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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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대밭이 된 산속.
아니, 나무고 뭐고 다 사라졌으니 이젠 산속이라고 하기도 뭐한가.
한바탕 난리를 피운 직후, 곧바로 입구를 막고 있던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청소팀을 빼냈다.
시간이 워낙 지체되었기에 가스 농도가 꽤나 높았는지 청소팀원들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거친 기침과 함께 구토를 해댔다.
대기 중이던 의무팀이 곧바로 처치에 나섰다.
다행히도 모두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때맞춰 김민주와 한유빈이 맡은 현장에서 무사히 구출했다는 무전이 날아들었다.
모두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뒤, 곧바로 마무리 작업에 나섰다.
“소속.”
“…….”
짝―.
“소속.”
“라, 라오스 지부 소속 작전 2팀 C랭크 헌터 응고르입니다.”
말로 할 때 알아들으면 안 되는 걸까.
무릎을 꿇고 있는 그 헌터의 인적사항을 받아 적곤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넌.”
“필리핀 지부 작전 7팀, 코코입니다!”
“참 나, 뒤죽박죽 잘도 섞어놨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펜을 끄적거렸다.
50명이 넘는 인원의 신상을 하나하나 적는다는 게 참으로 귀찮은 짓이었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돌아가서 나 몰라라 할 게 뻔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둘 넷 여섯 여덟…… 한 명 남았네.”
마지막 남은 한 놈.
다름 아닌 녀석들의 우두머리였다.
“넌 어디 소속이야.”
“태, 태국 지부…….”
그는 말을 하던 도중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눈을 아래로 깔았다.
뭘 그리 놀래. 아직 손도 안 댔는데.
“태국 지부 작전 1팀장 카, 카나롯… 입니다.”
“작전 팀장?”
“네, 네 그렇습니다.”
“혹시 이번 작전 네가 기획한 거냐? 전술이랑 인원 배치까지?”
“아, 아닙니다. 전 그냥 시키는 대로 준비한 겁니다.”
“누가 시켰는데.”
“저도 자세한 건……. 본부에서 지령이 내려왔다는 것밖엔…….”
역시 국제 협회가 직접 움직인 거였나.
그럼 뭐, 이런 일을 벌인 이유도 대충 알만하네.
‘우리가 허브를 만든 게 어지간히도 눈에 거슬렸나 보군.’
펜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다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나설 줄이야.
본인들한테 거슬리면 청소부 몇 명 정도야 죽어도 상관없다는 건가?
‘……하긴, 한국에선 100명이 넘는 헌터도 죽이려고 했는데.’
주춤하긴커녕 더 대담해지고 있다.
마치 더 이상 눈에 띄면 봐주지 않겠다는 듯한 느낌.
‘……쯧.’
국제 협회를 견제하기 위해 벌인 일인데, 도리어 견제가 들어오다니.
이러면 완전히 나가리가 아닌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그때였다.
“제 쪽은 다 끝났는데, 아직 다 못 하셨으면 도와 드릴까요?”
후인이 노트를 펄럭이며 다가왔다.
“아뇨, 저도 마침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이놈들은 어떻게 할까요.”
“뭐… 돌려보내야죠.”
“…네?”
후인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시잖습니까, 국제 협회 본부가 끼어있다는 거. 저흰 어디까지나 직원을 구출하기 위해 진압한 거지, 여기서 더 나가면 그다음은 전쟁입니다.”
“그, 그래도 그냥 풀어주는 건…….”
“걱정 마시죠.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물게 할 거니까.”
나는 일부러 카나롯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왜, 뭐 할 말 있어?”
내가 묻자 불안함을 감추기 위함인지 그가 빠득빠득 목소리를 높였다.
“……고, 고작해야 몸집 좀 큰 독립협회 주제에 국제 협회 지부를 상대로 책임을 물겠다고? 우, 우리 본부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에휴…….”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난다기보단…… 그냥 측은한 기분이 들었다.
“너희 설마 본부가 나서서 감싸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면 머리에 문제 있는 거다.”
결국, 표면적으로 일을 벌인 건 이들이 아닌가.
직접 지시를 내린 태국 지부장 한 명만 관리하면 밑에 놈들이야 얼마든지 꼬리를 자를 수 있다.
아니, 분명히 자른다.
내가 국제협회라도 그럴 테니까.
명백히 범법 행위인 던전 점거.
타 협회에 대한 공격.
던전 밖에서의 이능력 사용에 기타 등등.
