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40화 (40/366)

040

040

후보들은 서로 눈치를 볼 뿐 누구 하나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장비는 여기 준비되어 있으니 원하는 대로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서두르셔야 할 겁니다. 시간이 계속 지체되면 감점 없이 바로 탈락입니다.”

챙겨 온 물건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후보들은 여전히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모양이다.

“저기. 억지 부리지 마십쇼. 이걸 어떻게 혼자 치우라고?”

그때, 가장 크게 당황하고 있던 신태환이 애써 실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억지 같습니까? 이 정도면 준수한 편인데요.”

“이, 이거 정말 청소팀이 하는 일은 맞습니까? 과제 내려고 너무 갖다 붙인 거 아니에요?”

“이게 청소팀이 하는 일인지 아닌지도 구분 못 하면서 과제 운운할 자격이 있다고 보십니까?”

“바, 방에 튄 피랑 부산물까지 전부 치우라뇨. 그건 너무 과한 것 아닌가요?”

“그러게 왜 그렇게까지 전투를 벌이셨습니까. 조금 더 담백하게 토벌하셨으면 청소도 쉬웠을 텐데 말이죠.”

대답하며 한유빈을 슬쩍 흘겼다.

다른 후보와 마찬가지로 움직임은 없었다.

하지만 그저 뭘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는 이들과는 사뭇 달랐다.

누가 봐도 집중하고 있는 눈빛이다.

보스 방과 부산물을 천천히 살피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저 정도면 그냥 사람이 바뀐 수준인데…….’

처음 후퇴를 제안했을 때까지만 해도 설마 싶었다.

토벌을 진행하면서 연신 던전의 구조를 살필 땐, 긴가민가했다.

그런데 조금 전의 밋밋한 전투를 보고는 확신이 섰다.

청소팀의 프로세서를 이해하고 있다.

‘개중에서 그나마 구실은 하고 있다만…….’

물론 이해만으론 부족하다.

실질적인 기술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현재 후보들 앞에 놓여 있는 거대한 오우거의 사체.

화려한 전투로 인해 원래 형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남은 건 사방팔방에 튀어 있는 핏자국과 사체 조각들.

너무 조각조각 난 덕에 따로 해체할 필요도 없을 정도.

뭐, 어찌 보면 일이 하나 준 셈이지만… 문제는 부산물 청소다.

양도 양이지만 공기 중에 닿는 단면이 많아 벌써부터 가스가 방출되고 있다.

한 번에 최대한 많이 그리고 최대한 빨리 청소를 진행해야 한다.

결국, 이 과제의 핵심은 변칙적인 상황에서 얼마나 효율적인 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는가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웬만한 경험과 지식 그리고 기술이 없다면…….

“이딴 근본도 없는 걸 과제라고 내놓은 것부터 수준 알 만하네. 난 안 합니다. 억지도 정도껏 부려야지, 쯧.”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신태환 씨는 포기한 거로 하고…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동 침묵.

표정들을 보아하니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듯했다.

“한유빈 씨는요.”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후보에게 물었다.

“…네?”

“한유빈 씨도 포기할 겁니까?”

“…….”

예상대로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후보 전원이 과제를 포기했으므로, 시험은 여기서…….”

“이 약품, 농도 맞춰져 있는 건가요.”

“……예?”

“농도요. 60퍼센트 맞춰져 있냐고요.”

불안감이 확 몰려오는 질문.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한유빈의 눈빛이 확 바뀌었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녀는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준비된 장비에서 방호복을 집어 들더니, 조각조각 난 사체 위에 덮어씌운다. 공기 중에 닿는 면적을 최소화해서 가스 방출을 늦추기 위한 작업이다.

그리곤 분사기를 이용해 보스 방 전체에 약품을 빠르게 도포. 그렇게 피가 녹아내리는 동안 사체 부산물을 모두 로프로 엮는다.

이후에는 곧바로 사방에 튄 피를 닦기 시작한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한유빈은 청소를 마쳤다.

그녀는 사체를 줄줄이 엮어 놓은 로프를 어깨에 들춰 멨다.

“이대로 나가면 되나요?”

“…….”

담담한 태도.

“……뭐, 뭐야?!”

“…저 사람도 헌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거짓말 아니야? 담당자님, 인사 기록 확인해보셨어요?”

“당연하지. 여기 분명히…….”

예상치 못한 결과에 심사관들과 인사 담당자가 수군대기 시작했다. 부쩍 던전이 소란스러워졌다.

