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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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인근에 위치한 작은 바.
[긴급 뉴스입니다.]
구석에 있는 아날로그 TV에서 한창이던 야구 중계를 끊고 긴급 속보가 흘러나왔다.
[오늘 오후 6시부터 서울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대규모 인터셉트 사건이 오후 10시 30분경 드디어 막을 내렸습니다.]
별 관심이 없던 양민호조차 흠칫하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양민호는 술잔을 든 채 굳은 표정으로 TV를 바라봤다.
[인터셉트를 진행하던 얼그레이 길드가 실수로 오렌지 등급 던전에 진입하면서 연락이 두절되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새로 부임한 이능차원협회 김준우 작전 본부장과 작전 1팀이 곧바로 구조 작전에 착수, 길드원 전원을 무사히 구조했습니다.]
바에 있던 손님들은 대부분 다행이라는 반응이었다.
물론 그 소식이 양민호에게는 다행일 리 없다.
[또한, 김준우 본부장은 오늘 일어난 인터셉트에 대해선 길드와 협회 간의 협력 관계로써 책임을 지게 하는 동시에, 서울 내 모든 길드와 합리적인 조건으로 협력업체 체결을 맺었습니다. 이 사실이 시민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지며, 또다시 김준우 본부장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양민호는 결국 TV에서 고개를 돌렸다.
“하하…….”
본인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협회와 협력 관계?
합리적인 조건?
‘저거 진짜 미친 새낀가…?’
양민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계속해서 웃음을 흘렸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아니나 다를까, 정훈 의원이었다.
“……예.”
「뭐, 뭐가 어떻게 된 건가! 협회가 왜 길드랑 협력업체 계약을 체결한 거야?!」
“저도 예상치 못한 일이군요.”
「예상치 못한 일이라니! 자네가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하나! 선거가 몇 달 남지도 않았는데, 협회 지지도만 오르게 생겼어.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건가!」
“의원님.”
양민호의 목소리가 팍 가라앉았다.
“지금 누구한테 큰소리 내는 겁니까?”
「…….」
정훈 의원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어쨌든 이번 일은 저로서도 유감입니다. 의원님도 의원님이지만, 저도 커리어에 흠집 나게 생겼군요.”
「자, 잠깐! 자네 설마 여기서 그만둔다는…!」
“의원님도 지금 뉴스 보셨을 거 아닙니까. 저 새끼, 생각보다 훨씬 또라이입니다. 여기서 더 나가다간 서로 위험해질 것 같으니 이쯤에서 각자 손 떼는 게 좋을 겁니다.”
뚝―.
양민호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고 남은 술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설마하니 저 상황에서 길드를 품을 생각을 할 줄이야.
길드를 대신해 구조 작전을 진행한 것도 모자라, 몇 년 동안 길드가 그토록 원하던 협력 계약까지 체결해버렸다.
길드 여론은 이미 협회로 넘어갔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그렇다면 자신이 인터셉트를 사주했다는 게 그 미친놈 귀에 들어가는 것도 시간문제다.
물론 한국 협회 본부장 신분으로 자신을 건드릴 수야 없겠지만… 괜히 더 시끄러워졌다간 ‘그쪽’ 일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당분간은 좀 쉬어야겠군.’
그렇게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그 순간이었다.
“어디가?”
살기가 느껴지는 나지막한 어조의 목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다가왔다.
“일단 앉아. 할 얘기 있으니까.”
“…….”
남자와 마주한 순간, 양민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방금 뉴스의 주인공, 김준우 본부장이었다.
‘이 새끼가 여길 어떻게 알고……!’
양민호는 물론 그를 알고 있다.
하지만 본인이 알고 있는 것과 별개로, 그가 자신을 알 리가 없었다.
납득이 가지 않아, 가만히 서서 남자를 노려보던 그때.
“앉으라고 새끼야. 다리 접어 버리기 전에.”
남자의 눈빛이 번뜩였다.
TV에서 봤던 그 맥 빠진 모습과는 차원이 달랐다.
진심으로 상대를 잡아먹으려는 기세.
현 국내 1위의 헌터마저 주춤하게 만드는 기세였다.
***
“…….”
양민호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답을 기다리기만 해서는 끝이 없을 것 같아 양민호의 옆자리에 앉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좀 다사다난했지?”
“……절 아십니까?”
이제 와서 시치미를 뗀다고?
어처구니가 없네.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는 니 알 바 아니고.”
