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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범 협회장의 예산 횡령 건이 언론을 탄 직후.
매스컴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타올랐다.
협회 대리인과 정부까지 나서서 이번 사건에 깊은 유감을 표했지만, 한번 불이 붙은 여론은 쉬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간 좋은 모습만 보여왔던 협회였기에, 사람들에게 더욱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으니.
협회장은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게 해결될 순 없었다. 결국, 전 직원을 상대로 전수 조사가 이루어졌다.
동시에 혹시 모를 기존의 유착 관계를 끊는다는 명분으로 대대적인 인사이동 또한 이루어졌다.
김민주 팀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작전팀 소속 인원들은 지방으로 발령 났고, 편 팀장을 비롯한 통제팀 직원들 또한 뿔뿔이 흩어졌다.
현재 서울 본부에는 최호성 본부장과 소수의 이사 그리고 직원들뿐.
모자란 인력은 추후에 확보한다는 모양이었지만, 현재 본부는 텅 빈 상자가 되었다.
그렇게 큰 사건 이후 뒤처리로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서초역 인근 거리.
“시발!!!”
결국, 그날이 다가왔다.
[고유 스킬 : 퀘이사]
[고유 스킬 : 황제의 무덤]
[고유 스킬 : 소드 마스터]
쾅, 콰광―!
콰과광―!!
퍼벙―!!
몇 분 전, 던전이 출현했다는 정보를 듣고 출동한 헌터들은 눈앞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기존 던전의 공식을 모두 무시한 전무후무한 상황.
아비규환을 넘어 지옥 그 자체였다.
“대체 왜 몬스터가 벌써 빠져나오는 거야!!”
“몬스터가 끊이질 않습니다! 진입조차 불가능합니다!!”
“이런 시발! 대체 언제까지 쏟아지는 거야!”
작전 4팀, 2팀, 5팀이 모두 토벌에 나섰지만, 상식을 아득히 벗어난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통제팀으로부터 이능파가 불안정하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이런 던전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번 작전의 리더를 맡은 작전 4팀의 추지연 팀장 또한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대체 이건 뭐야…….’
나름 오랫동안 헌터 생활을 한 그녀로서도 난생처음 겪는 상황이었다.
아주 오래전 남미 쪽에서 불안정 차원 던전이 출현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제대로 된 기록도, 정보도 없었다.
그런데 설마하니 이런 던전일 줄이야.
“팀장님! 지금 인원으론 어림도 없습니다! 빨리 지원 요청을…!”
“뭔 헛소리야! 지금 본부 상황 몰라?! 작전팀 다 잘려 나간 마당에 지원 요청을 어디다 해!!”
“그, 그럼 어떻게 합니까?! 이대로 저희끼리 계속 토벌해야 하는 겁니까?!”
추지연 팀장이 이를 으득 갈았다.
애초에 본부에 남은 작전팀이 모두 나와 있다.
지원 요청을 할 곳도 없고, 길드에 협력 요청을 하려고 해도 몇 시간은 걸린다.
그렇다고 계속 작전을 진행한다?
던전 진입도 불가능한 마당에 작전이고 나발이고 무슨 의미가 있는가.
‘본부가 박살 나자마자 이게 무슨…….’
이건 안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들자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자칫하다간 넋이 나갈 것 같았기에, 스스로 뺨을 쳐 이성의 끈을 붙잡았다.
더 이상 토벌이 아니다.
작전을 성공시킬 생각보다… 살아남을 생각을 먼저 해야 한다.
추지연 팀장은 주먹을 꽉 쥐었다.
“시민들 대피는 어떻게 됐어?”
“던전 출현 지역으로부터 반경 5km까지 대피 완료했습니다.”
“대피 반경 10km로 늘리고, 해당 구역 봉쇄해. 트럭이고 버스고 다 빌려와서 길이란 길은 무조건 다 막아!”
“네?! 구, 구역을 봉쇄하면 토벌은…….”
“불가능한 작전에 도박을 걸 순 없어.”
추지연 팀장은 굳은 표정으로 무전기를 들었다.
“모든 작전팀에 알린다. 현 시간부로 작전 4팀을 포함한 모든 작전팀은 지금 당장 작전을 중지하고 후퇴한다. 반복한다. 지금 당장 작전을 중지하고 후퇴한다.”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모든 작전팀 인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공격을 멈추고 등을 돌렸다.
작전팀들이 아예 맞서 싸울 생각 자체를 포기한 상황.
이전 같았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인원과 정보가 압도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이보다 더 적절한 판단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김준우가 의도한 상황이었다.
***
구역을 봉쇄한 지도 이틀째.
그사이 계속해서 토벌을 시도했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번번이 후퇴하기를 수십 번.
결국, 최호성 작전 본부장을 비롯해 각 작전팀장과 협회 상부 인사가 모두 소집되어 긴급 작전 회의를 열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최호성 본부장이 일어나 상황을 보고했다.