경험, 기술, 지식.

이 세 가지가 없으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과제다. 당연히 며칠 공부 좀 했다고 터득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것도 겨우 일주일 만에!

이건 정말 말이 안 된다.

숙달된 전문가가 직접 알려준 게 아닌 이상 절대…….

‘잠깐, 설마…….’

- 그 사람들이 고생해주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 나머진 이제 저희한테 맡겨 주시고요.

- 나중에 감사 인사나 해둬요.

불현듯 떠올랐다.

설마하니 다 같이 모여서 저 녀석한테 과외라도 해준 건…….

‘빌어먹을…….’

악문 입에서 으득 소리가 났다.

대체 그 녀석들은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한 건가.

애초에 이번 시험으로 후보 전원을 탈락시킬 계획이었다.

그런데 한유빈 혼자 과제를 해결해버리면…… 그녀를 뽑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젠장, 어떡하지.

이번엔 뒤집어엎고 싶어도 저번과 같은 명분이 없는데…….

“참 나, 이거 너무 대놓고 밀어주는 거 아닌가?”

그때 신태환이 한 줄기 빛과 같은 말을 내뱉었다.

“딱 봐도 말도 안 되는 걸 과제라고 내놨는데, 유일하게 당신 후보만 그걸 해결한다고? 이건 너무 노골적이지 않나? 당신이 미리 알려준 거 아니야?”

“……어,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이렇게 나오면 우리도 가만히 안 있지. 이거 엄연히 채용 비리야. 심사관님들도 설마 저걸 인정해주실 건 아니겠죠?”

눈부시다.

신태환이 너무 눈부셔서 쳐다볼 수가 없다.

그래, 잘하고 있어.

이대로 조금만 더 힘내서…….

“병신새끼.”

“……뭐?”

……?

“…너 지금 나한테 한 말이냐?”

“자기가 못 하는 일이라고 비리니 뭐니 주절거리는 거 안 쪽팔려? 일주일이나 시간이 있었으면 공부라도 좀 하지 그랬어.”

뭐, 뭐야.

한유빈 쟤는 갑자기 왜 지랄이야?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여기서 푸쉬 안 받은 놈 누가 있어? 저기 덜떨어진 두 명은 임원들 후보라는 거 하나 믿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던 것 같고. 당신도 본부장한테 미리 정보 좀 받은 것 같던데?”

“저, 저기 한유빈 씨? 그, 말을 좀 가려서…….”

“이런 시발, 진짜 년놈들이 쌍으로 쳐 돌았구나?”

“아니, 전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황급히 수습하려 했지만, 이미 말이 먹힐 분위기가 아니다.

신태환은 진심으로 열이 뻗치고 있었고, 한유빈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긴, 본인 능력이 수준 미달이니까 어쭙잖은 길드에서 길드장으로 승급도 못 하고 나왔겠지. 아… 혹시 잘린 건가?”

잘린 본인이 할 소린가?

“이 씨발, 밖에선 눈도 못 마주칠 년이……. 뒤지고 싶어서 환장했나.”

신태환의 표정이 심하게 구겨졌다. 그리곤 무기를 꺼내 들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그동안 몬스터 몇 마리 잡았다고 나랑 동급으로 보이냐?”

[고유 스킬 : 광분]

어지간히 빡이 돌았는지 스킬까지 발동시킨다.

버서커 클래스의 전매특허인 붉은 기류가 스멀스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전 아레스 부 길드장.

A랭크. 국내 광전사 클래스 중 1위.

참으로 칭호에 걸맞은 감정 컨트롤이 아닐 수 없다. 무슨 다 큰 어른이 시비 좀 걸렸다고 시험 중에 무기를 빼 들어.

……물론 다짜고짜 쌍욕부터 내뱉은 사람이 잘못이긴 한데.

‘뭐, 그건 둘째 치고라도…….’

측은한 표정으로 신태환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서민철이 중요한 걸 말해주지 않은 모양이다.

지금 본인에게 쌍욕을 박은 저 여자가…….

“당신, 내가 왜 전 직장에서 잘린 줄 알아?”

[고유 스킬 : 하이패닉 버서커]

전 국제 협회 미국 지부 소속 헌터.

전 미국 지부 작전 4팀장.

세계 랭킹 152위.

“능력도 없는 주제에 말만 많은 새끼들 턱을 죄다 부숴놨거든.”

