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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75화 (75/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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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PB코퍼레이션 본부,

이른 아침 사무실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

그곳엔 에마 대표를 비롯해 각 팀의 팀장들이 모두 참석해 있었다.

클로이 팀장은 이미 한참 전에 보고를 마쳤지만, 사무실엔 여전히 침묵만이 흘렀다.

팀장들은 계속해서 에마 대표의 눈치를 살폈다.

조직의 실세라 불리는 밸런스 조정팀의 마르크 팀장도 이번만큼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조차도 대표가 저렇게 분노한 모습은 처음이었으니까.

“그래서.”

숨쉬기조차 힘들던 침묵을 깨고, 에마 대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 서울 작전 본부장한테 노출됐다?”

“죄송합…….”

[습득 스킬 : 핑거 피스톨]

탕―.

에마 대표의 검지에서 총성이 울렸다.

리펄서 빔이 클로이의 왼쪽 어깨를 관통했다.

“…….”

엄청난 고통이 엄습했지만, 클로이는 신음조차 흘릴 수 없었다.

물론 다리에 힘이 풀린 건 어쩔 수 없었지만, 그것도 잠시뿐. 클로이는 이를 악물며 곧바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난 말이에요. 내 신뢰를 저버리는 놈들을 제일 싫어해”

모두가 바짝 긴장한 가운데, 에마 대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담담한 어조로 얘기했다.

“클로이 팀장은 내 신뢰가 별로 대수롭지 않았나 봐? 난 나름대로 클로이 팀장을 믿고 맡긴 건데. 어떻게 이딴 식으로 일을 처리하지? 그것도 두 번씩이나.”

“……죄송합니다.”

클로이 팀장이 피가 질질 흐르는 어깨를 부여잡은 채 대답했다.

“후…….”

에마 대표가 이마를 짚으며 길게 숨을 늘어뜨렸다.

도저히 화를 참으려야 참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간석 회수는 또다시 실패.

괜히 합법적으로 나가겠다고 추진한 적대적 인수합병은 결국 그 청소부 놈한테 꼬리가 잡혔고, 한국 랭킹 1위라고 떵떵거리던 양민호는 개박살이 났다.

그 결과, 조직의 존재까지 노출되었다.

이걸 어디서부터 수습해야 할지, 에마 대표는 감도 잡지 못했다.

‘사무총장님이 아시면 모가지 몇 개는 내놔야겠네…….’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본인이 먼저 알게 된 건 클로이 팀장한테도 다행인 일이었다. 이 보고가 사무총장 귀에 들어갔다면 어깨에 구멍만 나는 거로는 안 끝났을 테니까.

“그래, 이미 벌어진 일인데 어떡하겠어요. 앞으로 잘해야지 뭐.”

에마 대표는 이마를 꾹꾹 눌러대던 끝에 한숨을 팍 내쉬었다.

그때 밸런스 조정팀장, 마르크가 넌지시 물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이제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저희에 대해서 알아버린 이상 그 청소부 놈은 되도록 빨리 처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처리는 개뿔. 보기 좋게 실패해놓고 그런 말이 또 나와요?”

“이번 건은 클로이 팀장이 제 일도 아니면서 욕심을 부리다가 화를 입은 겁니다. 원래 밸런스 조정 업무라는 게 현장직에 일을 맡긴다고 다 되는 게 아닌데 말이죠.”

“그 말은, 당신이 진행했으면 달랐을 거라는 소린가요?”

“예.”

마르크 팀장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즉답했다. 눈빛에서도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하지만 에마 대표는 떨떠름한 반응이었다.

“됐어요. 지금은 때가 아니야.”

“…예?”

“그놈도 생각이 있으면 우리한테 습격당했다는 걸 이미 주변에 다 알리지 않았겠어요.”

“설마 그 말을 믿는 놈이 있겠습니까.”

“없겠죠. 근데 그놈이 진짜 죽어버리면 그땐 믿고 싶지 않아도 믿을 수밖에 없을걸?”

에마 대표가 어깨를 으쓱였다.

너무나 맞는 말이었기에, 마르크 팀장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지금 움직이는 건 우리 정체에 확신만 실어줄 뿐이에요. 뭐,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자세한 정보까진 새어 나가지 않은 것 같고. 지금은 일단 숨을 죽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저, 그럼 시간석은 어떻게…….”

