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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속보입니다.]
[던전 민영화가 시범 시행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한별 던전이 맡은 종로구 블루 등급 던전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한별 던전 소속 작전팀이 임의로 청소를 병행하려다 발생한 사고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해당 사고로 작전 1팀의 고준식 팀장을 포함한 헌터 19명이 부상을 입었고…….]
[전국 민간 토벌에서 이와 같은 사고가 계속해서 발생하는 가운데, 시민들의 불안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 사고로 인해 한별 던전 상장 하루 만에 주가가 대폭 하락하고 있으며…….]
“……이게 뭐야!”
하성태 대표의 싸늘한 시선이 오 실장에게 향했다.
“그게… 시간이 부족했는지, 스킬로 한꺼번에 소각하려고 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하필 던전 내부에 가스 수치가 많이 올라간 상태여서…….”
“지금 그게 말이라고 하는 거야! 던전 밥 먹는 헌터라면 응당 알아야 하는 사항이잖아.”
“……보통은 청소 일까지 알진 않습니다.”
하성태 대표는 진심으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헛웃음을 지었다.
“그럼 오 실장, 당신은!”
“……네?”
“작전팀은 몰라도 최소한 오 실장은 알아야 하잖아. 청소 업체에서 한 달 동안 뭘 한 건데. 최소한 기본적인 매뉴얼 정도는 숙지했을 거 아니야.”
“그…… 저는 직원 관리와 경영에만 신경을 썼던 터라…….”
지금 저걸 변명이라고 하는 건가.
하성태 대표가 고개를 저었다.
이내 이마를 꾹꾹 누르며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실 여기까지는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다.
헌터들의 부상도 찰과상에 불과하다.
시민들에게 피해가 발생한 것도 아니니, 그리 큰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현재 민간 기업들은 뒤늦게 청소팀의 중요성을 깨닫고, 국내 유일 청소 업체인 카르마 코퍼레이션에 온갖 단체가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그로 인해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주가가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한편, 한별 던전과 전속 계약을 맺은 카르마 코퍼레이션이 왜 갑자기 파견을 중지했는지에 대해 많은 추측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너도나도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주식을 사고 있습니다. 그 영향으로 저희 쪽 지분이 오늘 장 마감 기준으로 과반에서 떨어졌고요.”
“빌어먹을…….”
간신히 유지 중이던 지분이 기어이 밀려나 버렸다.
이렇게 되면 대표이사 해임은커녕, 정말로 카르마 코퍼레이션에 고개를 숙여야 할지도 모른다.
‘설마 여기까지 예상한 건가…….’
요행으로 작전 본부장까지 올라간 건 아닌가 보군.
하성태 대표는 슬슬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분이었다.
“어떻게든 과반은 유지해야 해. 가능한 만큼 더 매입해봐.”
“그게…… 카르마 코퍼레이션 주가가 많이 올라서 과반 확보까지는 예산이 조금 부족합니다.”
“얼마나?”
“20억 정도…….”
별 푼돈이 발목을 잡는군.
쯧, 어쩔 수 없지.
“내가 가진 한별 던전 지분, 얼마나 되지?”
“41%입니다.”
“10억 정도 맞춰서 매각하고, 그 돈으로 카르마 코퍼레이션 주 추가 매입해.”
“그, 그래도 되는 겁니까? 지금 저희 주가가 너무 하한가라 10억이나 맞추시려면 꽤 손해를 보실 텐데…….”
“지금 이거, 수습할 수 있는 곳이 카르마 코퍼레이션밖에 없어. 계속 사고 나면 민영화고 나발이고 백지화될 텐데, 주식 몇 주 파는 게 그것보다 더 손해겠어?”
오 실장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내 주식 내가 팔겠다는데 지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어쨌든 이걸로 10억은 됐고. 나머지 10억은…….’
이미 돈을 아끼기 위해 카르마 코퍼레이션을 흡수한다는 처음 계획은 틀어진 지 오래였다.
지분 사수를 위해 쏟아부은 돈만 해도 초기 예상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 하성태 대표는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는 잠시 고민 끝에 핸드폰을 들었다.
“예, 할아버님. 성태입니다.”
한별 그룹의 총수, 하덕수 회장.
그에게 연락하는 건 최대한 피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뉴스 봤다. 문제없을 거라고 호언장담을 하더니 이게 무슨 일이냐?」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무엇이냐.」
“카르마 코퍼레이션 주가가 많이 올라서 과반이 안 됩니다. 급하게 맞추고는 있는데… 조금 모자랍니다.”
「그래서? 나보고 대신 매입해달라는 게냐?」
“…안 되겠습니까?”
「네놈 사업한다고 했을 때 나한테 손 안 벌리고 알아서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
하성태 본부장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그래서 얼마나 모자라는데?」
“10억입니다.”
「쉽게도 말하는구나. 10억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클클클 웃는 쇳소리.
「알고 있지? 그냥은 못 준다는 거.」
“제가 가진 한별 던전 지분, 10% 드리겠습니다.”
