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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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지부에는 예정대로 작전팀 연수원과 연수생들의 기숙사가 들어섰다.
연수원 강사로는 각 지부 베테랑 헌터들이 교대로 파견되었다.
물론 김민주 또한 선임 강사로 차출되었다.
역시나 효과는 예상대로 나타났다.
신입들이 무조건 거쳐 가야 하는 곳이 되면서 실습을 통해 토벌량을 충분히 채울 수 있게 되었다.
뭐, 신입들이라곤 해도 강사진이 워낙 탄탄했던 터라 문제가 발생할 여지도 없었고, 덕분에 연신 못 미더워하던 시민 단체는 잠잠해졌다.
그럼에도 아직 고쳐나가야 할 문제는 있었지만…… 거기서부턴 지부가 알아서 해결해야 할 일이겠지.
“그래서…… 다들 요즘 일하는 건 어떻습니까?”
사내 정기회의 날.
회의실엔 문소연과 한상혁, 한유빈을 비롯한 총 10명의 청소팀장이 참석했다.
“강릉 지부는 크게 문제없어요. 그리 작업하기 어려운 던전들도 아니라 빨리빨리 작업할 수 있고요.”
문소연이 먼저 대답했다.
뒤를 이어 각 팀장의 보고가 이어졌다.
“저희도 별문제는 없습니다. 뭐, 계약금 일부를 부산물로 받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요.”
“아, 전주 지부에서 사체를 조금 더 잘게 해체해줄 수 있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희 장비로는 30cm 이하로 해체하는 건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7팀의 홍용표 팀장이 말했다.
“특수 절단기 하나 장만해드리겠습니다. 다른 건 또 뭐 없습니까?”
“다른 건 문제없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혹시 애로사항이나 더 건의할 건……?”
사실 회귀 전엔 직원들 건의 사항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이전처럼 혼자 끙끙거리며 참다간 일만 더 커질 게 뻔하니 이제는 미리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못 버티고 나가버리면 그것만큼 손해도 없고.
“…….”
“…….”
그런데 어째 다들 멀뚱멀뚱 눈만 끔뻑이고 있다.
“정말 없습니까? 괜찮으니까 편하게 말씀해도…….”
“저…….”
그때, 문소연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꽤나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보니 꽤 중대한 사항인 것 같아 나 또한 덩달아 긴장했다.
“탕비실에 과자…… 더 채워주실 수 있나요…?”
“…….”
후.
“……알겠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곤 작게 예스! 하곤 외친다.
참… 소박하네.
“그거 말곤 더 없습니까?”
“…….”
“…….”
또다시 찾아온 침묵.
나는 옅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없는 거로 알고……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가 회의실을 나섰다.
나는 목 근육을 풀며 통유리로 둘러싸인 회의실을 둘러봤다.
이전 사무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깨끗하고 넓은 공간.
행정 직원도 무려 10명이나 추가로 채용한 덕에 이젠 제법 회사다운 모양새가 만들어졌다.
고작 몇 달 만에 이런 변화가 생긴 것 또한 모두 순천 지부 일 덕분이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 회사에 대한 이상한 미담이 인터넷에 돌기 시작하며 입사 지원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덕분에 기존 3개 팀에서 10개 팀까지 신설할 수 있었다.
덩달아 어떤 청소팀 업체가 다 말라가던 순천 지부를 소생시켰다는 소문이 지부들 사이에서 삽시간에 퍼지며, 전국 각지에서 우리를 찾는 이들이 늘었다.
이아영 실장의 말로는, 덕분에 이번 달 매출은 설립 첫 달 대비 10배 이상 오를 것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터닝 포인트.
전국에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이름을 톡톡히 각인시킨 것이다.
그리고 백제 길드는…… 뭐, 망했다.
길드원 전원이 실직자가 됐다.
개중엔 다른 길드로 이직을 시도했지만, 이전 경력이 발목을 잡았다.
난 이도 저도 못하고 밑바닥까지 떨어진 백제 길드를 헐값에 사들였다. 그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부턴 헌터가 아닌 청소부로 지내야겠지만…… 그런 거 가릴 처지가 아니지.
