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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윽…!”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팔이 떨어져 나간 곳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습득 스킬 : 극초식 - 어검술]
[스킬 발동]
그 떨어져 나간 팔의 주인은, 다름 아닌 나를 향해 달려든 괴한이었다.
“뭐, 뭐야…?”
“어떻게 스킬을……!”
“부, 분명 정확히 맞았는데…….”
남은 괴한들이 당혹감을 내비쳤지만,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히든 스킬 : 업보]
[스킬 효과 발동]
괴한이 나에게 달려든 그 순간, 머릿속에 이해할 수 없는 음성이 재생되었으니.
[이미 시전자에게 하나 이상의 뱅크 아이템 효과가 발동 중입니다.]
[추가적인 뱅크 아이템의 효과는 무효화 됩니다.]
‘뱅크 아이템…?’
여전히 피가 나는 배를 부여잡은 채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고작 총알 따위가 내 방어 스킬을 뚫을 순 없다. 그럼에도 순간적으로 스킬을 무효화시키고 내 배에 적중했다는 건… 한 가지밖에 생각할 수 없다.
‘반능석인가…….’
시간석, 차원석에 이어 국제 협회가 가지고 있는 뱅크 아이템 중 하나.
이능력을 일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효과를 가지고 있는 아이템.
그제야 조금씩 아귀가 맞춰졌다.
회귀 전, 그들이 나를 향해 화기를 발사하던 그때도 지금과 똑같은 감각을 느꼈다.
힘이 빠지고 정신이 멍해지는 그 감각.
그 덕분에 반격을 하긴커녕, 방어 스킬 하나 시전할 여유조차 없었다.
지금까지는 그저 패닉에 빠져서 그런 줄 알았는데…….
이제야 확실하게 알았다.
‘그때 나에게 쏟아부었던 화기 또한 반능석이었군…….’
이 새끼들… 정말로 뱅크 아이템을 가공하고 있었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분명히 다르다.
순간적으로 스킬이 무효화 되긴 했지만… 몸에 반능석이 박히고도 스킬을 쓸 수 있는 걸 보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아마도…….
‘추가적인 뱅크 아이템의 효과는 무효화 된다…….’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미 나한테 뱅크 아이템의 효과가 발동 중이라는 건, 일전의 가설에 확신을 심어주는 셈이었으니.
‘빌어먹을 스킬인 줄만 알았는데… 쓸 만한 점도 있네.’
뭐, 이미 배에 빵구가 나긴 했지만…….
“쏴! 계속 쏘라고!!”
탕, 탕, 타앙―!
다시 한번 총구들이 번쩍였다.
영향을 주진 못한다고 해도 스킬을 일시적으로 무효화시킬 수 있으니…… 바람구멍이 나지 않으려면 막기보단 피해야겠지.
[습득 스킬 : 하이퍼 부스트]
빠른 속도로 파고들어 가장 앞에 있는 한 명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습득 스킬 : 원 카운터]
빠각―!
정확히 명치에 꽂힌 공격.
무언가가 안에서 터지는 소리가 들리며 녀석은 그대로 고꾸라졌다.
“비, 빌어먹을…!”
그 순간 욕지거리와 함께 작은 키의 남성이 허리춤에서 기괴한 검을 꺼내 들었다.
[고유 스킬 : 귀검 - 이매망량]
검신을 따라 스멀스멀 흐르는 검은색 기류.
캉―.
캉, 카강―!
저돌적으로 검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걸 뒷걸음치며 어렵사리 공격을 막아냈다.
[고유 스킬 : 귀검 - 이매망량]
[각성 - 두억서니]
순간 검은 기류가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스스스스스슥―!
이어 가공할 속도의 협공이 이어졌다.
검사…… 아니, 귀검사 클래스.
‘베이는 순간 곱게 죽진 못하겠군.’
속도를 올려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중이었지만…….
‘큭, 시발…!’
복부의 통증 때문에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뒤로 도약하며 최대한 거리를 벌리는 순간.
[고유 스킬 : 메카트로닉 앙상블]
[트랜스 폼 - 모데라토]
가로등과 철골.
주변의 온갖 쇠붙이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변형하기 시작했다.
