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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 던전은 초비상이었다.
당장 청소를 진행해줄 팀이 필요한 마당에, 김준우 대표가 일방적으로 파견 중지를 선언해버리고 잠수를 타 버렸다.
오재엽 실장은 김준우에게 몇 번이나 더 전화를 걸었지만…….
“안 받습니다.”
“하아…….”
하성태 대표의 미간이 마구 찌그러졌다.
귀찮게 하네, 진짜.
반기를 들 거면 계약 전에 할 것이지, 왜 하필 이제 와서 드러눕는 건가.
이미 민간 토벌 시장이 열린 이상, 청소팀이 파업하고 나서면 본인들로서도 손해가 막심했다.
이렇게 되면 돈을 아끼기 위해 카르마 코퍼레이션을 흡수하려던 의미가 없지 않은가.
아군이 될 줄 알았는데, 결국 이렇게 등을 돌리다니.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감성적인 놈일 줄이야.
“어쩔 수 없군.”
“……네?”
“잘라내야겠어.”
하성태 대표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건 둘째치고, 당장 청소 작업은 어떻게 할까요. 다른 파견 업체가 있는 것도 아닌데…….”
“협회에 연락은 해봤나?”
“네. 칼같이 거절했습니다.”
“거절했다고?”
당연히 공짜로 해달라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제 코가 석 자인 마당에 파견을 거절한다고?
어차피 그쪽은 지금 정상적인 작전 진행도 안 돼서 인원이 남다 못해 놀고 있을 거다.
게다가 작전팀도 아니고 청소팀 파견을 거부할 이유는 딱히 없었다.
하성태 대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 언질이라도 한 것일까.
“카르마 코퍼레이션 쪽에서 입김을 넣었나 보군.”
“김준우 대표가 말입니까?”
“협회 실권을 쥔 이두식 이사랑 꽤 친분이 있다 했으니까. 청소팀 인원이라곤 국내에 카르마 코퍼레이션, 협회 이렇게 딱 두 곳뿐이니, 그 두 곳을 막으면 우리로선 당장 청소팀을 구할 방법이 없겠지.”
“하,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
“제 딴에는 이렇게라도 보복하려는 모양이야. 아니면 뭐… 청소팀이 필요해지면 우리가 먼저 고개를 숙일 거라 생각하는 걸 수도 있고.”
먹힐 짓을 해야지, 참나.
하성태 대표가 혀를 찼다.
누가 청소부 출신 아니랄까 봐, 생각하는 것도 일차원이군.
고작 해봐야 청소 회사 주제에 어딜 한별 그룹 계열사를 상대하려는 건가.
그깟 청소팀 없다고 우리가 눈 하나 꿈쩍할 것 같은가.
“그건 그렇고… 지금 당장이 문젭니다. 토벌된 지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나서 어떻게든 청소 작업은 해야 할 텐데…….”
“흠.”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하성태 대표가 이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예, 고 팀장님.”
연락을 한 건 한별 던전 소속의 고준식 작전 1팀장이었다.
그는 꽤나 다급한 목소리였다.
「대, 대표님, 카르마 코퍼레이션에서 연락을 안 받습니다! 이거 빨리 청소해야 하는데…!」
“알고 있습니다.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파견 중지하겠다고 해서 저희도 지금 꽤 곤란한 상황이고요.”
「네, 네?! 파견을 중지했다고요? 그, 그럼 청소는…….」
“그런고로 죄송하지만 당분간 작전팀이 청소를 병행해주셔야겠습니다.”
하성태 대표가 말하자 대답이 잠시 멈췄다.
「아니 무슨 저희가 청소를 합니까!」
“그럼 어떡합니까. 당장에 할 사람이 없는데. 그렇다고 내버려둘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 그래도 좀 그렇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해본 적도 없고…….」
“고 팀장님.”
「……네, 네.」
“제가 현장까지 신경 써야겠습니까?”
「…….」
“그리고 뭐, 청소가 뭐 별거 있습니까? 그냥 닦고 치우면 되는 거지. 추가 수당 챙겨 드릴 테니 좀 도와주십시오. 아니 뭐, 작전팀이 그쪽밖에 없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고준식 팀장은 어쩔 수 없이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끊은 하성태 대표가 혀를 쯧, 찼다.
