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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에서 지원받은 네이비 등급의 실습 던전.
내 참관 아래, 문소연 팀장이 임동빈의 교육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던전 청소에서는 몬스터를 크게 세 분류로 나눠요. 갑피형, 피부형, 무피형. 갑피형은 딱딱한 외피가 있는 거고, 피부형은 인간형 몬스터처럼 부드러운 외피. 그리고 무피형은…….”
“스켈레톤이나 고스트계 몬스터처럼 피부가 없는 거겠지?”
“……맞아요.”
문소연은 새삼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작전팀장 시절의 임동빈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녀 또한 알고 있었을 테니, 성실하게 실습에 임하는 모습이 꽤 낯선 모양이었다.
문소연은 애써 담담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분류마다 해체 방식이 꽤 다른데, 이건 인간형 몬스터니까 머리부터 해체하면 돼요. 최대한 한 번에 자른다는 느낌으로…….”
“이렇게?”
“네네, 맞아요.”
임동빈은 문소연이 말하는 대로 곧잘 따라 하며 몬스터를 능숙하게 해체해나갔다.
‘썩어도 준치라더니만…….’
확실히 던전과 몬스터에 대한 이해도는 일반인들에 비할 수준이 못 된다.
작업 메커니즘에 대해서만 익숙해지면 한유빈이랑 비슷한 수준까진 올라갈 수도 있겠군.
“그나저나 던전 청소가 이렇게 체계적으로 잡혀 있는 작업인 줄은 몰랐군.”
홀로 해체를 마친 임동빈이 땀을 닦으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원래부터 이렇진 않았어요. 우리 대표님이 회사를 차리면서 직접 분석, 분류하셔서 매뉴얼화 하신 거예요.”
문소연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렇긴 했다.
카르마 코퍼레이션을 설립하면서, 보다 빠르고 효과적인 교육으로 최대한 빨리 현장에 투입하기 위해서 매뉴얼을 만들긴 했다.
‘애초에 본인들도 도와준 거잖아.’
이아영 실장은 물론, 한 씨 남매와 문소연 또한 모두 공들여준 덕에 꽤나 완성도 높은 매뉴얼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군. 뭐, 역시…….”
임동빈이 나를 슬쩍 흘겼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어제 오후, 그가 사무실을 찾아와 청소팀에 지원하겠다고 했을 땐 진심으로 장난치는 건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게, 몇 개월 전에 청소팀을 엿 먹이려다 내쫓긴 사람이 이제 와서 청소팀에 들어가겠다는데 누가 그걸 믿어주겠는가.
그래도 뭐, 어쨌든 면접 보러왔다는 사람을 돌려보낼 수도 없었으니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그의 근황은 생각했던 것보다 꽤나 힘들게 지내는 중이었다.
랭크가 해제된 덕에 헌터로서의 활동은 더 이상 할 수 없었으니 아무 길드나 들어가서 작전 기획자를 맡았다고 한다.
물론 그마저도 징계를 받고 퇴사한 게 소문이 퍼져 큰 길드에 들어가는 건 꿈도 못 꾸고, 소규모 길드만 전전했다고.
뭐, 측은하긴 한데…… 결국 다 본인 업보 아닌가.
동정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일에 경중을 나누는 건 하등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네. 결국,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인데 말이야.
나는 임동빈의 그 말에 채용을 결정했다.
나름 걱정했지만, 그래도 꽤 진지하게 교육에 임하는 걸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할 만은 하십니까?”
첫 번째 실습을 마치고 던전을 빠져나오는 임동빈을 향해 슬쩍 물었다.
“그런 게 어디 있겠어. 그냥 하는 거지.”
그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번 주까지 교육받으시면 바로 현장에 투입되실 겁니다. 배정은…… 아마도 문소연 팀장이 있는 1팀으로 가실 겁니다. 괜찮겠습니까?”
“당연하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입 생활이 익숙하진 않으시겠지만, 차차 팀 개수를 늘릴 예정이라 열심히만 해주신다면 다음번 팀을 맡길 생각이니 그때까지만 참아주세요.”
“에이, 그런 걸 벌써부터 말하면 어떡하나.”
“믿는다는 소립니다.”
가타부타 말이 많은 인간이지만 어쨌든 작전팀장 출신이 아닌가.