메카닉 클래스에게 필수인 트랜스 폼 웨펀 없이 공격이 가능한 클래스, 하이퍼 메카닉.
‘이 새끼도 고유 클래스야?’
한국에 인재가 많네.
퍼버버버벙―!!
캉, 카강―!!
콰광―!!
온갖 형태로 변형된 로봇들이 화기를 쏟아부었다.
나는 여전히 막는 것보다 피하는 걸 선택했다.
‘괜히 맞대응하다가는 한 번에 가겠군.’
반능석 총알도 문제지만, 고유 클래스를 가진 다수를 정면으로 상대하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고유 스킬 : 망가진 인형극]
턱―!
‘뭐야 이건 또…?!’
난데없이 땅속에서 나타난 손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시발 네크로맨서까지…….’
순간 발이 묶여 주춤거리는 사이.
[고유 스킬 : 귀검 - 이매망량]
[각성 - 어둑서니]
스윽―.
그 틈을 놓치지 않은 검날이 정확하게 내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크윽…!”
반사적으로 허리를 뒤로 젖혀 공격을 피했다.
콰과광―!!
일직선으로 후방의 모든 것들이 깔끔하게 절단됐다.
가만히 구경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놈들이 다시 공격을 준비하는 틈을 타 재빨리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피하는 거 하나는 S랭크네.”
무리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툭 던지듯 감상을 내뱉었다.
“칭찬 고맙네. 그래도 뭐… 덕분에 15마리밖에 안 남았어.”
“……뭐?”
내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자, 괴한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가 설마 네까짓 것들 몇 명 못 죽여서 피하고만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는 괴한들.
그곳엔 그들의 멋진 공격 덕에 나가떨어진 몬스터의 사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만 아무래도 혼자선 힘들 것 같으니 도움을 좀 받은 것뿐.
“좀 더 분발해봐. 이거 해뜨기 전에 50마리 채워야 돼.”
“…….”
“…….”
여태껏 무표정했던 이들이 이번엔 확실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거리를 둔 채 대치를 이어갈 뿐, 방금처럼 달려들 생각은 없어 보였다.
‘머리는 쓸 줄 아네.’
움직임이 빠른 상대로 계속 공격을 이어가는 건 저들에게도 소모전일 뿐이다.
그보단 차라리 때를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끝을 보는 게 낫다는 판단이겠지.
‘뭐, 그게 먹힐 것 같진 않지만.’
검사 두 명, 네크로맨서랑 메카닉.
뭐, 검사 한 명은 팔이 없으니 내버려두고.
보아하니 메카닉과 네크로맨서는 메인 전력이 아니다.
메인은 저 검사 한 명뿐.
김민주처럼 빠른 공격으로 쉴 틈 없는 연계를 이어가는 스타일이 아닌, 한 방 한 방 강력한 공격을 노리는 놈이다.
물론 그만큼 움직임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저 둘은 검사가 공격할 틈을 만들어주기 위한 역할일 뿐이다.
그건 다시 말해서 서포팅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거겠지.
탓―!
정적이 흐르던 대치를 깨고, 예상대로 괴한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고유 스킬 : 귀검 - 이매망량]
[각성 - 백귀야행]
[고유 스킬 : 메카트로닉 앙상블]
[트랜스 폼 - 안단테]
[고유 스킬 : 망가진 인형극]
[각성 - 마리오네트]
이번 한 번으로 끝내겠다는 듯한 공격.
나는 제자리에 선 채로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다들 그 자리에서 대기.”
[습득 스킬 : 롤링 페이퍼]
[시전자가 지정한 대상이 10분간 명령대로 움직입니다.]
“……!”
“……!”
동시에 인형과 로봇들이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메카닉과 네크로맨서.
둘 다 기본적으로는 소환 계열 클래스이기에 가능한 방법이었지만… 어째 멈춰 선 건 소환물뿐만이 아니었다.
“……뭐야? 니들은 왜 멈춰.”
“…….”
“…….”
괴한들 또한 달려들다 말고 움직임을 멈춘 것이다.
그들의 표정이 마구 구겨졌다.
이대론 이길 수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낀 것인지, 지들끼리 눈치를 살핀다.
“……후퇴한다.”
