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2 황제의 품으로 (152/154)


#152 황제의 품으로
2022.12.11.



“황후 폐하께서 신전으로 직접 서신을 보내셨는데, 정말 모르셨습니까?”

리엘라가 직접 서신을?

아멜리아의 차분한 대답에 헤르한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아멜리아는 그런 헤르한의 표정을 통해 전말을 깨닫고서 빙긋이 웃었다.

두 분은 아직도 이렇게 서로 모르게 서로를 아끼고 계시는구나, 하면서.


“황후 폐하께서 서신을 통해 제게 말씀하시길…….”

아멜리아는 따뜻한 목소리로 서신에 담긴 리엘라의 진심을 전했다.

헤르한은 최대한 태연한 표정으로 아멜리아의 말을 들었지만, 그 인내심이 끝까지 가지는 못했다.

아멜리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회의실을 뛰쳐나가는 헤르한은, 황제가 아니라 그저 누군가의 깊은 사랑에 들뜬 사내일 뿐이었다.

*



“리엘라는?”

“내실에서 쉬고 계십니다.”

헤르한은 2층 계단을 내달아 뛰었다.

황제의 체통 같은 것은 깜빡 잊을 정도로 숨이 터지도록 달려 놓고, 정작 내실 문 앞에서는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골랐다.

그렇게 열린 문 안쪽.

햇살이 환하게 쏟아지는 응접실 창가 쪽 테이블에 리엘라가 앉아 있었다.

거긴 리엘라의 자리였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헤르한에게 차를 권할 때.

한가로운 날이면 헤르한을 마주 앉혀 놓고 재잘재잘 수다를 떨 때.

아니면 늦은 밤 퇴근하는 헤르한을 꾸벅꾸벅 졸며 기다릴 때.

리엘라는 늘 거기에 있었고, 오늘도 그 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어? 폐하! 언제 오셨어요?”

헤르한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본 리엘라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너무 눈이 부셔서 바라보지 못하는 태양처럼, 지금 헤르한에게는 리엘라가 그런 존재였다.

살짝 숙인 헤르한의 시선엔 리엘라가 보던 책이 들어왔다.


“동화책 얘기를 하셨어요.”

 
아멜리아의 말이었다.


“아끼시는 동화책의 마지막 글귀를 적어주셨더군요. 엔리와 안은 서로 사랑하며 행복했습니다, 라는.”

 
그게 뭐 별거라고.

공주와 왕자가 나오는 동화는 으레 그렇게 끝나지 않던가.

헤르한은 처음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엔리와 안은 세상을 구했습니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서로 사랑했습니다.’로 끝나는 거라고. 안이 해야 할 일은 바로 그거라고 하셨어요. 세상 모두를 평화롭게 만드는 것보다, 소중한 제 한 사람을 평화롭게 하는 게 당신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라고 하시면서요.”

 
그런데 어찌 자신이 그런 황후 폐하의 뜻을 거스를 수 있겠냐며.

아멜리아는 꼭 꿈을 꾸듯이 웃었다.


“우리 황후 폐하. 참 맑고 고운 분이시지 않나요?”

 
헤르한은 리엘라를 빤히 보았다.

아멜리아의 말이 맞았다.

그저 맑고 곱기만 할까.

놀라울 정도로 사랑스럽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위대한 사람이기도 하지.


“……폐하?”

헤르한은 저를 향해 눈을 동그랗게 뜨는 리엘라의 앞에 다가가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었다.

리엘라는 그 모습에 휘둥그레 놀라다가도, 이제는, 황제가 함부로 무릎 꿇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리엘라는 단지 편안히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또 당신께서 내게 사랑을 고백하려고 그러시겠거니.


“내가 너를 졸라서 그런 건가?”

“뭐가요?”

리엘라는 다정하게 묻다가 이내 ‘아……’ 하고 곧장 얕게 깨달음을 내비쳤다.


“내가 내 곁에만 있어 달라고 해서. 내가 너를 독차지하고 싶어 하는 욕심쟁이인 걸 알아서. 그래서 날 위해 그런 결정을 한 건가?”

“폐하 때문이 아니라 날 위해서 내린 결정이에요.”

리엘라는 제 앞에 무릎을 꿇은 헤르한의 볼을 부드럽게 감쌌다.


“저는 오롯이 제가 원하는 걸 택했어요. 저는 다른 누군가의 구원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이기적이라고 할지라도, 저는, 오직 폐하만의 사람이고 싶어요.”

제 볼을 감싼 여린 손을 이번엔 헤르한이 꼭 쥐었다.

