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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벌대가 던전에 진입한 지 불과 30분이 지난 시각.
“뭐, 뭐라고요?”
납득할 수 없는 보고가 날아들었다.
“던전 입구가 사라졌습니다! 카메라에도 확인이 안 되고 이능파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립니까. 입구가 사라졌다니.”
“말씀드린 그대롭니다.”
편 팀장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왔다.
“그러니까 지금…… 갑자기 던전이 닫혔다는 소립니까?”
편 팀장은 그 물음에 차마 대답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그 대신 침을 꿀꺽 삼키며 딱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머리가 하얘지기 시작했다.
토벌이 완료되기도 전에 던전이 닫히는 경우?
그딴 게 있을 리 없다.
전생에서조차 그런 변수는 들어본 적도 없다.
‘대체 무슨…….’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벌어진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이걸 어떻게 예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멀쩡히 작전 중이던 던전이 갑자기 사라지리라는 걸.
아니, 지금은 일단 그런 것보다…….
“토벌대는요. 토벌대랑 통신은 됩니까?”
“아까부터 먹통입니다. 일단 시도는 해 보고 있는데…….”
쿵―!
책상이 크게 흔들렸다.
어찌나 세게 내리쳤는지 지휘실 전체가 싸늘해졌다. 하지만 분위기 따위를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통신까지 끊겼다면 확실하다.
던전이 정말로 닫힌 것이다.
100명이 넘는 토벌대가 투입된 던전이.
‘시발.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던전에 갇히게 되면 아무리 보스를 토벌해도 해당 던전이 재출현하기 전까진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
그건 헌터의 재량, 지휘관의 역량 따위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저 던전이 재출현할 때까지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다만 내 기억상 가장 가까운 시일 내에 출현하는 수중 던전은…….
‘……1년 뒤.’
수중 던전에서 100명이 넘는 토벌대가 1년을 버틸 수 있을 확률?
시발,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100명이 넘는 인원이 전멸. 그것도 내 작전에서…?’
머리가 아찔해졌다.
책상을 붙잡고 애써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래, 당황하기만 해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져야 한다.
전멸이라니, 내 작전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시발,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어.’
애초에 기억에 없던 던전이 갑자기 출현한 것부터가 미심쩍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지금, 이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니다.
예고 없는 던전의 출현.
일어나선 안 될 토벌 중 던전 폐쇄.
일반적으론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두 번이나 벌어졌다. 이게 과연 우연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건 누군가 던전을 임의로 컨트롤하고 있다고밖엔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짓이 가능한 건 한 군데뿐.
국제 협회.
‘괴담이 아니었나…….’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만약 정말 그들이 벌인 짓이라면, 이건 우리한테 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대체 왜?’
국제 협회가 굳이 던전을 조작하면서까지 한국 협회에 이런 짓을 벌이려는 건가.
인수합병을 거절한 것에 대해 본보기?
아니면 미국 지부 비리를 터트린 것에 대한 보복?
그것도 아니면…….
설마 적대적 인수합병을 진행하려고?
‘이 미친 새끼들이,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이따위 개수작을…….’
이가 바득 갈렸다.
하지만 분노하고 있을 시간 따윈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어쨌든 누군가가 차원석을 이용해 던전을 컨트롤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정말 국제 협회가 벌인 짓이라고 한다면…….
아직 방법은 있다.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수화기 너머로 이아영 실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토벌대가 입고 있는 골리앗 슈트 말입니다. 수중에서 호흡할 수 있는 시간이 최대 얼마입니까.”
「상황에 따라 다른데……. 그건 왜요?」
“대답이나 먼저 해주십쇼.”
급한 나머지 신경질이 반쯤 섞인 말투가 튀어나왔다.
이아영 실장은 어딘가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걸 눈치챘는지, 곧바로 진지한 목소리 대답했다.
「평균적으론 4시간. 하지만 전투를 벌이게 된다면 더 줄어들어요. 그땐 2시간도 간당간당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저, 혹시 무슨 일 있는……!」
무어라 묻는 말이 들려왔지만, 이미 전화를 끊은 뒤였다.
최장 4시간, 최소 2시간.
지금 상황에 전투를 벌이지 않을 거라는 기대는 위험하다.
