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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개 같은 꿈이…….”
눈꺼풀을 뚫고 쏟아진 햇살에 스르륵 눈이 뜨였다.
뒤숭숭했던 꿈자리 때문인지 가슴이 퍽 답답했다. 호흡도 가빴고, 얼마나 땀을 흘린 건지 시트가 다 축축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전신에서 찌릿찌릿한 근육통이 전해졌다.
간만에 꽤나 깊게 잠이 든 모양이다.
긴 하품과 함께 남아 있던 잠기운을 떨쳐냈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훑자 내가 있는 방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동시에 나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원룸.
조금 더 설명을 보태서, 돼지우리도 이것보단 나을 법한 8평 남짓한 원룸이었다.
당연히 내 집은 아니다.
이 정도 크기면 내 집 화장실 정도 크기밖엔 안 되니까.
그럼 이 실장의 집……은 더욱 아니겠지.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그 여자가 날 자기 집에 들일 리는 없으니.
“그럼 여긴 어디…….”
침대에서 나와 두 발로 바닥을 딛고 일어선 순간 다리가 휘청였다.
고꾸라질 뻔한 몸을 책상 모서리를 붙잡고 겨우 버텨 내자, 간밤에 꿨던 꿈의 내용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귀하의 사망이 확인되었습니다.]
[귀하의 사망으로 인해 히든 스킬 습득 조건이 달성되었습니다.]
[히든 스킬 : 업보]
꿈속에서 들었던 그 음성이 아직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귀하의 사망이 확인되었습니다?’
지랄, 영화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눈을 굴려 낯선 방안을 다시 한번 훑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불안감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황급히 돼지우리 속을 뚫고 화장실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화장실 문을 열기 전까진, 그래도 설마 했다.
그냥 개꿈이겠거니 넘어갈 수 있었다.
어젯밤 술을 개떡이 될 때까지 처마시고, 기억도 끊길 만큼 완전히 꼴아서 팀원 중 누군가의 집에서 잠들었겠지.
분명 그럴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화장실 문을 열고 정면에 있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본 순간.
가차 없는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이게 무슨…….”
거울 속에는 분명히 10년 전의 나.
28살의 김준우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시, 시스템 오픈.”
‘고유 스킬’을 발현한 이능력자들만이 열 수 있는 이능력 확인 시스템을 반쯤 넋이 나간 채로 열었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하나의 스킬.
[히든 스킬 : 업보]
[스킬 효과 보기]
시스템 창에 손을 올리며 설명창을 띄웠다.
[해당 스킬 습득 조건 : 사망]
[해당 스킬의 효과로 인해 10년 전으로 회귀하였습니다.]
[해당 스킬은 임의로 해제가 불가능합니다.]
“하하…….”
순간 또다시 다리에 힘이 풀리며 엉덩이가 차디찬 타일에 털썩, 떨어졌다.
꿈이 아니었다.
난 정말로 죽은 것이다.
[해당 스킬의 효과로 인해 귀하의 직업이 재배정되었습니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 고개를 저으면서도, 밑에 떠오른 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시발…….’
욕지거리가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18살에 헌터가 된 나는, 28이 되던 해에 A랭크로 승급했다.
당시 나의 랭킹은 국내 22위, 세계 525위.
그러니 단순하게 10년 전으로 돌아온 거라면, 나는 여전히 헌터여야 했다.
그것도 매스컴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슈퍼 유망주 헌터.
그런데…….
[던전 청소부]
지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청소부?
천하의 김준우가 던전 청소부?
[업보 - 해제 조건]
[5년 안에 국제 이능 협회 사무총장 자리에 오르십시오.]
[목표 달성 시 스킬이 자동 해제되며, 사망 직전으로 귀환합니다.]
[달성 실패 시 ‘헌터 김준우’는 완전히 소멸합니다.]
[제한 시간 : 4년 11개월 29일 20시간 32분 48초]
[스킬 효과 닫기]
성공하면 죽기 전으로 돌아가고, 실패하면 영원히 청소일이나 하며 썩을 것이다.
스킬을 요약하자면 그랬다.
“지랄.”
말도 안 된다.
국제 이능 협회.
전 세계의 모든 협회를 지휘 총괄하는 국제기구.
그곳의 사무총장은 실질적으로 미국 대통령보다 많은 권한을 가진다.
한 마디로 전 세계 최고 권력의 자리.
5년마다 내부 투표로 선발되지만, 세계 최초로 SSS랭크를 달성한 나조차 후보에는 오르지도 못했다.
그런 자리에 오르라고?
세계 랭킹 1위의 헌터로도 부족했던 그 자리를?
그것도 5년 안에?
“…….”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다.
하고 싶지 않은 걸 떠나서 불가능하다.
애초에 저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따라야 할 이유도 모르겠다.
그래―
무시하자.
업보고 나발이고 알게 뭔가.
어쨌든 사무총장만 되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전처럼 헌터로 사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득이다.
물론 헌터로도 힘든 건 변함없지만, 그래도 청소부보다야 훨씬 가능성이…….
[고유 스킬 : 마왕 - 잠김]
[습득 스킬 : 전능 - 잠김]
[습득 스킬 : 한계돌파 - 잠김]
[습득 스킬 : 타천사 - 잠김]
[습득 스킬 : 롤링 페이퍼 - 잠김]
…….
[습득 스킬 : 로우 실드 - 잠김]
“이런 개…….”
스킬창을 확인하던 내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기존 스킬을 해금하려면 각각의 조건을 달성해야 합니다 - 자세히 보기]
더 볼 것도 없었다.
스킬창을 닫고 얼굴을 쓸었다.
이능력이 없는 헌터?
