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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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장은 머리가 복잡해진 듯했다.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내 눈을 노려보고 있길 잠시.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열었다.
“너… 대체 뭐 하는 놈이냐?”
“말씀드렸잖습니까. 일개 청소부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일개 청소부가 이사회도 모르는 내 위치를 알고 찾아와선, 이두식이랑 손을 잡고 이사회를 쓸어내라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바로 이해하셨습니다.”
협회장이 헛웃음을 뱉으며 이마를 턱 짚었다.
그러다 이내 무언가가 떠오른 듯,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잠깐. 너 혹시 이번에 그 미국 지부 비리를 터트렸다던 그놈이냐?”
“소식을 들으신 모양입니다.”
“허! 그 미친놈이 너라고?”
협회장은 숨이 넘어가라 웃어댔다.
그러길 잠시, 이내 다시 내 눈을 바라봤다.
그의 눈엔 어느샌가 생기가 돌아온 뒤였다.
“그래, 내가 이두식 손을 잡는다고 치자. 그럼 너한테는 무슨 이득이 있지? 이두식이 본부장 자리라도 준대?”
“설마요.”
“하하하! 그래, 아무리 그래도 청소부한테 본부장 자리를…….”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
“딱히 저에게 직접적인 이득은 없습니다. 다만 이후를 생각했을 때, 이두식 이사가 협회에 남아 있는 게 저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후…?”
“예.”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
굳이 숨길 것도 없었기에 나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저는 조만간 협회에서 퇴사할 생각입니다.”
“…….”
협회장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동시에 내 옆에서 무어라 격한 반응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했다.
“왜지? 뭐, 이사회한테 압박이라도 당하고 있나?”
“그렇긴 합니다만 그게 이유는 아닙니다. 뭐… 일개 청소부의 퇴사 사유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할 말은 다 끝났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는 게냐?”
“30분 됐습니다. 이제 가야죠.”
“괜찮겠나. 난 아직 아무 대답도 안 했는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기다린다고 대답해주실 분은 아니시잖습니까.”
허리를 숙여 작별 인사를 건네곤 곧바로 오두막에서 나왔다. 이아영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 뒤를 따랐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이아영의 주먹이 어깨로 퍽, 날아들었다.
“……뭡니까.”
“그거 진짜예요? 당신 나간다는 거?!”
격양된 목소리에 분노와 당혹감이 뒤섞인 표정이 뒤따랐다.
“……예, 뭐.”
“왜요?! 대체 왜?! 설마 이번 일 때문에 책임감 느껴서?!”
“전혀 상관없습니다.”
내가 뭘 했다고 책임 타령이야.
“남아 있어 봤자 더는 얻을 것도 없을 것 같고… 얻는 것 없이 남아 있기엔 제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서 말입니다.”
“진짜 제멋대로네요. 당신이 나가면 남은 사람들은 어쩌라고요?”
“그걸 왜 저한테 묻습니까?”
이아영이 얼이 나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 없으면 협회 생활 못 한답니까? 다 실력 좋은 녀석들이니 본인들이 알아서 잘하겠죠.”
“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이아영의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심심해지겠네요.”
퍽 공허한 목소리가 밤하늘에 울렸다.
***
김준우와 이아영이 돌아가고, 협회장은 다시 홀로 남았다.
표정은 심란했지만, 마음속은 이전과 달리 꽤나 요동치고 있는 상태였다.
자리를 비운 지 거의 3년이 넘어가지만, 청소부가 어떤 위치인지 정도는 알고 있다.
없어선 안 되는 직군. 하지만 연봉도, 대우도, 그리고 인식도 밑바닥.
그런데 이사회도 모르는 위치를 알아내고, 대놓고 신경을 건드리면서도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신문을 통해 보통이 아닌 청소부가 있다는 소식은 접했지만, 분명 과장이 섞여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저런 놈이 있었단 말이지.’
협회장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무엇보다 한평생을 던전에 바쳐온 그로선 알 수 있다.
