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33화 (33/366)

033

033

다음 날 아침.

본부에서 이번 정산 시즌에 있었던 일을 두고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내가 알 턱은 없지만…….

이번 일의 주축들에 대한 후속 조치만큼은 본부 내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수용 팀장은 ‘허가를 받고 토벌을 했을 뿐’이라면서, 몰아주기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변명했다.

연기가 좋았던 건지, 아니면 정말 몰랐던 건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 변명 덕에 이수용은 경고 처분만을 받았다.

이아영 부실장이 슬쩍 전해주길, 서민철은 더 가관이었단다.

-정예팀 간판이 있지 않습니까. 협회 내적으로도, 대외적으로도 1팀이 이기는 편이 좋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저로서도 조금 몰아주라고 했기로서니, 통제팀이 그렇게 모조리 허가를 내줄 줄은 몰랐습니다.

역시 어디 가지 않는 개새끼다.

‘뭐, 애초에 그렇게 나올 거 같긴 했지만…….’

사실 그의 말이 썩 틀린 건 아니다.

작전 1팀이 협회의 간판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아무리 협회 임원들이라고 해도 협회 간판을 손에 쥐고 있는 서민철을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 그 누가 됐든, 협회 밥을 먹고 있는 이상 1팀의 덕을 보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을 테니까.

서민철 또한 경고 처분에서 그치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텐데…….

‘설마하니 대놓고 감봉을 때릴 줄이야.’

이두식 이사도 참 빠꾸 없는 인간이다.

본부장한테 감봉 처분을 내리다니, 그거 한 번으로 다른 이사들에게까지 눈 밖에 날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건가.

자기 무덤을 아주 포크레인으로 파 재끼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5년은 개뿔, 1년 안으로 해임을 당해도 모자랄 판국이다.

아무래도 앞으론 더욱 엮이면 안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통제팀장은 견책 처분을 받았다.

뭐, 그놈이야 서민철이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이니 가장 억울할 만한 입장이겠다만…….

왜인지 나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서 거듭 사과를 전했다.

다신 이런 일 없을 거라나 뭐라나. 그리곤 나중에 꼭 한 번 찾아뵙겠단다.

참 나, 청소부한테 전화해서 사과하는 통제팀장이라니. 이렇게 품위가 떨어져서야 원.

어쨌든 이번 일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김민주와 이아영은 심심한 징계가 퍽 아쉬운 듯했지만…… 뭐, 그놈들이 무슨 징계를 받든 내가 알게 뭐람.

“그동안 실례 많았습니다!”

출근 직후 던전 앞.

막 작업 준비를 끝낸 우리에게 구상찬 기자가 허리 숙여 인사했다.

일주일간의 길었던 취재가 드디어 끝이 났다.

원래 예정된 취재 기간은 3일이었지만…….

중간에 정산 시즌이다 뭐다 해서 이런저런 일이 터져버리니, 그로서도 이야깃거리를 놓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저희도 재밌었어요.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봬요.”

“이야, 덕분에 우리도 좋은 경험 했습니다. 하하!”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암만 생각해도 방해밖에 안 됐구만.

“역시 소문대로 장난 없는 팀이던데요! 취재하면서 나도 여기서 일할까 싶었다니까?”

“그러면 사표 쓰고 청소팀 들어와.”

“…….”

바로 입을 닫는 구상찬.

하여간 말은…….

“하, 하하하! 그래도 진짜 재밌었습니다. 이건 진짜예요!”

“그럼 다행이고. 빨리 가, 이제.”

“형님도 안녕히 계십쇼! 종종 연락드리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아, 그리고…….”

슬쩍 눈치를 보며 구상찬에게 다가갔다.

“부탁한 거 꼭 좀…….”

그리곤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산이 끝난 날, 회식 자리에서 나는 구상찬에게 임금에 대해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그때 사실 허세를 부렸다, 사실은 그게 맞는 금액이다.

그랬더니 이놈의 자식이 말하길……

‘임금이요? 워, 원래 얼마였죠…?’

내가 볼 때 이놈은 회식하려고 취재 허가받았다.

하마터면 주먹이 나갈 뻔했지만… 그래, 어차피 인상도 물 건너간 판국에 까먹든 말든 뭐가 대수겠는가.

결국, 그에게 대놓고 다시 한번 부탁했다.

신입이라도 받고 싶으니, 최대한 사람들이 만만하게 보게끔 기사를 써달라고.

“아유, 알았어요, 알았어. 몇 번을 말씀하신대. 저 못 믿으십니까?”

“……말이라고 하냐?”

딱히 부정은 않고 껄껄 웃는다.

“아무튼, 진짜 가볼게요. 복귀 늦어서 부장님 전화 엄청 와서요.”

“그래. 빨리 가봐.”

“또 뭐 재밌는 일 생기면 저한테 제일 먼저 연락 주기입니다!”

“알았으니까, 가 쫌.”

몇 번이고 말을 끌다가, 드디어 등을 돌리던 그 찰나.

