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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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 던전 어딘가 어두컴컴한 통로.
산소가 10%쯤 남았을 무렵, 김민주와 차석현 그리고 유지우는 간신히 보스를 찾을 수 있었다.
그르르르―.
커다란 공간.
그 안에서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는 거대한 생물체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와, 씨…….”
눈앞의 생물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차석현 길드장이었다.
눈에 전부 담기지도 않는 크기였다.
30m? 아니, 50m쯤?
수만 개의 비늘로 덮여 있는 길쭉한 몸뚱이.
사람 엿 대 명은 한 번에 꿀꺽할 수 있을 크기의 대가리와 서슬 퍼런 눈.
몸 전체에 돋아난 거대한 가시들은 다가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보였다.
“……돌아갈까?”
유지우 또한 그 압도적인 모습에 당황한 미소를 지었다.
차석현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저 여자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무기를 꺼내 들지 않았다면 말이지.
“산소가 얼마 없어요. 최대한 빨리 진행할게요.”
“자, 잠…….”
차석현은 말을 채 잇지 못했다.
보스를 향해 무덤덤하게 다가가는 그녀의 등에선 단 한 치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은 까닭이었다. 마치 그것이 당연한 일인 양.
단 세 명으로 레드 등급의 보스를 토벌한다?
누구라도 코웃음을 칠 이야기다.
하물며 국내 랭킹 2위인 자신이 봐도 그렇다.
가망?
애초에 그런 걸 따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턱없이 부족한 전력에 산소도 모자라다.
심지어 보스에 대한 정보도 많지 않다.
그저 절망적인 상항.
이 상황에서 저 여자는 가망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니, 가망 수준이 아니지.
지금 저 여자는 확신하고 있다.
100% 토벌할 수 있다고.
‘저 인간도 정상은 아니네…….’
듣자 하니 그 본부장과 사제관계라 했던가?
참으로 그 선생에 그 제자군.
차석현은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에휴, 모르겠다.”
그는 결국 옅은 한숨을 팍 내쉬었다.
품 안에서 자신이 가져온 수십 개의 로봇 강아지를 모두 꺼내 들었다.
[고유 스킬 : 스팀 펑크 - 각성]
단신으로도 웬만한 길드급 전력을 낼 수 있는 메카닉 클래스의 스킬이자 차석현의 트레이드마크.
[혁명 군단]
철컥, 철컥―.
로봇 강아지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일제히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이윽고 완성된 수십 개의 커다란 증기 골렘들.
차석현을 국내 랭킹 2위로 만들어 준 그의 군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창고에 있는 탄환 싹 다 가져올걸.”
유지우는 아쉬움을 삼키며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고유 스킬 : 아르테미스]
철컥―.
본인의 스킬에서 따온 특수 제작 저격총, 아르테미스.
곧바로 자세를 낮춰 은은하게 빛나는 총구를 보스를 향해 정확히 겨냥했다.
“후우…….”
김민주가 깊게 심호흡했다.
이빨을 드러낸 이무기 앞에서 검을 고쳐 쥐었다.
[고유 스킬 : 천수관음 - 각성]
[육관음중사(六觀音中四)]
전신을 따라 오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 순간.
[제4격 -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그녀의 붉게 물든 눈빛이 번뜩였다.
***
처음부터 예상했듯, 쉽지 않았다.
카아아악―!
전신이 뒤틀리는 듯한 포효.
조금이라도 집중이 흐트러지면 정신을 잃을지도 몰랐다.
보스가 움직일 때마다 던전 전체가 흔들렸고, 휘두르는 꼬리와 달려드는 머리에 한 번이라도 맞았다간 그대로 절명할 수준이었다.
지이잉―.
“피, 피해요!!”
콰과광―!!
무엇보다 어마어마한 위력의 저 브레스.
스치기라도 하는 순간 사지 중 몇 개는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
김민주는 공간 전체를 활용해 쉬지 않고 다리를 움직였다.
붉은 안광이 채 그녀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진한 잔상을 남겼다.
물론 피하기만 할 순 없었다.
무리해서라도 파고들어야 했다.
[육관음중일(六觀音中一)]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길 한 차례.
[제1격 - 성관음(聖觀音)]
슥, 스윽―.
이무기의 턱밑까지 단숨에 파고들어, 정확히 목을 향해 검격을 날렸다.