“…생각해보면 그냥 조용히 처리해도 됐을 것 같기도 하고.”
좀 과하게 깽판 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뭐, 당신이 아니었어도 언젠간 터질 일이었어요. 다 지 업보지 뭐.”
옆자리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이아영이 바로 딴죽을 걸었다.
그녀는 말을 하면서도 시선은 모니터에, 손은 키보드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할 게 많나 봅니다?”
“그걸 말이라고 해요? 그동안 순천 지부에만 신경 쓰느라 우리 일도 제대로 못했는데 당연하죠! 하… 이게 청소부 파견 업체인지, 경영 매니지먼트 업체인지…….”
“그래도 뭐, 결과적으론 제 말대로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더 짜증 나.”
나를 째릿 눈으로 흘긴다.
잘 해결됐으면 됐지, 참 불만도 많네.
“계약 현황은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총 22곳 계약했어요. 지방 18곳, 광역시 한 곳, 수도권 세 곳. 이 추세면 법인 전환도 고려해볼 만해요.”
“글쎄요. 아직 1년도 안 됐는데 거기까지는 시기상조 같고……. 일단은 계속 추이를 지켜보는 거로 합시다. 지부들 반응은 어떻습니까?”
“전반적으로 만족하는 것 같아요. 클레임도 딱히 들어온 것도 없고. 뭐, 다들 베테랑들이니 당연한 거겠지만.”
“그건 다행이군요.”
“무엇보다 직원들 만족도가 되게 높아요. 뭐…… 이것도 당연한 거겠네요.”
“……? 그건 왜 당연합니까?”
눈썹이 올라간다.
마치 몰라서 묻는 거냐는 표정.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 그냥 입을 닫았다.
“그런데,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그러자 이아영 실장이 금세 다른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해외에 더 중점을 두고 싶다고 했잖아요. 바로 나가볼 예정이에요?”
“흐음…….”
상승세를 올리고 있다고 해도 아직은 부족하다.
어느 정도 선에서 안정화가 돼야 정확한 지표를 확인하고 사업을 추진해도 추진할 수 있으니.
“뭔가 쐐기를 박을 만한 게 있으면 좋겠군요.”
“쐐기라뇨?”
“대체 불가 수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만큼 큰 건 말입니다. 뭐, 예를 들면…… 본부가 풍비박산 나는 걸 막아준다거나.”
“…….”
표정이 썩 좋지 않다.
“……불길한 소리 하지 말아 줄래요? 지금만으로 충분히 벅차거든요?”
이아영 실장이 학을 뗐다.
해본 소리였기에 피식 웃음을 던졌다.
‘……풍비박산?’
근데 순간 내가 뱉은 말에 무언가 머릿속을 스쳤다.
곧바로 달력을 확인하고 몇 번이고 날짜를 계산했다.
아…… 젠장…….
“……갑자기 왜 그래요?”
이아영이 겁먹은 표정으로 물었지만 대답할 여유는 없었다.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새카맣게 잊고 있었다.
큰 건이고 나발이고…….
‘시발…….’
어느새 그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회귀 전, 처절했던 그 날의 기억이 머릿속에 스멀스멀 떠오르기 무섭게 핸드폰을 꺼냈다.
“갑자기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혹시… 한 달 뒤에 전국 모든 작전팀을 서울로 소집시켜 주실 수 있습니까.”
협회장은 어리둥절해 하는 반응이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
“일이 좀 생길 것 같아서…….”
「무슨 일?」
“…….”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대답을 망설이자, 협회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뭔 일인지는 몰라도, 전국 작전팀을 소집하는 건 불가능해. 내가 안 해주겠다는 게 아니라, 법이 그렇잖냐.」
물론 알고 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총 15개 팀 이상의 작전팀이 한곳에 모이는 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위기 상황일 때는 전원 소집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대체 어떤 위기 상황이 있는 건데?」
“…….”
내가 사실 회귀했는데 아무튼 이맘때에 위험한 던전 하나 열린다고 말하면…….
시발, 나 같아도 안 믿는다.