「하한가 치고 있는 주식으로 퉁 치겠다?」
“그, 그럼 한별 종합 상사 지분도 추가로…….”
「됐다, 됐어. 한별 던전 지분으로 충분해. 10억 매입해주마.」
“가, 감사합니다!”
「대신 너 이 사태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물론입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됐다.
하성태 대표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주주총회는 잡혔나?”
“네, 내일 오후로 잡아뒀습니다.”
“좋아.”
하성태 대표의 눈빛이 변했다.
***
우리가 파견 중지를 선언한 지 이튿날.
예상대로 한별 던전 세미나실에서 주주총회가 소집되었다.
당연히 상정 안건은 대표이사 해임 건.
이유야 어쨌든 계약 사항을 어긴 건 사실이었고, 무엇보다 한별 던전에 피해가 발생했기에 해임 명분은 내가 봐도 충분했다.
하지만 순순히 당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 고로, 전체 지분의 과반이 넘는 주주들이 안건에 찬성함에 따라, 현 시간부로 통보합니다.”
의사장을 맡은 한별 던전의 정수혁 이사가 입을 열었다.
“김준우를 대표 이사직에서 해임한다.”
“…….”
이아영 실장을 비롯한 우리 쪽 투자자들은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이어,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차기 대표이사를 선출하겠습니다. 오재엽 실장과 이아영 실장, 두 분이 후보 등록을 하였으니 출석 주주분들의 의결권에 따라 선임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뭐, 이건 볼 것도 없었다.
애초에 참가한 주주들의 과반이 저쪽 놈들이었다.
“……오재엽 실장이 대표 이사직에 선임되었습니다.”
뻔한 결과지.
세미나실에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진다.
동시에 이아영 실장의 고개가 뚝 떨어졌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이 인간은 왜 이렇게 늦는 거야…….’
아닌 게 아니라, 온다고 한 지가 언젠데 아직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건가.
이대로 주총이 끝나면 말짱 도루묵인데.
“그럼 이걸로 주주총회를 모두 마치겠…….”
“…잠시만요.”
급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
시선이 내게 쏠렸다.
당연히 할 이야기는 없다.
이미 끝난 마당에 결정이 번복될 리도 없다.
하지만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쯧, 어쩔 수 없지.’
대충 아무 말이나 해볼까.
“고작 청소 일인데 뭐 그리 어려울 게 있겠어. 고작 청소부인데 일 좀 더 시킨다고 뭐 문제라도 되겠어. 혹시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자리에서 일어서며 되는 대로 말하자 하성태 대표를 비롯한 한별 던전의 이사들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일을 더 시키신 덕에 우리 직원이 쓰러졌고, 우습게 보고 경험도 없는 작전팀에게 청소 작업을 맡겼다가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그 책임을 저에게만 묻겠다는 게 좀 웃기지 않습니까?”
“하하, 난 또 뭐라고.”
하성태 대표가 실소를 뱉었다.
“변명을 늘어놓기엔 좀 늦지 않았나요? 이미 대표이사에서 해임되셨습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해도 결과가 바뀌진 않아요.”
“압니다. 전 대표이사가 아니라 한 시민으로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다시 한번 시간을 확인했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아시다시피 저 또한 청소부 출신입니다.”
“압니다.”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나?”
“근데 주총 끝나면 다시 청소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하하하!”
노골적인 조롱이 쏟아졌지만 상관없다.
“그래서 그런지, 청소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너무 쉽게 여기는 그 마인드가 참으로 역겹기 그지없군요. 당신들은 오늘 그 값을 톡톡히 치르게 될 겁니다.”
“뭐, 뭐…?”
“당신, 지금 말 다 했어?!”
“더 들을 필요도 없네.”
“일어나지!”
쿵―.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그 순간, 이두식 이사가 드디어 주총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단 다들 앉으십시오. 아직 상의할 사항이 남았습니다.”
그의 등장에 세미나실에 있던 모두가 의아한 반응을 내비쳤다.
“뭐야? 지원군이야?”
“다 끝난 마당에 이제 와서 뭘 어쩌려고 그럽니까?”
“많이 늦으셨군요. 이미 대표이사 안건은 끝났습니다.”
모두가 소용없다는 듯 이야기했지만, 정작 이두식 이사는 태연한 모습이었다.
“압니다. 전 새 안건을 상정하러 온 겁니다. 마침 주주분들이 대부분 겹치시더군요.”
“……?”
준비한 서류를 꺼내 의회장에게 내밀었다.
“한별 던전의 하성태 대표이사 해임 안건입니다.”
“……?!”
“뭐, 뭐…?!”
“하, 하하하!”
모두가 놀라는 가운데 하성태 대표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거죠? 주총이 애들 장난입니까? 아무리 우리 주가가 떨어졌다고 해도 당신들이 과반을 넘길 수 있을 리가…….”
“본인들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전혀 감이 없으신가 봅니다. 너무 우리 쪽 일에만 신경 쓰신 거 아닙니까?”
“……뭐라고요?”
내 말에 하성태 대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대, 대표님!”
