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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8화 (8/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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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알았어요?”

오후 11시가 훌쩍 넘은 시각.

오늘 마지막 던전을 청소하고 막 밖으로 나가려던 차에 반갑지 않은 얼굴이 다짜고짜 다가와 말을 걸었다.

“……뭐야?”

뭐지.

대체 뭔가 이 상황은.

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거봐. 저 새끼 저거, 전 여친 맞다니깐?”

“아, 아무튼 우린 피해 주는 게 좋겠지?”

“……그래요.”

박 팀장은 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팀원들을 데리고 자리를 옮겼다.

동시에 어째 뒤통수가 따끔거리는 시선이 계속해서 날아들었다.

“왜 대답이 없어요. 어떻게 알았냐니까요.”

“……뭘 말이야.”

“뭐겠어요. 이제 와서 모른 척이에요?”

칫, 나는 작게 혀를 찼다.

그새 검사를 받아 본 모양이다.

아니, 받았으면 그만이지 찾아오긴 왜 찾아오는 건가.

“그냥 찍어 본 거야. 알고 한 말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찍어봤다고요?”

“어. 그냥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거로 헌터한테 아는 척 한번 해보고 싶었어.”

김민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 알아들으셨으면…….”

“검을 쥘 때 왼손이 받쳐줘야 한다, 고 하셨죠?”

“……그런데.”

“전 그때 검을 들고 있지도 않았고 검을 쓴다고는 한마디도 한 적이 없는데, 그건 어떻게 알았죠? 그것도 찍어 본 건가요?”

“…….”

빌어먹을.

실책이다. 역시 그냥 닥치고 있어야 했다.

어떡하지. 계속 찍었다고 잡아뗄까.

아냐. 저 자식 성격상 그걸 인정할 리가 없다. 원하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찾아올 것이다.

여기서 어정쩡하게 대답하면 더 귀찮아지려나.

“말 안 해주시면 내일 또 올 거…….”

“저번 사당에 출현했던 블루 등급 던전을 청소할 때.”

김민주의 말을 싹둑 자르며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몬스터 시체를 운반하면서 칼자국을 봤어.”

“……칼자국이요?”

“칼자국 방향이 꽤나 변칙적이었거든. 그건 어느 특정 기술에만 고정된 게 아닌, 상황에 따라 다양한 기술들을 즉석에서 연계한다는 말이겠지. 이건 전투 경험이 매우 풍부해야만 가능한 방식인데, 뭐…… 나이에 비해 실력이 상당하다는 얘기고.”

아무렴, 다른 건 몰라도 저 녀석의 포텐셜만큼은 S급, 혹은 그 이상인 건 부정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수많은 칼자국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게 있었어. 우측 상단에서 좌측 하단으로 이어지는 종 베기. 오른손잡이가 주로 쓰는 기술이지만, 보통은 그 직후에 우측 횡 베기, 혹은 우측 올려 베기로 연계하지. 그런데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는 종 베기는 꽤나 칼자국이 깊었지만 이어 연계한 나머지 베기는 그 깊이가 눈에 띄게 얕더라. 그래서 왼손에 힘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어.”

“…….”

“문제는 그다음. ‘베가’는 매우 빠른 속도의 공격이 특징이야. 하지만 그거 외에는 위협이 될 만한 건 없으니, 빠른 속도를 역이용해서 카운터를 치는 게 공략이라면 공략이었겠지. 그런데도 카운터를 시도한 흔적이 단 하나도 없더군. 너 정도의 실력자가 그걸 몰랐을 리도 없는데 말이지.”

김민주는 퍽 당황한 눈치였다.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 마치 비밀을 들킨 얼굴이다.

“그럼 생각해볼 수 있는 건 하나. 베가의 속도에 반응해서 카운터를 치기에는 몸이 따라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순간적으로 어깨에 부담이 오더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일상생활에서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미미한 증상이었을 거야. 하지만 순간적으로 반응해서 몸을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라면 티가 날 수밖에 없지. 특히나 검사라면 더더욱.”

검사.

클래스가 공식적으로 나뉘어 있는 건 아니지만, 헌터들 사이에서는 암묵적으로 스킬과 특성에 따라 이름을 붙였다.

즉, 검술에 대해선 사실 김민주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검사 클래스가 아닌 내가 그녀에게 조언해줄 수 있는 이유는 매우 단순했다.

내가 세계 최초의 올 클래스, SSS랭크의 헌터였으니까.

