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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원 건설 이야기가 나온 지 일주일째.
일은 꽤나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가장 중요한 사업 예산을 받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역만 확정되지 않았을 뿐, 건설 자체는 상정되어 있는 안건이었기에 예산이 이미 책정되어 있었다.
이아영의 사업 기획서 때문인지, 아니면 전화 한 통 때문인지, 그마저도 속전속결로 처리되어 건설 허가가 났다.
김민주는 그동안 지부를 도와 작전에 투입됐고, 한유빈이 맡은 3팀이 그들을 지원했다.
또한, 편 팀장이 그 모든 팀의 스케줄을 도맡아 조율해주었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던 강형원 부장도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더는 불안해하지 않았다.
그저 입만 벌린 채 멍하니 지켜볼 뿐이었다.
당연히 지부 소속 직원들 또한 덩달아 바빠졌지만, 불평을 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본부의 주축들이 모두 나서서 도와주고 있는데 어찌 불만을 가질 수 있겠는가.
뭐, 그렇다고 모두 불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나저나… 우리 일도 바쁜데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나 모르겠네요.”
지부 옆, 이제 막 시작된 공사 현장에서 이아영이 볼멘소리를 냈다.
“그냥 계약 해지하는 게 이래저래 덜 피곤했을 텐데.”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선 우리가 도망치는 것 같잖습니까.”
“참 나, 사업에 그런 게 뭐가 중요해요.”
“뭐, 우리한테도 이번 일은 터닝 포인트가 될 겁니다. 제가 장담하죠.”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더 할 말이 없지만요.”
이아영 실장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대, 대표님! 김준우 대표님!”
그때, 지부 직원이 황급히 나를 찾았다.
“뭡니까?”
“지금 지부 앞으로 시위대가 모여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길드 놈들이 들고일어난 것 같은데…….”
“뭐, 예상한 부분이군요.”
애초에 최호성 빽으로 어떻게 비벼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
그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목소리를 키우는 것뿐이겠지.
그래도 일주일은 버텼네.
“잠깐 다녀와야겠습니다.”
“그러세요. 사과 꼭 받아오시고.”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지부 건물로 향하자 역시나 몇 개의 길드가 자리를 깔고 앉아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연수원 건설 결사반대!]
[신입 헌터에게 우리 목숨을 맡길 수 없다!]
[시민의 목숨은 실습용이 아니다!]
[시민 구하는 협회? 시민 죽이는 협회!]
‘역시 이렇게 나오는구먼.’
보아하니 길드만 있는 것도 아니다.
입김이 닿았는지, 온갖 시민 단체까지 참여한 듯했다.
증명되지 않은 신입 헌터를 실제 토벌에 투입하는 거니, 저들의 의견이 썩 틀렸다곤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좋은 구실일 뿐이지.
‘할 거면 최소한 속이라도 안 보이게 하던가.’
당연하겠지만, 저들이 시위하는 이유는 시민을 위해서가 아니다.
이대로라면 눈 뜨고 밥그릇 뺏길 게 뻔하니 적당한 이유를 찾아서 짖는 것뿐이다.
모여든 인파 사이에서 심현수 길드장을 포함한 백제 길드원들이 보였다.
“어, 그 청소 업체 사장!!”
“여러분! 저놈이 강형원 부장을 살살 꼬드긴 겁니다!”
“철회하라!”
“철회하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다행히 경찰이 다급하게 통제하며 충돌이 발생하진 않았지만, 쉽사리 가라앉을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 모습엔 절박함까지 보일 정도였다.
“하아…….”
깊은 한숨을 쉬며 그들을 슥 둘러봤다.
여기서 뭔 말을 하든 들어 먹을 것 같진 않고,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끝은 봐야 하니.
좀 귀찮겠지만, 어쩔 수 없나.
“알겠습니다. 그럼 협상을 해보죠.”
***
며칠 뒤 순천 지부, 대회의실.
나는 그곳에 심현수 길드장을 포함한 타 길드의 대표들을 불러 따로 자리를 마련했다.
당연히 현 순천 지부의 책임자인 강형원 부장 또한 참석했다.
비장한 눈빛들.
누구랄 것 없이 모두가 여기서 밀리면 죽는다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그럼 빨리 본론으로…….”
“잠깐만요.”
꽤나 급했는지 심현수 길드장이 입을 열었지만, 내가 막아섰다.
“아직 더 오실 분들이 있습니다.”
“……또 누가 온다는 겁니까?”
“보시면 알 겁니다.”
똑똑―.
“마침 오셨네.”
말하기 무섭게 회의실 문이 열리며, 두 남자가 들어섰다.
“하하, 간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그럼요. 표정을 보니 길드장님도 여전하신가 봅니다.”
“저야 늘 그렇죠, 뭐. 하하!”
여전히 호쾌한 웃음소리.
첫 번째 손님은 현 대한민국 1위 길드 아레스의 대표, 차석현 길드장이었다.
“얼굴이 좀 폈군. 바깥 물이 좋긴 한가 봐?”
“오랜만입니다, 이사님.”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온 두 번째 손님은 현 이능차원협회 기획 본부장, 이두식 이사였다.
“……뭐, 뭐야!”
“차, 차석현 길드장님?!”
“이두식 이사면 협회 거물 아니야…?”
난데없는 두 거물의 등장에 회의실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차석현 길드장과 이두식 이사는 각자 자리에 착석했고, 동시에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럼 다 온 것 같으니 협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브라보 길드의 김상우 대표가 발언했다.
