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007
죽을 맛이다.
3일 연속 ‘운 나쁜 날’에 이어 오늘은 새벽 출근이라니.
“하암…….”
던전 입구 앞.
참을 수 없는 하품에 연신 입이 쩍쩍 벌어졌다.
현재 시각 새벽 5시 30분.
대략…… 2시간 정도 잔 것 같다.
아무리 굴려 먹는 팀이라고 해도 정도가 있지, 내가 기계도 아니고.
헌터 때조차 이 정도로 타이트한 스케줄은 없었다.
뭐, 헌터 때는 한 번 토벌하면 일주일을 쉬었으니 체력적으로는 오히려 널널했지.
“아 씨, 이럴 거면 끝나고 부르던가. 대체 언제 끝난답니까?”
한상혁의 짜증 섞인 목소리.
가뜩이나 참을성이 부족한 그는 아까부터 팔다리를 덜덜 떨어대고 있었다.
“글쎄. 우리가 언제 편의 봐가면서 일했나. 늦으면 늦는가 보다 해야지, 뭐.”
“하, 기다리는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늦었다고 사과라도 하면 몰라.”
한상혁이 볼멘소리를 냈다.
그도 그럴 게, 토벌 예정 시간에서 무려 한 시간이나 지난 상황이었다.
짜증이 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당연히 나라고 다를 건 없었지만, 대놓고 씩씩거리기엔 피로감이 너무 강했다.
“하아암…….”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
하품하는 날 보던 문소연이 싱긋거렸다.
“뭐……, 소연 씨는 괜찮으신가 봅니다.”
“저야 워낙 체력이 좋아서요. 이 정돈 끄떡없어요.”
“……그러시군요.”
“그럼요!”
거짓말.
일주일 전보다 깊게 내려온 다크서클. 조금씩 떨리는 손.
계속 이마를 짚는 걸 보면 어지럼증까지 있어 보인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는 있는데…… 저 정도면 서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하긴, 끽 해봐야 20대 초반인 것 같은데.
업무 강도가 체력만 믿고 버틸 만한 수준이 아니지.
“그래도 뭐…… 쉬엄쉬엄하세요.”
“네? 아…… 네. 그럴게요.”
별생각 없이 던진 말에 어딘가 떨떠름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곤 곧바로 찾아온 정적.
다들 피곤에 절어서인지, 모두가 말을 아끼고 있었다.
“……드디어 나오는구먼.”
장장 1시간 30분 만에 작전팀이 던전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 젠장…….”
그와 동시에 내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김민주.
그 여자가 또다시 등장한 것이다.
망할, 재수가 없기로서니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
입술을 꾹 깨물고 눈으로 욕하는 중에, 또다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이번에 김민주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뭘 꼴아보냐는 듯, 불만이 있으면 와서 말로 하라는 듯, 지지 않고 가만히 나를 노려봤다.
그렇게 서로 적의가 담긴 시선을 가만히 교환하길 잠시.
“쳇.”
김민주가 혀를 차며 먼저 등을 돌렸다.
그리곤 오른쪽 어깨를 빙빙 돌리며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저 자식, 역시.’
내 시선은 어느새 김민주의 어깨로 향했다.
말해줘야 하나?
……아냐.
그때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피가 거꾸로 솟는다.
내가 왜 쟤한테 신경 쓰냐. 본인이 알아서 하겠지.
그냥 조용히 지나가자. 괜히 또 재수 없게 엮이지 말고.
그렇게 되뇌며 나 또한 등을 돌렸다.
***
이능차원관리 협회, 서울 본부.
헌터지원팀 산하 중증 부상 관리 병동 302호.
나는 두어 번 노크 후 그곳의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김민주가 나를 발견하곤 고개를 꾸벅했다.
아무리 부상자라지만 상관이 왔는데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는 모습이 꽤나 고까웠지만…….
그래, 마음 넓은 내가 이해해줘야겠지.
“그래. 몸은 어때?”
“수술 끝난 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르겠어요.”
“인대가 찢어졌다고?”
“찢어졌다기보단…… 염증을 너무 오래 방치해서 회전근개가 삭았다고 하더군요.”
쯧, 나는 혀를 찼다.
뭔 근육이 삭을 때까지 염증을 방치한단 말인가. 그것도 검을 쓴다는 녀석이.
“그러게 왼손 악력을 길렀어야지. 무식하게 팔 힘만 믿고 검을 휘둘러대니까 어깨가 박살 나잖아.”
김민주가 실소를 흘렸다.