“검을 쓰는 헌터들은 대부분 무기에 특수한 힘을 부여하거나, 시전자의 능력을 대폭 끌어올리는 버프 스킬들이 많지? 그건 곧 스킬 자체에 크게 의존하는 다른 헌터들과 다르게 검술 실력이 우선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러니 이참에 며칠 쉬면서 다시 기본부터 잡는 게 좋을 거야. 어차피 그 상태로 계속 토벌에 참여해 봤자 제대로 못 움직일 거고.”

“…….”

김민주는 대답이 없었다.

내 말은 안 듣고 딴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그래 뭐, 이 녀석이 어떤 녀석인데. 청소부 말을 듣기나 하겠어.

“이 정도면 대답이 된 것 같은데, 슬슬 가도 될까. 내일도 출근해야 해서.”

“역시 당신…….”

그때, 김민주가 번뜩 입을 열었다. 뭔가를 확신한 듯한 표정을 짓고.

눈에 바짝 힘이 들어간 채로 나에게 다가왔다.

또 자길 무시한다고 욕이나 한바탕 쏟아부을 것 같은 기세였다.

하지만 정작 입에서 나온 말은 생뚱맞았다.

“당신, 프리랜서 헌터죠?”

“……뭐?”

“서울에도 몇 명 있다고 들었어요. A급 프리랜서 헌터. 국내에서 최상위권을 다투는 랭커들이지만, 초고위험도 던전 토벌 외엔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프리랜서가 아니면 민간 길드 헌터거나. 그렇죠?”

“뭔 소리야. 나 헌터 아닌데.”

“……네? 그, 그럼 뭔데요?”

“보면 모르시나? 청소부인 거.”

나는 귓구멍을 후비며 대답했다.

속이 뻔히 보이는 질문이다.

내가 잘 나가는 프리랜서나 민간 길드 소속이면, 좀 따라다니면서 콩고물이나 받아먹을 생각이었겠지.

미안하지만 어림도 없다.

난 이제 널 다시 볼 생각이 일절 없으니까.

“알아들었으면 이제 좀 비켜주지. 막차 끊기기 전에 가야…….”

“……아무튼, 고마워요.”

“……?”

저 녀석…… 지금 뭐라 그런 거야?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설마 지금……. 나한테 고맙다고 한 거야?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입을 다무는 것도 깜빡한 채였다.

“저, 그리고…… 실례라곤 생각하지만, 혹시 괜찮으시면…….”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김민주가 손을 꼬물거리며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

“휴가? 갑자기?”

서울 본부, 작전 1팀 사무실.

책상에 앉은 남자는 김민주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지원팀에서도 쉬는 게 좋겠다고 해서요.”

“설마 그 저번에 검사받은 그거 때문에?”

“네.”

“참 나, 어이가 없어서. 어깨 좀 아프다고 휴가는 시벌. 나 때는 상상도 못 했는데.”

“뭐, 그냥…….”

김민주는 말끝을 흐렸다.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이 남자.

현 작전 1팀장, 이수용.

이놈은 저번 달에 낙하산으로 꽂힌 놈이 아니던가.

‘나 땐 말이야’를 시전하기엔 본인과 나이 차가 불과 5살이었다.

“겸사겸사 자기 계발도 좀 하려고요.”

“자기 계발은 무슨. 어디 남자친구랑 여행이라도 가려고?”

“아닌데요.”

“그럼 뭔데.”

김민주는 입을 꾹 다물었다.

뭐가 이렇게 말이 많은가 싶었다.

있는 휴가 쓰겠다는데도 이런 것까지 설명해야 하나.

“검술 좀 배워보려고요.”

“……뭐? 어디 학원이라도 다니려고?”

“아뇨. 그냥 개인 교습.”

“개인 교습? 누구한테? 요즘에도 뭐 무림 고수 그런 게 있나? 아님 뭐, 남자친구?”

하아, 김민주는 티가 나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청소부요.”

“……뭐?”

“던전 청소팀 소속 청소부 말이에요.”

“청소팀……?”

“네.”

“이건 또 무슨 개소리냐. 배울 사람이 없어서 청소부한테 검술을 배운다고? 그것도 현직 헌터가? 차라리 검도 학원을 끊던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아… 아, 설마 그 어깨 검사받아보라고 했다던, 그 청소부냐?”

김민주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 남자가 그 이야기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건가.

‘아… 설마 지원팀에서…….’