세간에 드러나면 국제 협회라 하더라도 유야무야 넘어가기 힘들다.
이용당한 이 녀석들의 헌터 생활은 끝났다고 봐야지.
“……시, 시발.”
카나롯 팀장 또한 그제야 현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알았으면 돌아가서 곱게 목이나 닦고 기다리고 있어. 조만간 연락이 갈…….”
퍼억―!
그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밀치곤 뒤에 있던 후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곤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그의 목에 가져다 대며 소리쳤다.
“우, 움직이지 마!”
“하…… 시발, 가지가지 하네.”
어째 좋게 끝나는 경우가 없네.
“내, 내가 시발 어떻게 들어갔는데! 이대로 나가리 될 거 같아?!”
“야, 다 끝난 마당에 일 더 크게 만들지 말고 그냥…….”
“우, 움직이지 마! 움직이지 말라고!”
카나롯의 눈에서 이성이 나갔다.
푹―.
그리고 후인의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
국제 협회, 태국 지부.
지부장 집무실.
쁘라셋 지부장은 수화기를 든 채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한국 협회 놈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한국 협회에서 인수했는데.」
마르크 팀장의 담담한 반응에 쁘라셋 지부장은 더욱 복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강한 놈들이라곤 말씀 안 하셨잖습니까……!”
「하, 하하하! 알았으면 뭐 달라졌을 것 같습니까? 뭐, 사실 저로서도 예상 밖이긴 했습니다.」
“…….”
「나름 국제 협회 소속 헌터라는 놈들이 고작 세 명한테 개박살이 날 줄은.」
그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쁘라셋 지부장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반박할 수는 없었다.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실력에서 패했고, 그건 본인 또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으니까.
빠득 이가 갈리는 가운데 그는 애써 화를 참으며 입을 열었다.
“……한국 협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거야 당연하겠죠. 뭐랍니까?」
“관용은 없다고 못을 박더군요. 그동안 동남아 지부들에 지원해준 장비와 인원 파견에 대한 보상도 요구했고……. 더불어 앞으로의 지원은 일절 없을 거라고.”
쁘라셋 지부장은 막막한 심정으로 말을 꺼냈다.
“사실 보상은 둘째 치고라도…… 지금 우리 지부를 포함해서 주변 지부들도 이번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을 물게 됐습니다. 이미 저희 소속 애들 몇 명은 재판에 넘어갔고요.”
「그렇군요. 뭐, 재수 없으면 국가 분쟁으로까지 번질 수도 있겠죠.」
참으로 성의 없는 대답.
마치 남의 일이라는 듯한 말투였다.
「뭐, 본인들이 능력이 없어서 실패한 걸 어쩌겠습니까. 국가 문제는 우리가 나설 수도 없으니 각자 알아서 잘 해결 보십시오.」
“그, 그게 무슨……!”
「아, 그래도 너무 걱정 마십시오. 지부장님만큼은 보호해드릴 생각이니. 나름 동남아 지부에서 PB코퍼레이션과 직통할 수 있는 유일한 지부 아닙니까.」
“지금 저 혼자 산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잖습니까! 당신 말만 듣고 끌어들인 지부만 몇 개인데…! 여, 여보세요? 여보세요! …이런 시발!!”
콰직―!
쁘라셋 지부장은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수화기를 집어 던졌다.
동남아 나머지 지부들은 PB코퍼레이션의 존재도, 이번 일이 국제 협회 본부에서 내린 지시라는 것도 모르고 있다.
때문에 온갖 이유를 대며 다른 지부들을 끌어들인 건 다름 아닌 본인이다.
그런데 이번 일로 당사자인 본인 외의 모든 지부가 피해를 입는다면…… 그 모두가 적으로 돌아설 것이다.
아니.
동남아 지부 전체가 완전히 갈라서겠지.
‘이 개새끼들…….’
쁘라셋 지부장의 이가 빠득빠득 갈렸다.
이런 새끼들인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텐데.
그의 눈엔 국제 협회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또 다른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쪽은 좋겠네, 시발. 백기사 한 명 잘 만나서 승승장구하고…….’
그것은 베트남 협회, 아니 한국 협회 베트남 지부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
같은 시각, 프랑스. 국제 헌터 협회 본부.
“저, 사무총장님…….”
“네, 말씀하세요.”
웨슬리 사무총장을 마주한 수행비서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작전은 어떻게 됐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뭐, 100명 가까운 인원이 모조리 깨졌다더군요. 그것도 단 세 명한테.”
“그, 그럼…….”