등받이에 등을 팍 기대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니가 뭔 의뢰를 받았든, 뭔 개짓거리를 하든 내가 신경 쓸 건 아닌데… 최소한 선은 지켰어야지. 헌터라는 새끼가 사람 목숨으로 장난을 쳐?”
“…하하, 하하하.”
그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린 순간.
내 머릿속에서 어떤 음성이 재생되었다.
[습득 패시브 : 결벽증]
[패시브 발동]
“야, 웃겨?”
“…….”
어디까지 미친놈인지 모르겠다.
의뢰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새끼인 건 알았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일 줄이야.
“……뭐, 다 알고 오신 것 같으니 더 발뺌도 못 하겠군요.”
양민호는 순순히 인정하며 말을 이었다.
다 드러난 마당에 더 할 말이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군요. 제가 누굴 죽이기라도 했답니까? 설마 던전 등급 좀 잘못 알려줬다고…….”
“개소리 그만 지껄여. 일부러 잘못 알려준 거 내가 모를까 봐?”
“생각보다 눈치가 좋으시네.”
양민호의 미소가 짙어졌다.
거기엔 경계심도 섞여 있었다. 전생에 날 보던 표정과 비슷해졌다.
“아무튼, 오늘은 피곤하기도 하고 다 끝난 마당에 또 일 벌이고 싶진 않으니까 이번 한 번은 조용히 넘어가지. 대신…….”
검지로 양민호의 가슴을 짚었다.
“앞으론 내 눈에 띄지 마. 한 번 더 내 일에 끼어들면 그땐 가만 안 둔다.”
“……내가 당신 말을 들을 이유가 없는데요. 당신이 협회에서나 작전 본부장이지, 나한테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내 친절한 경고를 무시하겠다?”
“그렇다면?”
“잠깐 던전으로 따라올래? 죽여 버리게.”
“하하, 청소부 출신이 허세는…….”
양민호가 피식 헛웃음을 뱉었다.
“설마 제가 누군지 모르시는 건 아니죠?”
“알아.”
“그럼 대체 무슨 자신감인 거죠.”
양민호가 나를 향해 한 발짝 다가왔다.
그의 눈빛에선 아까와는 다른 기세가 느껴졌다.
‘참 나, 꼴에 국내 1위라고 자존심은.’
눈도 못 마주치던 새끼가.
“제가 던전 밖에선 힘 못 쓸 거라고 세게 나오시는 것 같은데, 저 프리랜서입니다. 자격 정지 먹는 거 딱히 신경 안 써요.”
“야, 너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
웃음이 튀어나올 것 같았기에 고개를 숙였다.
현 공식적인 국내 1위, 양민호.
마법사 클래스의 헌터.
회귀 전에도 내 바로 뒤를 이어, 국내 2위로 꽤나 이름을 날린 놈.
동시에.
“나는 아닐 거 같냐?”
죽는 그 날까지 내 발끝에도 못 미친 애송이 새끼.
“…….”
“…….”
잠시 말없이 노려보기만 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겨,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저 사람 그 사람이잖아. 김준우 본부장!”
“김준우 본부장이 여기 왜 있어?”
“일단 협회에 신고해봐. 싸움 날 거 같으니까.”
주변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양민호는 주변 눈치를 살폈다.
손님 중 한 명이 어딘가로 전화를 하는 모습을 보자마자 그는 등을 돌렸다.
“앞으로 조심해. 만약 또 선을 넘으면…….”
다급하게 가게를 빠져나가려는 양민호의 등에 대고 마지막 경고를 날렸다.
“너 그땐 진짜 죽어.”
***
협회, 서울 본부.
작전 본부장실.
「진심으로 감탄했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차석현 길드장의 우렁찬 목소리가 수화기를 뚫고 귀에 꽂혔다.
“너무 비행기 태우지 마세요. 민망합니다.”
「하하하!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어디 보통 일이었습니까, 그게.」
이미 아침부터 여기저기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이었다.
대체 뭐 그렇게 오바들을 하는지 참.
「한 개 작전팀만으로 오렌지 등급 구조 작전에 성공했다는 게 솔직히 믿기지 않습니다. 아무리 실력 좋은 헌터들이라고 해도 오렌지 등급 이상부턴 지휘에 따라 토벌 성공 여부가 갈리는데… 정말이지 청소부 출신이라곤 믿기 힘들 정돕니다.」
“하하…….”
다른 말 하지 않고 그저 멋쩍게 웃었다.
그 1개 작전팀이 실질적으론 아무 도움도 못 됐다는 건 굳이 말해봤자 괜히 쓸데없이 이야기를 키우는 거니 잠자코 있었다.
