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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3화 (3/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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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

무려 중학교 이후로 처음 타본다.

박 팀장의 전화를 끊은 직후, 나는 집에 멀쩡한 옷이 없다는 것에 한 번 놀랐고, 집 밖으로 나온 후엔 내 벤X리가 사라졌다는 것에 두 번 놀랐다.

어쩔 수 없이 택시라도 타려는데, 지갑에 땡전 한 푼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결국, 돼지우리를 샅샅이 뒤져서 찾은 동전들로 겨우 버스를 잡아탄 게 지금의 상황이다.

천하의 김준우가 시내버스라니.

꽤나 적잖은 충격이지만…… 뭐 별수 있나.

지금의 나는 세계 최초의 SSS랭크 헌터도, 정예 작전팀의 팀장도 아닌…….

“아 씨, 생각하니까 또 빡치네.”

하아, 길게 한숨을 늘어트리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어쨌든 지금은 이전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건 곧 내 주변과의 관계도 완전히 달라졌다는 뜻이리라.

다시 말해 내가 박근태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그러니 그 남자는 굳이 사과를 할 필요도 없는, 지금의 나와는 일절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출근하겠다고 한 건, 날 죽인 게 그놈일지도 모른다는 촉에서다.

내 죽음은 확실히 이상했다.

사고를 위장해 내 주의를 끄는 것도 그렇고. 스킬을 쓰지 못하게 화기로 묶어두는 것도 그렇고…….

거기에 마지막으로 나를 향해 쏜 총격은 보통의 공격이 아니었다.

대 몬스터 화기.

토벌용 이능운용소총, 타이탄.

‘저격수 클래스’의 최고 랭크 아이템을 코앞에서 머리에 박아 넣었다.

이건 누군가 작정하고 작업을 한 것이다.

생각해 볼 만한 이유는 역시, 원한에 의한 복수.

그리고 가장 유력 용의자는 박 팀장……. 그가 아니라면 박 팀장의 아들.

나한테 폭행당한 것에 앙심을 품고 복수를 계획. 이를 위해서 전문 인력을 고용했다고 하면 얼추 앞뒤는 맞아떨어진다.

……참 나.

그거 좀 밀쳤기로서니 ‘폭행’이라니.

애초에 먼저 달려들어 멱살을 붙잡은 건 그놈이 아닌가.

‘빌어먹을, 주제도 모르고……. 그러니까 처음부터 좋게 말할 때 알아들었으면 그럴 일 없었잖아.’

쉬지 않고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혀를 쯧쯧 차며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괜한 기억이 생각 저편에서 떠오른다.

***

“철회해주십시오.”

이능차원관리 협회 본부.

며칠 후 있을 토벌에 대한 회의를 끝내고 사무실로 복귀하던 그때, 처음 보는 중년 남성이 앞을 막아섰다.

“누구시죠?”

“던전 청소팀의 박근태 팀장입니다.”

“…….”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저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상부에 청소팀 인원 감축을 건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안 그래도 인원이 부족해서 정말 힘든 상황입니다. 여기서 더 축소되면…….”

아, 나는 짧게 신음했다.

동시에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그걸 왜 저한테 말씀하시는 건지? 전 단지 건의를 한 것뿐이고, 저에겐 아무런 권한도 없습니다. 실질적으로 판단하는 건 통제팀이니까, 통제팀 가서 말씀하세요.”

“이 업계 일하면서 헌터님 영향력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세계 랭킹 1위의 헌터 아닙니까. 헌터님 말 한마디가 협회를 좌지우지하는 판국에, 우리 팀 모가지 몇 개 자르는 건 일도 아니겠지요.”

얼핏 정중하면서도 묘하게 비꼬는 듯한 말투였다.

“그러니 부탁합니다. 감축은 안 됩니다. 다시 한번 재고해주십시오.”

남자가 고개를 푹 숙였다.