던전 지식과 돌발 상황에 관한 판단은 감히 그를 따라올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유빈을 제외한다면 팀장으로선 이만한 인물도 또 없겠지.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그럼 나는 다음 교육이 있어서 이만…….”
“아, 예. 그럼 계속 수고해주세요.”
임동빈은 그 말을 뒤로하곤 문소연과 함께 다음 던전으로 향했다.
그들이 멀어지길 기다리다 등을 돌리던 차에 때맞춰 핸드폰이 울렸다.
「끝났어요? 어때요?」
“뭐, 나름 열심히 하려는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래도 작전팀장 출신이라 도움이 많이 되겠죠. 잘 다독여서 유빈 씨처럼 핵심 전력으로 키워 봐요.」
“하하하.”
이아영 실장의 말에 진심으로 웃음이 튀어나왔다.
“농담은 그만하죠. 내부자를 어디에 써먹습니까.”
농담이라도 해도 할 게 있고 안 할 게 있다.
‘경중을 나눌 것 없이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회귀 전 최호성 본부장의 어록 중 하나였다.
당연히 직군의 경중을 나누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아무리 더러운 일이어도 본인에게 이득이 된다면 망설이지 말라는 뜻으로 쓰던 말이었다.
임동빈이 마지막에 그 말만 안 했어도 솔직히 긴가민가했을 텐데, 저 말로 확실해졌다.
최호성의 어록을 뱉으며 내 앞에 나타났다는 건, 분명히 둘이 연관되어 있다는 소리겠지.
“그래서 조사는 해봤습니까?”
유감스럽게도 나는 임동빈과 최호성의 관계에 대해선 전혀 아는 게 없었다.
전생에서도 딱히 눈에 띄는 관계는 아니었으니까.
「대충 찾아보니까 둘은 대학교 선후배 사이였어요. 과는 달랐는데, 최호성이 통제팀으로 입사하고 난 후 동문회에서 처음 만났다나 봐요.」
“흐음.”
「이후에 임동빈이 헌터 등록 후 작전팀으로 들어가고 나서 이래저래 도움을 좀 받았대요.」
그래서 신입 때부터 말도 안 되는 실적을 쌓을 수 있었던 거군.
「그런데 임동빈 팀장이 그렇게 나가리 될 때는 움직이지 않았잖아요?」
“말했잖습니까. 최호성 그 인간, 본인한테 해가 될 거 같으면 가차 없이 꼬리부터 자르는 놈이라고. 당연한 일이죠.”
「그러면 최호성 본부장이 심은 사람이 아니라 진짜 본인이 원해서 온 걸 수도 있지 않아요?」
“임동빈 팀장이 정말 본인이 원해서 청소부로 일할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차마 빈말로라도 그렇다고 대답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뭐, 어떤 거래가 오가지 않았겠습니까. 가령 복귀를 빌미로 우리한테서 뭔가를 좀 캐오라고 했다거나.”
「……우리한테 그럴 만한 게 있어요?」
“있으니까 왔겠죠.”
뭐, 솔직히 켕기는 게 없진 않다.
다른 걸 다 떠나서, 협회의 자금을 끌어다 쓰고 있는 것만 들켜도 파장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이만저만 수준이 아니라 풍비박산이 나겠지.
목적이 어쨌든 간에 결국 횡령이나 다름이 없다.
아무리 내 주변 사람이라고 해도 이걸 이해해줄 수 있을 리가 없겠지.
그래서 이아영 실장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래, 난 분명 말한 적이 없었다.
「협회 예산으로 자금 지원 받고 있는 거요?」
“……!”
근데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인사관리부터 회계까지 제가 다 담당하는데, 설마 제가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죠?」
“…….”
생각해 보니 그렇네…….
회귀 전에 자잘한 일을 그녀에게 맡기던 습관 때문인지 전혀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좀 미안하게 됐군.
‘……아니, 생각해 보니 내가 미안해야 할 일인가?’
본인이 같이 일하고 싶다고 찾아왔으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걱정 마요. 솔직히 당신이 배 채우려고 그럴 사람은 아니라는 거 아니까. 애초에 그렇다고 해도 협회장님이 친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금을 대줄 분도 아니고요. 분명 말하지 못할 이유가 있는 거겠죠.」
다행히도 내가 알고 있는 대로 그녀는 입이 무거운 여자였다.
물론 믿는 근거가 좀 이해가 안 됐지만, 문제가 아니면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가끔 보면 그쪽 좀 무섭습니다.”
