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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76화 (76/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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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베트남으로 향하고 있는 비행기 안.

“하암…….”

나는 비즈니스석에 앉아 연신 하품을 해댔다.

신수지 보좌관이 이번 주 업무는 끝내놓고 가라고 닦달하는 바람에 어제 밤을 꼬박 새운 터라 졸려 미칠 지경이었다.

게다가 이륙할 때부터 같은 서류를 몇 번이나 읽는 중이라 눈도 점점 피로해졌다.

하지만 서류 검토를 멈출 순 없었다.

부족한 예산에 더해 부가적으로 제시할 만한 부분을 찾아 현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자꾸 터져 나오는 하품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지만.

“흐아아암…….”

“아, 그렇게 피곤하면 좀 주무시든가! 거 되게 거슬리네, 정말!”

앞자리에 있던 한유빈이 나를 획 돌아보며 투덜댔다.

아까부터 꽤나 거슬렸던 모양이다.

“그럴 시간 없습니다. 몸만 간다고 협상이 알아서 되는 것도 아니고.”

“계속 서류만 들여다본다고 뭐가 나와요? 거 보니까 별로 중요한 정보도 없더만.”

“정보가 나 중요하다고 말이라도 한답니까? 찾아봐야 뭐라도 보이든 말든 하죠. 예산이 턱도 없이 모자라서 이렇게라도 안 하면 빈손으로 돌아가야 할 겁니다.”

“……참 나.”

더는 할 말이 없는지 한유빈은 멋쩍은 듯 고개를 돌렸다.

이를 지켜보던 김민주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뭐 좀 찾으셨어요?”

“글쎄. 이렇다 할 만한 게 없네. 적은 투자로 핵심적인 도움을 줄 만한 게 필요한데… 두 가지 모두를 만족하는 게 영 없어. 하나 같이 스케일이 너무 크거나, 아니면 핵심적이지 않거나 둘 중 하나라.”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뭐 어렵게 생각할 거 있나? 그냥 작전팀 지원 정도만 해주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쪽엔 헌터도 많이 없다면서요.”

그새를 못 참고 한유빈이 또 끼어들었다.

“그건 좀 힘듭니다.”

“왜요?”

“베트남 협회엔 지원팀이 없거든요.”

한유빈은 작게 아, 소리를 냈다.

“최첨단 장비와 연구시설로 떡칠을 해야 하는 팀을 만들기엔 이래저래 여건이 안 되는 모양입니다. 뭐, 나라마다 사정이란 게 있으니까요.”

“흠… 뭐, 지원팀이 없으면 작전팀을 함부로 지원해주긴 좀 그렇긴 하네요. 그렇다고 지원팀까지 파견하기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거고.”

“…….”

대답 대신 퍽 놀란 표정으로 가만히 한유빈을 바라봤다.

“왜, 왜 그렇게 봐요?”

“아뇨 뭐. 그래도 나름 작전팀장 출신이긴 하구나 싶어서.”

“허…….”

한유빈은 기가 차다는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김민주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튼, 생각보다 인프라가 더 빈약합니다. 대충 몇 가지 생각나는 건 있는데… 서류로 확인하기엔 한계가 있고. 나머진 도착해서 알아보도록 하죠.”

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몇 시간이 흐르고,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했다.

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노이바이 공항.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오자 후끈한 공기가 곧바로 전신을 덮쳤다.

호객꾼과 관광객이 뒤섞여 꽤나 정신없는 입국장 앞에 있던 한 남자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한국 협회에서 온 분들이십니까?”

“예.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후인입니다. 베트남 협회 통제팀.”

어색하긴 해도 꽤 정확한 발음의 한국어였다. 보아하니 마중 나온다던 현지 협회 직원인 듯했다.

“반갑습니다. 한국 협회 서울 본부 소속 김준우입니다. 한국말을 꽤 잘하시는군요.”

“하하. 감사합니다. 독학했어요.”

자신을 후인이라 소개한 남자가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원활한 대화를 나누기엔 조금 힘들어 보여 영어로 해도 괜찮다고 하자, 그는 흔쾌히 언어를 바꿔주었다.

간단히 악수를 나누고 그는 우리를 자신의 차로 안내했다.

“본부까지 거리가 좀 있어요. 오시느라 피곤했을 테니 한숨 주무세요. 도착하면 깨워줄게요.”

“괜찮습니다. 가면서 거리 구경도 좀 할 겸.”

“하하, 그래요.”

후인은 호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시동을 걸었다.

하노이 시내로 들어섰다.

도심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곳곳에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들이었다.

물론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듯했지만 어째 제대로 진행되는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도시를 빠져나오고 나서부턴 더욱 심해졌다.

마치 전쟁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멀쩡한 곳이 없었다. 심지어는 마을 하나가 통째로 쑥대밭이 된 곳도 있었다.

이곳은 도시와 다르게 복구 작업은 시도조차 하지 않은 듯, 무너진 잔해를 그대로 방치한 채였다.

“하하. 이래서 잠자는 걸 추천한 거예요.”

후인이 멋쩍게 웃었다.

난 대답을 아꼈다.

그의 심정이 퍽 이해가 됐다.

아무래도 외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러 온 손님에게 보여줄 만한 광경은 아니었으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도 됩니까?”

“뭐, 짐작하시는 대로.”

후인이 쓰게 웃었다.

“50년 전에, 그러니까… 처음 ‘까일로’가 열린 날 말이에요.”

“까일로?”

“구멍. 베트남에선 옛날에 던전을 그렇게 불렀어요.”

50년 전.

혜성, ‘시니아’가 지구와 충돌하면서 차원이 열리기 시작한 그 날.