그 청소부 놈, 강하다.
지금껏 봐왔던 그 어떤 헌터들보다 더.
국내 협회는 고사하고,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결코 꿀리지 않을 놈이다.
“아깝군.”
조금만 더 일찍 발견했다면 내 옆에 뒀을 텐데.
선반 위에 있던 작은 액자를 집어 들었다.
30년 전, 기꺼이 목숨을 내던질 각오로 뭉친 5인의 동료이자 그의 아내.
“죽지 말라고 만든 협회인데, 다들 죽자고 싸우고 있구려.”
내려놓고 사색에 잠겼다.
작전팀의 비정상적인 권력. 임원들 사이의 사내 정치.
그것들에 진절머리가 나 모든 걸 내려놓고 은둔한 지 3년.
그 청소부의 말대로 이젠 협회장 자리에서도 물러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3년이면 오래 쉬었지.’
다시 협회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
서울 본부, 본부장실.
감사 이틀째, 작전 2팀을 포함해 김준우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팀은 어제에 이어서 말 그대로 먼지까지 털리는 중이었다.
서민철에겐 눈엣가시였던 놈들에게 엿을 먹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그보다 더 큰 수확이 있었다.
김준우가 연락이 두절된 것이다.
듣자 하니 어제 오후, 최준혁 감사팀장과 이야기를 마치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졌단다. 그리곤 벌써 꼬박 하루가 지났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다.
“끝났다고 봐야겠죠?”
이수용이 끌끌 웃으며 말했다.
서민철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직 모르지, 이제 겨우 하루 지났는데. 독한 놈이니까 계속 버티려 할 수도 있고. 앞으로가 중요해, 앞으로가.”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이미 승리를 확신한 목소리였다.
“일단은 계속 이렇게 나가보자고. 뭐… 확실히 지금 반응으로 봐선 결과가 좋을 것 같긴 한데.”
“알겠습니다.”
이수용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벌써 김준우에 관한 이야기로 모든 작전팀이 시끌벅적했다.
물론 그 반응은 팀마다 제각각이었다.
본인의 팀을 포함해, 김준우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팀은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김준우에게 붙으려고 간을 재고 있던 5팀과 8팀은 옆 동네 불구경하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고, 김준우와 가장 가까웠던 2팀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비단 이러한 반응은 작전팀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었다.
통제팀, 지원팀, 청소팀, 기타 행정 부서와 인사팀까지 조금이라도 김준우와 연관이 있었던 곳은 불안에 떠는 중이었으니.
이수용은 진심으로 뿌듯했다.
본인이 한 거라곤 고작 돈 몇 푼 주고 김준우 신상을 털어온 것뿐인데, 협회 전체가 들썩이고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본인이 원하던 대로 흘러가고 있고 말이지.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던 그때였다. 책상 위, 내선 전화가 울렸다.
서민철 본부장이 잠깐 호흡을 고른 후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서민철, 이 자식! 아직 안 죽었구먼! 믿고 있었다, 새끼야!」
우렁찬 목소리가 수화기를 뚫고 사무실 전체를 울렸다.
다름 아닌 송철식 이사였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김준우 그 새끼는 아직도 소식 없고?」
“네. 이대로 줄행랑쳐버리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뭐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합니다. 주변은 머지않아 그놈 곁에서 다 떨어져 나갈 거고. 참고 버틴다 해도 앞으로는 얼굴도 못 들고 다닐 겁니다. 뭐, 그마저도 한 달 버티면 용한 거겠지만요.”
「크하하하! 이제 다시 진행해도 되겠구먼! 다 네 덕분이다!」
“다 이사님이 힘 써주신 덕분이죠.”
입에 발린 대답이었지만, 송철식은 그마저도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이제 남은 건 이두식 이사뿐입니다. 인수합병 사인, 받아내실 수 있겠습니까?”
「쓰읍, 흠…….」
갑자기 깊은 한숨과 함께 정적이 흘렀다.
