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1 날 따라와요 (141/154)


#141 날 따라와요
202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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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웃어……? 지금 황제가 웃은 건가?’

헤르한의 그 짧은 웃음소리는 메아리처럼 울리며 루도비코 주교의 귓전을 사납게 때렸다.

꼭 대놓고 뺨이라도 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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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왜 이렇게 조용한…….’

그는 이 순간의 정적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좌중의 시선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제 말에 경악하는지, 낭패감 가득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웅성거리는지.

또 황제는, 어째서 저렇게 의기양양한 얼굴로 웃고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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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연맹의 부활을……. 선언을…….”

루도비코는 당황해서 일단 뭐라도 다시 웅얼거렸다.

하지만 뭔지 모를 공포에 목소리가 벌벌 떨려서 제대로 말을 맺을 수 없었다. 누가 그의 말을 막는 것도 아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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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가 잘못되었어.’

루도비코의 뒷목이 점점 뜨거워져 갔다.

증거를 들고 올라오기로 한 이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고, 함께 황제를 규탄하기로 했던 좌중은 전부 단상을 외면하며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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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도비코 대주교.”

그때 황제가 입을 열었다.

그저 부르기만 한 것인데도, 루도비코는 제풀에 놀라 경련을 일으키다가 들고 있던 선언서를 놓치고 말았다.

팔랑팔랑.

황실에 대한 선전포고와 연맹의 부활을 선언하는.

그 발언의 무게와는 어울리지 않는 가벼운 종잇장이 나풀나풀 떨어졌다.

말라비틀어진 낙엽처럼 놓인 선언서를 주우려고 허리를 숙인 루도비코의 앞에 뚜벅뚜벅 걸어온 구둣발.

그 구둣발이 땅에 떨어진 선언서와 함께 루도비코의 손끝을 지르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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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윽……! 화, 황제여!”

루도비코는 팔을 빼내지도 못하고 제 손을 짓이기는 젊은 사내의 힘에 굴복해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신의 사당에서 만민의 우러름을 누리던 그가, 지금은 볼썽사나운 꼴로 황제의 발밑에 엎드려서 끙끙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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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방금 나의 제국 위에서 나에 대한 반역의 뜻을 천명하였다.”

주교는 엎드린 채로 고개를 들었다.

젊은 황제의 저 오만한 눈동자는 제대로 마주하기에 버거울 정도였으나, 루도비코는 그래도 그를 힘껏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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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렇소!”

그 말에 좌중이 또 술렁거렸다.

루도비코는 이를 꽉 물었다.

아직 나서기 두려워하는 모두의 의지를 고양해 줄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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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의 대리인이자 연맹의 일원으로서 황제의 폭정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소! 따라서 야만스러운 찬탈자에게서 안투의 현신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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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폭정을 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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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곧 명백한 증거를 이 자리에서 보일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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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언제? 어디?”

헤르한은 차분했다.

오히려 아주 재미있는 여흥을 즐기듯이 여유도 넘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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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가 어디 있다는 건가?”

궁지에 몰린 회색 눈이 필사적으로 사방을 샅샅이 훑었다.

분명히 증거를 들고 올라오기로 했던 자가 여기 어디 있었는데. 군사도 곧 닥칠 것이라 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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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증거는 바로 저기……!”

아까 대기실에서 자길 설득했던 이들을 발견하고 드디어 반가움에 크게 떠올랐던 주교의 눈이 이내 충격과 공포로 굳어 버렸다.

주교에게 혁명을 약속했던 사내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팔짱을 끼고서 그를 싸늘하게 보고 있었다.

그것도, 황제의 기사들 사이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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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파들파들 떨리는 주름진 입술 사이로 희미한 탄식이 새어 나왔다.

지진이 난 것처럼 동요하던 주교의 눈동자는 이내 절망으로 색채를 잃고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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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함정이었는가.’

다시 고개를 들어 헤르한과 눈을 마주치니, 여전히 그를 내려다보는 입가에 야멸찬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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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니라고 부정하더니 감히 내게 거짓을 고했던 거로군. 루도비코 대주교. 그대는 언제부터 더러운 연맹의 하수인으로 살았던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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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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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과 패를 이루어서 내 황후를 넘보았을 때? 아니면 그보다 훨씬 더 이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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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도비코는 깨달았다.

대기실에서 선언문을 건네받은 그 순간, 자신은 이미 금단의 열매를 베어 물었던 것임을.

주교는 얼른 일어나, 저를 노려보는 사형수로부터 뒷걸음질치면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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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가 한 짓이 아니오. 나는……. 나는 그저 간악한 수에 놀아났을 뿐이오. 저놈! 저놈이 나를 겁박하여 제 앞잡이로 내세운 것이란 말이오.”

루도비코가 가리킨 건 황제의 기사들 사이에 있는 사내였다.

하지만 그래도 황제가 꿈쩍 않자, 갈 데를 잃은 손가락이 이번에는 좌중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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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도 한패이고 저자도 한패요! 여기 있는 자들 전부가 죄다 연맹의 간부들이오!”

