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77화 (77/366)

077

077

숲속에서 튀어나온 수십 명의 무장 세력은 무기를 겨눈 채 우리를 천천히 에워쌌다.

수틀리면 당장이라도 공격을 가할 날카로운 분위기다.

“하암… 다 온 거예요?”

그때 분위기와 동떨어진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째 한 명이 모자란다 싶었다.

이제야 잠에서 깬 한유빈이 기지개를 켜며 차에서 내렸다.

“……뭐야?”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한유빈은 퍽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 뭔 일이에요? 사고라도 났어요?”

“네. 저 친구들이 우리한테 볼일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무슨 볼일요?”

“보면 모르겠습니까. 강도질이나 납치거나 뭐, 그런 거겠죠.”

“……?”

그리고 돌연 풋, 웃음을 터트린다.

“지금 자다 깼다고 나 놀리는 거예요?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우리를 납치해?”

“…….”

“…….”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웃어넘기려던 한유빈은 무표정한 우리의 얼굴을 보자 이내 입꼬리를 내렸다.

“……진짠가 보네.”

뒤늦게 농담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모양이지만, 그래서 더 당혹스러운 모양이다.

물론 나만큼이야 하겠느냐만.

“베트남이 원래 이렇게 깡이 좋은 나라였나…….”

“뭐, 잘 모르면 그럴 수도 있죠.”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건가요?”

김민주가 물었다.

한유빈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팔 한쪽씩 부러뜨려 놓으면 보내주지 않을까 싶은데.”

“……거 사람이 왜 이렇게 폭력적입니까.”

“그럼 뭐, 그냥 고이 잡혀주자고요?”

“대화로 해결할 수도 있지 않냐는 겁니다.”

“그랬으면 이미 저 일어나기 전에 해결했겠죠! 저 봐, 저놈들 무장한 거. 저게 대화하려는 놈들의 태도예요?!”

“…….”

아주 한 마디를 안 지네.

“그래도 남의 나라까지 와서 폭력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어련하시겠어.”

한유빈이 볼멘소리를 내는 사이 김민주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저… 아까 차에서 잠깐 보니까 나쁜 사람 같진 않던데, 이야기라도 들어보는 게 어떨까요?”

“이야기 들은 다음에 처리하자는 거죠?”

“아뇨. 대화를 좀 해보자는 뜻인데.”

“으, 그놈의 얼어 죽을 대화! 이럴 거면 아예 다 같이 카페를 가던가!”

“어쩔 수 없잖아요. 전 무기도 두고 왔는걸요.”

한유빈은 어지간히 답답한 듯 씩씩거렸고, 김민주는 그런 그녀를 설득하기에 바빴다.

‘긴장감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네.’

이게 어딜 봐서 피랍된 놈들의 태도인가.

‘하긴… 작전팀장 출신만 세 명인데 긴장되는 게 더 이상한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사이 이 상황을 만든 장본인인 후인이 입을 열었다.

“해칠 생각은 없어요. 그냥 할 얘기가 좀 있습니다.”

“……거 되게 설득력 있는 말이군요.”

적개심이나 숨기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행색을 보아하니 결코 민간인은 아니다.

클래스 전용 무기를 끼고 있는 거로 봐선 모두 헌터라는 뜻이겠지.

설마 협회 소속 작전팀? 아니면 민간 길드?

그것도 아니면 이능력 카르텔?

‘뭐, 어느 쪽이든 좋은 볼일은 아닌 것 같네.’

자연히 실소가 배어 나왔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뭡니까? 설마 1년 전에 우리가 지원 요청 거절했다고 복수하려는 건 아니겠죠.”

“설마요.”

후인은 고개를 저었다.

“돈. 우린 돈이 필요합니다.”

“……너무 정직해서 오히려 당황스럽네.”

그냥 양아치들이었나.

나는 한심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린 가진 게 별로 없습니다. 못 믿겠으면 지갑 확인해 보시든가.”

“당신들은 없어도 한국 협회에는 있겠죠.”

“……아, 그러니까.”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설마 우리를 인질로 한국 협회에 몸값을 요구하시겠다?”

“네.”

“후인, 그거 국제 범죄입니다.”

“알아요.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어쩔 수 없다?”

하,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래, 어련하겠는가.

나쁜 놈들도 지 딴엔 다들 그럴싸한 이유가 있다.

물론 그래 봤자 다 변명…….

“우린 계속 토벌을 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선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토벌?”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토벌이라뇨. 그럼 당신들 정말로 작전팀 소속의…….”