‘하여간 헌터놈들, 자존심만 세 가지고.’
아직도 본인들이 특별한 존재인 줄 아는 건가 싶었다.
지들이 길드에 있을 때나 헌터지, 기업에 고용된 이상 남들과 다를 바 없는 노동자일 뿐이다.
노동자는 노동자답게 상부의 말을 잘 따르면 될 일이지.
“어쨌든 던전 쪽은 대충 될 거 같고, 그럼 이제…….”
이내 하성태 대표가 오재엽 실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주주총회 소집하지.”
슬슬 칼을 던질 때가 됐다.
“그런데… 주주 소집 권한은 김준우 대표에게 있지 않습니까?”
“계약서에 명시했잖아. 지금처럼 갑이 정당하게 요청하는 업무를 특별한 사유 없이 수행하지 않을 경우, 이사가 대신 소집권을 가진다고.”
하성태 대표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자신을 건드리는 건 곧 한별 그룹을 건드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고작 해봐야 청소부 출신 주제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이빨을 들이밀다니.
이제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
***
사무실로 돌아가는 차 안.
“접니다, 이사님.”
나는 급히 이두식 이사에게 연락을 넣었다.
“준비는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최대한 백기사를 끌어모으는 중이긴 한데…… 금액이 금액인지라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네. 왜?」
“다른 게 아니라, 대표이사 해임 안건이 아마도 이번 주 안으로 올라올 것 같습니다.”
「이, 이런 미친…!」
핸드폰 너머로 한껏 격양된 목소리가 마구 울려 퍼졌다.
그대로 듣고 있자니 귀가 아파 핸드폰을 좀 뗀 채 전화를 이어갔다.
「너, 너 인마 그새를 못 참고 뭔 짓을 한 거야?!」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자세히 설명하면 더 싫은 소리를 들을 것 같아서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우선 급한 것부터 처리하는 게 먼저니까.
“일단 한별 던전에서 청소팀 파견 요청 오면 무시해주십시오.”
「그놈들이 우리 쪽에 파견 요청을 왜 해?」
“국내에서 청소팀을 충당할 수 있는 곳이 저희랑 협회 말고 또 어디 있겠습니까. 어쨌든 급한 불은 꺼야 할 테니, 분명히 그쪽으로 연락이 갈 겁니다.”
「……너 설마 청소팀 파견만 막으면 저쪽에서 먼저 고개를 숙일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뭐, 썩 틀린 말은 아니군요.”
「야 이놈아. 아무리 신생 회사라고 해도 한별 그룹 계열사다. 청소 정도야 어떻게 해서든 대타를 구할 수 있을 거야. 하다못해 작전팀한테 병행시킬 수도 있고.」
“글쎄요. 그렇게 우습게 생각할 만한 일이 아닐 겁니다.”
「뭐…?」
“제가 해봐서 알거든요. 던전 청소, 그거 쉬운 일 아닙니다.”
명색이 전직 SSS랭크 헌터였던 나조차도 처음 며칠은 계속 버벅댈 정도였다.
애초에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으면 매뉴얼을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고, 굳이 돈 써가며 직원들 교육에 열을 올리지도 않았다.
장담할 수 있다.
청소팀 파견이 막힌 이상,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우리뿐만이 아니다.
「그래. 일단 그건 그렇다 치고…….」
일단은 넘어가자는 투로 이두식 이사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주총은 어떻게 할 거냐? 파업이고 뭐고 자네가 잘려 나가면 다 끝이잖냐. 우리 쪽이 과반 확보하려면 최소한 한 달은 걸릴 텐데, 이대로라면 해임을 막을 수가 없어.」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긴 인마! 그럼 뭐, 이대로 순순히 잘릴 거야?!」
“이사님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해임은 막을 수가 없다고. 제가 던진 일인데 그 정도는 각오해야죠.”
그깟 대표 자리, 얼마든지 넘겨줄 수 있다.
다만, 그놈들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는 꼴은 죽어도 못 보지.
당연히 그놈들 생각대로 순순히 당해줄 생각은 없다.