당연하겠지만 전 세계가 아수라장이었던 그 당시에, 이능력이니 차원이니 하는 것들이 정립되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지금에서야 던전이란 단어로 통일됐지만, 그땐 뭐… 한국에서도 각자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불렀다고 한다.

빵꾸, 땅굴, 아가리 등등.

그런 거에 비하면 구멍은 꽤나 정직한 단어였다.

“그때 우린 첫 대응이 늦었어요.”

후인이 계속 말을 이었다.

“이능력자가 없었던 겁니까?”

“놉. 이능력자는 있었는데, 던전을 제때 찾을 수가 없었죠. 베트남은 전체 면적의 4분의 3이 산이거든요.”

“공감합니다. 한국도 비슷한 조건이라 초기에 토벌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꽤나 애를 먹었죠.”

“그래도 한국은 면적도 그리 넓지 않고 정보 산업도 상당히 발달해 있었잖아요?”

“…….”

확실히 그랬다.

베트남과 비슷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비교적 빨리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던 건, 그 두 가지 이점이 크게 작용했다.

던전 출현 위치를 얼마나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위치까지 얼마나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는가.

이 두 가지가 토벌 인프라가 얼마나 잘 구축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고, 한국 협회는 운이 좋게도 이 두 가지를 초기에 구축할 수 있었다.

지금 후안의 말대로라면 베트남 협회는 그렇지 못했다는 뜻이겠지.

“결국, 많은 몬스터가 던전을 탈출했고, 그때의 결과가 이 모습이에요.”

“……그렇군요.”

“근데 지금이라고 딱히 다른 건 없어요. 50년 전에 입은 피해도 다 복구하지 못했는데, 던전은 계속해서 출현하니까요.”

후인의 목소리가 퍽 진지해졌다.

“도로가 완전히 끊겼는데 산속에서 던전이 출현하면 도로가 다시 정비될 때까지 기다려야 되고, 그럼 그사이에 또 몬스터가 탈출해서 피해가 생기고. 그럼 다음 토벌에 또 늦어지고. 악순환이죠.”

50년이 지났음에도 작전 인프라 발전이 더딘 이유가 여기 있었다.

부족한 예산 대신 협회 발전에 필요한 부분을 지원해주려던 나에겐 더없이 나쁜 소식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무엇을 지원해주든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판국이다.

‘이거 생각보다 골치 아프네.’

착잡한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작전 인프라도 부족하고 헌터 수도 부족하고. 남들 다 있는 지원팀은 없고. 그렇다고 연봉이 높은 것도 아니고. 아주 죽을 맛이라니까요.”

후인이 쿡쿡 웃는다.

“그 정도면 차라리 국제 협회에 매각하는 게 낫지 않습니까?”

“…….”

계속 미소 짓고 있던 후인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뭐… 사정이 있어서요.”

“하다못해 지원 요청이라도 해보지 그랬습니까.”

“1년 전쯤에 말이에요…….”

갑자기 단호한 목소리로 내 말을 끊은 그가 호흡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푸룽 산에서 레드 등급 던전이 출현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작전팀 소속 헌터 36명이 보스 방에 갇히는 일이 있었는데 우리 여력으론 도저히 구출 작전을 할 수가 없었죠.”

“아!”

나도 모르게 반응하고 말았다.

아차 싶어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

“그때 국제 협회랑 주변 굵직한 협회에 모두 지원 요청을 한 적이 있었어요.”

후인이 나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물론 한국 협회에도.”

“…….”

애써 모르는 척 표정을 관리했다.

하지만 알고 있는 일이었다.

회귀 전이긴 해도 알고 있는 일이긴 했으니까.

당시 협회장이 내게 구출 작전 파견을 제안했지만,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우리 작전도 바쁘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얻을 게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굳이 우리가 아니어도 국제 협회에서 나설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이번에는 아마 서민철, 혹은 이수용 팀장이 거절했겠지. 아마 나와 똑같이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그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한 가지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다.

“다 죽었어요. 단 한 개 협회도 안 도와줬거든요.”

다른 협회도 우리와 같은 생각이었다는 걸 말이다.

냉정하게 보면 그게 생리지만, 피해 당사자 앞이라면 괜스레 마음이 불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지금은 기쁩니다. 우리 협회를 인수하겠다는 손님이 나타났잖아요!”

“…….”

너무 반짝거리는 눈으로 말하는 통에 애써 시선을 피했다. 아주 가시방석이 따로 없다.

‘시벌, 그냥 잠이나 처잘걸…….’

쯧, 혀를 차길 한 차례.

나는 피하듯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

“일어나요, 친구들. 다 왔어!”

우리를 깨우는 목소리에 문득 정신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든 모양이다.

피곤하긴 했는지 거의 몇 시간 기절한 느낌이다.

“하아암…….”

크게 하품을 하며 차 문을 열고 나오니 어느새 캄캄한 밤이었다.

기지개를 켜며 찌뿌둥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어둠. 그나마 눈에 들어오는 건 주변의 빽빽한 나무들뿐이었다.

“열대 지방 아니랄까 봐 숲도 울창…….”

잠깐.

숲?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금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여전히 주변에 보이는 거라곤 울창한 나무들뿐.

본부로 보이는 건물은 눈에 띄지 않았다.

“후인 씨? 도착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봐도 여긴 그냥 산속인데…….”

“도착한 거 맞아요.”

“예?”

무슨 말인가 싶던 그때, 사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김민주가 내게 바짝 몸을 붙여왔다.

우린 어두컴컴한 숲속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긴장을 유지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점차 커졌다.

바로 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건 다름 아닌 수십 명의 무장 집단이었다.

김민주가 옅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이거 아무래도…….”

“에휴, 시발.”

자동으로 미간이 좁혀졌다.

진심으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뒤통수 제대로 맞은 것 같다.”

귀찮게 돌아가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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