그제야 김민주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며칠 전, 약을 조금 더 타기 위해 다시 지원팀에 들렀을 때, 친분이 있는 간호사에게 그 일에 대해 넌지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담소 수준으로 나눈 이야기가 설마하니 자신의 상관한테까지 흘러 들어갈 줄이야.

김민주는 묘한 배신감에 눈살을 찌푸렸다.

“참 나, 그 새끼도 그 새끼다. 청소부 주제에 헌터한테 훈수 두는 것도 모자라서, 이젠 하다 하다 분수도 모르고 헌터를 가르치겠다고…….”

“가르치겠다고는 안 했어요.”

“뭐?”

“아직 가르쳐준다곤 안 하셨다고요. 저번에 한 번 부탁 했는데 거절하셨거든요.”

“……이건 또 뭐라는 거야. 너 나랑 장난치냐? 가르치겠다고도 안 했는데 뭘 배워, 배우긴!”

“또 찾아가야죠. 들어줄 때까지.”

이수용 팀장이 등받이에 몸을 던지듯 누웠다. 그리곤 콧잔등을 꾹꾹 눌러댔다.

김민주는 드디어 이 무의미한 대화가 끝이 났다는 걸 직감했다.

“……됐다. 니 알아서 해.”

“감사합니다.”

말을 꺼낸 지 무려 30분 만에 떨어진 허가.

그 사이 김민주의 머릿속에선 ‘이럴 바엔 그냥 안 쓰고 말지’라는 생각이 백 번은 더 오갔다.

분명 저 남자도 그걸 노렸으리라.

“아, 몇 주 뒤에 대규모 토벌 하나 잡혀 있거든? 좀 큰 건이라서 인원이 많이 필요하니까 그전엔 복귀해.”

“……알겠습니다.”

“가봐.”

이수용 팀장은 마치 벌레를 치우듯 손등을 휘저었다.

김민주는 말없이 목례를 하곤 곧바로 사무실을 나섰다.

***

사무실 문이 쿵, 소리를 내며 닫혔다.

“쯧…… 조직이 거꾸로 돌아가네. 거꾸로 돌아가.”

이수용 팀장은 김민주가 나가자마자 대놓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아닌 게 아니라, 헌터가 청소부한테 뭔가를 배운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다른 사람들이 듣는다면 헌터를 뭐라 생각하겠는가. 아니, 우리 팀을 뭐라 생각하겠는가.

특히 작전 2팀장 귀에라도 들어간다면…….

“어후 시발,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이수용 팀장은 치를 떨며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조직에는 위계라는 게 존재한다.

지위, 계층, 등급.

낮은 등급과 높은 등급. 하위 계층과 상위 계층.

위계는 곧 조직의 품위이고, 위계가 깨지면 조직은 품위를 잃는다.

그리고 최정예라 불리는 작전 1팀의 팀장으로서, 조직이 품위를 잃는 걸 가만히 내버려둘 순 없는 일이었다.

“청소팀이라…….”

깊은 한숨을 토해내던 그때, 이수용 팀장의 눈이 번뜩였다.

동시에 손이 곧바로 앞에 놓인 전화기로 향했다.

몇 번의 발신음.

이윽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마자 이수용 팀장의 목소리가 상기됐다.

“어, 작전 1팀 이수용 팀장이다. 지금 본부장님 계시냐?”

「아, 네. 계십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당장 바꿔봐. 드릴 말씀이 있으니까.”

***

[해금 조건 달성]

“……어?”

던전 바닥에 눌어붙은 피가 도저히 닦이지 않아 약품을 쏟아붓고 있던 그때였다.

머릿속에 뜬금없는 음성이 울려 퍼졌다.

[협회 내 던전 청소팀 관심도 상승]

[습득 스킬 : 원 카운터 - 잠금 해제되었습니다]

‘……뭐야? 왜 갑자기?’

꽤나 갑작스런 조건 달성에 가만히 서서 눈을 끔뻑거렸다.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아직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왜 저게 해금이 되는 거지? 시스템 오류인가?

‘아, 아니 뭐. 어쨌든…….’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중요한 건 어쨌든 해금이 됐다는 거 아닌가.

“뭐야, 왜 실실 쪼개? 기분 나쁘게.”

“……아무것도.”

“그럼 약품이나 좀 더 뿌려봐! 이 새끼 툭 하면 멍 때리네?”

뜻밖의 횡재에 웃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한상혁이 미친놈 보듯 바라봤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기쁜 마음으로 다시 청소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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