리엘라가 오롯이 원한다는 것은 아마 이런 것이겠지.

단둘이 맞는 햇살 아래에서 서로의 손을 꽉 맞잡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평화.


“사랑해. 리엘라.”

또 그 평화로운 순간의 나긋한 고백이나.


“……저도요. 사랑해요”

오가는 대답에 절로 지어지는 행복한 미소, 같은 것.

하나같이 자신에게도 벅차기만 한 것들이라 기꺼운 마음에 헤르한은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를 리엘라가 일으켰다.

이제 무릎은 그만 꿇고 가보라는 뜻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가까이 붙들기 위함이었다.


“폐하. 이왕 오신 김에 오늘은 계속 옆에 있어 주시면 안 되나요?”

“그래. 그럴게.”

“다행이다. 사실은 결혼식 때문에 너무 떨려서.”

“뭐?”

“어제까지는 멀쩡했는데, 이제 내일모레라고 생각하니까……. 심지어 전전날 밤에 먼저 움직여야 하잖아요. 그러면 바로 내일 밤이라고요!”

헤르한은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피식 웃어 버렸다.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반은 진심이었는지, 정말로 리엘라의 손끝이 긴장으로 차가웠다.

헤르한은 머쓱한 얼굴로 떠는 리엘라를 못내 사랑스럽게 보다가 손을 더 꼬옥 그러쥐었다.


“이렇게 옆에 있어 주기만 하면 되겠어? 다른 필요한 건?”

“폐하면 돼요. 대신 계속 같이 있어 주세요.”

리엘라는 안심하며 대답했다.

헤르한은 아예 의자 하나를 옆으로 끌고 와서 리엘라와 함께 창밖을 보았다.

리엘라가 떨지 않도록 작은 어깨를 감싸 주면서.


“폐하가 내 손을 처음 잡아주셨을 때. 리오타 왕궁에서. 그때 정원에서 꽃 봤던 거, 참 예뻤는데.”

리엘라는 그런 헤르한의 품에 머리를 기대어 왔다.


“겨울이라 꽃은 없겠어요. 그게 좀 아쉽다.”

“아쉬워할 거 없어. 네가 꽃보다 더 아름다운데, 다른 꽃이 뭐가 필요해?”

헤르한의 너스레에 리엘라가 퉁명스레 중얼거렸다.

참나. 말이나 못 하면.


“아무 걱정 마. 우리의 결혼식은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날이 될 테니까.”

리엘라는 어쨌든 고개를 끄덕였다.

헤르한은 늘 허풍을 떠는 것 같아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폐하의 말대로, 참 아름다울 거예요.”

 

 

*

마침내 엘슈바이크 제국의 국혼일이 도래했다.

황궁은 전국에서 몰려든 축하 사절들로 북새통이었다.

실내에서는 도무지 수용할 수 없을 정도의 인원에, 커다란 웨딩 아치가 놓인 곳은 황궁의 뜰 한가운데였다.

세상에 더 없을 경사를 맞이한 이들의 염원이 닿은 덕인지 날씨는 꼭 봄처럼 따뜻하고 화창했다.

경이로운 축제의 날이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한껏 미소 띤 이들이 축복의 인사를 나누느라 북적이는 와중에, 유일하게 헤르한만이 경직된 얼굴이었다.


“……미치겠군.”

“미치시면 안 됩니다.”

“……리엘라 쪽 소식은?”

“5분 전에도 물으셨잖습니까? 거점에서 대기 중이십니다. 정오에 축포가 터지면 바로 행렬을 끌고 출발하실 겁니다.”

아시온은 5분 전과 토씨 하나 다를 것 없는 대답을 했다.

물론 아직 지겨워하기는 멀었다. 주군은 분명 5분 뒤에 또 같은 질문을 하실 테니까.


“황성의 도로는 잘 정비했지? 호위는 철저하고? 혹시 다른 보고 들어 온 것은 없나?”

바로 이렇게.


“네가 이해해라. 무려 하룻밤이나 황후 폐하를 못 뵈셨잖아?”

그때 모처럼 연미복을 갖추어 입은 제스가 끼어들어 말했다.

누가 봐도 제 주군을 놀리는 말이었으나 헤르한의 귀에는 그마저도 들리지 않았다.

제스의 말마따나 어젯밤부터 리엘라를 보지 못한 탓이었다.

제국 국혼의 관례에 따라, 황실이 맞이하는 새 신부는 하룻밤 이상을 황궁 밖에서 머문 뒤 공식 사절단을 몰고 행진해서 황성에 입성하게 되어 있었다.