뭔가 일이 꼬인 건가 싶던 찰나, 송철식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잖아도 이사회가 소집됐다. 안건으로는 이두식 이사 퇴임에 대한 건이 올라왔고.」
“…….”
서민철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올 게 온 거다.
“퇴임 사유는요. 무슨 건덕지라도 잡은 겁니까?”
「아니. 그런 것보단 임기 만료야.」
“임기 만료…… 말입니까?”
잘못 들었나 싶어 서민철이 되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협회장이 모종의 이유로 자리를 비웠을 시, 전권을 위임받은 이사는 협회장이 복귀하거나 퇴임하기 전까지 임기가 자동으로 연장된다.
‘그런데 전권을 위임받은 이두식의 임기가 만료된다니…….’
그게 가능한 경우는 많지 않다.
협회장이 다시 복귀했거나, 아니면 스스로 퇴임 절차를 밟았거나.
하지만 그랬다면 협회장이 어떤 형태로든 본부에 얼굴을 들이밀었겠지.
아직 그러지 않은 거로 봐선, 결론은 하나다.
“설마…… 협회장님을 해임하시려는 겁니까?”
「맞아.」
“……역시 그렇군요.”
서민철이 짧게 숨을 내뱉었다.
협회장이 36개월 이상 직무를 수행하지 않고, 앞으로도 수행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 이사회는 투표를 통해 협회장을 강제 해임할 수 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해임을 진행하다니…….
「솔직히 그렇잖나.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 사실상 협회에서 손을 뗐다고 보는 수밖에.」
‘하, 협회장 가는 길에 이두식을 길동무로 보내겠다고?’
서민철이 처음에 생각했던 수준에서 너무 많이 벗어났다. 그땐 그냥 김준우만 내치면 다 끝날 줄 알았으니.
“그, 그나저나 투표가 과반이 되겠습니까. 그래도 아직 협회장을 기다리고 있는 이사들도 꽤 될 텐데요.”
「말했잖나. 이쪽은 내가 알아서 한다고. 이것저것 좀 쥐여주고 싹 확답받아 놨다.」
서민철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와 동시에 고양감이 끓어올랐다.
그래, 시발.
어디까지 가나 보자고.
「아무튼, 앞으로도 계속 지금처럼만 해, 서민철이. 아니… 이젠 서 이사라고 불러야 하나? 하하하.」
“하하…….”
수화기 너머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길 잠시, 서민철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저, 이사님……. 혹시 본부장 자리는 생각해두신 인사가 있습니까?”
「음? 아직 거기까진 염두 안 해뒀는데. 왜, 괜찮은 놈이라도 있나?」
“괜찮으시다면 이수용 팀장은 어떻습니까. 나름 1팀에서 꽤 좋은 실적을 보이던 놈입니다. 제 뒤를 맡기기엔 충분할 것 같습니다.”
서민철이 앞에 서 있는 이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수용은 애써 표정 관리를 했지만, 그럼에도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걸 어찌하지 못했다.
「하하하! 난 또 누구라고. 자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게.」
“하하,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이만 끊지. 나도 아직 이것저것 할 게 좀 남았거든.」
“네, 들어가십시오.”
그렇게 짧은 통화를 끝내고, 서민철은 고개를 뒤로 푹 젖혔다.
한 번에 너무 엄청난 얘기를 들은 통에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후… 시발.’
김준우는 곧 나가게 될 것이다. 버틴다고 해도 더 이상 그를 도와줄 동료는 없다.
인수합병 결의서에 최종 결정권을 가진 이두식 이사는 이제 나가리 됐다.
거기에 묶어 협회장 해임 안건도 올라왔고, 투표도 과반을 확보했다.
끝났다.
이젠 송철식이 협회의 새로운 실세가 되었다.
서민철은 이 거대한 변화가 불안하면서도 한 편으론 진심으로 안도했다.
그 새로운 라인에 자신이 껴있다는 사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