부탁하는 자세와는 반대로 남자의 눈빛에는 힘이 바짝 들어가 있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인원 감축을 건의했다는 게 저들의 귀에 들어갈 것이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하니 직접 찾아올 줄이야.

무엇보다 남자의 눈빛을 보아하니 이야기가 퍽 귀찮아질 게 뻔했다.

“그거 아십니까?”

때문에 나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는 건 사실 매우 비효율적인 방어 수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위험이 닥치면 망설임 없이 꼬리를 잘라내죠.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예?”

“그래야 살기 때문입니다.”

남자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내 말뜻을 어렴풋이 이해한 듯 보였다.

“아무리 비효율적이고, 아무리 손해가 막심해도 그래야만 목숨을 건질 수 있어요. 최후의 수단이라는 건 그런 겁니다.”

“하지만 저희는…….”

“꼬리가 아니다, 그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거겠죠. 물론 이해합니다. 누구나 자기가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남자를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반대로 상대의 낯빛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협회는 지금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들어가는 돈에 비해 얻는 게 별로 없으니 뭐, 당연하겠지마는.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상위 헌터들의 연봉을 조정하겠다더군요.”

“자, 잠깐만요! 설마 본인들 연봉 때문에 우리를…….”

“협회의 1순위는 던전과 몬스터로부터 시민을 지키는 것이고 그것을 수행하는 건 작전팀, 저 같은 헌터들입니다. 그런데 그 헌터들이 제값도 받지 못하고 일을 하게 된다? 그래서야 어디 토벌에 나가서 제대로 힘이나 나겠습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세를 몰아 남자를 향해 한 발짝 다가가며 냉혹한 현실을 들이밀었다.

“최후의 수단을 써야겠죠.”

“말도 안 됩니다! 해도 해도 정도가 있지 않습니까!”

“청소팀, 솔직히 하는 것도 없잖습니까.”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고 계십니까.”

“청소가 청소지, 뭘 더 알아야 합니까?”

남자는 말문이 막힌 듯, 눈만 동그랗게 뜬 채로 나를 바라봤다.

“아무튼, 청소야 누구나 할 수 있고. 통제팀이나 지원팀처럼 높은 스펙을 요구하는 것도, 헌터들처럼 재능을 보는 것도 아닌데. 부족한 인원이야 언제든 채워 넣을 수 있으니 지금은 협회를 위해서라도 좀 넘어가시죠.”

“저희도 저희 나름대로 자부심이…….”

“예예, 어련하겠어요. 사실 몇 년 전부터 해야 했을 일인데, 그래도 동료애가 있어서 참은 겁니다. 뭐…… 알아들으셨을 거라고 믿고, 전 이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남자를 지나치며 걸음을 옮겼다.

“협회의 1순위가 시민을 지키는 것이라고요?”

그렇게 몇 발짝 멀어졌을 때, 뒤에서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더는 시간을 낭비하기 싫었기에,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저희는 시민이 아닙니까?”

“…….”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남자의 무릎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부탁드립니다. 재고해주십시오.”

“……쯧, 귀찮게.”

이젠 대놓고 뻔뻔하게 나올 심산인가.

알아듣게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거론 부족했나 보군.

“솔직히 당신들은 우리한테 고마워해야 해.”

“……예?”

“그렇잖아. 우리처럼 목숨 걸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뒤에서 편하게 청소나 하면서 돈 벌어 가는데. 그동안 우리 덕 보면서 입에 풀칠하게 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지, 바라는 게 뭐 이리 많아.”

기생충도 아니고.

들릴락 말락 할 정도로 작은 소리였지만, 남자는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정확히 그의 귀에 대고 말했으니까.

“지, 지금 뭐라고!”

남자가 벌떡 일어나 내 멱살을 붙잡았다.

참으로 정직한 반응.

새어 나올 뻔한 웃음을 참으며 그대로 남자의 가슴을 툭, 밀친 그 순간.

쿵―

“크윽!”

“……뭐야.”

생각보다 힘이 더 들어간 건지, 남자는 저만치 날아가 벽에 머리를 부딪쳤다.