곧바로 등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굳이 추격하진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것보다 회복이 먼저다.
애써 참고 있었는데, 몸 상태가 말이 아니다.
[습득 스킬 : 글로리 큐어]
[습득 스킬 : 안티 블리딩]
지이이잉―.
“후우…….”
몇 개 없는 사제 스킬로 응급처치를 하며 길게 심호흡했다.
좋아, 이거면 당분간은 괜찮다.
그럼 남아 있는 걸 처리해 볼까.
시선을 아래로 옮기며 입을 열었다.
“야, 살아 있냐?”
“…….”
입을 꾹 닫은 채 날 바라보고 있는 그는, 가장 먼저 공격을 시도하고 팔이 잘려 나간 녀석이다.
부상으로 인해 홀로 현장에 남아 있었다.
내가 굳이 쫓지 않았던 이유도 이 녀석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물어볼 게 많았는데… 다 도망쳤으니까 너라도 대신 대답해줘야겠다.”
“……나보고 배신을 하라고?”
하, 헛웃음을 뱉는 그 순간.
그가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 들어, 곧바로 자신의 머리에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물론.
[습득 스킬 : 하이퍼 부스트]
“이 새끼가 어디서 편하게 죽으려고.”
“…….”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말했잖아. 묻고 싶은 게 많다고. 그거 다 듣기 전까지 넌 죽고 싶어도 못 죽어.”
주변에 널브러진 파이프를 주워들었다.
괴한은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건지, 실실 웃고 있었다.
“뭐, 고문이라도 하게? 허세 부리지 마. 너 같이 착해 빠진 놈이 해봤자 별것도 아닌…….”
“누가 그래?”
“그걸 꼭 들어야 아나? 딱 보면……!”
푹―.
순식간에 귀를 찢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내가 착한 놈이라고 누가 그러냐고.”
***
포항 지부, 작전 3팀 사무실.
김민주는 며칠 전 물갈이 명분으로 시행된 대대적인 인사이동 덕에 이곳에 떨어진 지도 벌써 일주일째였다.
그녀 또한 지금 서울의 상황은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하는데, 다행히 피해 없이 구역을 봉쇄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아마 소집 허가만 떨어진다면 상황이 크게 악화하진 않을 터였다.
오늘도 별거 없이 업무를 정리하려던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
「미, 민주 씨! 큰일 났어요! 지금 준우 씨가 혼자 봉쇄 구역에 들어가서 토벌을 진행하다가 연락이 끊겼는데……!」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하게 쏟아지는 목소리.
“자, 잠깐만요. 아영 씨, 진정하고 천천히 말해 봐요. 뭐가 어떻게 됐다고요?”
「훌쩍…….」
지금… 우는 건가?
그 천하의 이아영이?
김민주는 그제야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이내 이아영 실장은 애써 침착하며 김민주에게 현재 상황을 전달했다.
그러자 이번에 다급해진 건 김민주 쪽이었다.
“선생님 혼자 토벌을 하다가 연락이 끊겼다고요?!”
「네, 네.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현장에 나가봐도 찾을 수가 없어서…….」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선생님이 거길 왜…….’
아니, 다른 걸 다 떠나서 몬스터가 득실대는 구역에서 연락이 끊겼다는 건…….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상황이 좋지 않다.
물론 그라면 어떻게든 살아남겠지만.
만약에, 아주 만약에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김민주의 주먹에 힘이 꽈악 들어갔다.
도와줘야 한다.
지금 당장 작전팀을 이끌고 가서 구출을 하든, 뭐라도 해야 한다.
문제는 아직 소집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
만약 허가도 없이 작전팀을 소집한다면…… 앞으로 평생 헌터와는 연을 끊어야 할 것이다.
물론 김민주에게 그런 것 따윈 안중에도 없었지만.
「민주 씨. 우리 그동안 도움 많이 받았잖아요.」
“…….”
「대가를 바란 것도 아니고, 자칫하다간 본인이 옷 벗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를 도와줬잖아요.」
“…….”
「그러니까…… 우리도 이번엔…….」
“…….”
「……민주 씨?」
이아영의 목소리만이 공허하게 울렸다.
이미 김민주는 진작에 자리를 박차고 나간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