「칭찬으로 들을게요. 아무튼, 최호성 본부장도 그걸 의심하고 있다는 거죠?」
“정황상 그럴 겁니다.”
최호성은 명확한 증거를 잡기 위해 임동빈을 심었을 확률이 높다.
만약 증거를 잡는다면 언론에 퍼트리든 우리를 협박하든, 유리한 칼자루를 쥘 수 있을 테니까.
「그럼 그냥 안 받으면 됐잖아요. 내부자인 걸 아는데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어요?」
“예. 그럴 필요가 있습니다.”
「네?」
“뭐… 자세한 건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설명이야 나중에 하면 된다.
이쯤하고 전화를 끊었다.
리젠 던전 출현까지 이제 3주밖에 남지 않았다.
작전팀을 모아 대응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쪽을 생각해봐야 한다.
‘나중에 좀 귀찮긴 하겠지만, 아예 망가지는 것보다야…….’
지금 전력으로 리젠 던전을 맞이하면 본부 대다수가 피해를 본다. 그리고 남은 건 고스란히 국제 협회의 손아귀에 떨어지게 되겠지.
여기서 생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결국, 리젠 던전의 등장으로 피해를 보는 게 본부라고 한다면, 차라리 본부를 와해시키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설사 피해를 본다고 해도 전부 대미지를 입지는 않을 테니.
그러기 위해선 적당한 사건이 필요하다.
한 방에 협회가 흔들리더라도 완전히 붕괴하지 않을 정도의 큰 사건이.
그런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너무나 적절한 타이밍에 임동빈이 등장해주었다. 그것도 최호성의 내부자로.
이건 절호의 기회다.
그가 횡령 증거를 최호성에게 갖다 바쳐 세간에 드러나게 된다면, 본부가 뒤흔들릴 정도의 큰 사건이 될 것이다.
‘이게 아니면 다른 방법이 없어.’
당장 부족한 시간 안에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진행되게 만들어야 한다.
설사 내가 키운 본부를 내 손으로 끌어내려서라도.
***
임동빈 전 작전팀장은 온종일 이어진 실습을 마치고 밤늦게 귀가 중이었다.
‘시벌, 뭔 청소 일이 이렇게 빡세…….’
삭신이 쑤셔오는 통에 제대로 허리를 펴는 것도 힘들었다.
교육이었는데도 이 정도면 실제 작업을 나가면 어느 정도일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리 복귀를 위해서라곤 해도, 증거를 찾기 전까지 자신이 버틸 수 있을지부터 미지수였다.
물론 저버릴 수 없는 기회임은 틀림없었지만.
조금만 버티자.
그렇게 다짐하던 찰나 핸드폰이 울렸다.
“예, 선배님.”
「교육은 끝났냐?」
“예. 방금 끝나고 퇴근하고 있습니다.”
최호성 본부장.
그에게 이번 일을 부탁한 장본인이었다.
「그래서, 어떤 것 같아? 들키진 않았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예 의심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 힘들겠지만 수고 좀 해줘. 외부 지원금 내역서만 손에 넣으면 바로 본부에 자리 하나 마련해 놓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때까진 어떻게든 의심받지 않게 최대한 신뢰를 쌓아둬. 현장 나가서도 열심히 하고.」
“그럼요.”
이내 전화가 끊기려던 직전.
“저… 그런데 말입니다, 선배님.”
「음?」
임동빈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협회장이 예산을 빼돌리고 있는 게 아니면 어떡합니까?”
「야 인마! 그럴 리가 없잖…….」
“그러니까, 만에 하나라도 그렇다고 하면 어떡하냐는 말입니다.”
임동빈의 목소리가 퍽 무거웠다.
그는 확답이 필요했다.
만약에라도 일이 잘못되면 또다시 자신을 내치지 않겠다는 확답.
본인한테 해가 되면 꼬리부터 자르는 거로는 서민철보다 더한 인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임동빈의 저의를 눈치챈 건지 최호성은 대답을 망설였다.
「……만에 하나라도 그럴 리가 없다고 인마. 자꾸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네 일에 집중해.」
“…….”
임동빈의 표정이 굳는 것도 잠시.
“알겠습니다.”
복잡 미묘한 얼굴로 대답했다.
통화를 마친 후, 임동빈은 깊은 생각에 빠진 채 계속해서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