수십 명의 인원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당신들은 계속 토벌을 진행해야 하는데, 그럴 돈이 없어서 우리를 납치했다……?”

“맞아요.”

“허, 이런 미친.”

아무리 상황이 어렵다고 해도 그렇지, 한 국가의 협회가 작전비를 이런 식으로 충당한다니.

나로서도 평생 상상도 못 해본 일이었다.

“당신도 오면서 봤잖아요. 지금 우린 장비도, 인원도, 인프라도, 정보도 매우 열약해요.”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는 이유였다.

아무리 사정이 어렵다고 해서 이처럼 극단적으로 나가도 되는 걸까.

무슨 내전 중인 곳도 아니고서야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베트남 협회가 어려운 건 압니다. 그래서 우리가 온 거 아닙니까? 우리가 공식적으로 인수해서, 인원이고 장비고 제대로 지원하면 해결할 문제를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죠.”

“아뇨. 당신들은 우리 협회를 인수하지 못합니다.”

“……예?”

후인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굉장히 씁쓸하면서도 암울한 미소다.

“우리 협회, 이미 예전에 해체됐어요.”

가히 충격적인 말에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그,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최근 자료에도 그런 내용은 없었습니다.”

“물론 서류상으론 그렇습니다. 뭐… 정부 지원금 명목이라고 해두죠. 어쨌든 지금은 실질적으론 해체 상태예요.”

“잠깐. 그러니까 결국 해체됐어도 지원금은 나온다는 소리 아닙니까? 그 지원금은 어디로 가길래 작전비가 없다는 겁니까.”

“어디겠어요.”

후인은 그렇게 말하며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당사자인 후인은 여전히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1년 전에, 그러니까 레드 등급 던전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나서 안 그래도 어려웠던 협회는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어요. 어쩔 수 없이 협회장이 국제 협회에 매각을 추진했습니다. 다행히 합의는 원만했어요. 인수합병 직전까지 갔으니까요.”

“……결과적으론 불발 났다는 겁니까?”

“네. 당에서 막았거든요.”

“……?”

눈이 동그래졌다.

“정부가 막았다고요? 국제 협회와 인수합병이 되면 지금보다 훨씬 협회가 커질 텐데, 어째서.”

“국제 협회에 인수되면 정부 지원금이 안 나오잖아요.”

“…….”

그거참 상상을 초월하는 이유네.

“그 후로는 계속 운영난에 시달리다가 직원들이 대거 퇴사하면서 결국 이런 상태까지 왔어요. 아까 말했듯이 협회는 윗분들이 지원금을 받아먹기 위한 명목으로만 존재하고 있죠.”

“이런 시발…….”

머리를 턱 짚었다.

“뭐, 상황이 이런데도 당에서는 계속 토벌 명령 떨어지지, 작전에 쓸 비용은 없지……. 뭐 어쩌겠어요.”

“그래서 이런 식으로라도 작전비를 충당하고 있다?”

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협회가 커지는 건 싫지만 토벌은 진행해야 하는 정부.

토벌은 진행해야 하지만 지원은 받지 못하는 작전팀.

모순 그 자체인 상황에서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았겠지.

그래, 이제야 납득이 간다.

물론 그렇다고 이들의 행동을 모두 이해해 줄 수는 없지만.

‘뭐, 그건 일단 둘째 치고.’

나는 길게 한숨을 늘어뜨렸다.

인수가 쉬울 거라곤 기대도 안 했지만, 설마하니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협회일 줄이야.

“완전히 허탕이네. 왠지 제대로 될 것 같진 않더니만.”

“…….”

한유빈이 빈정거렸고, 김민주도 안타까움에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상황만 놓고 보면 자연히 골머리가 아픈 상황이지만…….

“아뇨. 차라리 잘 됐습니다.”

“네?”

“응?”

두 사람이 뭘 잘못 들었다는 듯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괜히 이것저것 조건 따지면서 협상하고 고생하느니, 차라리 처음부터 시작하는 게 낫죠. 무엇보다 인수할 협회가 없으면 인수 비용도 필요 없다는 소리 아닙니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돈을 아낄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잘 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돈 대신 해결해야 할 부분이 생각보다 훨씬 귀찮긴 하지만.

“최대한 원만하게 해결하도록 하죠. 우리 입장에서도 현지 헌터랑 사이가 틀어지는 건 별로 좋은 일은 아니니.”

“그러죠, 뭐…….”