그의 의미심장한 미소가 순간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

지원팀, 헌터 관리실.

“아, 안녕하세요!”

“김준우 청소부님이시죠? 처음 뵙겠습니다.”

“정산 시즌 수고하셨어요!”

부담스러울 만치 과한 환대.

발을 들여놓자마자 직원들의 인사가 쏟아졌다.

“왔어요?”

한껏 어색한 얼굴을 하고 있자, 이아영 부실장이 뒤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바쁜데 왜 자꾸 오라 가라 합니까.”

“와… 누가 보면 내가 몇 번은 불러낸 줄 알겠어요.”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사무실 구석에 놓인 자리로 나를 안내했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지원팀에는 왜 오라고 한 겁니까?”

“너무 당당하게 나오니까 내가 다 당황스럽네. 설마 잊어버린 거 아니죠?”

“뭘 말입니까.”

“이번 연합 작전 도와주기로 한 조건이요! 아직 정산 안 했잖아요.”

칫, 기억력도 좋네.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주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속물일 줄 몰랐…….”

“웃기고 있네! 조건이고 뭐고 다 들어줄 테니 도와만 달라고 사정사정할 때는 언제고!”

농담이었는데 반응이 꽤 과하다.

대체 얼마나 이를 갈고 있었던 건가.

그래, 뭐… 약속은 약속이니까 지켜야겠다만.

일단은 그 전에.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이두식 이사님이랑 관련 있는 일입니까?”

이건 짚고 넘어가야 한다.

혹시라도 이두식 이사와 연관된 일이라면, 미안하지만 약속이고 뭐고 발을 빼야 할 테니.

“그건 아니에요.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조건.”

“다행이군요.”

“네, 뭐. ……잠깐. 생각해보니 이상하네.”

이아영의 눈썹이 물결쳤다.

“그분이 저희 아버지인 건 어떻게 알았어요? 그거 아는 사람, 본부 내에서도 몇 명 없는데?”

“……그, 그냥 어쩌다 보니.”

“혹시… 다른 사람한테 말한 건 아니죠? 김민주 팀장이나…….”

“날 뭘로 보고.”

슬쩍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사실 이미 말했다.

말하면 안 되는 건 줄 몰랐는데?

“흐음… 알았어요. 뭐, 그건 일단 넘어가고.”

이아영이 다리를 꼬며 말을 이었다.

“정산 시즌 이후로 본부 내에서 청소팀에 대한 시각이 심상치 않아요.”

“뭐, 그렇겠죠. 주제넘게 작전팀 싸움에 끼어들었으니…. 게다가 다른 팀을 제치고 2등까지 해버렸고. 책잡힐 만한 일이긴 합니다.”

“아니. 그 반대예요.”

“……예?”

“서민철 라인을 제외하고는 다들 청소팀을 진심으로 선망하고 있어요.”

나는 대답 대신 눈을 깜빡였다.

“부러워할 게 없어서 청소팀을 부러워한답니까?”

“뭐, 엄밀히 말하면 청소팀에 붙은 우리를 부러워하는 거지만요.”

이아영이 어깨를 으쓱였다.

“결과가 말해주잖아요. 하꼬팀, 따까리팀이 청소팀에 붙자마자 최종 정산에서 2등을 했으니. 뭐, 중간에 그런 일만 없었어도 압도적으로 1등을 했을 거라는 걸 모르는 사람도 없고요.”

“글쎄요. 그 정도 연합이면 누가 기획해도 2등은 했을 것 같은데.”

“헐 소름. 보기와는 다르게 겸손하시네?”

“…….”

한 대 씨게 쥐어박고 싶네.

“그리고 무엇보다 1등을 포기하면서까지 전원 청소팀에 투입한 거. 그거 하나로 본부 내에서 실적에만 혈안이 되어 있던 놈들한테 크게 한 방 먹였어요. 당연히 충격이었겠죠. 여태껏 협회에선 상상도 못 했던 일일 테니까.”

“……그게 그렇게도 해석이 되는군요.”

“정말 완벽한 한 수였어요.”

이아영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완벽한 한 수? 어이가 없네.

그 한 수로 지금 해금 기회를 두 개나 잃었는데, 쯧.

“뭐… 띄워주는 건 고마운데, 그 이야기가 조건이랑 무슨 관련이 있는 겁니까?”

“이번에 청소팀이 추가로 하나 신설된대요.”

꽤나 생뚱맞은 대답에 눈썹이 꿈틀거렸다.

“……청소팀이 하나 더 생긴다는 소립니까?”

“네. 이번 일로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윗사람들도 그렇고, 다들 이래저래 청소팀의 필요성을 느꼈나 봐요. 벌써부터 인사 발령 얘기도 나오고 있는 걸 보면… 아마 빠르면 다음 달?”

“뭐, 그렇군요.”

“별로 안 좋아하네요?”

“좋아할 일입니까?”

“한 팀이 늘면 그만큼 업무량이 줄잖아요! 임금 변동도 없다는데 당연히 좋아할 일이죠!”