“아무리 던전 난도가 낮은 지역이라도 해도 신입 헌터들에게 토벌을 맡길 순 없습니다. 시민들이 위험해지는…….”
“까지 마시고. 우리 솔직하게 갑시다, 솔직하게.”
조금 과격하게 그의 말을 끊으며 말을 이었다.
“연수원 들어서면 당신들 밥그릇 뺏길까 봐 그러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
“…….”
참 정직한 반응들이군.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순천 지부는 이제부터 민간 길드에 던전을 배분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왜 그런지는 심현수 길드장님이 가장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
대놓고 지목하자, 그의 시선이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러게 괜한 행패를 부리지 않았으면 이럴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최소한 재고라도 해주시면…….”
사정을 모르는 브라보 길드의 김상우 길드장, 직녀 길드의 차연주 길드장이 번갈아 입을 열었다.
그러자 이번엔 이두식 이사가 단숨에 고개를 저었다.
“협회는 길드보단 지부가 우선일세. 순천 지부를 위해서라도 우린 연수원 건설 건을 철회할 생각이 없네.”
“그럼… 저흰 진짜 다 죽습니다. 설마 서울 내 모든 길드와 협력 업체 계약도 체결한 협회가 지방 길드는 무시하겠다 이겁니까?”
“설마. 협회도 그대들의 고충을 무시하고 무작정 진행하려는 건 아닐세.”
이두식 이사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그래서 제가 이 자리에 온 겁니다.”
차석현 길드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뭐, 제가 전국 길드를 관리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최소한 도움 정도는 드릴 수 있습니다. 순천 내 모든 길드와 전국 각 지부에 다리를 놔드릴 생각입니다. 단, 지부와 정식으로 1대1 계약을 맺는다는 조건으로.”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처럼 어느 한 길드가 독점적으로 던전을 배분받고, 그걸 주변 길드에 재분배하는 행위를 금지하겠다는 겁니다. 그런 유착 관계가 어느 한쪽으로 힘이 쏠리게 해 계속해서 양측 모두에게 불합리한 일이 발생하는 겁니다.”
차석현 길드장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간 백제 길드가 독점적으로 던전을 배분받아 주변 길드에 나눠주는 관행을 없애고, 이제는 공식적으로 각 길드와 계약을 맺고 던전을 배분하겠다는 소리.
당연히 이제까지 던전 배분을 오로지 백제 길드를 통해서 받을 수밖에 없었던 주변 길드에겐 오히려 좋은 기회였다.
물론 그렇게 되면 백제 길드는 더 이상 그 어떤 길드와도 교류할 수 없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되겠지만.
“자, 잠깐만요! 차석현 길드장님은 저희 편에서 생각해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심현수 길드장이 바로 눈치채고 들고 일어났다.
차석현 길드장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편? 무슨 말씀을 하는 겁니까. 상생해야 한다고 한 건 심현수 길드장님 아닙니까? 어느 한쪽이 유리하게 편을 들어주는 게 당신이 말하는 상생입니까?”
“…….”
“듣자 하니 심현수 길드장님은 그간 순천에서 활동하면서 길드 발전 기금을 강요했다는데, 사실입니까?”
“……강요는 아니었습니다.”
“길드 발전 기금을 걷는 행위가 공식적으로 금지된 건 아십니까? 불법을 요구하는데 강요가 아니면 뭡니까?”
“…….”
“또한, 파견된 청소부에게 심한 갑질과 심지어 던전 출입비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돈을 갈취했다고요. 이거 엄연히 범법 행위인데 말이죠.”
차석현 길드장의 말이 이어질수록 심현수 길드장의 시선은 점점 바닥으로 향했다.
“이것 참, 이래서야 앞으로 던전을 믿고 맡길 수가 있나.”
그때, 이두식 이사가 거들었다.
이두식 이사는 팔짱을 낀 채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듣자 하니 한두 번 있었던 일도 아닌 것 같고… 이건 우리로서도 도리가 없군.”
“…네, 네?”
“백제 길드는 앞으로 전국 지부의 던전 배분 명단에서 제외하겠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진 듯한 표정.
더불어 손이 덜덜 떨리는 게 보였다.
당연한 반응이다.
배분 명단 제외.
백제 길드는 앞으로 그 어디에서도 던전을 배분받지 못한다는 선고가 떨어진 거나 다름이 없었으니.
끝났군.
그렇게 생각하던 차였다.
“제, 제가 잘못했습니다.”
갑자기 그가 무릎을 꿇었다.
“다, 다신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한 번만……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일이 이렇게까지 돼서야 사과를 하는 꼴이라니.
그 추하고 한심한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이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심현수 길드장님.”
“네, 네.”
“그러게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날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실 거라고.”
“…….”
나를 올려다보는 눈빛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이,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급기야 울먹이는 목소리로 감정에 호소한다.
그렇게 인정을 찾는 사람이었던 건가.
“글쎄요. 제 직원들한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으셨습니까?”
“…….”
“너무 걱정 마십시오. 이번 달 던전 배분 취소 위약금은 제대로 지급해 드릴 테니까. 뭐… 일전에 못 드린 길드 발전 기금이라고 생각해주십시오.”
대답이 없는 그의 뺨을 툭툭 몇 차례 치고 등을 돌렸다.
“협상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들 이견 없으시면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각자 계약을 맺으실 지부는 추후 공문을 내릴 테니 그때까지 대기하고 계십시오.”
길드장들이 입을 꾹 다물고 서둘러 회의실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