「요즘 사업이니 뭐니 무리하더니 많이 피곤한가 보네. 그러지 말고 며칠 좀 쉬어라. 쉬는 것도 일이야.」
“……알겠습니다.”
도저히 이걸 설명할 자신이 없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니, 갓 A랭크를 받고 기고만장했던 그때의 기억이 머릿속에서 흐릿하게 재생되었다.
***
회귀 전 서울, 서초역 근처.
카아아아악―!!
쿠구구궁―!!
콰광, 쾅―!!
서울 한복판은 이미 아비규환이었다.
갑자기 출현한 리젠 던전에서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도심으로 쏟아져 나오는 중이었다.
“진영 유지해!! 흩어지면 다 죽는다!!”
작전 1팀 헌터들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내 말을 들을 만한 이성은 남아 있지 않았다.
“으아아악!!”
“끄으윽!”
“쿨럭…!”
몬스터 한 마리 한 마리가 보스 수준이다.
겪어본 적 없는 상황에 정신이 흔들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시발…….’
이를 으득 씹었다.
그리곤 이수용 팀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팀장님! 이대론 전멸합니다. 최대한 시간만 끌면서 후퇴한 다음에 후방에서 다른 팀이랑 합류해야 합니다!”
“…….”
하지만 명색이 작전 1팀장이라는 새끼는 이미 넋이 나가 있었다.
“팀장님! 팀장님!!”
“……후, 후퇴하자.”
그가 겨우 목소리를 내는 순간, 내가 소리쳤다.
“후퇴! 다들 후퇴해! 최대한 다가오지 못하게 견제하면서 코엑스까지 빠진다!”
“네, 네!”
“하동수! 너는 사제 클래스들 집중해서 보호해! 조원재는 마법사 클래스들이랑 뒤에서 백업해주고! 나머진 다 나 따라와!”
“알겠습니다!”
정예라 불리는 작전 1팀은 던전에 진입하지도 못한 채 후퇴를 감행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최연소 A랭크를 받은 나로서도 납득하기 힘들었다.
그동안 레드 등급 토벌에서도 리더를 맡았다. 젊은 나이지만 던전 경험은 웬만한 팀장급 이상이었다.
그런데 이건 던전이 아니다.
그저 재앙.
작전이고 기획이고 아무 소용없는 재앙 그 자체.
그 뒤론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정말 죽을 각오로 싸웠고, 같은 각오를 한 팀원들이 사방에서 죽어 나갔다.
자지도 먹지도 못하고 몬스터를 막기만 한 게 사흘.
그럼에도 여전히 우린 던전 입구에도 다다르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서울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그제야 심각성을 인지한 서민철 본부장은 뒤늦게 길드와 전국 지부에 지원 병력을 요청했고, 조금씩 몬스터에게 빼앗긴 구역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윽고 다시 던전 입구까지 도달했을 때.
던전이 자연 소멸했다.
끝났다.
하지만 그 누구도 기쁨에 소리치거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못했다.
우린 승리한 게 아니라, 가까스로 살아남은 것뿐이었다.
무너진 건물 잔해들.
갈기갈기 터진 몬스터 사체와 헌터의 시신이 섞여 서울 바닥이 붉게 물들었다.
“…….”
나는 무표정하게 동료들의 시신을 바라봤다.
개중엔 곧잘 따르던 후배도, 많이 도와줬던 선배도 포함되어 있었다.
뒷담화를 하던 동기도 있었고 고등학생 시절부터 같이 헌터 시험을 준비했던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우두커니 서 있던 그때.
“저…….”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뭡니까?”
“던전 청소팀인데……. 어디서부터 청소를 하는 게 좋겠습니까?”
“……당신들도 협회 소속입니까?”
“네, 네. 그렇죠.”
나는 그를 바라보며 무미건조하게 물었다.
“당신들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어디 있었습니까?”
“네? 하, 하지만 저희는 비전투 인원…….”
손을 휘저으며 그의 말을 잘랐다.
알고 있다. 괜한 화풀이다.
그저 이성적으로 생각할 만한 정신이 남아 있지 않았을 뿐.
그들 때문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다만 그럼에도 왜인지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