무를 보던 중,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쯤이면 쥐 잡듯 털리고 있으려나…….’
뭐, 증거들은 꼭꼭 숨겨놨겠지만 결국 시간문제다.
조만간 정훈 의원에 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겠지.
정훈 의원과 하성태 본부장이 오랜 기간 붙어먹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회귀 전에도 둘의 관계는 꽤나 돈독했었으니까.
물론 그들의 꼬리가 잡힌 건 훨씬 나중 일이었지만…… 뭐, 몇 년 빨리 잡힌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감방도 빨리 갔다 나오고, 더 좋지 뭐.’
그래서 야당인 바른통합당에 슬쩍 제보를 넣었다.
당연히 단번에 믿어주진 않았지만, 그동안 받아 챙긴 부동산과 현금의 구체적인 액수를 읊어줬으니 안 믿곤 못 배겼을 거다.
뭐, 나머진 그들이 알아서 움직여 주겠지.
‘사실 정훈 의원까지 건드릴 필요는 없긴 했는데.’
내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준 것도 없고, 무엇보다 굳이 적을 만들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관계를 맺고 있는 하성태가 마음에 걸렸다.
그놈은 아무래도 위험하다.
이래 봬도 한별 그룹 총수의 장손이 아닌가.
재기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놈일뿐더러, 만약 재기에 성공한다면 물불 안 가리고 나를 물어뜯을 놈이다.
그러니 애초에 다신 기어오르지 못하게 밑바닥까지 털어놓을 필요가 있다.
뭐, 가뜩이나 이번 싸움으로 돈도, 자리도 잃은 마당에 그의 조부인 하덕수 회장과 그의 조력자인 정훈 의원까지 모두 본인 곁을 떠났으니…….
이젠 그냥 이빨 다 빠진 호랑이 새끼 신세겠지.
이젠 내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겠구먼.
“좋은 소식!”
그때, 이아영 이사가 들이닥쳤다.
“드디어 해외 협회에서 연락이 왔어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그녀가 자료를 책상에 턱 내려놨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도 잠시, 눈앞의 자료에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프리카 통합 지부?”
“네.”
“거긴 국제 협회 소속 아닙니까?”
“그렇긴 하죠.”
……감이 떨어진 건가?
국제 협회 소속을 다짜고짜 건드리면 어쩌자는 건데.
“아니, 국제 협회 지부를 물어오면 어떡합니까. 우리가 인수할 수 있는 곳을 찾아와야죠.”
볼멘소리를 했더니 이아영은 예상한 반응이라는 듯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알아보니까 그게 좀 애매해요.”
그리곤 자료를 넘기며 설명을 이어갔다.
“아프리카 쪽은 원래 사정이 그나마 괜찮은 나라들 중심으로 소규모 독립 협회만 몇 군데 있었어요.”
“알고 있습니다.”
“사실 말이 독립 협회지, 민간 길드보다 못한 수준이었죠. 그런데 작년쯤에 국제 협회가 중앙아프리카 쪽 협회를 싹 통해서 통합 지부를 세웠잖아요.”
뉴스로 보도되진 않았지만, 업계 사람이면 다 아는 이야기다.
근데 그 이야기를 왜 꺼내는 거지?
“그런데… 그게 다예요. 본사에서 지부장이랑 관리직 몇 명만 파견 보내고 신경을 끈 지 오래라고 하네요.”
“신경을 껐다고요?”
“네. 굳이 돈 들여서 통합해놓고 손을 놨다는 게 저도 좀 의아하긴 한데……. 뭐 아무튼 그런 실정이에요. 그래서 작전 인원이랑 장비도 다 자체적으로 충당하고 있다고 하고요.”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
단순히 봐선 돈과 인력 낭비로밖에 안 보이는데……. 혹시 무슨 다른 목적이라도 있는 건가.
‘이럴 줄 알았으면 해외 지부 상황 좀 알아둘걸…….’
회귀 전엔 관심이 없었던 일인지라 가진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하긴, 그땐 랭크 업에만 신경이 팔려서 주변 상황 따윈 관심도 없었으니.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자체 토벌이 힘든 모양이에요. 뭐, 그러니까 저희한테까지 연락이 왔겠죠.”
“그쪽 지부장은 우리랑 국제 협회 관계에 대해선 모르고 있는 모양이군요.”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슬쩍 한 번 떠봤는데 그쪽 지부장은 본사랑 저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잘 모르고, 무엇보다 PB 코퍼레이션 쪽이랑은 아예 관련이 없는 모양이에요.”
“자리만 지키고 있는 말단이라는 소리군요.”
“저, 그래서 말인데요.”
이아영 실장이 넌지시 말을 이었다.
“국제 협회가 아예 손을 뗐다고 하면…… 우리가 빼앗아 올 수 있지 않을까요?”
“…….”
꽤나 과격한 발언에 나조차 흠칫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국제 협회 지부라고 해도 어쨌든 임시가 아닌가.
마음만 먹는다면 못 뺏어올 것까지야 없다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진 않은데.’
대놓고 선전포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묘하게 구린 냄새가 너무 난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일단 조금만 더 생각해봅시다.”
“네?! 어렵게 연락 온 곳인데 왜요!”