“현재 서초역 일대를 포함해 던전 반경 10km 이내에 있는 방배동, 서초동, 역삼동까지의 구역을 봉쇄한 상태입니다. 다행히 신속하게 판단한 덕분에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다행?”
이마를 짚고 있던 하승만 이사가 눈을 부라렸다.
“서울 한복판이 몬스터한테 점령당했는데 다행? 작전팀이라는 새끼들이 그 연봉을 받아 처먹으면서 이틀째 진척도 없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몬스터 하나하나가 옐로우 등급 이상의 보스급입니다. 무리하게 작전을 진행했다간 오히려 더 위험해집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위험 감수하라고 그 돈을 주는 거 아니야!!”
그의 목소리가 격양됐다.
다행히 신속하게 봉쇄한 덕분에 몬스터가 구역 밖으로 탈출하는 것은 막았지만… 이미 해당 지역 일대에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무엇보다 이틀 동안 몬스터가 끊임없이 던전에서 쏟아지고 있다.
내일이면 수용 한계점을 돌파할 것이고, 최악의 경우엔 봉쇄 구역이 뚫릴 수도 있었다.
“최호성 본부장.”
“……네, 네.”
“방법은 있겠지?”
“지금 본부 인원으로는 도저히 작전 수행이 불가능합니다. 전국 작전팀 소집 허가를 요청했는데…….”
잠시 망설이던 끝에 말을 이었다.
“내일 오전이나 돼야 허가가 떨어질 것 같습니다.”
“내일? 그럼 그때까지 손 놓고 있겠다 이거야?! 그러다가 봉쇄 구역 뚫리면 어떡하려고!”
“저라고 가만히 있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줄 아십니까! 이번 게이트로 주축 인원이 다 날아간 마당에 저보고 뭐 어쩌라는 겁니까!”
진심으로 울화가 치밀어 올라 소리를 지르긴 했지만, 최호성은 애써 침착을 되찾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서울 내 몇몇 길드가 작전 참가에 지원했습니다. 인원이 많진 않지만… 일단은 소집 허가가 떨어질 때까지 길드와 함께 조금씩이라도 토벌을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아레스랑 아프로디테 길드 빼면 나머진 다 하꼬들이잖아. 게네들 데리고 가능하겠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휘는 누가 할 건데?”
회의실이 정적에 휩싸였다.
모두가 애써 외면했던 사안이 노골적으로 언급된 것이다.
“C, D급 몇 명 데리고 이미 점령당한 구역에 들어가야 해. 이거 실패하면 니들만 죽는 게 아니라 서울 전체가 무너진다. 이 작전, 니들 중에 맡을 수 있는 놈 있냐?”
“…….”
모두가 서로 눈치만 살필 뿐 선뜻 나서지 못했다.
당연했다.
재앙을 두 눈으로 목격하며 모두가 이미 한 번 처절한 무력감을 느꼈는데, 어느 누가 자신 있게 나설 수 있겠는가.
그저 말을 아끼는 가운데, 하승만 이사가 입을 열었다.
“이 작전 맡을 수 있는 놈… 내가 볼 땐 한 명밖에 없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승만 이사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호성 본부장은 그가 누구를 이야기하는 건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자, 잠시만요! 그 사람은 이제 협회 소속이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이번 게이트에도 연루된 놈인데, 그런 사람한테 지휘를 맡기는 건 협회 이미지에도…!”
“이미지고 나발이고 일단은 살아야 할 거 아니야! 아니면 뭐, 니가 지휘할래?”
“그, 그건…….”
하승만 이사의 시선이 작전팀장들을 훑었다.
“어차피 니들도 지금 다 똑같은 생각 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놈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닫았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으니.
“사태 파악 좀 하자. 이 작전 하나에 너무 많은 게 달려 있어. 이것저것 따질 상황이 아니라고.”
하승만 이사의 단호한 목소리에 최호성이 주먹을 꽉 쥐었다.
박인범 협회장이 날아가면서 자연스레 그놈과 협회와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길 바랐다.
그래야만 자신을 방해할 수 있는 놈이 모두 사라질 테니까.
그게 그나마 비리 게이트 이후에 뒤탈 없이 본부를 장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그를 불러들인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일을 키운 게 모두 헛짓거리가 되어 버리는 게 아닌가.
최호성 본부장의 이가 바득 갈렸다.
“아무튼, 동의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제가 지휘하겠습니다.”
“너, 너 인마…!”
“어차피 모든 작전 지시는 제 권한입니다. 참가를 희망한 길드와 오늘 밤에 토벌을 진행하겠습니다.”
최호성 본부장은 그 말을 남기고는 먼저 자리를 떴다.
평소 같으면 가당치도 않은 행동이었지만, 토를 달 수는 없었다.