그렇다면 작전 시작한 지 30분이 지났으니… 남은 시간은 대략 한 시간 반.
그 안에 차원석을 다시 가동시킬 수 있다면 전멸은 막을 수 있다.
그러니 일단 어떻게든 국제 협회와 연락을 취해야 한다.
그리고 협박이든 회유든 아니면 거래를 하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던전을 다시 열게끔 만들어야 한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차 좀 빌리겠습니다.”
“예? 어, 어디 가십니까? 보, 본부장님? 본부장님!!”
편 팀장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임시 지휘실을 뛰쳐나왔다.
곧바로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며 다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전화를 할까 말까 순간 망설였지만, 이런 상황에 고민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 무슨 일이냐. 작전은 잘 되고 있어?」
박인범 협회장.
그동안 문젯거리가 그의 귀로 들어가는 건 피하려고 했지만, 이렇게까지 된 이상 이젠 어쩔 수 없다.
명백히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선을 넘었으니.
“지금 당장 이사회 소집해주십시오.”
「……뭔 일 났냐?」
“예.”
깊게 숨을 들이쉬길 한 차례.
“국제 협회랑 한 판 붙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준비해두마.」
협회장은 이유 따윈 묻지 않았다.
더 말할 것 없이 바로 전화를 끊고는 엑셀을 있는 힘껏 밟았다.
다행히 미리 주변을 통제해둔 덕에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부아아앙―.
터질 듯한 엔진음.
급한 마음에 더욱 가속하며 빠른 속도로 대교 위를 가로지르던 그 순간.
쾅―!!!
커다란 굉음과 함께 차가 하늘로 솟구쳤다.
의식이 날아갈 듯한 충격.
차 안에서 몸이 붕 떠오른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시발.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
강렬한 데자뷔였다.
***
인사동 근처 어느 식당.
한유빈과 한상혁 그리고 문소연은 오전 작업을 끝낸 후 점심 식사를 위해 그곳을 찾았다.
팀이 나눠진 세 명이 이렇게 모이는 건 꽤나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간 워낙 이런저런 사건 때문에 더없이 바빴다.
“그래도 이젠 꽤 여유로워졌죠?”
테이블에 착석한 직후, 문소연이 먼저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슬슬 그 사람도 자리를 잡은 거지.”
한유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덩달아 한상혁이 맞장구를 쳤다.
“진짜 생각할수록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하나. 반년 전만 해도 청소팀 막내였던 놈이 작전 본부장이라니 참.”
“왜? 배 아파?”
“지랄. 질투도 나랑 비슷한 놈이어야 나지, 너무 넘사라서 부럽지도 않아.”
한상혁이 쿡쿡 웃었다.
“이번 작전도 문제없이 잘 끝나겠죠?”
“말해 뭐해. 그 사람이 총 책임자인데. 걱정하는 시간이 아깝지.”
한유빈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이래저래 맘에 안 드는 부분은 있어도 실력 하나만큼은 인정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레드 등급의 수중 던전.
처음 그 작전에 대해 들었을 때 한유빈은 자진해서 참가를 희망했다.
결과적으론 단칼에 거절당했지만.
당시엔 그의 판단에 토를 달 이유가 없었기에 순순히 받아들였지만, 문제가 생긴다면 그땐 봐주는 거 없이 본인이 먼저 나설 생각이었다.
뭐,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역시나 순조로운 모양이지만.
하긴 그 사람 작전에 문제가 생길 리 없지.
한유빈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유빈 언니… 저번에 얘기해줬던 거, 그거 진짜예요?”
그때, 문소연이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한유빈은 영 떠오르는 게 없었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 괴담 말이에요. 국제 협회의 어떤 조직이 본인들한테 위협이 되는 이들은 가차 없이 죽인다는…….”
“아~.”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그녀가 퍽 귀여웠는지, 한유빈이 쿡쿡 웃었다.
세상에, 설마하니 한밤의 이야깃거리로 해줬던 말을 신경 쓰고 있을 줄이야.
“괴담은 그냥 괴담이지. 원래 알려진 게 많이 없는 조직은 그런 게 있잖아.”
“그, 그렇죠? 하하하…….‘
“왜? 국제 협회에 노려질까 봐 무서워?”