아니, 지가 청소팀이야?

내가 관심 없다는데 왜 본인이 더 난리인가.

“됐고, 빨리 조건이나 말해보십쇼. 저 오후 작업 가야 하니까.”

“흠흠… 아무튼 제 조건은 이번에 신설될 청소 6팀. 거기에 어울릴 만한 사람을 당신이 좀 뽑아줬으면 좋겠는데.”

“……?”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이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제가 무슨 권한으로 사람을 뽑아요.”

“또 겸손한 척하는 거예요? 사람 한 명 뽑는 거야, 팀장 권한이면 충분하잖아요.”

“당연히 팀장 권한이면 충분하겠죠. 그런데 전 겨우……. 잠깐, 뭐라고?”

순간 뭔 소리를 들은 건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이아영이 더 당황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충격적인 소식이 이어졌다.

“아… 아직 얘기 못 들었나 보네요. 당신, 이번에 승진 내정되어 있는데…….”

“그, 그런 얘기를 어떻게 당사자보다 먼저 알고 있는 겁니까?!”

“저만 알고 있는 거 아닌데… 청소팀원들도 알고 있어요. 김민주 팀장도 알고 있고.”

“…….”

머리를 탁 짚었다.

어째 세상이 나만 빼고 돌아가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두 달 된 놈이 팀장을 답니까? 박 팀장님은 또 어떻게 하고요. 협회는 위아래도 없답니까?”

“당신이 그런 말 하니까 좀 웃기네요.”

이아영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곤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번에 청소팀 내부적으로 인사개편이 있을 거예요. 일단 가장 크게는… 청소과장이 생긴다는 거?”

“과장?”

눈썹이 꿈틀거렸다.

협회에는 과장이 없다.

과가 나뉠 필요가 없었기에, 초창기 때부터 유지해온 조직도였다.

그런데 작전팀에도 없는 과장이 생긴다니…….

갑자기 없던 티오가 생길 정도면 절대 서민철 선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최소 이사회. 그중에서도 이두식 작품이 분명하다.

‘참 나, 좋은 소식이란 게 이걸 말했던 건가.’

보아하니 슬슬 개혁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참 쓸데없는 데서 발이 빠르시네.

“사실 처음에 당신이 청소과장 자리에 올라갈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뭐…….”

“죽어도 싫습니다.”

“……그럴 거 같아서 제가 말렸죠.”

여태껏 없던 자리가 생겼다는 건 결국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어떤 일을 맡게 될지도 모르고 어떤 책임을 질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엔 어떤 말도 안 되는 일을 뒤집어쓰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도 있다.

구실 좋은 무덤에 스스로 들어갈 만큼 바보는 아니다.

“뭐, 당신 성격 모르는 것도 아니니까요. 선배를 무시하면서까지 직책에 욕심을 낼 사람도 아니고요.”

……꿈보다 해몽이군.

“그래서 박근태 팀장님이 올라가는 것으로 최종 결정 났어요.”

“그리고 빈 청소 3팀장 자리에 내가 가게 됐다, 이 말이군요.”

“그렇죠.”

고개가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팀장이라는 직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니다. 앞으로의 해금을 위해선 어쨌든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야 하는 건 필수 불가결하니까.

다만 내가 걱정하는 건, 팀장은 생각보다 꽤나 귀찮은 자리라는 것이다.

빌어먹을,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하네.

“뭐, 어쨌든 그건 나중 일이니까요. 일단은 아까 말했던 신설 팀 채용 건부터 진행해보자고요.

후후 웃음을 흘리는 이아영.

나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신설 팀원을 뽑는 거랑 그쪽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 겁니까? 아무리 봐도 당신한테는 이득이 없는데.”

“당연히 저야 누가 들어오든 상관은 없죠. 그래도 이왕 들어오는 거 재밌는 사람이 들어오면 좋잖아요? 천재는 천재가 알아본다니까…….”

날 보며 씨익 웃는다.

딱 봐도 칭찬은 아니다.

“아무튼, 주변에 적당한 사람 있으면 좀 찾아봐요. 민간 길드에서 스카우트해 와도 좋고. 아니면 길거리에서 꼬셔도 좋고.”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조만간 청소팀에 신입들이 몇 명 지원할 테니까.”

“…음? 신입이라뇨?”

의아한 목소리.

생각해보니 이아영은 내 완벽한 계획을 모르고 있었다.

“이번에 우리 팀 취재했던 기자 있지 않습니까. 사실 그놈한테 최대한 만만하게 보이게끔 써달라고 부탁을 좀 했습니다. 뭐… 그렇게라도 안 하면 아무도 안 들어올 팀이니까.”

“……?”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

“아무튼, 조금 있으면 어중이떠중이 같은 놈들 몇 명 지원 들어올 테니까, 그놈들 중에서 뽑으면…….”

“저기, 말 끊어서 미안한데요…….”

이아영이 뺨을 긁적이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 기사 벌써 났는데… 아직 확인 못 했어요?”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