캬아아아아―!
하지만 그 거대한 놈을 한 번에 베어버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베긴커녕 검이 비늘에 깊게 박혀버렸다.
순간 당황한 김민주가 주춤하던 찰나, 이무기의 입이 그녀의 코앞에서 쩍 벌어졌다.
절체절명의 순간.
[고유 스킬 : 아르테미스]
[탄환 - 보름]
[장전 확인]
탕―!
유지우의 탄환이 이무기의 왼쪽 눈을 정확히 관통했다.
끼에에에―!!
이무기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김민주는 그 틈에 비늘에서 검을 뽑아냈다.
[혁명 군단 - 집중포화]
탕탕탕탕―.
쾅, 콰광―!
직후 증기 골렘들의 총탄과 대포가 사정없이 빗발쳤다.
하지만 유의미한 피해를 줄 순 없었다. 그저 보스의 시선을 끌고 김민주가 공격할 틈을 벌어줄 뿐.
유지우의 탄환도 마찬가지였다.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발씩 박히는 강력한 탄환은 매번 조금씩 틈을 만들어 주었다.
두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김민주의 검은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흩날렸다.
그 과정에서 어떤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그저 경험과 감각. 오로지 그 두 가지에 의존하여 각자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해나갔다.
그렇게 이어진 수십 번의 공격.
어느덧 바닷속은 보스가 흘린 피로 시뻘겋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허억, 허억…….”
김민주는 가쁜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모든 전력을 쏟아 낸 만큼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가능하다.
이대로라면 정말 토벌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젠장, 시야가…….’
산소가 거의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야가 흐려지고 몸을 가누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머리도 깨질 듯이 아파 왔다.
체력의 한계가 느껴지고 있다.
더는 오래 끌 수 없다.
이번 공격으로 끝을 봐야 한다.
“유지우 대표님.”
김민주가 가쁘게 호흡하며 입을 열었다.
“네.”
“5초 정도만 틈을 만들어 주세요.”
“……5초면 가지고 있는 탄환 다 때려 박아야 해요.”
“그렇게 해주세요.”
“……알았어요.”
“차석현 대표님은 저 비늘 좀 벗겨주세요. 가능하시겠죠?”
“시도는 해 보겠습니다만, 지금 있는 로봇들을 전부 폭파해야 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 더 이상 전투를 할 수가…….”
“괜찮습니다.”
김민주가 검을 꽉 쥐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끝장낼 거니까.”
정적이 흐르는 보스 방.
수십 번의 공격에도 쓰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던 보스가 다시금 이빨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고유 스킬 : 아르테미스 - 각성]
유지우가 탄띠에 있던 탄환을 모조리 총기에 쑤셔 넣었다.
[탄환 - 초과]
[과다 장전]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픽―.
카아아아악―!!
소리 없이 발사된 탄환이 이무기의 머리에 명중했다.
[혁명 군단 - 거사]
철컥, 철컥―.
틈을 놓치지 않고 증기 골렘 전원이 보스에게 달라붙었다. 이내 붉게 발열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맹렬한 폭발음과 함께 로봇이 모조리 터져 나갔다.
동시에 김민주는 눈을 감았다.
[천수관음 - 각성]
유지우는 모든 탄환을 소모했고, 차석현의 트랜스 폼 웨폰도 모조리 터져 나갔다.
[육관음중외(六觀音中外)]
[접신 - 관세음(觀世音)]
기회는 두 번 다시 없다.
여기서 끝내지 못하면…… 죽는다.
[정법명왕여래(正法明王如來)]
쿠구구구―.
줄곧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던 기류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동시에 주변이 크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차석현과 유지우는 눈앞의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 김민주의 모습은 결코 인간이라 할 수 없었다.
이윽고 그녀가 검을 쥐고 발을 뗀 그 순간.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며 몸이 앞으로 푹 쏠렸다.
턱, 무릎이 땅에 처박혔다.
산소는 이미 진작에 바닥이었다.
그런데도 집중하느라 너무 많은 호흡을 소비했다.
‘제발, 움직여…!’
부서질 듯 이를 악물었지만.
털썩―
결국, 그녀는 일어나지 못했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진 그 순간, 헬멧에선 두 명이 소리치는 소리가 웅웅거렸다. 그럼에도 그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점점 멀어져가는 의식.
눈앞엔 어느새 달려든 이무기의 거대한 이빨이 보였다.