기절한 건지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는 건지 남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그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하, 시발. 진짜 가지가지 하네.”

예상치 못한 귀찮은 상황에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것도 잠시, 다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곧바로 최근 목록을 열었고, 이 실장의 연락처를 욕지거리를 뱉으며 눌렀다.

***

신림역 근처.

버스에서 내려 박 팀장이 보내준 지도를 핸드폰으로 확인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10분여간 걸어 도착한 출근지에는 몇 줄의 통제선과 안전 요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 사이로 주황색의 던전 입구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차원 게이트의 색깔을 따서 붙인 던전 등급 중, 위험 등급에 해당하는 ‘옐로우 레벨’ 던전이었다.

‘잠깐, 이 시기에 이 장소라면…….’

문득 핸드폰을 켜서 날짜를 확인했다. 그리곤 기억을 뒤적여보던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하다.

저건 ‘폭스트롯 센티피드’라는 지네형 몬스터가 보스로 있는 던전.

28살의 내가 토벌에 참여했던 그 던전이다.

‘10년 전으로 돌아온 게 맞긴 하나 보네.’

차원 게이트의 색깔이 많이 옅어진 거로 봐선 이미 토벌은 완료.

당시의 나조차도 조금은 애먹었던 던전인데, 용케 나 없이도 성공했나 보네.

“어어, 왔네. 준우 씨! 여기야!”

때마침 통제선 안쪽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박 팀장이었다.

50대. 벗겨진 정수리. 싸구려 등산복 차림.

내 기억 속 모습과 얼추 들어맞는 이미지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전생에서 나를 찾아왔을 때와는 눈빛이 다르다는 것뿐.

‘흠, 사람을 죽일 만한 인상은 아닌데…….’

물론 아직 속단할 순 없다. 사람은 겉만 봐선 모르는 거니.

쯧, 어쩔 수 없지. 조금 더 지켜보는 수밖에.

“뭘 그리 멍하니 있나! 어서 들어오게. 아침은 먹었나?”

“…….”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때, 박 팀장이 내 팔을 붙잡곤 통제선 안으로 잡아당겼다.

“다들 봐봐. 내가 온다고 했지? 딱 첫날 봤을 때부터 뭔가 성실해 보였다니까.”

그곳엔 박 팀장 외에 다른 사람들도 함께였다. 보아하니 청소팀의 나머지 인원들인 듯했다.

“참 나, 딱 봐도 그냥 잠수 타려다가 걸려서 온 거구만.”

“성실은 개뿔. 저번에도 저놈 도저히 못 하겠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했잖아요.”

“4명으로도 충분한데…… 왜 꼭 인원을 맞추려고 하시는 거예요.”

두 명의 남자. 그리고 한 명의 여자가 번갈아 가며 노골적으로 불평을 늘어놓았다.

“어쨌든 다들 모였으니까 바로 작업 시작하자고. 더 늦어지면 위험하니까. 상혁아, 타이머 설정해줘.”

“이미 해놨어요.”

“오케이, 얼마나 남았지?”

“45분이요.”

“엥?! 그거밖에 안 남았어?”

“저 새끼가 한 시간이나 늦어서 그렇죠, 뭐.”

끄응, 박 팀장이 신음을 흘렸다.

“하는 수 없지. 또 위에서 뭐라 말 나오기 전에 서두르자고. 다들 방호복 입고! 이미 한 시간이나 지나서 이미 가스가 방출되고 있을 거다. 방독면 절대 벗지 마.”

“옙.”

“준우 씨도 이거 받아. 사이즈는 대충 맞을 거야.”

“……아, 네.”

박 팀장이 건넨 건 때가 쪼록쪼록 묻은 흰색 방호복과 방독면이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들었다.

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나는 그저 잠자코 서 있었다.

“음? 왜 그러나. 뭐 문제라도 있어?”

“아니 뭐, 문제라기보다…….”

나는 무표정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던전 청소부는 무슨 일을 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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