루도비코가 악에 받쳐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게 황제의 수든, 아니면 꼬리를 자르기 위한 카일의 수든, 어차피 제 목숨을 구하는 것은 이미 물 건너간 일이었다.

그러니 남은 건 ‘죽더라도 혼자 죽지는 않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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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자는 북부의 연락망을 지휘하는 자이고, 저기, 카란의 상단주는 연맹에 경제적인 지원을 하던 자요. 또, 저쪽의 엘 교수는 제 후학들을 데리고 연맹의 사단을 이끌었소!”

루도비코의 고발이 이어지자 여태 눈치만 살피고 있던 좌중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들고 일어나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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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교! 그게 무슨 망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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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닙니다. 황제 폐하! 믿지 마십시오. 대주교의 말은 전부 거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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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연맹에 가담한 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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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맹에 지원을 한 적은……, 그, 그건 제가 아니라 이 작자가 한 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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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내가 언제 그랬어? 날 연맹에 끌어들인 건 너였잖아?”

번쩍이고 휘황찬란한 연회장 내부는 여전한데, 그 안에 들어찬 이들의 품위는 단 한순간에 바닥으로 떨어져 난잡했다.

시장바닥처럼 어수선한 중에 루도비코가 붙인 불길이 삽시간에 번져갔다.

치졸한 변명과 그보다 더 치졸한 고발이 서로를 에워쌌다.

여기저기서 고함과 삿대질이 일었다.

헤르한은 그런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싸움을 한참 구경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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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정말 엄청난 우연의 일치로군. 오늘 내가 초대한 귀빈들이 죄다 연맹의 간부였다는 건가? 전범에, 신전을 타락시키고, 감히 황제의 반려를 탐내는 그 도둑놈들? 이야 대단한데.”

황제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조소했다.

그러자 얼굴이 터질 정도로 핏대를 세우며 항변을 하던 루도비코도, 술렁이던 좌중도, 전부 입을 다물고 창백해졌다.

황제의 말마따나 우연의 일치일 리는 없는 일이었다.

위대하신 카일 님이 세운 계획은 더더욱 아니고.

이 모든 게 사실은 황제가 짠 판이었음을, 모두는 드디어 깨닫고 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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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이익! 비, 비켜!”

그때 좌중에서 이성을 잃은 누군가가 다짜고짜 출입구를 향해 내달았다.

그를 시작으로 홀을 가득 메운 자들이 전부 넋이 나가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서로의 발에 걸려 자빠지고, 또 자빠진 자를 밟고서 출구를 향해 뛰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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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면 순순히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정중한 말과는 달리 날이 번뜩이는 검을 뽑은 병사들이 이미 연회장을 빙 둘러 모두를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의 패배를 공인하듯 헤르한이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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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이 아깝다면 지금부터라도 내 명에 따라라. 모두 돌아와서 나에게 네놈들의 얼굴을 보여.”

낮은 명령에 다들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떨었다.

모두가 필사적으로 옆 사람의 눈치를 보았지만, 그들이 주고받을 수 있는 건 짙은 무력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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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군. 여태 음침하게 뒤에 숨어서 날 엿보고만 있었을 그대들을 드디어 이렇게 마주하게 되어서.”

헤르한은 제 앞에 고개 숙인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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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사당 한가운데서 피를 뿌린 것으로는 내 경고가 모자랐던 모양이지?”

드디어 황제가 본뜻을 드러내는 순간.

그러자 곧장 겁에 질린 이가 제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며 애처롭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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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아닙니다! 저는 아닙니다! 제가 우매하여 한때는 연맹을 좇았으나, 연맹이 지엄한 황후 폐하이신 안투의 후손을 위협한다는 것을 안 직후에 그들을 버렸습니다!”

간절한 울부짖음에 사방이 동요했다.

이윽고 그의 바로 옆에 선 자가 무릎을 꿇더니, 그 옆의 사내도, 그 뒤의 노신사도 전부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고백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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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저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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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연맹이기 이전에 황제 폐하의 백성입니다! 어찌 이 황실에 대적하려는 연맹과 뜻을 같이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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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연맹을 등진 지 오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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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만 주신다면 폐하께 저의 충성을 되돌리고, 연맹의 모든 만행을 다 고하겠습니다!”

헤르한은 웃음도 더 나오지 않았다.

깃털 같은 힘으로 툭 건들기만 했을 뿐인데도 와르르 무너지는 이들.

애초에 연맹이라는 것 자체가 모래로 쌓은 성과 같았을지도 모른다.

헤르한은 병사들에게 아직 노기를 어쩌지 못하고 부들거리는 루도비코 주교를 포박하라 명했다.

또 바닥에 엎드려 항복한 자들의 머릿수를 확인하라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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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투항할 자는 더 없나?”

헤르한이 선심 쓰듯 한 마디 회유를 던질 때마다, 연맹의 완전한 패배를 직감한 이들이 우르르 머리를 조아렸다.