신부는 행렬을 이끌고 앞으로 제 터전으로 삼을 황성 바하보르덴 외곽을 한 바퀴 돈 뒤에야 반려가 될 자 앞에 얼굴을 보일 수 있었다.


“분부하신 대로 완벽히 준비했습니다. 아침 일찍 황후 폐하도 직접 뵙고 왔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 참. 폐하는 아직 못 보셨죠? 정말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아름다우셨는데.”

이번에는 아시온이 제 주군을 놀리는 말에 헤르한이 눈을 번뜩이며 손을 뻗었다.

당장 아시온의 기억을 읽어서라도 리엘라의 모습을 보려는 것이었지만.


“어헛! 절대 안 될 일입니다! 황후께서 성문을 넘어오시기 전엔 얼굴을 보시면 안 되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유구한 전통이라고요.”

아시온은 냅다 물러서며 헤르한을 약을 올렸다.

그렇게 정오가 되었다.

예고되었던 대로 성문 앞에 일자로 도열한 병사 수십 명이 동시에 축포를 꽝 터트렸다.

황성 전체가 쩌렁쩌렁할 정도로 경쾌한 울림이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

그 무렵 리엘라는 호화로운 신부 행렬에 몸을 싣고 막 바하보르덴 초입에 들어섰다.


“황후 폐하!”

“국혼을 축하드립니다!”

“블리니테 황후 폐하께 영원한 축복을!”

황후의 행렬이 황성에 들어서자마자 사방에서 어마어마한 환호성이 쏟아졌다.

창문을 꼭 닫은 마차 안에서도 귀가 얼얼할 정도였다.

리엘라는 도무지 가라앉지 않는 긴장감에 풍성한 드레스 자락을 바스락 움켜쥐었다.


“황성에 아주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하던데요. 전에 폐하와 함께 시가행진 했을 때 정도인가요?”


“그 열 배쯤 될 겁니다.”


“네? 열 배요?”


“예. 그때는 광장에만 시민들이 모였었지만, 이번엔 황성의 모든 거리가 다 축하 인파로 가득 찼으니까요.”

 
어젯밤, 근위대장의 설명에 리엘라는 더욱 긴장으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

황성의 모든 거리가 다 가득 찼다니.

그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한 일이지만…….


“혹시 사고가 나지는 않겠죠? 인파가 몰려서 마차가 전복된다든지…….”


“예? 하하하!”

 
근위대장은 리엘라의 군걱정에 큰 웃음을 터트렸었다.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황후 폐하. 저희가 목숨을 걸고 폐하를 지켜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아닙니다. 내일 아시게 될 겁니다.”

 
그때 근위대장이 한 말뜻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당일이 되면 알 거라던 그 말.

곰곰이 생각해 봐도 도무지 답을 알 수 없어 문득 차창 밖을 내다본 리엘라는, 그때야 비로소 답을 깨닫고서 환하게 웃었다.


“이건…….”

꽃길이었다.

리엘라를 태운 마차가 달릴 길을 따라서, 양옆으로 소복이 쌓인 눈처럼 은백색의 꽃송이들이 아름답게 뿌려져 있는 것이었다.


“겨울꽃…….”

겨울에만 활짝 피는 은색 장미.

몹시 값이 나가는 만큼이나 희귀해서, 부케를 만드는 데에만 몇 송이가 겨우 쓰였을 정도라고 했는데.


“폐하께서 일부러 명하셨어요. 원래는 길을 따라 울타리를 쳐두었는데 그걸 거두고 대신 겨울꽃을 뿌리라고요.”

“울타리 대신 꽃이요?”

“네. 결혼식이 끝난 후에도 그대로 두어서 황성 시민들이 하사품으로 꽃을 가져가도록 허락하셨어요.”

수많은 인파가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리엘라의 마차가 무사히 달릴 수 있는 이유는 그 덕이었다.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부수고 넘을 낮은 울타리 대신, 절대 짓밟지 못할 귀한 꽃으로 길을 만들어 주어서.

리엘라는 마차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고개를 내밀었다.

위험하니 창문을 꼭 닫고 있으라던 근위대장도 지금만큼은 리엘라를 막지 않았다.


“하아.”

가슴이 터지도록 들숨을 머금으면서, 리엘라는 창문을 열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황성 전체가 달콤한 겨울꽃의 향기로 그윽했다.

밖으로 고개를 더 내밀면 보이는 것은, 자신을 반기고 사랑해 주는 이들의 환한 얼굴들,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는 수만 송이의 꽃들.

그 꽃길의 끝.

마침내 도착한 황궁 앞에, 헤르한은 직접 성문까지 나와서 리엘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은빛 마차가 멈추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부신 모습으로 마차에서 내린 리엘라는 오로지 한 방향만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다.