김민주는 납득한 것 같지만, 한유빈은 영 떨떠름한 태도였다.

하여간 성깔하고는.

난 후인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사정이 딱한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범죄를 저질러서야 되겠습니까.”

“…….”

“그래도 뭐, 나쁜 마음먹고 이러는 건 아닌 것 같으니 저희가 특별히 도와드리죠.”

“도와준다고요? 뭘 어떻게?”

후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베트남 협회, 우리가 다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물론 그냥은 아니다.

“대신 한국 협회 지부로 편성된다는 조건으로. 어떻습니까? 이거 정말 두 번 다시 없을 기회인데.”

“…….”

“…….”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고 생각하는데, 모두가 당황한 표정이었다. 대답을 아낀 채 서로 눈치를 살폈다.

이내 후인이 애써 담담한 척 말했다.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애초에 당신들이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요. 당의 허가가 없으면 돈을 아무리 퍼부어도 협회를 다시 세우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뭐, 그거야 설득하면 되죠.”

“……엄청 쉽게 말씀하시네요.”

내 대답이 그리 웃긴 건가.

현지 헌터들이 무기를 거두며 웃었다.

서로 무어라 떠들어댔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설마 내가 농담한 거라 생각한 건가. 진심인데.

“그래요. 설득하면 된다라…….”

후인이 묘한 눈으로 쳐다봤다.

“말은 누가 못해요.”

“……?”

“포박해서 기지로 데려가.”

“야, 이 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십 명의 헌터가 우리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

한국 협회 여의도 행정본부, 협회장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사무실을 찾아왔을 때부터 계속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있던 이두식 이사가 물었다.

박인범 협회장은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뭐가 또?”

“해외 지부 추진 말입니다. 사실 그 자리에서 내색은 안 했지만… 저도 불안하긴 합니다.”

으음, 협회장이 작게 신음했다. 그리곤 등받이에 몸을 쭉 기댔다.

“쯧, 낸들 안 그러겠냐.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기면 공중분해 될 텐데. 나도 기껏 복귀해서 한 달 만에 실업자 되긴 싫다.”

“그럼 굳이 진행할 필요는 없지 않았습니까.”

“김준우, 그놈 말이 썩 틀린 것도 아니잖냐. 국제 협회가 진짜로 우릴 노리고 있다면 이 방법이 최선이야.”

“그건 그렇지만… 리스크를 무시할 수도 없잖습니까. 무엇보다 첫 타자가 베트남 협회인 것도 좀 불안합니다. 그쪽이랑은 일이 좀 있지 않았습니까. 다른 사이좋은 협회들 내버려두고 왜 굳이 거길 선택한 건지 이해가 잘…….”

“됐다. 이미 다 지난 일인데 이제 와서 뭘.”

협회장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이두식 이사로서는 퍽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역시 불안하다면 굳이 그 자리에서 허가해 줄 필요는 없었다.

일단 생각은 해보겠다고 하며 시간을 벌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급하게 김준우의 제안을 수락한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물론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협회장의 미소가 눈에 들어온 까닭이었다.

“……그놈이 실패할 거라고는 아예 생각도 안 하시는 거군요.”

“그래. 그놈은 한다면 하는 놈이야.”

“너무 맹목적이신 거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고. 근데 뭐… 딱히 나만 그런 것도 아니잖냐?”

이두식 이사는 피식 웃음을 뱉었다.

어쨌든 본인도 그 자리에선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던가.

그 기저에 김준우니까, 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결국, 그 또한 협회장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긴장감이 너무 없으십니다.”

“너만 하겄냐.”

소소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던 그때, 사무실의 전화가 울렸다.

협회장은 웃음기를 지우곤 수화기를 들었다.

“예, 이능차원관리 협회장 박인범입니다.”

“…예?”

“아 그렇습니까…….”

“아뇨, 관심 없습니다.”

“예예~ 잘 알았으니까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몇 초도 되지 않아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뭐야 이 새끼들은…….”

“누굽니까?”

“우리 애들을 납치했는데 살리고 싶으면 돈 달라네?”

“예? 누굴 납치했다는 겁니까? 아, 아니 그 전에 그런 전화를 그냥 끊어버려도 되는 겁니까?!”

“지들이 납치한 게 김준우 일행이라는데?”

“……?”

이두식 이사의 반응이 곧바로 차갑게 식었다.

“보이스 피싱이군요.”

“내 말이.”

하암, 협회장은 입을 쩍 벌리며 크게 하품했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