누군가 하성태 대표를 부르며 회의실로 들어왔다.
“지금 뉴스에서…!”
[한별 던전의 직원 혹사 논란, 한 달 동안 미지급된 수당만 억대?]
[‘아파도 병가 못 써’. 결국 병원 신세 진 카르마 코퍼레이션 직원]
[한별 그룹, 또다시 불거진 논란, 이대로 괜찮은가]
[잇따르는 카르마 코퍼레이션 직원들의 제보. 이제야 밝혀진 일방적 파견 중지 이유?]
[바닥 밑에 바닥, 연이은 하한가의 한별 던전 주가. 전날 대비 무려 -100%?]
“…….”
그 여유롭던 하성태 대표가 뉴스를 확인하자 드디어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참 나, 설마하니 구상찬한테 연락했을 줄이야.’
그 많은 직원의 인터뷰를 어떻게 다 땄대.
뭐, 시키지도 않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이번 건은 도움이 됐다.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맞출 수 있었으니까.
나는 굳어버린 하성태 대표를 돌아봤다.
“당신들 휴지 조각된 그 주식, 카르마 코퍼레이션이 조금 더 매입했습니다. 더불어 이능차원관리 협회, 베트남 하노이 지부, 금빛 재단, 청소년 헌터 육성 재단 등등… 뭐, 나머진 직접 확인해 보시고.”
이두식 이사에게 서류를 받아 하성태 대표에게 전달했다.
빈집털이.
그것도 일개 청소 업체가 대기업 계열사를 상대로.
“대충 계산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저희 쪽 지분이 총 47%입니다.”
“마, 말도 안 돼! 애초에 내가 40%를 쥐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모양이었다.
“최근에 10%나 파셨더군요. 거기에 10%는 하덕수 회장님께 양도했고.”
“그래도 과반이 안 넘는…!”
쿵―.
“제가 3% 추가 매입했습니다.”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한유빈이었다.
“3프로……?”
“아무리 휴짓조각이라지만 개인이 3%를 매입할 수 있을 리가…!”
“아, 모르셨나 보군요.”
잘 생각해 보니, 그들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어디까지나 회사 내부 기록으로만 알고 있겠지만, 거긴 국내에서의 활동밖에 없을 테니까.
“저 사람, 저보다 돈 많습니다. 저래 봬도 한때 국제 협회 작전팀장 출신이라서 말이죠. 애초에 이쪽에서 일하는 것도 반쯤 심심풀이인 사람인지라…….”
“……그런 건 아닌데요.”
아니긴 개뿔.
협회에서 일하는 건 좋은 경력으로 남을지 몰라도, 이런 작은 기업에서 일하는 건 어디에서도 잘 알아주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돈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고.
“규율 위반입니다! 계열사와 전속 계약된 개인은 해당 계열사의 주총에서 1% 이상의 지분을 행사할 수 없는…….”
“오, 실장님. 벌써 잊으셨습니까?”
기억력이 금붕어 저리 가라군.
“당신 손으로 직접 해임하셨지 않습니까!”
“……!”
“그녀는 법적으로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다, 이겁니다.”
이걸로 50 대 50이 되었다.
물론 세밀한 수치까지 합치면 우리가 조금 더 유리했지만, 아직 하성태 대표에게는 비장의 수가 남아 있었다.
“하, 할아버님……!”
한별 그룹의 총수, 하덕수 회장.
하성태의 시선이 그 노신사에게 향했다.
저 사람이 관여하고 있을지는 조금 예상 밖이었다.
설마하니 총수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했을 줄이야. 사이가 그리 좋은 것도 아니라던데.
그가 움직이면 이딴 촌극, 한 번에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하덕수 회장이라면…….
“배 실장.”
상황을 지켜보던 하덕수 회장이 자신의 비서를 불렀다.
“예.”
“우리 쪽에서 가지고 있는 한별 던전 주식, 전부 매각해.”
“알겠습니다.”
“하, 할아버님?!”
역시.
하성태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회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딴 식으로 돈을 벌면 내가 인정해줄 줄 알았느냐?”
“제, 제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십니까! 주가가 떨어진 것도 저놈들이 파견 중지해서 일어난 사고고…!”
“글러 먹었군.”
회장이 고개를 젓는다.
“이 시간부로 한별 그룹은 한별 던전에서 손 뗀다.”
그 말을 끝으로 하덕수 회장은 세미나실에서 빠져나갔다.
상황이 그리되자 주주들 사이에서 눈치싸움이 시작됐다.
의회장 또한 눈치를 살피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호, 혹시 이견 있으신 분 있습니까?”
“…….”
“……크흠.”
“그럼 과반 이상 주주분들의 의결에 따라…… 현 시간부로 하성태를 대표이사직에서 해임하겠습니다.”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결정 앞에 하성태 대표와 오 실장의 얼굴은 그야말로 사색이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바, 바로 이어 한별 던전 대표이사를 선출하겠습니다. 후보 등록하실 분은…….”
나는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손을 들었다.
한별 던전과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갑을 관계가 역전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