이번엔 토벌권 회수팀장, 케인이 물었다.

“그러게요. 계속 내버려둘 수도 없고…….”

에마 대표는 미간을 좁혔다.

“일단은 둡시다. 꼬리가 드러난 이상 더 움직이기도 좀 그러니까요. 아이템 회수 건은 잠깐 내려놓고, 독립협회 흡수 건부터 먼저 진행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이견은 없었다.

조금 돌아가는 거긴 해도 지금 상황에선 그게 제일 안전한 방법이었으니.

어쨌든 회의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팀장들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클로이 또한 힘겹게 사무실을 나섰다.

대표 홀로 남은 사무실.

멍한 시선으로 텅 빈 책상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저도 모르게 문득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지금 이 모든 상황이 청소부 출신의 아시안 한 명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심히 어처구니가 없었던 까닭이었다.

기가 찰 노릇이다.

명색이 국제 협회 소속의 비밀 기구가 청소부 한 명에 놀아나는 꼴이라니.

에휴.

에마 대표가 옅은 한숨을 뱉으며 쓰게 웃었다.

“청소팀을 다 없애버려야 하나.”

그녀가 턱을 괸 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지원팀, 헌터관리실.

“한국 협회 이름으로 해외 진출을 한다라…….”

이사회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자 이아영 실장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동맹 협약이 아니라 아예 독립협회들을 인수하겠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잘만 하면 국제 협회를 견제하는 정도가 아니라 제2의 국제 협회가 될 수도 있겠는데……. 실패하면 우린 전부 백수 신세가 되겠네요.”

“네. 퇴직금은 꿈도 못 꾸겠죠.”

파하, 웃음을 터트린다.

“뭐, 당신다운 스케일이네요. 전 마음에 들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일자리는 알아보고 계십쇼.”

“에이, 저 백수 되면 당신이 책임지겠죠. 뭐.”

“…….”

“……농담이니까 표정 풀어요.”

나도 모르게 정색하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우리 협회의 영광스러운 첫 번째 지부가 될 곳은 어디예요?”

이내 이아영 실장이 다리를 꼬며 물었다.

“베트남입니다.”

“음, 괜찮네요. 그쪽은 협회가 설립된 것도 비교적 최근이고, 아직 작전 인프라도 미흡하다고 하니… 조건만 잘 맞춰주면 해볼 만하겠어요.”

“뭐, 조건이라고 해봤자 결국 돈일 텐데, 사실 남아 있는 예산이 얼마 없습니다. 제가 이번 작전에 다 때려 박는 바람에.”

“…….”

가만히 눈을 끔뻑인다.

지금 뭘 들은 건가 싶은 표정.

“그, 그럼 뭘 어떻게 인수하겠다는 거예요?”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이아영 실장이 기가 차다는 듯 눈을 일자로 뜨고 날 노려보기 시작했다.

괜히 또 잔소리가 날아올까 싶어 서둘러 시선을 피했다.

“일단은 가서 생각해봐야죠. 어차피 전 이번 베트남 건만 진행하고 퇴사할 건데, 또 예산을 끌어다 쓰는 건 너무 염치없기도 하고요.”

“…포문만 트겠다는 거예요?”

“예. 나머진 제 후임께서 잘해주겠죠.”

“글쎄요. 누가 해도 당신만큼은 못할 것 같은데.”

쓸데없이 고평가네.

제정신만 박혀 있다면 원숭이를 데려다 앉혀놔도 그만인 자리인데 뭘.

“그나저나…… 그러네요.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네. 월급날은 겁나 안 오면서 꼭 이럴 땐 시간이 빨리 가더라.”

어째 점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곤 노골적으로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

덕분에 분위기가 퍽 어색해졌다.

숨이 턱턱 막혔기에,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뭐 아무튼… 이아영 씨는 저 나가기 전에 시간석 연구나 성과를 좀 내주시죠. 나갈 땐 나가더라도 얘기는 좀 들어보고 싶으니까.”

“…엥? 자, 잠깐!”

이아영 실장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저도 같이 가는 거 아니었어요?!”

그리곤 웬 헛소리를 내뱉었다.

“……뭔 소립니까. 갈 사람 이미 다 정해졌는데.”

“뭐, 뭐라고요? 아니, 이런 사업에 날 안 데려가는 게 말이 돼?! 내가 그동안 사무적으로 도와준 게 얼만데!”