“이렇게 된 이상 계획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혹시 저희 쪽 투자자들한테 연락 좀 돌려주실 수 있습니까?”
「왜? 돈 좀 더 풀어달라고?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닌…….」
“아뇨. 그 반대입니다. 그동안 매입해놓은 저희 쪽 주식, 도로 매각하라고 해주십시오.”
「……뭐?」
“어차피 이대론 과반 못 넘습니다. 괜히 쓸데없이 돈을 낭비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죠. 대신 그 돈으로 다른 곳에 투자해주셨으면 합니다.”
「어디에.」
“한별 던전.”
「……?」
“한별 던전 주에 올인해주십시오.”
순간 대답이 끊겼다.
대체 무슨 말인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그것도 잠시, 대충 이해가 간 듯 이두식 이사가 물었다.
「지금 말이냐?」
“아뇨. 정확히 언제라고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만…… 이때다 싶을 때가 올 겁니다. 그때 해주시면 됩니다.”
「시벌, 난 모르겠다. 이게 한두 푼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이거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예.”
당당하게 대답했다.
「알았다. 그 부분은 내가 어떻게든 설득해볼 테니까, 넌 주총 준비나 잘 해봐.」
“알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던전 청소부를 칭하는 은어들이 있었다.
최하층, 천민, 노예.
하지만 던전 민영화가 시행된 이상, 그건 다 옛말이 될 것이다.
너도나도 토벌 사업에 뛰어들어 수많은 던전이 우후죽순으로 토벌되고 있는 시점에서, 던전 청소부는 작전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인원이니까.
하지만 그 중요도에 비해 전국 청소부의 인원은 턱없이 부족하고, 그것을 충당할 방법은 우리밖에 없다.
한별 던전을 비롯한 많은 기업이 그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깟 청소부, 우리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뭐, 두고 보면 알겠지.’
입가에 미소가 번져갔다.
***
종로구에 위치한 블루 등급 던전.
고준식 팀장을 포함한 한별 던전 소속 작전 1팀이 이미 한 시간 전에 토벌을 완료한 던전이었지만…… 상부의 명령에 다시 돌아와 청소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사실 던전에 다시 들어가기 전까진 다른 것보다 귀찮은 마음이 더 컸지만, 작업에 착수하고 나서부터는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저, 이건 어떻게 하는 겁니까?”
“야… 가스 계속 차는데 이거 괜찮은 거냐?”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몬스터는 잘라서 옮기는 거야, 아니면 그냥 통째로 들고 가는 거야?”
분명 본인들이 토벌한 던전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전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저, 팀장님? 이거 벽에 묻은 피까지 다 닦아야 하는 겁니까?”
“이, 이거 안 지워지는데 어떻게 하는……?”
“나도 몰라, 새끼들아!”
고준식 팀장은 결국 참다못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분명 던전 청소는 어려울 것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이 일이에도 분명한 순서와 방법이 존재했다.
아무리 같은 던전에서 일한다고 해도, 기본적인 지식이 없으면 헤매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었다.
‘별거 없긴, 뭐가 별거 없다는 거야…….’
고준식 팀장이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이런 일이나 하려고 길드 탈퇴하고 대기업 들어온 줄 아나.
답답함과 억울함이 교차했지만, 언제까지 구시렁거리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던전 소멸까지 불과 15분밖에 남지 않았다.
‘이래서야 제시간 안에 끝낼 수 있을까…?’
고준식 팀장은 던전 내부를 슥 훑었다.
작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몬스터를 치우긴커녕 내부에 튄 부산물조차 어찌하지 못한 상태.
이대론 안 된다.
그렇게 판단한 고준식 팀장은 결국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야. 그냥 다 태워버리자.”
“네, 네?”
“그냥 태워버리자고. 이걸 언제 일일이 다 치우고 있냐?”
“그래도 되는 겁니까?”
“되겠지. 태워서 없애든 닦아서 없애든 결과는 똑같은 거 아니야.”
“아, 알겠습니다.”
얼핏 들으면 일리 있는 말이었다.
팀원들이 고준식 팀장의 지시에 맞춰 스킬을 사용했다.
――!!!!
그리고…….
던전 내부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