‘……끝났네.’
그렇게 의식을 잃어가는 김민주의 시야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것은…….
[습득 스킬 : 전능]
순백의 거대한 창이었다.
이를 마지막으로 그녀의 의식은 끊겼다.
쿵―.
동시에 거대한 머리가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
김준우의 입가에서 공기 방울이 뽀르륵, 새어 나왔다.
슈트도 없는 맨몸.
말도 안 되는 위력의 일격.
차석현과 유지우는 그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
한국 협회, 여의도 행정 본부.
멍청하게도 협회장을 통해 이사회를 소집시켜놨다는 것을 깜빡하고 있었다.
한창 현장 정리를 하던 중에 문득 그 약속이 떠올랐고, 이내 곧바로 여의도로 달려왔지만…….
이미 두 시간이나 지난 후였다.
헐레벌떡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그와 동시에 이사들의 원성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중 단연 으뜸은 이두식 기획본부장이었다.
“야, 임마! 바쁜 사람들 불러 놓고 몇 시간을 늦는 거야?!”
“죄송합니다. 일이 좀 있었습니다.”
“늦으면 늦는다고 말이라도 하던…….”
하지만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그가 이내 말끝을 흐렸다.
“너 왜 이렇게 흠뻑 젖었어? 밖에 비와?”
“아뇨. 수영을 좀 하고 와서.”
“……?”
그의 눈썹이 물결쳤다.
“얼굴은 또 왜 그래. 누구한테 맞았냐?”
“뭐… 별거 아닙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상석에 앉아 있는 박인범 협회장에게 가벼운 묵례를 건넸다.
그러자 협회장이 무거운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열었다.
“작전은 어떻게 됐나.”
“토벌은 성공적으로 완료했습니다. 단 세 명이 보스를 잡았더군요.”
그 말에 여기저기서 감탄이 쏟아져 나왔다.
이사들 또한 진심으로 놀란 듯했다.
“김민주 팀장을 제외하곤 부상자도 없습니다. 심각한 부상은 아니라고 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음.”
협회장은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본론을 얘기해봐. 국제 협회랑 한바탕해야 할 수도 있다는 건 무슨 뜻인가?”
주변 분위기를 살피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번 작전에서 제 부하들이 국제 협회로부터 공격을 받았습니다.”
“뭐?”
“제 생각으로는 한국 협회를 상대로 적대적 인수합병을 추진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회의실이 싸늘한 정적에 휩싸였다.
협회장을 포함해 모든 이사가 입을 열지 못한 채 얼어붙었다.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국제 협회와 연관된 다른 조직 같은데, 자세한 건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기는 힘들 것 같고…….”
말끝을 흐리곤 서둘러 말을 돌렸다.
“어쨌든 공격은 실패했습니다. 위험하긴 했지만, 다행히 저희도 피해를 입진 않았고요. 덕분에 그들은 원하는 걸 얻지 못했습니다. 그건 다시 말해 또 공격을 가할 수도 있다는 뜻이겠죠.”
그것도 훨씬 치밀하게 준비해서 말이지.
“……확실한 건가? 우리를 공격한 게 국제 협회라는 거.”
“유감스럽게도 증거는 없습니다.”
“심증뿐이라는 거군.”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죠. 어떻게든 이후를 대비해야 할 겁니다. 다만…….”
“지금 우리 상황으론 국제 협회까지 견제할 여건이 안 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와 협력업체 체결을 맺었다고 해도 그들은 어디까지나 작전 전력일 뿐, 그 외적으론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미 우리는 국제 협회의 타깃이 됐다.
시간석을 가지고 있는 한 공격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난, 그걸 알면서도 당해줄 만큼 호구 새끼는 아니다.
한 번은 몰라도 두 번은 없다.
그놈들의 목적을 알게 된 이상 어떻게든 맞받아칠 준비를 해야 한다.
“앞으로의 공격에 대응할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보다 몸집을 더욱 키워야겠지만…… 이 작은 땅덩어리 안에선 아무리 몸집을 키워봤자 한계가 있겠죠.”
“그렇긴 하지. 독립 협회 중에선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해도 결국엔 독립 협회니까.”
협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떻게 몸집을 키우겠다는 건가.”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협회장을 지그시 바라보며 생각해둔 바를 입에 담았다.
“해외로 나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