그럼에도 구석에는 아직 황제를 향해 눈을 부릅뜨는 이들이 몇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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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헤르한이 턱짓하자, 그들은 움찔할지언정 눈동자에 서린 광기를 끝내 거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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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맹은 언젠가 다시 옛 영광을 찾을 것입니다! 카일 님이, 또 우리의 후손이 반드시 그 뜻을 이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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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뜻이란 아직도 내 황후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겠다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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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께서는 위대한 안투의 현신입니다. 아무리 황제 폐하라 할지라도 감히 소유하실 수 없습니다!”

그들은 콧대 높게 시선을 쳐들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정도 패기면 저 황제도 당황하리라 생각하면서.

하지만 정작 헤르한은 그들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세면서 이맛살을 찌푸릴 뿐이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는 가운데 헤르한이 이내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헤르한이 뱉은 건 고작 ‘지루한 한탄’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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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마지막까지 남은 게 고작 열하나? 그래도 몇 배는 더 될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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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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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맹이란 게 뭐 그리 대단한가 했더니 실은 얼마나 시시한지 알 만하군. 영 재미없게 됐어.”

그 말에, 혁명 투사라도 된 양 득의양양하던 그들의 얼굴이 당황으로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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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 말이 맞다. 내 황후는 정말 하늘에서 내린 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비로운 여인이지. 그런 황후가 내게 부탁한 것이 있어. 오늘 이 자리에서 순순히 투항하는 자들에 한해서 목숨만은 거두지 않기로.”

뚜벅뚜벅.

말을 이어가면서 황제가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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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황후의 부탁은 거절하지 못해. 그래서 내심 걱정했다. 전부 다 무릎을 꿇어 버리면 어쩌나. 그래서 아무도 벨 수가 없으면…….”

연맹의 투사들을 향한 헤르한의 눈빛이 입맛을 다시는 맹수처럼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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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 노여움은 어떻게 달래나.”

이미 엎드린 자들은 황제와 눈이라도 마주칠까 덜덜 떨며 흐느꼈다.

헤르한의 구둣발은 그 보잘것없는 몸들을 지나 열한 명의 사내들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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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열하나라. 체면을 챙기려면 이 정도는 내가 친히 베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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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자비로운 안투의 현신께서는 폐하의 이런 패악을 절대 묵인하시지 않을……!”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사내의 목 아래 황제가 뻗은 검이 챙 날아왔다.

턱 아래, 서늘하게 들어선 칼날을 따라 피가 한 방울 베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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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새끼 주제에 감히 내 사람을 입에 담지 마라.”

사내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쇠붙이가 살갗을 가르는 아픔보다, 황제의 맹렬한 음성이 영혼을 파헤치는 것이 더 끔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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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열한 번째로 해주지. 제일 끝에서 네 탐욕의 처참한 말로를 똑똑히 보도록 해.”

 

*

실내는 아수라장이었다.

카일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입술을 깨물면서 병사와 실랑이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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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초대 받은 관계자가 아닙니다. 이 안엔 실수로 들어왔습니다. 제발 나가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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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의 말을 듣지 못하였는가? 죄인들이 전부 연행되기 전까지 아무도 여길 떠날 수 없다.”

카일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등 뒤로, 열한 명의 포로들이 순서대로 끌려가고 있었다.

카일은 애써 그들을 외면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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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것들.’

그들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랬다.

이미 사슬로 칭칭 묶여 밖으로 끌려 나간 루도비코 대주교나, 제 목숨 하나 보전하자고 납작 엎드려 투항한 것들이나, 뭐 볼 게 더 있다고 버티다가 황제의 화만 돋운 마지막 열한 명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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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이야. 헤르한. 당신이 이렇게 재미있는 판을 짤 줄은 몰랐는데.’

애써 여유로운 척 호기롭게 굴어 봐도 난감한 건 여전했다.

투항한 이들 중엔 제 정체를 아는 이도 있으니 이대로 도망치지 못하면 끝장일 것이었다.

그물 안에 걸린 고기처럼 점점 더 조여들 일만 남았다.

그전에 어서 도망치는 것 외엔 답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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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랄.’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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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놀라셨지요? 황후 폐하. 밖으로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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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자들은 이제 어떻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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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폐하께서 다 정리하실 것입니다. 황후 폐하께서는 보시지 않는 것이 좋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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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알겠어요.”

소란한 가운데 유독 정신을 깨우는 맑은 목소리에 카일의 심장이 먼저 쿵쾅거리며 반응했다.

리엘라.

그녀가 코앞에 있다는 걸 알았지만 카일은 다가갈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서 몸을 돌려 물러나는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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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당신은?”

설마인가 싶던 목소리가 정말로 카일을 알아보고 그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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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무슨 일이에요? 지금 여기가 얼마나 위험한데.”

뭐라 답하지도 못하고 숨통이 꽉 막힌 카일을 리엘라가 잡아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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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 문을 열어줘요. 이자의 신원은 내가 보증하니 내가 함께 데리고 나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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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황후 폐하.”

리엘라의 한마디에 문이 벌어졌다.

철옹성같이 앞을 가로막고만 있던 문이.

카일이 겨우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자, 리엘라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예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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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같이 가요. 날 따라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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