「큼큼, 아무튼 본론은 그게 아니고…….」
차석현이 화제를 전환하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혹시 저희 길드도 협력 계약을 해주시는 겁니까……. 아닌 게 아니라, 저희는 현장에 있었던 게 아니라서 계약서를 못 받았는데……. 하, 하하!」
본인이 말하고도 멋쩍은 듯 괜히 웃는다.
피식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한 장 보내드리겠습니다.”
「아, 아프로디테 길드는…….」
“같은 주소로 보내드리면 되겠습니까?”
전화기 너머로 격양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직원들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듯했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180도 반응이 달랐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본부장님!」
“예.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통화를 끝내자 편 팀장이 사무실에서 다소곳이 기다리는 중이었다.
대체 언제 들어온 건가 싶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무슨 일이시죠?”
“경영부에서 저번 주 인터셉트로 인한 구체적인 피해액을 집계했습니다. 한 번 보시겠습니까?”
“됐습니다. 이제 와서 뭐. 다른 건요?”
“다른 건 뭐…… 결과적으론 다 좋습니다.”
편 팀장이 서류를 펄럭이며 미소를 띠었다.
“이번에 계약한 길드의 의욕이 대단합니다. 저번 주 대비 토벌량이 40%나 상승했습니다. 어차피 지금 작전팀 인원으로는 월 100개가 한계였는데, 아무런 지출 없이 40개 던전을 추가로 토벌할 수 있다는 건 확실히 이득이긴 합니다. 토벌 수익에 5%를 공짜로 받는 셈이니까요.”
“그렇군요.”
“손해를 보고 시작하긴 했지만, 이 속도라면 피해액도 금방 메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편 팀장은 서류철을 탁 덮었다.
“대단하십니다. 설마 여기까지 생각하시고 계실 줄은……. 순간이나마 일 크게 벌이기 귀찮아서 그냥 던진 말이라고 생각했던 제가 창피해지네요.”
“……창피해하실 거 없습니다.”
사실 그게 맞으니까.
“거기에 협회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한 것도 그렇고…… 본부장님도 이번 일로 입지를 아주 확실히 다지셨습니다. 이 시대에 두 번 없을 참된 리더라고들 하더군요. 뭐, 동의하는 바이긴 합니다. 하하하!”
“별…….”
퇴사까지 3주 남았는데 이제 와서 입지를 다지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
그건 그렇고,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편 팀장 또한 내가 곧 퇴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다.
“뭐, 어쨌든 다 좋다니까 마음이 놓이는군요. 이제 서울 내 프리랜서를 제외한 모든 헌터는 협회 소속이 된 거나 마찬가지니까, 앞으론 인원이 모자랄 일은 없겠죠?”
“그럼요. 토벌 쪽으론 크게 문제없을 겁니다.”
그거면 됐다.
원래 상정했던 목적은 모두 달성했다.
“다행이군요. 아, 연구 시설 증축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아직 공사 중이긴 한데, 장비는 벌써 몇 대 들어왔답니다. 뭐… 이아영 실장은 완공될 때까지 언제 기다리냐며 벌써 시간석 연구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성격 하고는…….
뭐, 그 사람답다.
등받이에 등을 팍 기댔다.
어쨌든 하룻밤의 해프닝도 여차여차 해결됐다.
윗분들 귀엔 일절 들어가지 않았으면 했지만… 뭐, 대놓고 뉴스까지 탄 마당에 그럴 수는 없었다.
덕분에 이두식 이사한테 아침 댓바람부터 한소리 들었지만, 다행히 협회장에게선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다.
양민호도 그날 이후론 딱히 들려오는 말도 없으니 이걸로 마무리.
퇴사 때까진 당분간은 조금 쉬어도…….
“보, 본부장님! 편 팀장님! 긴급 상황입니다!”
“……빌어먹을.”
행복회로 돌릴 틈도 없다는 듯, 황동휘 대리가 사무실 문을 격하게 열어젖히며 등장했다.
“대체 또 뭡니까…….”
“일전에 인천항 부근에서 포착한 이능파 말입니다! 우리 예상이 맞았어요.”
나와 편 팀장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수중 던전이 출현했습니다.”
황동휘 팀장이 바짝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애써 차분하게 물었다.
“등급은요. 등급은 어떻게 됩니까?”
“레드 등급입니다.
미치겠군.
“작전팀 전원 소집해주십시오. 지금 당장.”
바로 외투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