차라리 지나가던 개가 사람 말을 한다는 게 더 있을 법한 일이다.
‘꼼수는 꿈도 꾸지 말라는 건가…….’
대체 지금 이게 뭐란 말인가.
그 빌어먹을 업보가 대체 뭐길래…….
[축하합니다! 새로운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
그 순간, 시스템 창이 눈앞에서 발광했다.
이제 와서 새로운 스킬 하나 얻은 거로 이 답 없는 상황이 역전될 리는 만무했다. 그것이 설령 에픽 스킬이어도 말이다.
그럼에도 혹시나 싶은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벼랑 끝에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스킬을 확인했다.
[습득 패시브 : 결벽증]
[효과 : 청소나 해 병신아]
쨍그랑―
화장실 거울과 함께 이성이 날아갔다.
***
돼지우리 속 침대.
그 위로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몸뚱이.
나는 쥐죽은 듯 누운 채로 가만히 눈만 끔뻑거렸다.
죽고 깨어나 보니 10년 전.
하루아침에 SSS랭크 헌터에서 던전 청소부가 되어 있고, 헌터 때의 스킬은 모조리 잠금 상태.
내 일생의 업적, 나의 모든 것들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이제 난 대체 뭘 해야 하는가.
정말로 청소부 일이나 해야 한단 말인가.
SSS랭크 자존심이 있지, 그런 허접한 일은 죽어도 싫다.
‘그렇다고 이대로 평생 살 수도 없고. 다시 돌아가긴 해야 할 텐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자니 어째 머리로 열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애초에 내가 왜 이딴 고민을 하고 있어야지?
대체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이게 다 그 업보인지 뭔지 그 빌어먹을 히든 스킬 때문…….
“아니, 아니지.”
히든 스킬은 둘째 치고, 내가 이 꼴이 된 가장 큰 원인을 꼽으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날 죽인 놈들 때문이다.
어떤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보통내기는 아니다.
민간 길드?
아니면 협회 인원?
그것도 아니면…….
띠리링―
띠리리링―
순간 울리는 벨소리.
하지만 어디선가 소리만 들려올 뿐, 핸드폰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짜증부터 났을 상황이었지만, 어째 지금만큼은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이 실장인가?
아니면 팀원들?
혹시 협회장?
물론 얼토당토않은 기대였지만, 나도 모르게 벨소리를 따라 황급히 돼지우리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 벨소리는 끊어졌다 다시 울리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겨우 매트리스 밑에 파묻힌 핸드폰을 찾았을 땐 4번째 벨소리가 막 시작되던 참이었다.
10년 전에도 쓸까 말까 했던 구식 기종.
작은 화면엔 저장되지 않은 번호가 떠 있었다.
“……여보세요.”
조심스레 통화 버튼을 누르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어, 받았네? 준우 씨! 날세. 박 팀장!”
“……?”
중년 남성의 호쾌한 목소리.
나를 알고 있는 거로 봐선 관계가 있는 사람인 듯했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 10년 전의 박씨 성을 가진 팀장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이는 없었다.
“그, 다름이 아니라. 혹시 오늘 출근하기 어렵나 해서 전화해봤네.”
“……예?”
“벌써 출근 시간이 1시간이나 지나서 말이지. 아, 혹시 몸이 안 좋은 겐가? 저번 던전이 조금 힘들긴 했지?”
“던전……?”
그 한 마디에 나는 아, 하고 짧게 소리를 냈다.
어디서 걸려온 전화인지 단번에 알 수 있는 단어였다.
업보가 배정해준 직업은 던전 청소부.
그럼 지금 나한테 출근 얘기를 꺼내는 이 사람은 당연히 청소팀 인간이겠지.
“사실 저번 던전이 조금 빡센 작업이긴 했어. 오늘은 그 정도는 아니긴 한데…… 아, 물론 무리해서 나오라는 건…….”
“아, 진짜! 팀장님! 그 새끼, 그냥 힘들어서 짼 거라니까?”
그때, 전화기 너머로 다른 이들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이런 적이 한두 번도 아니고.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되지, 뭘 굳이 또 전화까지 하세요.”
“에이씨, 못하겠으면 연락이라도 하든가. 한 명 때문에 지금 몇 명이 대기하고 있는 거야, 진짜!”
“그만하고 끊어요. 우리끼리도 충분하잖아요.”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아무리 지금 내 꼴이 말이 아니라고 해도, 던전 청소부 놈들한테까지 씹힐 정도라니.
내가 정말 뒤지긴 뒤졌나 보네.
“다들 조용히 해봐. 사정이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니겠나.”
핸드폰 너머 박 팀장이 팀원을 다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기하게도 높은 언성도 아닌 그 한 마디에 떽떽 대던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아무튼, 준우 씨. 힘들면 그냥 쉬게. 다음엔 이런 일 있으면 미리 문자라도 한 통 주면 좋고.”
“아, 뭐…… 알겠습니다.”
참 나, 누가 누굴 감싸는 건가.
기가 찬 상황에 적당히 대답하며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리려던 그때였다.
“아, 문자는 이 번호로 주면 되네. 박근태 팀장이라고 저장해두면…….”
잠깐.
뭐……?
“이름이…… 뭐라고요?”
“응? 아, 잊어버렸나 보군. 기억하기 어려운 이름이긴 하지. 박근태일세. 박, 근, 태.”
한 글자씩 또박또박 끊어 말하는 그 목소리에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도 박 팀장은 끊임없이 무어라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오늘은 푹 쉬고. 혹시 다음에라도 출근할 수 있으면…….”
“오늘 하겠습니다.”
“……음?”
“지금 출근한다고요.”
그대로 대답 따윈 들을 생각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