“그럼 미리 말씀해주시지 그랬어요.”
“……말투가 뭐 그러냐? 다 안타까워서 하는 말 아니야. 안타까워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김민주는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녀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옅은 한숨을 내쉬며 안주머니에서 종이 몇 장을 꺼냈다.
“아무튼, 그 상태로 헌터 생활은 더 이상 무리야. 협회 의견도 마찬가지고.”
“……그게 무슨?”
“그만 은퇴해.”
툭, 서류 몇 장이 김민주의 무릎 위로 떨어졌다.
그녀는 휑한 눈으로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봤고.
“이건 아니잖아요…….”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 정도 부상 별거 아니에요. 일하는 데 지장 없어요! 팀장님도 아시잖아요! 저 며칠 있으면 랭크 심사도 있는데…….”
“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 이미 결정 난 사항이니까 잠자코 따라.”
“…….”
“쯧, 그러게 아프면 말을 해야지. 왜 참아서 병을 키워, 키우긴.”
나를 똑바로 보던 김민주가 이내 고개를 떨어트렸다.
“말을 하라고요……?”
꽉 잠긴 목소리.
“그래 이 자식아. 내가 설마 아프다는 것도 이해 못 해주겠…….”
“했어요. 당연히 말했죠. 그것도 여러 번! 제가 마지막으로 지원팀에 정밀 검사 좀 받아본다고 했을 때, 팀장님이 뭐라 그랬어요? 여기서 안 아픈 사람 없다고, 일이나 하라고 했잖아요!”
김민주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 갔고, 덩달아 내 미간은 점점 좁혀졌다.
“여태껏 참은 게 누구 때문인데요! 누구 때문에 이 꼴이 났는데, 이제 와서 못 쓰게 됐으니까 관두라고요?”
“지랄. 그게 왜 나 때문이냐? 내가 니 어깨 조졌어? 네 몸은 네가 알아서 챙겨야지, 어디서 남 탓이야! 일이나 하랬다고 진짜 일이나 하는 병신이 어디 있어!”
김민주는 말문이 턱 막힌 듯 주춤했다.
“아무튼, 할 수 있어요. 재활 며칠 받으면…….”
“그 며칠 동안 일은 누가 하고? 애초에 병신 된 어깨로 뭘 할 수 있는데. 심지어 너 검사잖아! 어떻게든 기생충처럼 협회에 남아 있고 싶으면, 저기 저 청소팀으로 들어가든지!”
“그걸 지금 말이라고…….”
“야, 너 말이 점점 짧아진다?”
태도가 점점 도를 넘고 있었다.
하지만 김민주는 내 신경을 긁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팀장님은…… 저를 동료라고 생각한 적은 있어요?”
“……뭐?”
“죄송해요. 질문이 좀 바보 같았네요. 저 같은 건 당연히 쓰다 버리는 도구였을 텐데.”
김민주가 이죽거렸다.
그 모습에 결국 참아오던 짜증이 폭발했다.
“너 솔직히 예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대놓고 무시하고, 시발. 오냐오냐해주니까 상관이 우습냐?”
“맞아요. 그래도 최소한 저는 팀장님을 싫어하는 정도였죠. 그런데 팀장님은…… 아랫것들은 사람으로도 안 봤잖아요.”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김민주를 쏘아봤다.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팀장님은 늘 그런 눈이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병신, 기생충, 청소팀. 이제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관심 없어요. 그러니 제발…….”
정적.
이제 굳이 내가 입을 열 필요는 없었다.
“다음 생엔 사람으로 태어나시길 바랄게요. 이 개새끼야.”
짝―
***
다시 생각해 보니까 말실수한 게 있었네.
미안하지만 당시 어깨로는 작전팀은 고사하고 청소팀으로 왔어도 방해만 됐을 거다.
‘그나저나, 나한테 말을 했었다고…….’
처음부터 되짚어 본 그때의 기억.
먼저 떠오른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솔직히 전혀 기억이 없다.
아마 꾀병 부리지 말고 일이나 하라 했던 것도, 되는대로 뱉은 말일 것이다.
아니, 그냥 관심도 없었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쯧, 그때 부상만 아니었으면 크게 될 녀석이긴 했는데. 설마 그 부상이 지금부터였을 줄이야.
‘하아, 시발…….’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쓸어 넘겼다.
그리곤 다시 한번 등을 돌렸다.
“저기.”
이미 저만치 멀어져 가는 그 녀석의 등에 대고 입을 열었다.