“당연히 협상은 물 건너갔고 일에 가담한 헌터들 신상까지 모조리 공개됐어요. PB코퍼레이션 쪽도 일찍이 꼬리를 잘랐으니 지부들만 안 됐죠.”
“작전은 실패……했군요.”
“음? 아뇨?”
사무총장이 무슨 소리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수행비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놈들이 질 거라는 건 이미 예상한 일입니다. 이렇게 될 거라는 것도 전혀 모르고 있던 것도 아니고요.”
“네, 네…? 그럼 왜 굳이…….”
“허브를 매각하게 하는 건 실패했지만, 메시지는 확실히 전달되지 않았습니까.”
사무총장의 눈이 번뜩였다.
“이제 그놈도 알겠죠. 본인이 계속 우리를 적대하는 한, 본인 주변에 있는 인물 모두가 계속 위험해질 거라는 걸.”
“…….”
“제아무리 대단한 놈이라고 해도 이젠 마음대로 날뛰진 못할 겁니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목적은 이룬 셈이니 실패라고 할 순 없죠.”
수행비서는 침묵했다.
그가 말하는 ‘그놈’은 곧 김준우를 말한다는 걸 수행비서 또한 눈치껏 알아들었다.
하지만 설마하니 고작 그것 때문에 동남아 지부 전체를 이용할 줄이야.
그녀로선 가히 생각조차 못 한 일이었다.
“……이다음은 어떡하실 생각이십니까.”
“본보기도 보여줬겠다……. 이제 하나씩 처리해나가야겠죠. 쓸모없는 곳은 적당히 정리하고, 괜찮은 곳은 키우고. 눈에 거슬리는 곳은 없애고.”
사무총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슬슬 전 세계 토벌권 통합 건을 추진할 겁니다.”
***
노이바이 공항.
출국을 몇 시간 앞둔 시각.
그리도 기다렸던 귀국인데도 우리는 팍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뭐, 당연한 일이다.
꽤나 안타까운 일이 있었으니까.
“하아…….”
“잘해보려고 온 건데 결국 이런 일이 생겼네요.”
“…….”
한유빈은 아까부터 계속 말이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세상일이 다 우리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꽤 좋은 분이셨는데…….”
또다시 숙연해진 분위기.
그리고 그때.
“저…… 말씀은 감사한데, 꼭 그렇게 죽은 사람처럼 얘기할 필요가 있습니까?”
뒤에 있던 후인이 말했다.
“…….”
‘…….“
우리는 휠체어를 탄 채로 배웅을 나온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래도 죽다 살아난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참 안타까운 일이었죠.”
“어쨌든 멀쩡히 살아 있잖아요. 그냥 놀리고 싶은 거라고 솔직하게 말씀하시죠.”
김민주와 한유빈은 결국 참지 못하고 풋,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게 그냥 병원에서 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몸도 성치 않으시면서 뭘 굳이 배웅하겠다고.”
“그러면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우리를 배웅하러 나온 베트남 지부 직원들 또한 웃음을 터트렸다.
주변 협회 헌터들과 한바탕 일을 벌였던 그 날.
우두머리의 칼에 복부를 찔린 직후, 그의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칼이 너무 깊게 들어간 까닭에 출혈도 심했고 이미 정신도 잃은 뒤였으니.
급히 내가 가지고 있던 몇 개의 사제 스킬로 응급처치를 하고 병원으로 옮겼고, 다행히 늦지 않게 처치할 수 있었다.
“종종 놀러 오세요.”
후인이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놀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하하. 그럼 일하러 오세요. 제가 잘하고 있나 감시도 할 겸.”
“그건 놀러 오는 것보다 더 의미가 없겠군요.”
후인이 크게 웃는다.
“어쨌든 한 달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수고는 제가 아니라 당신이 했죠.”
그가 담백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혹시라도 저희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겁니다.”
그가 건넨 악수를 받았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김준우 본부장님.”
“베트남 지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지부장님.”
짧은 악수를 마치고 우린 입국심사장으로 들어섰다.
길고 길었던 출장이 드디어 끝이 났다.
하지만 분명 기다렸던 날이었음에도 내 표정은 여전히 심각했다.
[귀하의 목표 달성 현황에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귀하에 대한 국제 헌터 협회의 적대감이 기준치를 초과했습니다.]
[해당 변수에 따라 귀하의 현 목표 달성 현황을 갱신합니다.]
[…….]
머릿속에서 뜻밖의 그 음성이 들려온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