“에이, 제가 뭐라고……. 저보단 준우 씨가 걱정이죠.”
음, 괴담이 진짜라면 그럴 수도 있겠네.
한유빈은 속으로 동의했다.
일을 벌이는 스케일이 실로 어마어마했으니.
분명 습격을 몇 번이고 당하고도 남을 사람이긴 하다.
“뭐,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그 사람한텐 의미 없을 거야.”
“네? 왜요?”
“나도 자세한 이유는 못 들었는데… 그 사람, 평상시에도 방어 스킬을 켜고 다닌다더라고? 한 번 당해 본 입장에서 안심할 수가 없다나 뭐라나.”
꽤나 아리송한 이야기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한유빈은 그렇게 신경 쓸 것 없다는 듯, 고개를 털었다.
“그리고 뭐, 그 사람이 어디 쉽게 당할 사람도 아니잖아? 그 사람은 죽을까 봐 걱정인 게 아니라 오히려 누구 한 명 죽일까 걱정이지.”
한유빈은 반쯤 진담이었지만, 나머지 두 명은 말도 안 된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
쿵, 콰광―!
하늘로 솟구쳤던 차가 다시금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어우, 머리야.”
트럭 운전석에 앉은 채로 그 광경을 바라보던 양민호가 이마를 툭툭 쳤다.
아닌 게 아니라, 꽤 어마어마한 충돌이었다.
자신에게 미리 시전해둔 ‘로우 패닉’이라는 방어 스킬조차 모든 충격을 흡수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뭐, 본인이 이 정도라면 저놈은 도리가 없겠지.
“흐음…….”
양민호는 핸들에 턱을 괸 채로 정면을 응시했다.
반파된 승용차에선 역시나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째 허무감이 몰려왔다.
저렇게 뒤질 거였으면서 그땐 왜 그렇게 허세를 떨었는지.
조금이나 뭐라도 있는 건가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질 지경이었다.
양민호는 쯧, 혀를 차곤 트럭에서 내렸다.
위에 보고하기 위해선 어쨌든 확인은 해야 했으니. 물론 확인하나 마나이겠지만.
“어디 보자…….”
승용차로 다가가 박살이 난 창문에 고개를 집어넣으려 했다.
[습득 스킬 : 디스트로이어]
쾅―!!!
그때 예상치도 못한 공격이 날아들었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양민호는 총알처럼 튕겨져 나가 허공을 날았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다리 난간에 부딪혔다.
“하, 하하…….”
양민호는 몸을 추스르며 헛웃음을 뱉었다.
그의 시선이 반파된 승용차로 향했다.
콰직―!
“시발, 진짜 바빠 뒤지겠는데.”
종잇장처럼 찌그러진 차 문을 박차고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머리를 부여잡은 채 휘청거리는 남자.
김준우 본부장.
양민호는 진심으로 놀랐다.
저놈이 이능력자라는 건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능력자도 기본적으론 인간이다.
그들이 강자로 칭송받는 이유는 이능력 때문이지, 신체 자체가 특별하거나 불멸의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다.
때문에 스킬이나 장비로 무장하지 않는 한 이능력자 또한 일반 사람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렇기에 헌터들 또한 기습엔 쉽게 노출되는 것이고, 현장직은 그 틈을 노려 작업을 한다.
양민호 또한 여태껏 그렇게 작업을 해왔다.
실패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 어느 헌터가 일상에서 스킬을 켜놓고 다니겠는가.
늘 제 잘난 맛에 사는 놈들이라 자신이 습격당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할 텐데.
하물며 저 새끼는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트럭을 들이받았다.
맨몸으로 버틸 수 있는 충격이 아니다.
분명히 그럴 터였다.
그런데 저건 대체…….
‘뭐 하는 새끼야.’
양민호는 김준우를 응시하며 미소를 지었다.
김준우는 이내 상태가 회복된 건지, 어깨와 목을 빙빙 돌리며 뼈 소리를 냈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양민호에게 정확히 날아들었다.
“야.”
낮게 깔리는 목소리.
그 살벌한 기세에 양민호는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너, 내 눈에 한 번 더 띄면 죽여 버린댔지.”
김준우의 눈빛이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