“……네?”
“왼손의 악력을 길러.”
“……뭐라고요?”
무슨 개소리냐는 듯한 대꾸가 날아들었다.
“검을 쥘 때 오른손에만 힘을 주니까 어깨에 무리가 가는 거야. 왼손이 받쳐줘야지 몸의 부담을 줄일 수 있어. 무엇보다 양손 밸런스가 맞아야 힘도 더 실리고.”
“…….”
“뭐…… 지원팀 가서 검사라도 한 번 받아보든가. 헌터 생활 길게 하고 싶으면.”
“아, 예.”
정말 적잖이 흘려듣는 표정.
저 떨떠름한 모습을 보아하니 청소부 주제에 뭘 안다고 나대냐 생각하고 있겠지.
하긴, 내가 팀장이었을 때도 내 말을 안 들었는데, 하물며 청소부 말을 들을 리가.
“에휴, 됐다. 잘나신 헌터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어쨌든 할 말은 했으니 이걸로 끝이다.
이제 두 번 다시 엮일 생각은 없다.
나는 이내 낡은 방호복을 챙겨 던전으로 향했다.
***
협회로 복귀한 김민주는 고개를 숙인 채 꽤나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 토벌을 마친 직후의 일을 생각 중이었다.
뜬금없이 자신에게 훈수를 던진 그 남자…….
이전에도 던전 청소팀을 몇 번 마주친 적은 있었지만, 그 남자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아니, 따지자면 두 번째였지.
초면에 죽일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던 것까지 포함하면.
이유 없이 사람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인간. 어처구니없는 훈수. 게다가 초면에 반말까지.
만약 평소의 그녀였다면, 그런 빌어먹을 인간의 오지랖 따위 가뿐하게 무시했을 터였다.
분명히 그럴 터였는데.
‘지원팀 가서 검사라도 한 번 받아보든가.’
그냥 흘려듣기엔 정말 뭔가를 알고 있는 듯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들어 확실히 어깨에 불편한 감각이 있었으니까. 힘도 덜 들어가는 것 같고 말이지.
하지만 통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토벌에 문제 될 건 없다고 생각해서 내버려 뒀는데…….
“김민주 헌터님? 이쪽으로 오실게요.”
“아, 네.”
때마침, 지원팀 소속 간호사가 호명했다.
간단한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던 김민주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제 발로 지원팀 의료 센터를 찾은 건 거의 2년 만이었다.
그 남자 때문이 아니다.
그냥 검사받아볼 때가 돼서 받는 것이다.
딱히 그 남자 말이 신경 쓰여서 온 건 아니다.
아무도 뭐라 그럴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김민주는 괜히 자존심을 세웠다.
‘에이…… 뭐 문제 있겠어. 근육 좀 뭉친 거겠지.’
진료실로 들어가며 김민주는 별스럽지 않게 여겼다.
“검사 빨리 받으시길 다행이네요. 오른쪽 어깨에 염증이 좀 있어요. 심각한 건 아닌데…… 오래 방치했으면 큰일 날 수도 있었어요.”
“……네?”
예상치 못한 의사의 답변.
“일단 소염제 며칠 분 처방해드릴 건데…… 사실 약보다 중요한 건 자세 교정입니다. 지금 보시면 밸런스가 전체적으로 불균형해요. 이대로는 계속 어깨에 무리가 갈 겁니다.”
“자, 자세 교정이요?”
“네. 제가 볼 땐 왼손의 악력을 기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김민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나저나 이 정도면 통증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아시고 검사를?”
“그냥 때가 돼서…….”
“네? 아직 정기 검진까지 3년이나 남으셨는데요?”
“……누가 받아보라 그래서요.”
“뭐에요 그게. 무당? 점 봤어요?”
“아뇨 그건 아닌데.”
김민주는 말을 아꼈다.
본인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게 통증이 오기 시작하면 그땐 사실 늦은 거거든요. 뭐, 수술이야 할 수 있는데 재활에만 몇 달은 걸리고. 근데 솔직히 이 바닥이 그 몇 달을 기다려 주진 않잖아요? 무엇보다 재활을 받는다고 해도 예전만 못하고요.”
“……그렇겠죠.”
“뭐가 됐든 간에 그분한텐 고맙다고 해둬요. 요즘 같은 세상에 그렇게 남 신경 써주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김민주는 흘려들을 수 없었다.
대충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기엔 의사가 한 말과 완전히 똑같지 않은가.
‘……대체 뭐야, 그 사람.’
김민주는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