성문까지 이어지는 다리를 걷는 것은 꼭 구름 위를 걷는 것만 같았다.

한 발 한 발 걸어 나갈수록 리엘라의 미소는 더 환해졌다.

헤르한은 그 자리에 붙박인 듯이 서 있었다.

리엘라를 얌전히 기다리면서.


“폐하. 저 좀 늦었죠?”

드디어 딱 세 발만을 남기고, 리엘라는 헤르한 앞에 섰다.

리엘라의 아름다운 모습에 넋이 나가 있던 헤르한은 제게 날아드는 머쓱한 인사에 정신을 차리고 그냥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이제야 아무 근심 없이 활짝 올라가는 그의 입꼬리를 보면서 리엘라는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꽤 멀더라고요.”

“그랬군.”

“준비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어젯밤은 혼자 얼마나 무섭던지. 게다가 처음엔 마차가 좀 덜컹거리기도 했어요. 사람들이 앞을 가로막아서 시간이 더 지체되기도 했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당신이 내가 발 디딜 곳에 꽃을 깔아 주었더라고요.

나, 사뿐사뿐, 다치지 말고 오라고.

헤르한이 그런 리엘라에게 손을 뻗었다.

어느 환한 날, 환한 길에서 손을 처음 내밀어 주었던 그 모습처럼.


“그럼 이제 들어갈까? 황후.”

리엘라는 더 망설이지 않고 내밀어진 손을 잡았다.

이제야 다시 하나가 된 둘은 눈부신 축복 안으로 함께 걸음을 디뎠다.

황궁 뜰 안을 가득 메운 이들은 새 시대를 열어갈 황제와 황후 부부의 입장을 환한 면면으로 반겼다.

마침내 겨울꽃과 크리스털로 장식된 아치 앞에 다다른 헤르한과 리엘라는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한참 고요한 침묵이 공간을 하나로 모았다.

곧, 아치 앞에 선 원로의 엄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분은 만인의 증인 앞에서 혼인을 서약하십시오.”

 

 
기다렸다는 듯이, 먼저 입을 연 것은 헤르한이었다.


“나, 헤르한 린하트 폰 비엘스바흐는 리엘라 블리니테를 나의 황후이자 유일한 반려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낄 것을 맹세한다.”

헤르한의 목소리엔 한 치의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었다.

리엘라는 미소 지었다.

저 역시, 그와 같은 마음이었으니까.


“나, 리엘라 블리니테는 헤르한 린하트 폰 비엘스바흐를 나의 황제이자 유일한 반려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지킬 것을 맹세합니다.”

낭랑한 서약에 헤르한이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연습한 서약은 ‘사랑하고 아낄 것’이었는데 리엘라가 그것을 제멋대로 ‘사랑하고 지킬 것’이라고 바꾸어 말한 것을 알아챈 것이었다.


“거룩한 성혼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로써 두 분은 부부가 되셨음을, 또한 이로써 리엘라 블리니테 님은 우리 엘슈바이크 제국의 황후 폐하가 되셨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합니다.”

원로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또다시 축포가 터졌다. 축복받은 하늘 위로 높이 쏘아 올려진 불꽃은 마침내 두 사람의 사랑이 온전한 결실을 맺었음을 온 세상에 알렸다.

지금껏 엄숙하게 혼인 서약을 지켜보던 그들의 백성, ‘결혼의 증인’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기뻐하며 두 사람을 목소리 높여 축복했다.

가장 빛나는 곳의 중심에서, 헤르한은 서약을 마친 리엘라를 제 앞으로 가까이 끌어당기며 물었다.


“그래서, 네가 날 지키겠다고?”

“물론이죠. 당신은 내가 없으면 안 되잖아?”

리엘라는 지지 않고 응수했다.


“항상 당신의 곁에서,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헤르한.”

리엘라의 마지막 말끝에 따라붙은 제 이름에 헤르한은 눈을 크게 떴다.

아무리 리엘라가 자신을 사랑해 봤자, 자신이 리엘라를 사랑하는 것보다는 크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리엘라의 어떤 고백을 듣더라도 요동치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했었다.

하지만.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이 생기든, 나는 결국엔 꼭 당신에게로 가요.”

언제나 해왔던 것과 같은 고백에 헤르한의 마음은 아주 쉽게 허물어져 리엘라를 끌어안았다.

리엘라는 어느 때 보다 활짝 웃으며 기꺼이 안겨들었다.

언제나 뜨겁게 자신을 안아 주는, 황제의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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