“우리만 들어가기엔 명분이 부족하잖습니까.”
“명분이요?”
“고작 해봐야 토벌 지원해주는 회사가 갑자기 국제 협회를 탈퇴하고 한국 협회로 오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 안 하겠습니까?”
“그건…… 그렇죠.”
“설령 인수해도 문제입니다. 당연히 국제 협회 본부 귀에 들어가게 될 텐데, 그러면 제가 움직였다는 것도 알게 되겠죠.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그럼 뭐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
열심히 준비해왔는데 어떻게 뻰찌를 놓을 수 있냐는 듯한 반응이다.
“뭐 어떻게 하자는 건 아닙니다. 인수합병을 제안할 만한 명분이 있으면 좋겠다는 거지. 예를 들면…… 비슷한 목적이 있는 다른 회사가 우리랑 같이 움직여 준다거나?”
여러 관계가 얽히기 시작하면 사람은 본인에게 더 이득이 되는 상황을 찾기 마련이다.
우리 회사와 국제 협회,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당연히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여러 조직이 그들에게 관심을 갖는다면, 굳이 우리가 강요하지 않아도 그들 스스로 더 이득이 되는 쪽에 붙을 거다.
무엇보다 다른 회사가 전면에 나서준다면 우리가 하는 짓도 그나마 눈에 덜 띌 테고.
‘뭐, 그런 구실 좋은 회사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이대로 진행하긴 좀 그러니 일단 보류해둬야겠지.
“……알았어요.”
“기분 상한 건 아니죠?”
“제가 왜요? 어차피 결정은 당신이 하는 건데.”
표정부터 어떻게 하고 말하지.
“아, 그리고 오늘 손님이 오시기로 했어요.”
“…예?”
손님?
그런 약속이 있었나.
아니 뭐 얼마나 대단한 손님이길래 사전 스케줄 상의도 없이 찾아오는 거지.
……라고 생각하기도 잠시.
똑똑―.
“벌써 오셨나 보네요.”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이윽고 문을 열고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회, 회장님?”
한별 그룹 총수, 하덕수 회장이었다.
“앉게.”
인사도 생략한 채 던진 첫 마디.
그는 내 맞은편에 자연스럽게 앉곤 나와 눈을 맞췄다.
70은 넘은 노인임에도 박인범 협회장과 견줄 정도의 카리스마를 마주하자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회장님이 여기까진 어쩐 일로…….”
“내 장손을 쫓아낸 사람이 어떤 놈인지는 한 번 봐야 하지 않겠나.”
“…….”
서슬 퍼런 눈빛이 나를 관통했다.
설마 이제 와서 지난 일을 물고 늘어질 생각은 아니겠지.
…아니, 근데 먼저 손을 뗀 건 본인 아닌가?
“하하. 농담일세. 그냥 개인적으로 대화를 좀 하고 싶었네. 제안하고 싶은 것도 있고.”
“…….”
어째 성격까지 박인범 협회장이랑 비슷한 느낌인데.
“듣자 하니 청소부 출신이었다지?”
“예… 그렇습니다.”
“청소부에서 4개월 만에 한국 협회 작전 본부장. 두 달 만에 사퇴 후 청소 업체 설립. 그리고 석 달 만에 대기업 계열사를 흡수…….”
그가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응시했다.
“뭐, 나도 고물상으로 시작한 입장이니 출신 가지고 뭐라 할 생각은 없네만, 자넨 상식을 벗어나도 아득히 벗어났군.”
“전 그저 흘러가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농담도 심하군.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사람이 저번 주총에서 그런 도박 수를 던졌나? 만약 내가 그 자리에서 성태 손을 들어줬으면 어쩌려고?”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기업의 총수이자 조부가 지켜보는 곳에서 손자를 대놓고 잘라내려고 한 건 도박도, 운에 맡긴 것도 아니었으니까.
“기업의 최고 자산은 직원이다.”
“……뭐?”
“회장님께서 평생을 해온 말씀이잖습니까. 그런 분께서 구설에 휘말린 계열사를, 아무리 장손이라고 편들어줄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작 그거 하나 믿고 수십억을 태운 건가?”
“그거 하나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전생에서도 하덕수 회장은 한국에 두 번 없을 인격자로 유명했다.
하루가 멀다고 미담이 쏟아져 나오는 마당에, 무엇이 아쉽다고 거하게 사고를 친 손자를 도와주겠는가.
“하하… 하하하! 역시, 성태 그놈이랑은 그릇부터가 달라.”
“과찬이십니다.”
“아니, 난 오히려 지금까지도 자네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나 보네. 아주 마음에 드는군. 뭐, 그래서 말인데…….”
이내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퍽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혹시 나와 사업 하나 같이 해볼 생각 있나?”
“…….”
꽤나 당황스러운 제안에 잠시 대답을 아꼈다.
대기업 총수가 자신의 계열사를 빼앗아간 장본인한테 동업을 제안한다고? 대체 왜?
“어떤 사업인지 먼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핵심부터 말하자면, 아프리카 통합 지부와 전속으로 아이템 수입 계약을 따내는 걸세.”
“…….”
뭐지?
여기도 아프리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