어쨌든 모든 토벌과 작전의 총 책임자는 최호성이었다.
던전 하나 때문에 서울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작전 본부장 본인이 지휘를 맡겠다는데, 무슨 명분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쯧, 하나부터 열까지 도움이 안 되는 새끼네.’
그런 와중 최호성이 나간 자리를 씹어 먹을 것 같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던 이가 있었다.
‘하, 시발. 이러면 나가린데…….’
편 팀장이 천안 지부로 날아가고, 현 통제팀의 실권을 쥐게 된 황동휘 대리였다.
그는 고개를 뒤로 팍 젖히며 깊은 한숨을 쏟아 냈다.
***
‘던전이 출현하자마자 구역 봉쇄 후 작전 철수라…….’
나는 우두커니 앉아 핸드폰으로 실시간 뉴스를 확인했다.
다행히도 모든 게 예상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회귀 전, 리젠 던전 출현으로 피해를 본 가장 큰 이유는 자만심이었다.
우리만으로도 토벌할 수 있다는 자만심.
그 덕분에 던전 출현 직후 봉쇄 타이밍도 놓쳤을뿐더러, 3일 만에 수십 명의 헌터가 현장에서 사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다르다.
협회가 날아간 덕에 인원은 턱없이 부족, 게다가 상위 랭크 대부분이 지부로 날아갔으니 소극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 덕에 늦지 않게 구역을 성공적으로 봉쇄할 수 있었다.
이틀이 지난 지금 시점까지 헌터들의 피해 또한 발생하지 않았다.
이제 전국 작전팀이 소집될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그 후에 잘만 지휘한다면 아무런 피해 없이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그때까지 봉쇄 구역이 버텨줄 수 있느냐겠지.
‘구역 면적 대비 리젠 속도를 고려해보면…… 오늘 밤이 고비겠네.’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할 시기인데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걸 보면… 아무래도 아직 협회 쪽에서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 모양이다.
한편 그와는 별개로 인터넷은 활활 타오르는 중이었다.
└본부 터지자마자 이게 뭔 일임???
└본부 터지고 서울도 터졌네 엌ㅋㅋㅋㅋ
└지금 이게 웃을 상황임?? ㄹㅇ 사이코패스인가?
└작전팀 공중분해 돼서 인원도 부족하다매 이거 리얼 ㅈ된 거 아님?
└ㅇㅇ개심각한 거 맞음;; 이 새끼들 지금 사태 심각성을 몰라;;
└최호성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ㅅㅂ 이러다 몬스터 밥 되게 생겼는데
└ㄹㅇ 김준우랑 ㅈㄴ 비교되네;;
└김준우였으면 벌써 토벌 끝내고 팀원들이랑 국밥 한 그릇 뚝딱하러 갔음
└최호성 ㅂㅅ아 이럴 거면 김준우 다시 불러와라
└ㅆㅇㅈ ‘그’라면 수습 가능하다
└근데 이번에 협회장 나가리 돼서 복귀는 힘들 듯?
└ㅇㅇ지금 본부 거의 다 반 협회장 세력인데, 친 협회장 세력의 대표격을 다시 부를 리가 없음
└아니 뭔 이런 상황에서까지 정치질이냐;; 라인이고 나발이고 일단 살고는 봐야지;;;;
금방이라도 몬스터가 시내 곳곳을 활보할 상황이다 보니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오고 있었다.
물론 협회 본부에 대한 의견은 그야말로 최악.
비리 게이트에 맞물려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인터넷 반응을 지켜보면서 팔짱을 낀 채 잠시 상황을 정리했다.
당연하겠지만 봉쇄 구역이 뚫리면 그 후론 걷잡을 수가 없다.
개체수를 줄이긴 해야 하는데…… 최호성이 알아서 해주기를 기다리자니 불안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무엇보다 지들끼리 토벌하겠다고 깝치다가 사상자라도 나오기 시작하면 여태까지 애쓴 게 모두 도루묵이다.
쯧, 어쩔 수 없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지금 바쁘십니까?”
「계속 뉴스만 보고 있어요. 상황이 생각보다 많이 심각하네요.」
이아영 실장이 푹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확실히 그렇죠. 저, 그래서 말인데…….”
「네?」
“무기 몇 개만 좀 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등급은 딱히 상관없고 아무거나 다 좋은데.”
「……?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설마 아직도 제가 지원팀 소속이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압니다. 근데 뭐… 생각나는 사람이 그쪽밖에 없어서요.”
「그거 불법인 건 아시죠?」
“예.”
「……뭐가 이렇게 당당해.」
한숨을 내쉬길 한 차례.
「알았어요. 한번 구해볼게요.」
“뭘 하려는 건지는 안 물어보십니까?”
「뻔하죠 뭐……. 대신 조건이 있어요.」
그녀가 힘이 바짝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끼워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