세계 광전사 클래스 1위의 진또배기 미친년이라는 걸.

이윽고 신태환과는 비교도 안 되는 붉은 기류가 미친 듯이 뿜어져 나왔다.

“……!”

신태환의 다리가 조금씩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느낀 듯했다. 자신과는 급이 다르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도 잠시.

타앗―.

이를 악물고 그가 다짜고짜 한유빈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렇게 두 미치광이가 맞닿았다.

쾅―!!!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 나오며 거센 파동을 일으켰다.

그곳에 있던 인원들도 예상치 못한 그 충격에 팔로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두 미치광이가 맞붙어서 생긴 충격은 아니었다.

[시전자를 향한 공격 감지]

“보자 보자 하니까 진짜…….”

[현 시간부로 전투태세에 돌입합니다]

격돌하기 직전, 내가 양쪽의 손목을 낚아채며 사이로 끼어들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대판 싸움이 벌어졌을 거다.

“……!”

“……?!”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눈에 힘을 바짝 준 채로 양측을 번갈아 봤다.

“시험이 장난입니까. 심사관들 앞에서 이게 대체 무슨 추태죠?”

“…….”

“…….”

“다들 여기까지만 하십쇼.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하고 싶지 않으면.”

한유빈을 슬쩍 흘기자, 그녀의 눈이 상당히 동그래져 있다.

놀란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은 본인의 주먹을 붙잡은 내 손이었다.

‘……? 이 자식 봐라.’

그런데 어째 주먹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참 나, 나름 클래스 1위라고 자존심은 있다, 이건가.

살짝 자존심을 눌러줄 생각으로 나 또한 온 힘을 다해 그녀의 주먹을 움켜쥐었다.

“……윽!”

……버틴다고?

내 힘을?

‘미친년… 대체 근력 스텟에다가 뭔 짓을 한 거야.’

근력 스텟이 특출난 건 아니지만, 웬만한 헌터에겐 밀린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꼴에 국제 헌터 출신이라 이건가.

보이지 않는 힘이 부딪치며 핏줄이 더욱 팽팽해졌다.

그렇게 소리 없이 서로 노려보며 힘 싸움하길 얼마가 지났을까.

“……알았어요, 알았어. 그만할게요.”

한유빈이 먼저 백기를 들었다.

저항은 해봤지만, 스킬의 효력이 다 떨어지자 승산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신태환 씨도 무기 내려놓으세요. 더 이상하면 바로 탈락입니다.”

신태환 또한 못마땅한 표정으로 검을 거뒀다.

“시험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더 진행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뭐, 더 볼 것도 없고.”

상황이 종료되자 곧바로 등을 돌려 던전을 빠져나갔다.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지긴 했어도 생각대로 되었다.

***

시험이 끝났음에도 분위기는 여전히 어수선했다.

심사관들과 인사 담당자는 던전을 나오자마자 심각한 얼굴로 서민철과 대화를 나눴다.

덩그러니 버려진 후보들은 자기들끼리 눈치를 보다가 이내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멀뚱멀뚱 서 있던 한유빈 또한 나를 한번 슬쩍 흘기곤 이내 등을 돌렸다.

“미안합니다.”

천천히 멀어지는 등에 대고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러자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린다.

“……네, 네?”

“사과받으러 왔다면서요. 저번 면접 때 일은 제가 경솔했습니다.”

“…….”

면접 때 태도를 문제 삼았긴 했어도, 오늘 보여준 모습은 한 치의 오류도 없었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아, 아니 사실… 당신 동료가 도움을 조금…….”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받았든, 결국 과제를 수행한 건 한유빈 씨 본인이잖습니까. 어쨌든, 본인에게 배우려는 의지가 있었다는 거겠죠.”

“뭐, 뭐… 네…….”

정말 사과를 받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지, 꽤나 당황한 표정이었다. 물론 오래가진 않았다.

“알았어요. 사과는 받아줄게요. 어차피 두 번 다시 볼 것도 아니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날이 선 목소리다.

“……채용엔 관심 없다는 건가요.”

“말했잖아요. 전 그냥 당신한테 사과받으러 온 거라고. 뭐… 애초에 그 지랄을 했으니 합격은 물 건너갔을 거 아니에요.”

“뭐, 알겠습니다. 본인 뜻이 그렇다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다시금 멀어지는 한유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지가 뭔데 이러겠다 저러겠다야.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