맞는 말이긴 하다.

협회 돌아가는 일이라면 그 누구보다 정통한 사람이다. 당연히 이런 일에 가장 적합한 인물인 것도 사실.

이아영 실장이 가장 먼저 떠오르긴 했지만…….

“그쪽은 연구 때문에 바쁘지 않습니까. 괜히 부담 주는 거 같아서 뺐습니다.”

나가기 전에 어떻게든 연구 결과는 받아봐야 하니까. 괜히 방해해서는 안 되겠지.

“그걸 변명이라고……. 그래서 누구랑 가는데요?”

“김민주 팀장이요.”

“참 나, 그분은 안 바쁘대?”

“퇴원한 지 얼마 안 됐잖습니까. 요즘 좀 무리하기도 했고. 휴가 보내준다는 생각으로 데려가는 겁니다. 어차피 일은 내가 다 하게 될 테니.”

이아영 실장이 작게 신음했다.

그리곤 날 노려보며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물었다.

“……둘이 가요?”

“한유빈 팀장도 같이 갑니다. 왜요?”

“그럼 됐어요.”

“…….”

“가요, 이제.”

이젠 관심 없다는 듯 심드렁하게 손을 휘휘 저었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등을 돌렸다.

‘아니, 그렇게 가고 싶으면 본인 돈 내고 가든가.’

원래부터 정상이 아닌 건 알았는데, 어째 더 맛탱이가 갔네.

나는 혀를 차며 관리실을 나왔다.

복도를 걸으며 조금 전 이아영 실장이 했던 말을 되짚었다.

‘제2의 국제 협회라…….’

나도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그건 부담이 너무 컸다.

전 세계 협회의 절반을 쥐고 있는 국제 협회를 무너뜨린다는 건, 다시 말해 전 세계 절반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는 뜻이니까.

물론 그렇게 해서 새로운 국제 협회를 세우고, 거기에 사무총장으로 오르는 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겠지만. 업보라는 놈이 그걸 인정해줄지도 미지수고.

뭣보다 그렇게까지 가는 건 너무 귀찮고.

지금은 그저 해외 지부 몇 개만 견제 수단으로 만들어두는 게 가장 베스트다.

그놈들이 선을 넘지만 않으면 말이지.

‘그나저나 정말 예산이 문제네…….’

당연하겠지만, 협회 하나를 인수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중고 거래도 아닌데, 뻔뻔하게 이 금액에 맞춰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던 그때.

“어?

“엥?”

반가운 얼굴들과 마주쳤다.

“이야, 진짜 오랜만이네.”

“그러니까요. 얼굴 보기가 왜 이렇게 힘들어요~.”

“설마 본부장 됐다고 이제 우리랑 안 놀아주는 거냐.”

사실 대규모 인터셉트 때 한 번 봤으니 오랜만이라고 해봤자 2주밖에 안 됐지만, 그럼에도 문소연과 한상혁은 호들갑을 떨었다.

“좀 많이 바빴습니다. 쉴 틈이 없네요.”

“역시 그렇죠?”

“그럼 그냥 때려치우고 다시 청소팀으로 오는 건 어때?”

한상혁의 농담에 문소연도 그거 좋네, 하며 쿡쿡 웃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어떻게, 요즘 작업은 할 만하십니까?”

“말해 뭐 하겠어요. 인원도 빵빵하고 장비도 좋고. 게다가 다른 팀 분들도 많이 신경 써주시고 있고요. 이것보다 좋을 수가 없죠.”

“무엇보다 요게 많이 올랐잖냐.”

한상혁이 손가락으로 OK 사인을 그리며 말했다.

“솔직히 이 일 하면서 이 정도까지 받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지.”

“다 누구 덕이겠어요. 히히”

한상혁은 내 앞으로 주먹을 내밀었다.

나 또한 주먹을 맞대주자 씨익 웃었다.

“그럼 저흰 다음 작업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

“가끔 청소팀 회식할 때 놀러 와라. 물론 법카 들고!”

이내 그들은 손을 흔들며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둘이 복도 반대편으로 사라진 직후, 내 표정이 잠시 굳었다.

머릿속으로 잠시 계산기를 두들겨봤다.

‘에휴, 됐다…….’

이내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그래.

뭘 그렇게까지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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